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 화두를 응용하는 방법》
ㅡ
[선문염송] 중에서.. (157편) 20240304
제목 : 완월(翫月)
[마조가 달구경을 하다가 곁에 있는 제자 세사람에게 말호대 "이럴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장이 대답호대 "공양을 하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회해가 대답호대 "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보원은 소매를 저으면서 가버렸다. 이에 선사가 말호대 "경은 장으로 들어갔고 선은 해로 돌아 갔는데 보원만이 홀로 사물 밖으로 뛰어났구나" 하였다.]
,
(한문 원본)
翫月
馬祖翫月次 謂二三子日 正當恁麼時如何 智藏曰正好供養 懷海日 正好修行 普願 拂袖而去 師日 經入藏 禪歸海 唯有普願 獨超物外
,
(또 다른 번역본)
마조가 완월(翫月; 달구경)하던 차에 이삼자(二三子)에게 일러 가로되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어떠한가. 지장(*智藏)이 가로되 바로 공양하기에 좋습니다. 회해(*懷海)가 가로되 바로 수행하기에 좋습니다. 보원(*普願)이 소매를 떨치고 떠났다. 스님이 가로되 경은 지장에게 들아가고 선은 회해에게 돌아가고 오직 보원이 있어 홀로 물외(物外)를 초출하였다.
.
.
ㅡ♡♡
.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7년 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네요.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내용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면 물외(物外)입니다.
물외(物外)란
[세상의 속된 일이나 물정에서 벗어남]
이란 뜻인데요.
쉽게 말하면 "속세에서 벗어났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지웠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버렸다는 뜻입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해탈(解脫)이라는 뜻이고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벗어남"입니다.
,
전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답니다..
하루는 마조가 달 구경을 하는데 마조가 제자 세 사람에게 묻기를..
"이럴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물으니까?
지장이 대답하길
"공양을 하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또 한 제자인 회해는
"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라고 답변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보원이라는 제자는 소매를 저으면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마조가 하는 말이?
"경은 장으로 들어갔고 선은 해로 돌아갔는데 보원만이 홀로 사물 밖으로 뛰어났구나"
하였다는 것인데요.
이 말의 뜻은?
지장의 현재 수준은 경전(經)에만 머물러 있다는 뜻이고
회해의 현재 수준은 선정(禪)에만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보원(普願)만이 오직(唯有) 홀로(獨) 세상의 속된 일이나 물정을 뛰어넘었다(超物外)는 뜻이랍니다.
해탈했다는 뜻이지요.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
ㅡ
(인물 탐국)
보원(普願)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899709&cid=50763&categoryId=50784
(중국 자료)
【普愿_普愿介绍_历史人物_词典网】https://m.cidianwang.com/lishi/renwu/7/40607te.htm
ㅡ
(보충 설명)
★ 오늘 내용은 독초물외(獨超物外)라는 문구인데요?
독초물외(獨超物外)란
홀로(獨) 세상 만물(物外)을 뛰어넘은(超) 사람을 말한답니다.
또는
홀로(獨) 세상 만물(物外)을 벗어난(超) 사람을 말한답니다.
,
음..
깨닫게 되면 기본적으로 마음이 엄청 고요하고 평온해지는데요.
그리고 도력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것들을 알아차리게 된답니다.
이런 것 외에도 엄청 많은 것들이 예전과 바뀌게 되는 것들이 많은데요?
그중에 하나가 오늘 내용이랍니다.
깨닫게 되면 예전과 바뀌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오늘처럼 그때그때 내용이 나오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
오늘 내용은 이런 거랍니다.
깨닫게 되면 관심사가 많이 바뀌게 되는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관심 분야가 다 따로 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오락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유흥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스포츠나 정치나 종교 등의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깨닫게 되면 이런 세상 속 내용들은 거의 관심이 없게 된답니다.
물론 알아차림이 있기 때문에 불교는 마음 법이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에 염려가 되는 일이 있거나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으면 의견을 내거나 잠깐 우당탕하는 정도이지 더 이상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속 일들은 무상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세상 일에 개입을 하지는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도 이법을 알기 전까지는 정치나 종교 이야기에 미쳐 있었고요.^^
제 경우는 어려서부터 본래는 기독교인이라 누가 기독교에 대해 비방을 하거나 욕을 하면 광분을 하면서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고 싸움을 하려고 하곤 했었는데요.
그래서 저도 저의 글을 보고 비방하고 욕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승을 욕하고 비방 하고 있는데 어느 제자가 저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까요?
저부터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을 알고부터는 그런 쪽으로는 1도 없게 된답니다.
물론 이런 내용이 나오면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이지 예전처럼 적극적인 관심은 없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이런 글을 쓰게 되면서 좀 만나자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늘었는데요.
그러면 반가운 마음에 한두 시간 거리는 시간을 내어서 꼭 찾아뵙곤 하는데요.
