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처럼
홍 계 숙
가을이 늦여름의 끝자락을 물면, 아침저녁 마당에서는 마른 풀냄새가 난다. 송아지가 젖을 빨고 꼴이 말라가고 있다. 해거름이면 잠자리들이 꼬리를 물고 춤판을 벌이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고추잠자리. 마당 쓸던 싸리비를 들고 이리저리 따라다니지만, 그것들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한 마리도 못 잡고 기진맥진할 즈음, 오빠는 우리 고추장을 훔쳐 먹은 놈들을 빨리 잡으라고 부추긴다. 그 말에 난 또 한참을 쫓아다닌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고추잠자리 꿈쟁이의 흔적』(박성배)의 주인공 꿈쟁이, 고추잠자리 이름이 꿈쟁이라니. 하긴 앙증맞고 엉뚱한 그에게 맞춤한 이름이긴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함께 자란 것은 동화 속 한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읽은 책은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 곳곳에 새겨지나 보다. 읽은 양만큼 새겨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가 스며 나오나 보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는 어떤 선택을 해버릴 때가 있는 걸 보면. 놀랍게도 그 결정은 엉뚱하지만 내가 일부러 한 것보다 탁월할 때가 많다.
동화 속 고추잠자리는 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런 그를 친구들은 잠자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놀린다. 그가 글을 배우려는 이유는 자신이 살다 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다. 교실에 들어갔다가 잡혀 죽을 뻔하기도 하고, 달에 흔적을 남기려고 날아가다 찬 바람에 가로막혀 떨어지기도 한다.
늦가을, 꿈쟁이는 자신의 색깔을 닮은 단풍나무에 앉았다. 마지막을 생각하는 그는 마치 꿈을 이룬 데서 오는 듯한 여유 있는 웃음을 짓는다. 그때, 강남으로 가기 위해 힘을 비축하려는 제비의 먹이가 된다. 꿈을 이뤘냐는 단풍나무의 물음에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모두 무언가를 남기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어요?”
지난달, 평소 속을 터놓는 친구가 “같이 신체 기증하러 가지 않을래?”라고 전화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장기기증도 알아보고, 가까운 대학병원에 기증이 가능한지 미리 문의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뭉그적대던 친구가 대구에 가능한 곳을 찾았다며,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다음날 일찍 가잔다.
대구역에 내려서 병원까지 걸었다. 조잘대며 동성로를 걸으니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음에 풍선이 달린 듯 자꾸만 붕붕 떠올랐다.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산을 빙빙 돌리며 가볍게 춤을 추기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우산 위에도 손등에도 떨어지는 빗방울이 리듬을 맞춰주었다. 가게에 걸린 조끼도 예뻐 보이고, 구수하고 쌉싸름한 커피 냄새도 우리를 반겼다.
대학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면 그렇지. 덜렁대는 나보다 더 떨렁거리는 친구가 제대로 했을 리가. 다행히 친구는 용감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묻기도 잘한다. 자동으로 나는 옆에 서 있는 도우미가 된다. 지나가던 직원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우리에게 그런 일은 의과대학교에서 한단다. 어렵게 찾은 것과는 달리 신청은 너무나 쉬웠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등록하지만 기증되는 경우는 20%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이 등록했을지라도 유족의 동의가 없으면 강제로 이송할 수는 없다고 한다. 사후에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시신도 재산’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수강 등록하듯 등록증을 만들어 준다. 휴대전화 살 때보다 훨씬 간단하다.
한번 등록하면 되돌릴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럴 수는 없다. 하든지 안 하든지 제재도 없는 일을, 몇 번이나 마음먹고 갔다니. 가기 전에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까지 썼다니. 장기 몇 개쯤 기증한 것처럼 속이 허했다. 돌아갈 힘도 없어 허위허위 걸었다.
맞다, 이럴 땐 추억이라는 묘약이 있었지. 시장 구석구석을 돌며 순대, 떡볶이, 김밥으로 장기 빠진 속을 대신 채웠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화려한 무용복들을 눈으로 입어보면서 마음도 땜질했다. 재래시장은 낙심을 옷처럼 빨아서 정리하는 힘이 있다. ‘신체 기증 등록증’을 받은 것으로 위안 삼았다.
약속을 지키려고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귀신이 돼서 매일 꿈에 나올 거라고 겁줘야 하나?’ 우려도 잠시, 요즘 애들처럼 쿨하게 “엄마, 저도 장기기증 등록한 지 좀 됐어요. 엄마가 동의해 준 거 기억 안 나요?” 한다.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할 만큼 젊은 아들도 일찌감치 한 것을, 나이 먹어 장기기증도 안 받아주는 몸뚱이로 뭐 큰일이라도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나. 낯부끄럽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날이 있다. 단풍나무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 꿈쟁이처럼 될 수 있었으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의하면 임종 환자는 흔히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의 정서적 단계를 겪는다고 한다. 나에게 그때가 소나기처럼 와도 잠시, 아니 한 일주일쯤만 ‘왜 내게 이런 일이-.’ 하며 화내다가 타협하면 좋겠다. 우울한 것은 더 짧은 이삼일로 끝내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수용하면 좋겠다.
65세 이상이 되면 장기기증은 안 된다고 하지만, 제비나 그 무언가 살아있는 것들의 피와 살이 되면 좋겠다. 그 따뜻한 피와 살로 지금 나처럼 새로운 봄을 기운차게 날면 더 좋겠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겠다는 꿈. 그 책이 시집에서 동화로, 다시 아무 책이나로 바뀌긴 해도 줄곧 한 꿈이었다. 흔적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지금 그 꿈이 바뀌어 있다. 출판하는 일은 잘 쓰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는 그냥 독자.
꿈쟁이가 간 이듬해 봄, 그를 똑 닮은 단풍잎이 돋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그 자리에. 그것을 보며 단풍나무는 그를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자신의 자취를 세상이 아닌 마음에 남기고 간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