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요약
【9강 조선후기】
Ⅰ. 경제?사회의 발전
1. 농업구조의 변화
(1). 농업생산력의 발달 → 농지 개간 사업의 진전. → 농법의 개량 : 이앙법의 보급, 수리시설의 정비와 확대(제언절목이 정조대 제정), 광작의 성행(농민의 계층분화의 원인) → 농업생산의 전문화?다양화
(2). 광작?상업적 농업의 발달 → 새로운 지주층의 대두( 요호부민, 서민지주 ) → 상업작물 - 담배, 인삼, 목화와 약재, 대도시 주변의 채소?고추?호박등
(3). 지대의 변화 → 타조법(정률지대)에서 도조법(정액지대)로 변화. → 일부지역에서는 금납제(화폐지대)실시. → 지대의 변화는 지주권을 약화시키고 전호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나타내고 지주와 전호의 관계가 기존의 신분적인 예속관계에서 경제적 관계로 변화됨.
(4). 농서의 보급과 합리적 경영론 대두 → 신속의 <농가집성> - 이앙법?견종법 보급 목표. - 지주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농법의 개량만을 주장. → 박세당의 <색경>, 홍만선의 <산림경제>, 유증감의 <증보산림경제>, 서명응의 <교사신서> : 농가집성의 농학을 전면부정, 지주제적 경영론을 부정. →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 경영형 부농의 경영원리를 바탕으로 한 임노동제하의 지주제 구상.
2. 상품?화폐경제의 진전
(1). 배경 → 농업생산력 발달, 조세의 전세화?금납화, 사회계층분화로 인한 도시인구유입이 증가.
(2). 공인의 등장 → 대동법 실시로 등장, 관청과 결탁한 어용상인 → 서울의 시전?지방장시 중심으로 활동. →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로 발전, 상업자본의 형성 → 시전상인이나 공인, 보부상은 관허상인.
(3). 사상의 등장 → 객주?여객 → 경강상인(강상) - 한강을 중심으로 미곡?어물?소금을 판매. → 송상 - 개성을 중심으로 전국에 지점설치(송방), 상업적 농업(인삼), 중계무역에 종사 → 만상 - 의주를 중심으로 청의 상인과 사무역 → 래상 - 동래를 중심으로 왜와 사무역.
(4). 난전의 성행과 금난전권 철폐 → 종루(종로), 이현(동대문), 칠패(남대문). 시전상인과 갈등이 심화됨. → 신해통공(정조,1791) -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의 금난전권(독점적 판매권)을 폐지.
(5). 지방장시의 성행 → 15세기말부터 발생하여 16세기 이후에는 전국에 성행.( 5일장, 상설시장 발생) → 객주?여객의 활동 - 상품도매(도고), 창고업?운수업?위탁판매업?운행업에 종사. → 보부상의 활동(전업적 상인)
(6). 화폐의 사용과 폐단 → 숙종(1678)에 발행된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 → 18세기에는 고리대로 인한 폐단발생(전황), 18세기 실학자인 이익이 폐전론 주장. → 중상학파인 유수원, 박지원 등은 화폐의 유용성 강조.
(7). 대외무역의 발달 → 공무역 - 조공무역, 중강개시(압록강, 청과무역, 선조 1593년 개설) → 사무역 - 중강후시 - 책문후시 : 현종(1660), 요동상인과 의주?개성상인간의 사무역, 한말까지 존속 - 북관개시?쌍시 : 회령개시와 경원개시를 지칭, 두만강 유역.
3. 수공업?광업의 발달
(1). 수공업의 발달 → 조선전기의 관영수공업 쇠퇴, 사영수공업 발전. → 대동법의 실시, 상품?유통경제 발전, 말업관의 변화, 부역제 변동이 수공업 발전의 원인. → 공장안 폐지(정조) - 납포장화 → 선대제 수공업 - 상업자본에 예속되어 주문생산방식을 취함. → 점촌의 형성
(2). 광업의 발달
▣ 조선전기 → 국가의 직접 운영 - 명에 대한 세공, 국가수요 목적으로 금?은광 개발 부역제로 농민을 동원해서 채굴. → 16세기(연산군,1503) : 연에서 은 분리 기술 개발, 은 생산 급증.