간혹은 수행이나 불법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내용이면 흥미를 잃고 입을 닫고 보원처럼 조용히 나오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뉴스나 몇몇 가지 분야 정도나 체크하는 정도이지 예전처럼 뉴스를 보면서 막 흥분을 하거나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거나 하지는 않는답니다.
깨닫게 되면 정말이지 기존에 좋아했던 것들이나 세상 일에는 별로 흥미가 없게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집착을 하거나 애착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거나 하지를 않게 된답니다.
깨닫게 되면 정말이지 오로지 공부(수행)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게 된답니다.
상대가 누구든 공부에 관심을 보이면 반가워서 관심을 보일뿐 그 외에는 별로 큰 관심이 없게 된답니다. (진실)
특히 오늘 내용처럼 불법을 논하는데 자리에서 경전이 어떻고 수행이 어떻고 하면서 막 분별심을 내거나 막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보원 스님처럼 다른 핑계를 대고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리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공부(수행) 이야기가 아니면 세상 이야기를 듣는 편이 훨씬 낫지요.
세상 이야기에는 그래도 중생들의 마음 이야기라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깨닫게 되면 오로지 [마음] 관리 하나밖에 없게 된답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산다는 것이 아니고요. ^^
관심도가 세상보다는 마음공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
그래서 저 사람이 진짜로 깨달았는지 아닌지의 기준점도 의식이 어디에 가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고요.
오늘 내용도 그런 내용이랍니다.😃🙏🏻
.
.
ㅡ♡♡
.
.
(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합니다.
ㅡ
오늘 내용도 한 선원 카페에서 올라온 질문인데요.
함께 공유해 보겠습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포항에 거주하고 있는 000 이라고 합니다.
많은 정성을 들여 매번 좋은 글을 선원에 올려주셔서 감사히 잘 보고있읍니다.
질문드릴 내용은 앞전에 경허집을 설명하실때 사람마다 전생에 수행을 해오던 방법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에게 맞는 수행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거사님이 좋은 수행방법이 있으시면 추천해 주실수 없는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그리고 수행에 도움이 될만 한 내용도 있으면 권해주시고요^^.🙏🏻🙏🏻🙏🏻
(답변)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질문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혹시 지금 어떤 수행을 하고 계시지요?
(질문)
간화선으로 하고 있읍니다.
(답변)
아, 그러셨군요. ^^
화두는 어떤 것으로 받으셨나요?
(질문)
이뭣고 화두로 하고 있읍니다.^^"
(답변)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러시면 이뭣고 화두로 어떻게 얼마나 수행을 하고 계시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질문)
좌선을 하고 이뭣고 하면서 이뭐고만 집중 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선원에는 17년 정도 된것갔읍니다.
(답변)
아, 네.. 혹시 의식은 어디에 두고 하시지요?
그리고 17년 전과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질문)
이뭣고만 들고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되어서 좌선을 하면 편안함니다.
그리고 기왕 질문드린김에 수행에 전체 흐름을 이뭣고 화두에 맞추어서 해주실수는 없는지 여쭈어봅니다.()()()
(답변)
아, 네 알겠습니다. ^^
그럼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
음..
지금 거사님의 말씀을 들어보았을 때 수행에 처음 부분만 있지 중간 부분과 끝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답니다.
비유를 하면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시동만 걸려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목적지를 향해 가지를 못하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겁니다?
쉽게 말해 매일 앉아서 화두만 보고 있으면 뭐 하겠느냐 이겁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요?
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이러고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그래서 경허선사도 말씀하시길 지금 사람들은 가르치는 사람이들이나 배우는 사람들이나 절반밖에 모르고 가르치고 있고 배우고 있다고 하신 거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중국 어른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잘 설명해 두셨는데 언어문화가 서로 다르다 보니까 우리 식으로 만 해석을 하다 보니까 우리 쪽 수행자들은 그동안 앞에 방법만 알고 뒤에 방법들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을 절대로 무시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고, 그 나라의 언어문화를 모르면 모를 수 박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이라 해도 영어로 물어보면 부처님이 어떻게 영어를 알아듣고 영어로 대답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과 같은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뭣고] 화두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적용하고 어떻게 응용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주의에 간화선으로 수행하고 계시는 분들에게도 이 내용을 전해주셨으면 한답니다. 😀🙏
,
그리고 좋은 수행 방법이 있으시면 추천해 달라고 하셨는데요? ^^
수행 방법은 좋고 나쁨이 따로 없답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수행 방법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방법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수행 방법을 찾아주는 방법은 거사님과 제가 같이 생활을 하고 있거나 제가 거사님의 성격이나 습성, 습관 같은 근기를 잘 알고 있어야 추천이 가능하답니다.
