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어버린 풀천지 방문기...(형님께 죄송)
2011년 8월 5일부터 6일까지 경북 봉화에 귀농하여 농부의 삶을 가꾸고 계신 풀천지님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연두농장에서 상근하고 있는 들꽃님, 그곳에서 공동경작을 하고 있는 구들장님, 맑은물님, 구름산님, 저(흐르는구름)와 가족(고구마와 두 아들)...
이렇게 8명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하였으나, 양손을 무겁게 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더군요...
집 가까운 곳에 소래포구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 들르면 풀천지님 가족들이 좋아할 어패류가 즐비할 줄 알았으나...
계속 되는 궂은 날씨 탓인지 싱싱하고 큰 생선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생선과 조개류 등을 준비하여 제 가족은 20분쯤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경북 봉화로 가는 길... 때마침 휴가철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많더군요...
여유가 있으면 고속도로를 나와 점심식사를 했으면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할 수 없이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에 들러 점심식사를 해결했습니다...
(다시는 그 곳에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ㅠ.ㅠ)
점심을 해결하고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봉화군 춘양면...
풀천지님께서 가끔 거래하신다는 정육점에 들렀습니다...
그 곳에서 풀향기님이 좋아하신다는 돼지 앞다리살을... 건너편 마켓에서는 가족 모두가 더울 때 즐기신다는 맥주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으로 풀천님댁을 방문하기 전 준비사항은 모두 완료...^^
춘양면에서 출발한 후 약 15분 정도 달리니 비포장도로가 나오더군요...
굴삭기로 흙을 파는 것을 보아서는 길을 넓히기 위한 공사를 하는 듯 싶었습니다...
울퉁불퉁 승용차의 바닥을 긁으며 1km 정도 들어가니 앞이 확 트이는 곳에 위치한 풀천지님댁이 보였습니다...
저희 일행이 좀 늦어진 관계로 많이 기다리신 듯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천지님 가족 분들 모두 환한 얼굴로 일행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주인으로 모시며 경북 봉화에 새로운 삶의 터를 일구신 풀천지님...
그 터의 안주인으로서 하얗다못해 투명한 피부를 자랑하고 계신 풀향기님...
편안한 미소로 만물과 대화하는 듯한 표정을 가진 풀천지 성자 재현님...
가족 중 막내이지만 그 어떤 일도 척척 해낸다는 풀천지 해결사 재홍님...
이렇게 한 가족이 오롯이 자연 안에서 서로를 가르치며 배우는 공간에 어렵게 도착하였습니다...
풀천지님은 생각대로 직설적이며 거침이 없으시더군요...
연두 일행을 상대로 바로 열린 공간에서의 강의가 시작된 것이지요...
귀농 후 가장 먼저 준비하셨다는 풀천지 건조창고...
작물의 수확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이 작물의 건조라는 말씀과 함께... 풀천지 안으로 바람이 지나는 길에 돌을 쌓아 올린 울타리 위 나무들과 반투명 슬레이트(?)를 조립하여 덮은 창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작년에 심어 얼마 전 수확한 밀 이삭을 건조하는 중이라더군요...
그냥 보기만 해도 나중에 통밀가루를 만드시면 장거리 수송을 해서라도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꽃님과 흐르는구름 사이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계신 풀천지님이 보입니다...
그 다음에 안내해 주신 곳은 건조창고 앞 풀천지 쉼터입니다...
풀천지의 원칙대로 가족이 힘을 모아 직접 지으셨다는군요...
위치상으로 바람이 지나는 길과 바로 앞 수돗가와 함께 딱 어울리는 곳인데...
하지만 쉼터 평상 위에서의 밤샘 결과 풀천지 안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 편안한 장소인 듯 싶었습니다...
간단히 일행을 소개하자면...
사진을 찍고 있는 구름산님...