▣ 조선후기→ 잠채의 성행 - 관의 통제를 벗어난 불법적인 광산. → 별장제하의 설점수세제(효종,1651)-국가비용으로 점을 설치하고, 경영은 민간에게 맡기는 방식. - 별장(부상대가나 권세가의 사인)을 파견하여 감독. → 수령수세제하의 설점수세제(영조,1775) - 물주가 시설을 투자하고, 경영은 덕대에 의함. - 광산의 노동은 주로 전업적 임금노동자.
4. 신분제의 붕괴
(1). 배경 → 조선후기의 경제변화 - 농업생산력의 발달, 상품?화폐경제의 진전, 수공업?광업의 발달로 인한 사회계층의 변화. → 새로운 계층의 대두 -경영형 부농과 서민지주의 탄생, 상업자본가, 임금노동자, 독립 자영 수공업자 형성. → 신분제의 붕괴와 그 원인 -농민층, 양반층의 분해, 노비제 해체 - 합법적인 방법 : 납속책, 공명첩, 관노비 해방(1801)등 - 불법적인 방법 : 모속(冒屬), 노비의 도망, 족보위조등 (2). 농민층 분해 → 지주, 전호(소작농), 무전농민으로 분화현상. → 몰락농민의 유망, 임금노동자로 전환.
(3). 양반층 분해 → 직전제의 폐지, 노론의 일당독재, 세도정치로 양반관료체제 붕괴 → 몰락양반은 잔반으로 전락 - 자영농이나 소작농으로 전락 → 조선 후기 실학자, 농촌지식인은 주로 몰락양반 출신
(4). 신분변동의 양상 → 노비의 격감, 양반의 증가.
(5). 서얼과 중인 → 서얼의 신분변동 - 전기에 서얼에 대한 차별정책 실시. - 정조대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등 - 서얼의 신분해방운동 : 허통운동 → 중인의 소청운동 - 철종대 중인의 대규모 신분해방운동 → 특히 중인은 청을 통한 근대문명 수입에 적극적 역할(특히, 역관) → 향리?서얼들의 역사서 : 연조귀감(이진흥, 향리), 이향견문록(유재건, 서리), 희조실사(이경민, 서인), 호산외기(조희룡, 중인), 규사(이진택, 서리), 고문비략(최성환, 중인)
(6). 노비 → 노비의 수가 격감 : 납속책, 공명첩의 발행등이 원인. → 노비종모법시행(현종,1669), 영조(1731)에 확정. → 관노비 해방(순조,1801) - 납공 노비만을 대상으로 함. → 노비신분법 폐지(고종,1886) → 사노비 해방(갑오개혁,1894)
Ⅱ. 조선후기의 문화와 사상
1. 성리학의 학통과 전개
(1). 성리학의 학통과 그 성격
① 동인 → 북인계열 - 조식의 학통을 계승, 광해군대 대북정권, 절의를 중시, 의병장 배출(정인홍, 곽재우) → 남인계열 - 이황의 학통계승, 주로 향촌사회에서 영향력 행사, 본원적 학문 연구에 열중. 후기에는 경상도지방의 남인과 경기도지방의 남인(이익, 정약용)으로 분리. ② 서인 → 노론계열 - 이이의 학통계승, 송시열중심, → 소론계열 - 성혼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황의 학설에도 호의를 보임. 성리학 이해에 탄력성을 보여 양명학을 수용
(2). 성리학의 철학논쟁
① 사단칠정논쟁 → 16세기에 이황과 기대승의 철학적 논쟁 → 이황은 이기이원론, 기대승은 이기공발설 주장. → 기대승의 <논사록 : 論思錄>에 수록
② 호락(湖洛)논쟁 → 18세기초 기호학파인 한원진과 이간의 논쟁. (인물성동이론) → 인물성동이(同異)론에 대한 논쟁으로 한원진은 인물성이론(호론)을 이간은 인물성동 (낙론)을 주장함.
2. 양명학의 수용
(1). 성리학의 한계점 노출
(2). 유교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 → 17세기 후반 윤휴(남인), 박세당(소론)이 유교경전을 주자와 다르게 해석하여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배척당함. → 박세당의 <사변론>
(3). 양명학의 수용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성을 중시,16세기 말부터 재야의 소론계열의 학자에 의해 연구 → 강화학파의 성립 - 정제두가 18세기 초 양명학을 학문으로 체계화, 주기론적 입장. - <존언>, <만물일체설> → 한말의 양명학자 - 박은식, 정인보, 17세기에 최명길은 병자호란때 주화파. 3. 실학의 발생
(1). 배경(주자학에 대한 비판)
◈ 사문난적 ◈ 양명학의 도입 ◈ 실학발생의 원인 → 양란 이후의 사회질서 문란, 경제질서의 변화와 발전, 서학의 전래, 고증학의 영향.