그래서 어차피 이뭣고 화두를 받으셨으니 지금 하고 계시는 [이뭣고] 화두 방법을 제가 다시 자세히 설명드려 볼 것이니 그대로 3개월 정도만 따라 해보시다가 그래도 집중이 안 되시면 조사선이나 위파사나 등으로 해보십시오. ^^
ㅡ
자 그럼 [이뭣고] 화두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
참고로 항상 중국 글을 대할 때에는 아무리 쉬운 단어라도 한문 사전과 중국어 사전을 비교해 가면서 보셔야 한답니다.
옛 어른들 이야기를 볼 때에도 항상 고서 사전과 함게 보시면 좋고요.
제 경우는 초기에 중국에서 혼자 공부를 할 때에 불교 용어들이 너무 어려워서 엄청 힘들게 공부를 했는데요.
만약에 그때 힘들다고 포기를 했다면 본성의 맛은 고사하고 지금도 가족 몰래 한족 직원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KTV(달란 주점) 아니면 사창가 아니면 당구장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을 공산이 100%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어릴 때부터 잘못 길에 빠지다 보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그 습관을 버리기가 정말로 힘들었는데요?
그랬던 사람이 단 한 방에 그런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저는 정말이지 큰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는 전혀 몰랐답니다.
그러니 거사님도 꼭 열심히 하셔서 꼭 성공을 해보십시오.🙏🏻
,
[이뭣고?]란 중국 번체로는 (是甚麼?)인데요 한국 발음으로는 (시심마?)라고 한답니다.
중국 간체로는 (是什么?)
라고 하는데 중국 발음으로는 (쓰 썬머?)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앞 글자만 바꾸면 여러 가지 의문문이 된답니다.
예를 들면
(你什么?/니 썬머?) 도 되고요.
우리 말로 하면 (니뭣고?) (너 뭐야?)라는 뜻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도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이 외에도 많이 있지만 수행에 활용하는 것은 이 두 가지 표현이 좋답니다.
그리고 (是什么?/이뭣고?)는 중국 내에서 (你好/니 하오)와 함게 아주 많이 쓰이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답니다.
특히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간에 많이 쓰이고 있고
그 외에도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표현이랍니다.
수행자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是什么?)라는 언어는 사황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같답니다.
우리는 지금 [이뭣고?]를 [이것이 뭐지?]라는 의문문으로 만 알고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 외에도 아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의미들을 이용해서 수행을 하시면 효과가 좋다는 것이고요.
그럼 제가 왜 지금까지 거창하게 이런 것들을 나열했느냐 하면 수행을 하실 때 이렇게 해 보십시오.
제 경우도 옛 어른들에게 이것을 배우고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제 경우는 간화선으로 수행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간화선에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를 않았는데요?
그런데 [선문염송]을 해석해 가면서 방법을 알고 해보니까?
"와..? 이거? 엄청 편리하고 간단한데?"
하는 것을 느끼고 지금은 "이뭣고?" 화두와 "무" 자 화두를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고 있답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제가 하고 있는 방법으로 설명을 드려 볼 것이니 거사님도 간접적이나마 거사님 입장에서 잘 적용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경험한 [이뭣과?] 화두는 그야말로 사통팔달(四通八達) 천하무적(天下無敵)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어느 방향이든 무슨 일이든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모두 천하무적(天下無敵)처럼 깨부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사님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너무나 잘 유용하게 써먹고 있답니다.
앞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수행은 깨닫기 전의 수행이 있고, 깨닫고 나서의 수행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깨닫게 되면 본성 자리를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본성 자리에만 집중을 하면 되지만 깨닫기 전에는 본성 자리를 모르기 때문에 본성 자리를 깨닫는데 먼저 집중을 하셔야 한다고요.
[이뭐고?] 화두는 깨닫기 전이나 깨닫고 나서나 다 잘 써먹을 수 있는 화두라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집중]을 하는 데에는 어떻게 [이뭣고?] 화두를 써먹느냐 하면?
[이뭣고?] 자체가 [이 게 뭐지?] 하는 의문(疑問)이잖아요?
거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간화선은 의심(疑心)으로 들어가는 선(禪)이고요.
쉽게 말해 간화선(看話禪)의 뜻은?
간화(看話) 즉 화두를 비추어 봄(의심)으로 해서 선(禪/본성 자리)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의심)을 통해 (선)으로 들어간다는 뜻이고요.
또 다른 말로 하면 간화선은 (화두)를 통해 (선)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도 오온을 통해 개공을 깨닫는다는 뜻이고요.
,
그럼 간화선은 어떻게 해서 (화두 / 의심)을 통해 (선)으로 들어가느냐? 가 지금부터 제가 거사님에게 들려드릴 내용인데요.
화두의 종류가 많으니까 오늘은 거사님이 하고 있는 [이뭣고?] 화두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의 수행 방법은 사성제(四聖諦)입니다.