사진상 좌로부터 고구마 -> 들꽃님 -> 저 -> 풀천지님 -> 구들장님 -> 첫째 아들 -> 맑은물님 -> 둘째 아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딴 짓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하지만 모든 것을 듣고 있답니다...^^
풀천지님의 강의에 다른 일행은 모두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데...ㅠ.ㅠ
지붕의 빗물받이를 타고 내려 온 물이 모여 배수로로 가기 전... 사진 중앙의 넓적한 돌 밑을 지나 배수로로 들어갑니다... 배수로를 점검하기 위하여 배수구 위를 살짝 덮어 놓은 것이지요... 풀천지 전체에 흘러넘치는 삶의 지혜...
풀천지 쉼터 옆 수돗가에 모여 풀천지님의 강의를 구들장님과 맑은물님께서 열심히 듣고 계십니다... 짬짬이 질문을 해가며... 자연이 풀천지에 주는 큰 혜택 중 하나가 콸콸 쏟아지는 풍족한 물이고... 물은 흘러가야 하는 것인데... 도시의 삶에 익숙한 방문하는 이들이 자꾸 수도꼭지를 잠그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는 말씀과 함께... 겨울철에는 특히 조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풀천지 안에서 가꾼 작물들을 손질하고 씨앗 등을 천장에 걸어 보관하는 넓은 창고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작물 물론 산에서 얻은 목재를 가공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작물 손질용 전용공간이 된 듯합니다... 건조창고와 함께 작물을 수확한 후 꼭 필요한 공간이라 여겨집니다...
드디어 풀천지를 수차례 방문하였다는 구름산님도 경험하지 못한 풀천지표 손쟁기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자 재현님이 앞에서 끌고 해결사 재홍님은 깊이를 조절하며 북을 주고 있습니다... 한 번은 길을 내고 두 번째는 깊이를 내고... 들깨를 얻으려면 척박한 땅이 좋다고 알고 있었는데... 풀천지의 들깨 밭은 척박하기는커녕 부드럽기만 하였습니다... 수년간의 흙 가꾸기 과정에서 정작 작물 가꾸기보다는 거름을 만드는 것에 힘을 기울인 탓이겠지요... 뒤 쪽에 1년 또는 2년간 발효시킨 거름더미가 보이는군요...
친가와 외가가 모두 서울인 아이들이 해결사 재홍님의 지도 아래 손쟁기를 끌고 있습니다... 힘은 있으나 쓸 줄 모르는 아이들... 손과 발로 직접 해보기보다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만 할 줄 알았지요... 경쟁을 앞세운 현 체제의 논리에 묻혀 살고 있는 어른들... 그들의 후손들이 이 시대의 가장 불행한 부류가 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일행 중 딴청과 해괴한 논리의 대왕이라 불리는 우리 가족 중 막내입니다... 힘을 주는 것과 힘을 쓰는 것 모두를 싫어한답니다... 타고난 운동신경의 부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로봇을 좋아하는 것을 수차례 만류하였음에도 결국엔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지요... 농사가 인간의 손끝과 발끝을 필요로 하듯이... 로봇의 손끝과 발끝이 적정기술이 될 수 있을런지요...
이번에는 성자 재홍님을 앞세워 제가 손쟁기를 잡아 보았습니다... 손쟁기를 잡는 법과 앞에서 끄는 법을 간단하게 익히고 직접 해보니 어렵더군요... 역시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는 듯 합니다...
어느 사이 김매기와 북주기가 끝나고 잘 정리된 들깨 밭이 보입니다... 성자 재현님과 해결사 재홍님의 지도 아래 몇 사람이 직접 체험을 하다 보니 어느새 끝나 버렸더군요...
풀천지 보금자리의 물가 건너편에 위치한 도라지 밭입니다... 해결사 재홍님과 구들장님이 보이는군요... 풀천지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도라지는 3년 마다 옮겨 심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썩는다는 말씀과 함께... 3년 마다 한 번씩 일곱 번을 옮겨 심으면... 농약을 사용하는 인삼은 물론 산삼보다도 더 약효가 좋다는 20년 이상된 도라지가 된다는군요...
