포퍼의 추측 그리고 논박
이문호 프라임칼럼 대표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년)는 과학철학, 수학, 음악, 역사, 심리학, 정치학, 논리학, 인식론 등 다양한 주제로 폭넓게 글을 썼다. 그는 경험주의를 비판하고 합리주의의 전통에 서면서도 독단적 이성 대신에 비판적 이성을 주장하였다. 이때문에 그의 사상에는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는 명칭이 붙는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의식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우리는 실수와 오류를 피할 수 없으며, 그 실수와 오류의 수정을 통해서 지식을 증진시켜 나갈 수 있을 뿐이다.
베이컨(F. Bacon, 1561-1626년) 이후, 과학은 관찰과 귀납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귀납적 방법은 과학을 신학이나 사변적인 형이상학과 구별지어주는 기준이었는데, 이것을 구획의 문제(demarcation problem)라고 한다. 과학은 관찰로부터 시작해서 귀납적 방식에 의해 일반화를 거쳐 마침내 이론으로 나아간다. 과학자는 의도하지 않거나 오염된 결과가 도출되지 않도록 관찰이나 실험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학적 이론은 통제된 환경하에서 관찰과 실험을 반복하며 수집한 자료들을 근거로 해서 추리한 것이다.
그러나 포퍼는 귀납적 추리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흄(D. Hume, 1711-1776년)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사례들은 우리가 경험했던 사례들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어떠한 논증도 있을 수 없다. 예컨대 지금까지 목격한 백조가 모두 흰색이었다는 경험을 근거로 ‘모든 백조는 희다’는 결론을 추리해냈다고 하자. 지금까지 목격한 백조가 모두 흰색이었다고 해서 앞으로 목격하게 될 백조까지 모두 흰색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내일 검은색의 백조를 목격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아무런 모순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백조는 희다’는 결론은 지금까지 목격한 백조가 모두 흰색이었다는 경험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대상들의 빈번한 결합이나 변치 않는 결합을 관찰한 후일지라도 우리가 경험했던 것을 넘어서 대상에 관한 그 이상의 내용을 추리해낼 수 있는 정당한 근거는 없다. 과학자는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사이비과학자나 하는 일이다.
귀납적 방법이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획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없음이 밝혀짐에 따라 포퍼는 새로운 기준을 찾아 나섰다. 그는 과학적 이론과 비과학적 이론의 차이를 이해하고 싶어 했으며, 특히 (진정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별하는 기준을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보고 이를 탐구하였다. 사이비과학은 자신을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과학이라는 일반적 특성과 기준에 비추어보아 실제로는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사이비과학은 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이론적 체계와 설명방식을 갖추고 있지만, 사이비과학이 제시하는 일반법칙은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고, 그 내용을 경험적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 이론 자체에 대한 수정이 불가능하다.
포퍼는 과학적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하나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잠정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단계(추측 또는 가설의 단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론을 시험하는 단계(논박 또는 반증의 단계)이다. 과학적 이론은 관찰과 귀납적 방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이론은 자신을 반박하려는 시도에 의해 시험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적 이론을 발견하는 것과 시험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이론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시험가능한 것인지 여부이다. 시험 자체가 불가능한 이론, 즉 어떤 관찰방법으로도 논박(또는 반증)될 수 없는 이론은 사이비과학이다. 포퍼는 (진정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획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논박가능성(또는 반증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과학적 이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귀납적인 과정이 아니라 창조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그 법칙들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이 생각해내는 법칙들을 자연에 부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선택하고, 자신의 관점, 배경이 되는 이론, 그리고 구체적 관찰 등을 배경으로 해서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잠정적인 이론을 제기한다. 이론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논리적 분석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논리적 분석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그것은 논리적인 작업이 아니라 창조적인 활동이다.