공부를 오래 하신 분이라 사성제에 대한 설명은 제외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 위주로만 설명해 보겠습니다.
고성제는 지금처럼 하시면 된답니다.
문제는 집성제와 멸성제를 어떻게 간화선과 연결 짓지 못해서 문제이지요.
이것은 육성으로 남아있는 유명한 가르치는 분들의 법문을 아무리 들어보아도 그랬고요?
고성제에 대해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간화선도 잘 아시다시피 알아차림입니다.
표현만 다를 뿐이지 화두를 보는 것이니까요.
간화선 용어로는 "화두를 간(看) 하다." "화두를 의심(疑心) 하다." "화두를 의문(疑問) 하다."입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화두만 들면 엄청난 번뇌 망상과 거기다가 좌선까지 하면 팔다리는 물론이고 온몸에 고통들이 몰려오게 되지요?
이것이 간화선의 최고 장점이랍니다.
왜냐하면 다른 수행들보다는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고통들을 너무나 잘 뚜렷이 관찰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말로 하면 조견오온(照見五蘊)이 잘 된다는 뜻입니다.
고성제와 간화선과의 연결성은 생각과 망상도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짐으로 해서 마음도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본래 공한 것인데 마음은 본래 아무것도 물이 들 수가 없는데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즐겁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오온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면 오온이 공한 것도 알 수가 있다 하신 것이고 마음은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치만 잘 관찰하고 알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고 말고 할 것이 뭐 있겠느냐는 말씀인데요.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저도 이런 말이 헷갈리고 답답한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이나 글로서 이것을 가르치지 않고 직접 관찰하고 확인하면서 보는 방법으로 가르치셨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를 일러 한마디의 말도 많다 하신 것이고요.
그리고 이것이 간화선의 최고 장점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다른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실체로 수행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 많으니 적으니 하는 것은 옛 어른들 말씀을 흉내나 내고 있는 것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간화선을 창시한 선종에서도 대부분이 말이나 글로서 이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이겠습니까?
더군다나 더 기가 막힌 것은 산 사람들도 구제를 못하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구제해 주겠다고 저러고들 있으니 참으로 불법을 뒤늦게 알게 된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개탄을 안 할 수가 있겠고요?
아무튼 위에서 말한 내용이 간화선으로 수행하시는 분들에게는 핵심 중에 핵심이랍니다.
그래서 간화선은 처음에만 좀 힘이 들 뿐이지 조금만 참고 열심히 하면 오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화두를 의심해 들어가다 보면 금방 개공을 하고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간화선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거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의문(疑問)을 해보라는 것인데요?
그러려면 의문의 대상이 필요하겠지요?
그 의문의 대상을 옛 어른들은 (손가락)과 (달)로 비유를 하셨고요?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냐 이겁니다.?
(손가락)은 → (화두)를 뜻하는 것이고
(달)은 → (본성 자리)를 뜻하는 것이고요.
(손가락/화두)이 가리키는 것이 → (달/본성 자리)이니까?
그러면 [이뭣고?]라는 화두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어야 할까요?
또는
[이뭣고?]라는 화두가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할까요?
감이 좀 잡히시나요? ^^
쉽게 말하면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깨닫기 전의 수행이 있고 깨닫고 나서의 수행이 다르다고 했잖아요?
나의 의식이 화두를 보면서 또는 화두로 향하게 하면서 그 화두가 마음을 향하게 하라는 것이 깨닫기 전의 수행이랍니다.
[이뭣고?] 화두로 예를 들면
좌선을 하든, 서서 있든, 산보를 하든 (행주좌와어묵동정)
[이뭣고?] 하면서 마음을 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이런저런 근심, 욕망, 집착, 애착, 고집, 등을 내 스스로가 잡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라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부처님 말씀은 이러한 것들을 잡고 있으면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고성제] 또는 [고제]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왜 여기서 [이뭣고?] 화두가 좋으냐 하면 [이뭣고?]라는 어원 자체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방향이든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본성을 향하는 데에도 좋고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데도 좋고 깨닫고 선정에 들 때에도 마치 압축기나 프러스로 누르듯이 힘이 엄청 좋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나침판처럼 방향성이 좋기 때문에 집중을 하기도 좋고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하는 것보다 [이뭣고?] 화두로 하면 집중도도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쉽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과 안 맞으면 조사선이나 위파사나로 하시면 되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쉽게 말하면 마음 알아차림을 할 때에는?
내 마음에 근심, 욕망, 집착, 애착, 고집 등이 보이면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고 일단은 믿으십시오?
(참고로 바로 이 부분이 이러한 것들이 내 마음에 '모여있다'라는 뜻에서 집(集) 자를 써서 집성제라 하는 것이랍니다. )
다시 말해 내 마음에 근심, 욕망, 집착, 애착, 고집 등의 이러한 마음들이 내 마음에 모여있다 보니까 먼저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라고 하는 것이 (고성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하면 누가 똥을 방바닥에 싸놓은 기분으로?