드디어 일행 모두 풀천지의 자랑인 거름과 퇴비가 어우러진 더미에 앞에 섰습니다... 풀천지가 왜 유기적 순환체계이냐에 대한 답이 이곳에 있지요... 풀천지 주위의 동물성 거름과 식물성 퇴비가 섞여 2년 동안의 발효과정을 거치면... 결국 풀천지의 흙이 되는 것이지요... 풀천지님께서는 발효하는 동안 거름과 퇴비 더미의 높이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제게 풀천지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가족농사를 실현한 것과 함께 이 거름과 퇴비 더미를 직접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풀천지에 대한 안내와 강의 중에는 풀천지 앞 개울을 흐르는 맑은 물도 있습니다... 맑기도 하지만 사철을 흐르는 그 많은 양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놀라움을 감춘 채 일행은 옷을 입은 채 개울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작물을 가꾸는 과정이 많은 애정과 지속성을 요구하는 만큼 흐르는 땀방울을 식힐 곳이 필요한 법인데... 굳이 그늘을 찾지 않더라도 바로 옆을 흐르는 개울에서도 땀을 식히고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풀천지 앞 개울에서의 시원함을 한바탕 만끽한 후 가장 최근에 지은 작업장에 모여 풀천지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일행이 보입니다... 가족의 힘으로 지은 새로운 작업공간... 전문가들도 참 잘 지었다고 말한다는군요...
풀천지 쉼터에 앉아 저녁만찬을 즐기며 환담을 나누고 있는 풀천지님과 들꽃님, 구름산님, 맑은물님과 함께 쉼터 옆에서 돼지 앞다리살을 정성스럽게 굽고 있는 풀천지 성자님이 보입니다...
풀천지 성자로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풀천지 바리스타로 불러야 할까요? 그도 아니면 풀천지 지기라 해야 할까요? 묵묵히 빈자리를 채우고 조용히 제 할일을 찾아 하는 성자님이기에 대화는 물론 말을 듣거나 할 기회도 없었지만... 가장 좋아하기도 하지만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제 카메라로 찍은 사진 중 풀향기님이 보이는 유일한 사진입니다... 구름산님 가족과는 친분이 있기에 조금은 늦은 저녁식사를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는 풀천지 방문 시 안주인이신 풀향기님과 성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다음 날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과 악기 사이를 흐르는 기타의 맑은 음을 들려주고 있는 풀천지 해결사님... 해결사님은 기타의 음을 빌어 무든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핑거스타일이라는 주법인 모양인데... 기본음만 낼 줄 아는 제게는 그 음들이 들려주는 의미를 알 수가 없더군요... 다음에는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해결사 재홍님의 현란한 기타 연주에 일행 모두가 넋을 놓고 있습니다...
풀천지의 살림살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먹고... 입고... 자고... 교육... 의료 등 인간의 삶에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요소들 중...
의(衣) 문제를 제외하고는 자급자족의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제 경우 그 어떤 것이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권할 때에는 사전에 경험여부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요...
풀천지님은 우리 일행에게 가족이 함께 건강공부부터 시작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천히 걷더라도 함께 서로 다독여가며 그 길을 걸어가라는 말씀이셨지요... “예”라는 답과 함께 저 안의 저와도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마을의 어른이 되어 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영성과 가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와 같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어른...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에서와 같이 마을이 아이들을 키울 때 삶에서 얻은 지혜들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어른... 인간으로 태어나 한 세상 사는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인간 삶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면... 하다하다 보면... 가다가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된다지요...
2008년부터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공부를 위하여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했었지요...
결국 자본주의체계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회복지 또한 요원하다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 되었답니다...
고민이 깊어질 즈음... 자연스럽게 다가온 자연... 그리고 농부의 길...