이론은 순수한 관찰의 결과가 아니다. 순수한 관찰이란 있을 수 없다. 이론의 성질을 띤 어떤 것의 개입 없이 객관적이고 순수한 관찰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찰은 언제나 선택적이다. 관찰은 해결해야 할 문제, 선택된 과제, 이론적 관점을 필요로 하며, 과학자는 이들에 맞춰 관찰대상과 관찰방법을 선택한다. 과학자는, 백지상태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과학적 이론을 배경으로 해서 관찰한다. 이론은 다른 이론들과 독립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이론은 배경이 되는 이론들이나 가정들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이론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베이컨의 마음의 우상(선입견과 편견)이 관찰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론을 가지고 자연과 대결하며, 자연에 대해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요구한다. 이론이 없으면 어떠한 계획도 따르지 않고 따라서 자연법칙으로 이어질 수 없는 우연적인 관찰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관찰과 더불어 시작해야 한다는 베이컨의 주장은 신화일 뿐이다. 과학자가 제시한 이론이 관찰보다 나중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관찰은 이미 과학자의 목적이나 의도, 관점, 이론적 배경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이론은 과학자 개인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과학자 개인의 형이상학적 믿음들, 꿈, 종교적 가르침 등과 같이 영감을 고취시켜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은 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우리의 독단적 태도 또는 사고가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론을 생각하거나 만들어내는 행위는 논리적 분석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논리적 분석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과학적 이론에 대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정당성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론은 추측(Conjectures)에 불과하다.
과학적 이론이 만들어지는 창조적인 과정은 예술의 창작과정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론은 우리 자신이 지닌 정신의 자유로운 창조물이며, 거의 시(詩)와 같은 직관의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이론은 관찰과 실험에 의한 시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예술과는 다르다. 이론은 추측이고 가설에 불과하므로 비판에 노출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당화될 수 없는 추측이나 가설은 비판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론을 비판적인 시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논박(Refutations)이라고 한다.
우리는 과학적 이론을 확실하게 검증할 수 없다. 검증은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검증주의자들은 실증적 근거들에 의해 지지받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건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론에 부합하는 관찰사례가 아무리 많이 누적된다고 해도 이론의 진리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론은 검증될 수 없으며, 다만 반증될 수 있을 뿐이다. 반증은 허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단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이론이 허위임을 입증할 수 있다. 베이컨은 결정적 실험이 이론을 확립하거나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포퍼는 그러한 실험이 기껏해야 이론을 반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반증할 수 있는 경험적 방법이 없는 이론은 과학적 이론이 될 수 없다. 과학적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에 대한 논박이 가능해야 된다. 논박가능성은 반증가능성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과학적 이론은, 관찰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는 없지만, 관찰과 충돌할 수는 있다. 즉 이론은 관찰과 모순될 수 있으며, 따라서 관찰로부터 이론이 거짓임을 추리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이론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론과 양립할 수 없는 관찰방법, 즉 자신의 이론을 포기하게 되는 조건들을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태양 근처는 태양의 질량으로 인해 시공간(時空間)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하는 빛은 그 진행경로가 변경된다. 아인슈타인은 태양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빛의 경로가 약 0.00049도 구부러진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예측하였다. 1919년 5월 29일 에딩턴(A. Eddington)은 서아프리카 해안의 프린시피섬에서 관측활동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일식 때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을 관측하여 확인한 별의 위치가, 일식이 아닌 때 태양 근처를 지나지 않는 별빛을 관측하여 확인한 별의 위치와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것과 거의 동일하게 어긋나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포퍼는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과학적 이론이라고 극찬하였다. 진정한 과학적 이론은 그 이론과 양립불가능하여 그 이론을 논박할 수 있는 사례를 우리가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론이 위험을 전혀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가능한 모든 관찰과 양립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이 아니다. 가능한 어떤 사건에 의해서도 논박될 수 없는 이론은 사이비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포퍼가 마르크스(K. Marx)와 프로이트(S. Freud)의 이론을 사이비과학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 이론들이 가능한 어떤 사건에 의해서도 논박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론에 관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갖는 설명력과 그 이론이 시험과 비판을 견디어내는지 여부이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치면 시행착오의 방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는 먼저 문제를 해결할 이론을 시험 삼아 제시한다. 그리고 이론의 문제점을 밝혀내기 위해 시험과 비판을 병행한다. 시험을 통과한 이론이라 하더라도 잠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시험의 결과 그 이론이 반증되면 그것은 배제되어야 하며 새로운 이론이 제안되어야 한다.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에는 없는 경험적인 내용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행착오의 방법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을 배제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행착오의 방법을 반복함으로써 보다 더 좋은 이론을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더 좋은 이론이란 더 많은 것을 설명하고, 더 정확하게 설명하며, 더 좋은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론이다. 이론의 기원과 그것에 도달한 방법은 그것의 과학적 지위나 성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관찰과 실험의 중요성은 이론을 창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비판하는 데 있다. 관찰과 실험은 과학의 발전에서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논증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이론의 진리성에 관한 부정적인 대답을 끌어내고자 시도한다. 우리는 이론들을 입증하거나 검증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그릇됨을 증명하거나 반증하고자 시도한다.