"아이고 이 게 뭣고?"
"아휴 이 게 뭐야?"
하는 기분으로
줄여서 "이뭣고?" ~
하면서 경멸(輕蔑) 해 보라는 것이 빠알리대장경에서 나왔던 내용이고요.
방에 누가 똥을 싸 놓으면 기분이 좋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런 마음으로 누가 그 더러운 똥을 마음에 들고 있으려 하겠냐 이겁니다?
그러니 일단 내 마음에 이러한 더러운 것들을 내 스스로 품고 있지 말고 이러한 것들은 더러운 것들이니 경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버리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아이 더러워?" 하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달(마음)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화두)만 멀뚱멀뚱 보고 있지 말고요.
이것이 [고성제]와 [집성제]를 알아차리는 방법이랍니다.
그리고 깨닫기 전의 알아차림은 이것이 다랍니다.
깨닫고 나서는 본성 자리로 또 다른 넓은 세계들을 비추어보고 알아차리는 것인데요.
이 내용은 깨닫기 전에는 괜히 분별심 만 심어줄 수 있음으로 저는 거의 알려드리지 않고 있답니다.
,
그다음은 멸성제(滅聖諦)인데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뭣고?] 화두로 하면 아주 쉽답니다.
[멸제]는 쉽게 말해 마음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모두 소멸시킨다는 뜻인데요.
불교에서는 소멸 상태를 일러 다른 말로는 해탈, 또는 무생법인 또는 도피안 등으로 표현하고 있답니다.
기독교에서는 안식처, 죄 사함, 골고다 언덕,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등으로 표현하고 있고요.
아무튼 마음의 것들을 소멸시키는 것은 깨닫기 전의 수행에 있어서는 가장 큰 부분이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가장 큰 경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처가 되는 과정은 그다음 문제이고요.
그리고 [멸제]는 전생부터 수행을 얼마나 어느 단계까지 해왔느냐에 따라서 일찍 되기도 하고 늦게 되기도 한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나 흑지범지나 주리반다가 그리고 자장율사나 원효대사나 경허선사처럼 한 순간에 한방에 소멸시키는 것을 확철대오(廓撤大悟)라 하는 것이고요.
이 또한 전생부터 수행을 얼마나 어느 단계까지 해왔느냐에 따라서 일찍 되기도 하고 늦게 되기도 한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 대부분은 알아차리고 버리고, 알아차리고 버리고 하면서 반복적으로 할 수 박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100%, 90%, 80%를 마음을 비우고 버렸느냐에 따라서 성문사과(聲聞四果)나 1지 보살부터 10지 보살 같은 것으로 나누어지는 것이고 100% 완벽하게 마음을 비우고 버린 사람을 부처라 하는 것이고요.
이 또한 전생부터 수행을 얼마나 어느 단계까지 해왔느냐에 따라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전생부터 수행을 해왔든 안 해왔든 이러한 마음의 것들을 소멸시키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랍니다.
그리고 소멸시키는 방법도 근기에 따라 다 달리하면 좋다는 것이고요.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방편이라 하셨고 이 방편을 가장 잘괄찰해서 제시하시는 분도 부처님이셨답니다.
부처님도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부처님도 제자들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제자들 각자의 성격이나, 기질, 습성, 습관 같은 근기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주리반다가 같은 바보도 확철대오를 하고 주리반가 경전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존자(尊者) 소리를 들으면서 큰 아라한이 될 수 있었던 거랍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에도 주리반다가처럼 빗자루질을 하면서 빗자루에 의식을 실어서 "마음에 때를 벗기자~" "마음에 때를 벗기자~" 하면서 밖으로 쓸어내는 방법도 있었고요.
자꾸 이런 말을 해서 뭐 합니다만 지금 어른들처럼 천도재나 명패 봉안 같은 곳에 의식과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된다는 것이고요.
,
<주리반다가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0q4Cf1jcadw?si=0HA0sxLXMkaIHGan
,
지금 주리반다가 했던 동영상 내용을 [이뭣고?] 화두로 접목시키려면 오른쪽 손바닥을 빗자루로 생각하고 마음의 것들을 살살 쓸어내리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더욱 효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뭣고 화두는 위파사나든 조사선이든 어디든 다 적용시킬 수 있어서 수행하기 편하다는 것이고요.
마치 손오공이 여의봉 하나로 마음의 적들을 모두 물리치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수행 방법과 방편들이 있지만 누구나 손쉽게 깨달은 사람이나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나 초보자들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하고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이뭣고?] 화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뭣고?] 화두를 사통팔달(四通八達) 천하무적(天下無敵)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다른 경우에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이런저런 근심, 욕망, 집착, 애착, 고집, 등이 마음에 무언가 들어오려고 하면? 미리 알아차리고
"이뭣고?" 하면서 역정을 내듯이 의식에 힘을 실어서..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밀어내는 힘이 배가 되니까요)
의식에 확 힘을 실어서 해보십시오.