사회복지 또한 잃어버린 우리들의 고향 찾기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 일행 중 한 분인 들꽃님의 소개로 연두농부학교에서 농철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행과 함께 풀천지를 방문한 이후 곧바로 방문기를 올리려 했지만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지요... 과연 풀천지님을 말씀대로 가족이 함께 공부한다면 실현될 수 있을까... 되도록 빨리 내려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까... 이제 막 공동경작을 시작했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 등등... 그래서 바로 올리는 것 보다는 제 방식에 따라 생각을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둘째 아들과 함께 안현필 선생님의 책들을 보며... 그리고 제게 보인 모습을 중심으로 많이 늦은 풀천지 방문기를 이제야 올립니다...^^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2010년 제3기 연두농부학교를 수료한 후... 광명의 어느 지역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함께 올립니다...
연두농부학교 이야기...
도시 안에서 농부의 삶을 꿈꾸며...
제3기 연두농부학교 졸업생
얼마 전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라는 책을 읽을 기회를 가졌다. 구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 봉쇄로 초래된 경제 위기 속에서 도시 농업을 통하여 이 위기를 극복한 쿠바가 지속가능한 도시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 세계가 걸어가야 할 대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국가적인 식량 위기를 도시 농업으로 극복한 사례를 보더라도 전체적인 식량 자급률 25%, 그나마도 쌀을 제외하고는 5% 정도인 이 땅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추진한 도시 농업의 장점은 우선 도시 안에서 채소 등 신선한 먹을거리를 생산하여 주민에게 공급함으로써 식량 위기에 대응하였다는 점, 둘째 도시 안에서 식료품을 생산하여 농촌의 부담을 덜고 수송․저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였다는 점, 셋째 유기농 채소의 섭취를 통하여 시민들의 건강 증진 및 식량 자급률 향상에 기여하였다는 점, 넷째 아바나란 도시 안에서 농업이 전체 고용의 7%를 담당하여 고용에 기여하였다는 점, 다섯째 정년이 지난 퇴직자들이 농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고령자의 삶의 질이 증진되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경제 위기가 시민들의 마음에 협력성과 도덕성을 심어주게 되면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었다는 점 등이다. 피델 카스트로, 이 책을 읽으며 내게 가장 깊이 다가 온 그가 한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사회가 물질적인 욕망에 지배당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는...
내가 아는 한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노동력을 가진 상품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상품화된 노동력을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주체가 되지만 자본가는 이 잉여가치를 이윤으로 변질시켜 자본의 확대 재생산에 이용하면서 축적을 시작한다. 상품의 매매를 위해서는 시장의 형성이 필요한데 이렇게 형성된 시장을 통하여 산업자본은 증식되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금융자본이란 이름으로 이자의 획득을 통하여 끝없는 증식을 하고 있다. 생산 없는 자본의 증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그 이면에는 생산 활동이 있는 곳으로부터의 착취가 있지 않을까?
물물교환의 확대는 화폐라는 교환수단을 낳았다. 그리고 그 화폐는 물물교환의 시장이 아닌 단순히 화폐를 교환하는 금융시장으로 거듭 탄생하였다. 최초의 금융시장은 금본위제를 기본으로 하였다. 금의 보유량이 곧 화폐의 유통량이란 뜻이다. 자본가에게 통화의 한계는 자본 증식의 한계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금융시장은 기존의 금본위제를 기준으로 하는 화폐의 발행제도의 포기로 이어졌다. 총 통화량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금본위제를 폐기하여야 통화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본위제의 폐지로 화폐 발행의 제한 요소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때부터 화폐는 비로소 상품으로 둔갑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상품으로 변질된 화폐는 각종 금융상품의 개발로 이어졌다. 각종 금융상품의 개발과정에서 파생상품이 탄생하였다. 이렇게 파생된 금융상품은 그 화폐 본래의 가치를 수십 수백 배로 늘리며 급격한 통화량의 증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통화량의 증가는 곧 금융시장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렇게 확장된 금융시장은 결국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가치를 차용하면서 또 다른 통화의 수요를 만들어내고 또 다시 통화량을 확대해 나간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은 노동의 대가를 화폐로 받는다. 그러나 금본위제의 포기 이후 나타난 통화량의 확대는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것은 노동의 대가로 받은 화폐의 가치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락하는 화폐의 가치 앞에서 임금 노동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은 무엇인가? 소위 재테크란 이름으로 포장된 돈 놀음은 다른 이들 소유의 가치를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합법적인 도적질이면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도덕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말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발명된 화폐는 결국 자본으로 변질되었다. 변질된 자본은 끊임없이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의 대가를 화폐로 얻은 개인 또한 그 화폐로 이윤을 창출하지 않을 경우 도태된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고 있는 세계화된 국가 중심의 현 세상은 이러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 현재의 내 좁은 시야이다.