관찰이나 실험이 이론을 반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이론은 용인(corroborated)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한 이론이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식의 정당화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해결책인 이론을 제시하고, 제시된 이론에 대한 논박을 통해 진리에 보다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론에 대한 비판은 우리의 실수를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문제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해주며, 좀 더 성숙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과정에서 비판을 잘 이겨낸 이론들은 당시의 과학으로 받아들여져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론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경우에도 본질적으로 잠정적이고 추측이며 가설적인 것으로 남는다.
과학적 이론들이 모두 추측에 불과하고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식이 성장한다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이론이 진리에 보다 가깝게 접근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포퍼는 지식의 성장을 위한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새로운 이론은 지금까지 관계없던 사물들이나 사실들, 그리고 새로운 이론적 실재들(예컨대 장이나 입자들)간의 어떤 관계나 관련에 대한 단순하고도 새로우며 강력하고 통일적인 개념을 가져야 한다. 둘째, 새로운 이론은 독립적으로 시험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이론은 새롭고 시험이 가능한 결과를 산출해야 하며, 그것은 지금까지 관측되지 않았던 현상을 예측해야 한다. 새로운 이론은 우리에게 새로운 실험과 함께 앞으로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야 된다. 셋째, 새로운 이론은 새롭고 엄격한 시험들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이론은 과학적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실패한 이론이라고 해도 우리의 지식이 성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는 시행착오로부터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통과한 이론은 훌륭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 또한 반증되기를 기다리는 가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과학적 이론들이 가설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영원히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인가? 포퍼는 낙관주의와 회의주의 모두를 경계한다. 우리의 지식은 성장하므로 절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우리는, 비록 빈번하게 그리고 크게 빗나갈 수 있긴 하지만,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객관적인 진리에 더욱더 접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지식의 확실성을 담보해줄 어떠한 권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컨대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지속적인 합리적 비판을 통해서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 한다.
포퍼의 관심은 지식의 확실성과 정당성이 아니라 지식의 성장에 있었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지식의 성장이나 진보를 말할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가 탐구한 문제였다. 모든 지식은 인간적인 것이다. 지식 속에는 우리의 오류, 편견, 몽상, 소망 등이 뒤엉켜 있다. 지식은 진리가 아니라 추측이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추측이나 가설은 비판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비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실수를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문제와 더욱 친숙해지며, 좀 더 성숙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방식이다. 지식은 이론을 긍정하는 실증적 사례들을 수집하고 축적함으로써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반증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진보적으로 발전한다. 우리의 이론들 중에서 비판을 아주 잘 이겨낸 이론들과, 다른 경쟁적인 이론들보다 진리에 더욱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이론들은, 그들을 시험한 보고서와 함께, 당시의 과학으로 기술되어도 좋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하게 이론을 제시하고, 그리고 그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러한 비판적인 시도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이론을 잠정적으로 수용하는, 추측과 논박의 방법보다 더 합리적인 절차는 없다. 추측 그리고 논박이야말로 지식을 확장하는 실행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포퍼가 내린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