"니 뭣고?" "너 뭐야?" "스톱?" "정지?" "도둑이야?"
하는 식으로 미리 막아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도둑놈이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쫓듯이 말이지요.
제 경험으로는 이렇게 미리 막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빠르고 쉬웠답니다.
(2)
그리고 이런저런 근심, 욕망, 집착, 애착, 고집, 등이 마음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때에는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고 없애는 데에는 무척 힘들고 어려우실 건데요.
그래도 이렇게 해보십시오.
(1) 은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이라면 (2)는 이미 들어온 것을 내쫓는 방법입니다.
물론 이것도 처음에는 힘이 들고 잘 안되지요.
그러나 누구나 의식에 힘이 있기 때문에 계속하다 보면 잘 된답니다.
내 마음의 것들에게 야단을 치듯이 의식에 힘을 실어서 해보십시오. (이 부분이 중요)
"이뭣고?" "니 뭣고?" "너 뭐야?" "빨리 안 나가?" "빨리 밖으로 안 꺼져?"
또는
주리반다가처럼 빗자루질을 하듯이 내 마음의 것들을 향해 오른쪽 손바닥을 빗자루로 생각하고 의식에 힘을 실어서 마음의 것들을 살살 밑으로 쓸어내리듯이..
"이뭣고?~" "니 뭣고?~" "너 뭐야?~" "빨리 밖으로 안 나가?"
하는 식으로 살살 쓸어내려 보십시오.
물론 이것도 처음부터 잘 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
(3)
이외에도 여러 경우가 있는데요.
제 경우는 그때는 몰랐지만 조사선으로 한 경우였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이 어떤지는 볼 수 있잖아요.
간혹 불법을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는 본성은 볼 수 없는 것이네 하면서 시비를 걸어오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최소한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 입에서는 앞으로 이런 무식한 소리들은 안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답니다.
왜냐하면 거사님도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을 본다'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눈으로 마음을 본다는 뜻이 아니고 의식을 통해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다"
그러면 실제로 어머니를 본 것은 아니잖아요?
또는
중학교 2학년 시절로 의식을 보내면 바로 눈앞에 그 시절이 있잖아요?
직장에서 집에 있는 거실이나 안방으로 의식을 보내도 주방이 눈앞 보이고 침실도 눈앞에 보이지 않아요?
이럴 수 있는 것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내 마음에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본성(불성/성령)도 마찬가지랍니다.
본성은 과거 생에 수십억 만겁 동안 본성에 각인되어 있는 것들이 무한정으로 많이 있답니다.
내가 밖에서도 내 집에 주방에 있는 것이나 안방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듯이 본성을 깨닫게 되면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도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말입니다.
부처님 같은 경우는 우주 전체의 일들을 알아차리고 알 수 있다는 것이고요.
이것을 지혜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것을 선문(禪門)에서는 각인(刻印) 되어 있다는 뜻으로 인(印)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옛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을 잘 알아듣고 따라 하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요.
잘 안되시면 이렇게라도 한번 해 보십시오.
제 경우는 저의 안 좋은 성격이나 습관들을 고치기 위해서 무척 노력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불교를 접하기 훨씬 전부터랍니다.
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있잖아요?
제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질이 안 좋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안 좋은 습관들이 많이 배여있었던 경우인데요?
그리고 사채업이나 변호사업 등 또는 중국에서 석탄 장사를 하면서 직업상 나도 모르게 안 좋은 것들이 더덕 더덕 내 마음에 주리를 틀고 앉아있었던 경우라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 보려고 엄청 노력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 당시 제가 제 자신을 돌이켜 보았을 때 너무 형편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독하게 마음을 먹고 제 자신을 아주 무식하게 잡아 팬 적이 많았답니다.
제 경우는 평시에는 겉으로는 멀정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아주 음흉하고 사악하고 야비하고 악한 기운들이 많은 경우였는데요.
다른 것은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이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의리도 있고 남들 배려도 잘하는 편이고 비교적 성실한 편이고 뭐든지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강했던 편이고요.
그런데 한두 가지는 정말이지 제 자신이 엄청 싫었답니다.
누구나 다 이러한 것들을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제 경우는 중국에 있을 때 거의 10년 이상을 나의 잘못된 성격과 습관을 열 가지 항목으로 적어놓고 매일 저녁 하루 일과를 평가하면서 제 스스로 제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따귀를 때리거나 주먹으로 아구통을 날렸었답니다.
진짜로요.