자본주의사회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내 개인 소유의 자본을 증식시킬 수 있는 금융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잠시 뒤로 물러 서 존재할 것 같은 다른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인가? 나는 과감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나마 남아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바탕으로, 자연과 더불어, 자립하고 싶고, 자족하고 싶으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있다면 더불어 산다는 것을 전제로 스스로 규율하는 자치의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생명의 지속성에 위기를 느끼지 않는 한 인간은 다른 이들의 것들을 빼앗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을 통하여 인간, 토지, 화폐는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화폐의 경우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 산물이라는 점과 그 본래의 존재 목적이 교환수단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 본질을 벗어난 부분을 되돌리는 것 외에 다른 논의의 여지가 없지만, 인간과 토지의 경우에는 현재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즉 “인간”은 생명을 대표하는 존재로, “토지”는 자연을 대표하는 존재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물, 대지, 공기 등 생명의 탄생 및 유지에 필요한 요소를 제공해주는 자연과 각종 미생물부터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연과 생명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상품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일까?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인간과 토지는 상품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과 대지의 산물이 화폐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상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생산된 산출물이 화폐로서 교환 가능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대지는 어떻게 인식되어야 할까? 이미 상품화된 인간과 대지가 화폐로부터 좀 떨어져 그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인간은 존재의 기본 욕구인 식의주(食衣住)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지의 본래 기능인 생명의 잉태 및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인간은 재화의 획득 또는 가치관의 실현을 위하여 선택한 그 어떤 종류의 업종에 종사하든 먹을거리의 키움과 병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대지를 뚫고 나온 생명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 자체로 존재할 가치가 있다. 따라서 인간은 먹을거리의 생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의 먹을거리는 그것도 그 인간이 태어난 시공간 안에서 직접 생산한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말한다.
쿠바 아바나의 도시농업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가 이 도시 안에서의 농업이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되었으나, 과연 그런 이유만으로 도시농업이 정착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 만든 결과일 수는 있으나, 모든 도시가 추구해야 할 실질적인 가치가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 그 이유를 덮어버리기에는 그 이면에 언제든 식량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자본주의의 악마적 성격이 더 두렵지 않은가? 결국 인간은 규모에 관계없이 생태적인 농부의 삶을 걷게 될 것이다. 그 길만이 인간의 원시성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2010년 5월말 제3기 연두농부학교는 내 안에 이런 고민이 가득할 즈음 다가왔다. 이 학교는 광명시 바로 옆의 시흥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연두농장[연두영농조합법인(대표 : 변현단), http://cafe.daum.net/nongnuy, 031-313-2848]이 주관과 시의 지원으로 도시농부 또는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개설한 과정이었다. 이들은 그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이를 화폐와 교환하는 일반적인 농업의 길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기적 순환을 존중하며 자연에게 해로움을 덜 입히는 농사와 생활문화를 익히고,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알뜰함으로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자급의 철학과 기술을 배우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학습과정에서 농업의 기술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인간이 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와 도시든 시골이든 농부로서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이들은 귀농을 원하거나 도시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싶다는 사람들, 건강한 생활을 위한 식습관 및 생활습관을 바꾸어 보고 싶으신 사람, 그리고 자기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싶거나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농사를 매개로 실로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학교 과정을 개설하였다. 그것도 6월 중순부터 11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무려 5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3시간 이상의 정규 수업 이후 뒤풀이 시간까지 할애하면서 말이다. 시흥시의 지원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교육비는 6만원이었다. 사실 그 비용마저도 교육비라기보다는 교육과정 중 일부인 위빠사나 수행에 참가하는 비용이기에 교육비는 무료인 셈이다.
