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월간 심사독회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노래를 통해 인생 표현
'바셀린 붓다'… 언어철학 실험 돋보여
'새벽의 나나'… 하위문화 생생하게 묘사
2010년도 동인문학상 수상작을 뽑기 위한 1차 관문인 월간 심사독회를 통과한 작품이 19편으로 확정됐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 김주영 김화영 오정희 이문열 정과리 신경숙)는 최근 올해 마지막 월간 독회인 8월 심사독회를 갖고 조용호 장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 정영문 장편 '바셀린 붓다'(자음과모음), 박형서 장편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등 3편을 최종심 후보작에 포함시켰다.
조용호 장편 '기타여…'는 지극히 내밀한 개인의 사랑과 그 반대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정치적 구호를 모두 담아내는 노래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심사위원들은 "의미에서 무의미로, 무의미에서 의미로 흐르며 삶과 노래의 파도를 타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보여준다"며 "그 노래가 아름답기에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노래로 표현하는 삶이라는 이 작품의 형식과 주제에 대해 독자들이 진부하게 느낄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 (왼쪽부터)조용호, 정영문, 박형서.
정영문 장편 '바셀린…'은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무의미의 혼돈 속에 파묻혀 있는 삶의 조각들을 찾아내서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언어의 본질적 속성이지만, 삶의 의미는 언어에 의해 명확히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심사위원들은 "삶이든 물체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규정하려 애쓰는 언어의 분투를 주목하면서도, 그 노력이 숙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언어철학적 인식을 실험성 강한 서사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작가의 난해함은 여전한 숙제로 지적됐다.
태국의 사창가를 무대로 쓴 박형서 장편 '새벽의…'는 찬·반 논란을 많이 일으켰다. 하나의 집단에 대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며 빈곤·나태·불륜 같은 하위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복원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이야기의 아귀 맞춤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금까지 월간 심사독회를 통과한 작품은 위의 세 편을 포함해, 김인숙 소설집 '안녕 엘레나'와 장편 '소현', 이기호 장편 '사과는 잘해요', 김연경 장편 '고양이의 이중생활', 이승우 장편 '한낮의 시선', 해이수 소설집 '젤리피쉬', 최대환 소설집 '바다 위의 주유소', 정이현 장편 '너는 모른다', 박금산 소설집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박찬순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 천명관 장편 '고령화 가족', 편혜영 장편 '재와 빨강', 한강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 구효서 장편 '랩소디 인 베를린', 이장욱 소설집 '고백의 제왕', 김태용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다.
심사위원회는 이들 19편 가운데 최종심 본선에서 겨룰 후보를 4~5편으로 압축하는 독회 모임을 한 차례 더 가진 뒤 10월 초에 열리는 최종심에서 수상작을 확정해 발표한다. 동인문학상은 전년도 8월 1일부터 당해연도 7월 31일까지 출간된 소설집과 장편을 심사대상으로 한다.
●심사위원회가 말하는 최종심 후보작들 특징
지난 1~7차 월간 독회에서 최종심 후보에 먼저 오른 작품 16편의 특징을 심사위원회의 촌철살인(寸鐵殺人) '말말말'로 정리한다.
■안녕, 엘레나(김인숙)
용서가 만들어내는 풍경과 의미에 대한 김인숙의 서사적 질의응답.
"젊은 날부터 써온 1980년대적인 것들에서 벗어났고 주제가 보편화되었다."
■사과는 잘해요(이기호)
이유 없이 죄인 취급을 당하던 두 청년이 창업한 '사과(謝過) 대행회사'의 절묘한 세상 뒤집어보기.
"죄의식의 실체를 묻게 하는 참신한 설정."
■고양이의 이중생활(김연경)
386세대 선배들이 남긴 이념의 찌꺼기를 껴안고 살아야 했던 90년대 학번들의 방황과 갈등.
"소설의 재래적 리얼리티를 무시한 새로운 서사와 만난다."
■한낮의 시선(이승우)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의미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다양한 상황 전개와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일품이다."
■젤리피쉬(해이수)
도시를 탈출해 찾아간 히말라야에서 고산병에 걸린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헬리콥터 호출 비용을 결제할 신용카드라는 아이러니여!
"어디를 가도 삶의 현실에서 한발짝도 비켜설 수 없는 현대인의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바다 위의 주유소(최대환)
미처 자각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감정의 편린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띄워 보여준다.
"화끈한 경험을 추구하는 시대에 오히려 기름기 쫙 뺀 무색무취로 승부한다."
■너는 모른다(정이현)
가족이면서도 서로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 가정의 슬픈 초상을 그렸다.
"도시남녀의 사랑을 그려 온 정이현의 변신이다."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박금산)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궁합 맞추기를 시작하는 서른 즈음 남성들의 내면을 공개한다.
"보통 30대 남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알고 싶다면 이 소설을 보라."
■발해풍의 정원(박찬순)
환갑에 등단한 작가가 데뷔 4년 만에 선보인 첫 작품집.
"우리 안의 타자(他者)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성한 이야기로 버무려냈다."
■고령화 가족(천명관)
70대 노모와 인생의 싸움터에서 지고 돌아온 40대 자녀 삼남매의 유쾌하고 가슴 찡한 인생 재도전.
"강간 전과자, 실패한 영화감독, 중년의 이혼녀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재와 빨강(편혜영)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쫓기던 남자가 생존하기 위해 벌이는 낯선 일상과의 사투가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펼쳐진다.
"유약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서사가 생생한 현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소현(김인숙)
소설집에 이어 장편도 동인문학상 후보에 함께 올리는 저력을 과시한 김인숙. 조선의 소현세자에게서 현대인의 고독과 소통 단절을 읽는다.
"격조 높은 문체와 탁월한 심리묘사로 단순한 역사소설을 뛰어넘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한강)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죽음의 덫에 걸려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 여성이 끈질긴 생명의지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도저한 예술지향성과 미학적 경지가 고통과 맞서는 주인공 여성의 자세와 잘 어울렸다."
■랩소디 인 베를린(구효서)
조상은 조선인이지만 독일에 살면서 음악이 달성할 수 있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18세기 남자 힌터마이어와 재일교포 출신으로 21세기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인(韓人)의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진다.
"세월의 부식에 저항하는 남녀 간 사랑의 힘을 음악적 서정에 담아냈다."
■숨김없이 남김없이(김태용)
소설의 경계에서 끝없이 소멸하고 생성되는 언어를 통해 '글쓰기'에 관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구성해 낸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탈(脫)언어적 문장을 제시하며 수행했던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고백의 제왕(이장욱)
시인·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작가의 첫 소설집.
"현실과 환상, 실체와 허상의 경계를 가차없이 허물어버린 뒤 낯설고도 기이한 서사 공간을 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