한번은 도반들에게 "그 당시에 저는 이렇게도 했답니다" 하면서 제 얼굴을 하도 무식하게 제 얼굴을 때리는 시범을 보이니까 그만하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이렇게 열대 이상을 내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내 얼굴을 때려보세요 얼마나 아픈데요? ^^
어떨 때는 술에 취해서 잘못 때려가지고 코피도 여러 번 났었고요.
제 자신을 향해서..
"야~ 이 병신아.."
"네가 그러고도 뭐?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고? 사람들을 다루는 마술사가 되겠다고?"
하면서 있는 힘껏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많이도 제 얼굴을 때렸었답니다. (진실)
그렇게 10년 넘게 했더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많이 걲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몰랐지만 저는 수행에는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저에게는 그 어떠한 수행보다도 소중했다고 지금은 보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포살(布薩)이라는 단어가 나오기에 저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흘렀었는데요? ^^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제 자신이 엄청나게 포살(布薩)을 하면서 제 자신을 때렸었기 때문에 그제야 나도 그때 그랬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나왔던 것인데요.
그래서 이러한 단어들이 나오면 저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고요.
옛 어른들도 저처럼 이렇게 했으니까 이런 글들을 남기셨을 것이고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누구나 마음이 걲이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내 마음의 것들을 내 스스로 잡고 있게 되거든요.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데요.
이렇게 되면 해탈이고 무생법인이고 열반이고 다 물 건너가는 거랍니다.
제 경우는 중국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던 동업자와 동료들이 한국 업자에게 마약 중개를 하는 사건 때문에 중국에서 의형제를 맺었던 둘째 형과 직원 동료 한 명이 사형을 당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마지막 남아있던 마음마저도 완전히 걲였을때 쯤 운명처럼 신기하게도 법화경과 반야심경을 만나서 따라 하다가 이렇게 된 경우인데요.
누구나 다 수행자의 길은 각자마다 알게 모르게 고통이 따라야 마음도 걲기기 쉽고 마음이 걲이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가 훨씬 쉽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내용들도 나중에 알고 보니까 경전 속에 다 있더라고요?
그러니 더 이것이 재미있는 것이고요.
아무튼
화가 일어났을 때에도..
"이뭣고?~" "니 뭣고?~" "너 뭐야?~" "빨리 밖으로 안 나가?"
하면서 의식에 힘을 실어서 그 화를 밖으로 밀어내 보십시오.
,
괴로운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이나 즐거운 마음 등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뭣고?~" "니 뭣고?~" "너 뭐야?~" "빨리 밖으로 안 나가?"
하면서 의식에 힘을 실어서 밖으로 밀어내 보시고요.
물론 잘 안되지요 처음부터 잘 되면 누구나 다 하게요?
그래서 지난주에 했던 [경허집]에서 경허선사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던가요?
[이와 같이 공부(수행)하기를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자연히 깨닫게 되나니 마치 굶주린 이가 한술 밥으로 능히 단번에 배부르지 못하며 글씨를 배우는 이가 한 권의 종이로 능히 글씨를 이루지 못함과 같으니라. 굳건한 마음을 판단하여 시종 다른 변동이 없으면 그 도를 이루기 쉬우리라.]
라고요.
경허선사도 굳건한 마음으로 해보라 하지 않던가요?
이런 내용 또한 저도 이런 과정을 나도 모르게 거쳤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거랍니다.
끝으로 거사님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끈질기게 해 보십시오.]
처음 마음을 먹을 때부터
[나는 죽을 때까지 한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것을 놓치지 않겠다.]
하는 마음으로 해보십시오.
자꾸 제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제 경우는 초기에 법화경을 접했을 때 법화경 내용들이 얼마나 어렵던지?
그때 바로 느끼고 마음먹은 것이 있었는데요.
"아?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다르다? 평생 죽을 때까지 읽어도 나는 이해를 못 할 것이다"
라는 느낌이 들기에 그때 바로 저는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라 이렇게 마음을 먹었었답니다.
이런 이상한 성격도 제 특징 중 하나인데요?
어렸을 때 싸움을 할 때에도 그랬고, 사채업을 할 때에도 그랬고, 중국에서 석탄 업계에 뛰어들 때에도 그랬고 제 경우는 너무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보니까 어떤 벽에 부닥치게 되면 이상하게 오기가 뻗치면서 목숨을 거는 버릇이 있었는데요.
"그래, 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하면서 끝까지 파고들고 물고 늘어지는 그런 버릇이 있었답니다?
가까운 친구들은 이러한 저의 모습에 거부감이 많았고요.
법화경도 그런 경우였답니다.
그때도 저는
"그래? 나는 법화경과 죽을 때까지 싸우다가 죽는다"
하는 마음으로 해석해 보려고 엄청 노력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더라고요?
거사님도 한번 저의 말을 믿고 끝까지 파고 들어서 스스로 해결해 보십시오.
이것도 하나의 엄청난 집착인데요.