제3기 농부학교는 이 기간 동안 총 23개의 강의가 있었다. 농철학을 시작으로 농사회와 농경제를 지나 농역사를 거쳐 농가정과 농생활에 이르기까지 가장 농부다운 삶에 필요한 가치와 기술적인 부분의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농철학 강의에서는 연두농장의 대표인 변현단 선생님께서 순환과 재생이 가능한 자연스러운 농사에 대하여, 농사회 강의에서는 송무호 선생님께서 석유와 인간생활 그리고 식량과 에너지와의 관계에 대하여, 농경제와 관련된 강의에서는 돈과 생활 그리고 교육과 의료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농역사 강의에서는 박맹수 선생님께서 농역사 안에서의 동학사상의 의미에 대하여, 농생활과 농가정 강의에서는 안완식 선생님의 토종종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상품으로의 가치가 없다고 먹을거리로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린 잡초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다양한 먹을거리를 주제로 하는 등 멀게만 느껴지던 농부로의 길을 폭은 넓게 하지만 그 경계는 명확하게 가르치려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이제까지의 교육과정이 왜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답을 제시하고자 하였다면, 이어지는 교육과정은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농부학교의 중반 이후에는 24절기 및 농가월령가 기반의 전통농사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작부체계 및 농사일지 작성하는 법 등을 배우는가하면 농부학교 학생들과 연두농장이나 연두농부학교를 거쳐 귀농한 분들을 초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까지 가질 수 있었다.
연두농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연두농장 안에서 삶을 가꿔가고 있는 연두농장의 식구들과 5개월의 대장정을 총 40여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약 20명이 수료한 교육과정을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자연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겸손한 사람들이 아닐까? 이렇게 나는 이 농부학교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점에 서게 될 것 같다. 동기부여가 된 탓인지 이 학교를 다니는 내내 농학에 대하여 공부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텃밭이라도 내가 사는 공간 안에서 직접 경작을 해야 할 당위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안의 내가 나를 자연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임에도 소위 영장류로 분류되어 먹이사슬의 맨 위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의 바람직한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 한 번 내게 되물어본다.
첫댓글 흐르는 구름의 닉에 딱 어울리는
한가로이 흘러가는듯한 오래된 방문기였네 ~
풀천지 성자 재현이의 소감을 그대로 옮기자면
풀천지를 방문한 흐르는 구름 본인의
생생한 감흥을 전하기보담
제 3 자의 시각에서 살피고 분석하여
누군가에게 소개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네 ~
방문기는 다른 글들과 달라
올리기로 약속했으면
일주일 이내에 쓰지 않으면
기다리다 지치기 마련이네 ~
정성을 다해 애를 쓴 훌륭한 방문기에
딴지를 거는것 같아 미안하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실천하기보담
실천부터 하고 생각해 나가야지
정말로 제대로 해 나갈수 있을 것일세.
내친김에 한말씀 더 드리자면
말이나 글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니
짧은 글이던 긴 글이던
상대방의 입가에 미소가 배일수 있는
즐거움을 보여줄수 있어야 할것일세.
지금 풀천지가 쓰는 답글도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욕얻어먹을 각오 하고
하고싶은 소리를 하는 풀천지 덕에
다른사람들이 즐거워할수 있을것일세..
자네가 좋은 농부가 되려면
제일 먼저 겸손부터 배워야 할테니
풀천지의 오만방자함을
너그러이 양해하시게 ~
제수씨와 승렬이 진욱이에게
풀천지 가족의 안부를 전해주고
반가이 다시 만날때까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