저는 수행에 있어서 만큼은 하고자 하는 엄청난 집착이 필요하다고 본답니다.
왜냐하면 웬만큼 해서는 이것을 이루기란 정말로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법화경이 무슨 책인지도 모르면서 괜히 법화경이 뭐라고 오기가 뻗쳐서 집착을 하고 죽자 살자 파고들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솔직히 제 경우는 법화경이 이런 책인 줄 알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 자체를 믿지도 않았고 설사 믿는다 해도 저 같은 사람이 수행을 한다고 하면 친구들은 물론이고 친인척들도 물론이고 지나가는 개도 다 웃을 일이라?
무엇보다 제 경우는 학교 다닐 때에도 책상에 20분 이상을 앉아있으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온몸이 뒤틀리는 그런 경우인데 무슨 수행을 하겠습니까?
그 대신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나가서 뛰어놀라고 하면 하루 종일 신나게 아무리 더워도 밥도 굶어가면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와서 잠에 곯아떨어지는 놈이 무슨 수행을 하겠어요?
그러나 신기한 것은 본성의 맛을 한 번 보게 되면 누구나 여기에 미치게 된다는 것인데요?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달마나, 자장율사나, 원효나 경허스님도 그랬을 것입니다.
제가 거사님에게 드리고 싶은 내용은 진짜로 수행을 해서 빨리 깨닫고 싶으시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나는 끝까지 이것을 물고 늘어진다"
하는 마음으로 아주 강하게 마음을 먹고 해보십시오.
조사선이나 위파사나도 마찬가지이고요.
아고? 글이 또 길어졌네요? ^^
아무쪼록 하시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다시 문자를 주시고요.^^
기왕 하신 김에 꼭 열심히 하셔서 성공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ㅡ♡♡
.
.
(3) 수행자 내용
★ 이 란은 깨닫기 전에는 급한 것이 아니니 지면이 부족해서 오늘 하루도 쉬겠습니다.😄🙏🏻
.
.
ㅡ♡♡
.
.
(4)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
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소승 비바사론에 이르기를 "어떤 부락에 독한 용이 살았는데 五백 존자가 항복 시키려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어떤 존자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니 용 이 곧 항복하였느니라" 하였다.]
ㅡ
(선답)
오늘 선문(禪門)은 공(空) 과 무(無)에 대한 내용인데요.
만약 저에게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저는 바로
[손뼉을 세 번 치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손뼉을 치더라도 그 소리는 모양도 형체도 냄새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가섭이 어느날 '진흙을 이기는데 어떤 사미가 보고서 묻되 "존자께서 어찌 손수 하십니까?" 하니, 가섭이 말호대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였다.] 79
,
오늘 내용도 아주 재미있는 선문(禪門)인데요. ^^
이번에도 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
.
ㅡ♡
.
.
(5)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58편) 20240325
제목 : 심지(心地)
[마대사의 게송에 말하였다.
'마음 자리를 수시로 말했고 보리 또한 그럴뿐이네.
현실과 이치에 다 걸림이 없으면 나는 자리가 곧 나지 않는 자리일세.]
주)
1. 심지... 마음의 본바탕.
2. 그러할 뿐일세 운운....... 지령은 방언으로 역여시란 뜻.
3. 나는 자리 운운...... 색과 심은 마음에서 난 것인데 그것들이 본래 공함을 알기 때문에 나지 않는다고 함.
,
(한문 원본)
心地
馬大師偈云 心地 隨時說 菩提 亦祗寧 事理俱無礙 當生卽 不生
,
오늘은 아주 짧은 내용인데요. ^^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난 글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메일 주소를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e-mail : 119e@daum.net
.
.
ㅡ♡♡
.
.
(6) 법문 동영상
제목: 몸의 습관을 버릴 때까지 닦고 닦아야 한다 [무상사 골라보기 종범스님]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AemuBPfIPQQ?si=K5x2Lc_tH2dLYlx4
종범 스님의 법문은 같이 지내보지 않아서 다른 것은 잘은 몰라도 한문으로 된 경전을 아주 잘 설명해 주시는 분이신데요.^^
함게 들어보시겠습니다.😀🙏
~♡~
(7)《음악과 함게 수행을.. 》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동안 우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던 [추억의 음악 캠프]인데요.
건달바(乾達婆)처럼 얼마든지 음악을 통해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답니다.
방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중에서 귀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지금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인데요.
★ 음악을 들으면서 수행하기
음악에만 끌려들어 가면 내가 지는 것이고요.^^
듣고 있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답니다.^^
이것이 조견오온(照見五蘊) 법이랍니다.
같이 귀로 들어보시면서 듣고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구해 보시지요.
,
제목 : Chris Norman, Suzi Quatro - Stumblin' In (ZDF Disco 27.11.1978) (VOD)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dLmJSxDrKBM?si=9yPW5N3Xf0_fIBCp
.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