(2). 실학의 발생
※ 정약용의 주요저서 <목민심서> - 목민관(수령)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도리를 적은책, 향약의 폐단지적. <경세유표> - 중앙정치제도의 개혁안 제시, 서문인 방례초본(邦禮草本)에서 정전론 주장. <흠흠신서> - 형법과 감옥에 관한 법률정치서. <탕 론> - 백성이 나라의 근본임을 강조. <원 목> - 수령은 백성을 위해 존재함을 강조. <전 론> - 토지제도를 비판, 여전론 주장 <아방강역고> - 역사 지리서 <아언각비> - 한국 속어의 의의를 고증 <마과회통> - 종두법을 소개한 의서.
(3). 실학의 성격과 한계 → 민족주의적 성격, 근대 지향적인 성격, 피지배층의 처지를 대변 → 정부정책에 반영되지 못함, 성리학적 한계.
(4). 19세기 실사구시 학파 → 청의 고증학 도입, 객관적 학문연구 태도
(5). 실학의 영향 → 초기 개화사상, 구한말 광무개혁, 애국계몽운동에 영향을 미침.
4. 국학의 융성(양란을 겪으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
(1). 역사학의 발전 - 이익의 <성호사설>, 실증적?비판적 역사서술, 안정복(삼한정통론)에 계승. - 안정복의 <동사강목>, <열조통기>, 중국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하여 한국의 독자적 정 통론을 주장(삼한 정통론) - 한치윤의 <해동역사>, 기전체사서, 중국?일본?조선의 사서를 참고하여 저술. -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기사본말체사서, 야사정리, 조선시대의 정치와 문화 정리. - 이종휘의 <동사>, 고구려에 비중을 둠. - 유득공의 <발해고>, 남북국시대를 언급함.
(2). 지리지?지도 → 역사지리 -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신경준의 <강계고>, 정약용의 <강역고> → 인문지리 - 이중환의 <택리지>, 신경준의 <도로고>,<산수고> → 지도 - 정상기의 <동국지도>, 김정호의 <청구도>,<대동여지도>
(3). 국문연구 →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유희의 <언문지>
(4). 백과사전적 학풍 →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동국문헌비고 : 영조, 관찬>
5. 문학과 예술의 경향
(1). 문학 → 중인층 문학 대두(위항인 문학, 여항문학), 판소리 보급, 비판적 한문학 등장(박지원), 시집의 편찬, 한글 소설의 성행, 사설시조의 유행
(2). 예술 → 회화 - 15?16세기 : 자연 속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풍. - 17세기 산수화 유행 - 18세기 전반 : 진경산수화, 정선의 <인왕산도>, <금강산도> - 18세기 후반 : 풍속화유행,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서양화풍 유행(강세황, 김수철), 명암법과 원근법을 이용한 산수화(강세황의 영통골 입구도) - 19세기 : 실학적 화풍이 시들고 복고적 화풍이 유행 김정희의 <세한도>, 신위의 <대그림>, 장승업의 <군마도> - 민화의 유행 → 서예 - 중국 서법의 모방단계 극복, 독자적 기풍, 김정희(추사체) → 자기 - 청화백자 유행
6. 과학?기술의 발전과 서양문물 수용
(1). 천문학 → 지구구형설?지구회전설의 이해 - 김석문의 <역학도해>, 홍대용의 <의산문답>, 박지원, 이익, 정약용등 → 서양천문기기 도입 - 천리경등 → 서양식 역법 도입 - 효종때 시헌력 도입
(2). 지도 → 축척도법과 방안도법 이용, 실측으로 정확성의 유지노력 → 정상기의 <동국지도> : 백리척을 사용한 실측지도 → 김정호의 <청구도>, <대동여지도> → 서양 세계지도 전래 : 마테오 릿치의 <곤여만국전도>
(3). 의학 → 종래 한의학의 관념적인 단점을 극복하고 실증적 태도에서 이론과 임상일치에 주력. → 허준의 <동의보감> : 우리 전통의학 정립, 의학지식의 민간보급에 기여. → 허임의 <침구경험방> : 침구술 집대성 →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 19세기후반, 사상의학 보급.
→ 서양의학 지식의 도입 : 정약용의 <마과회통, 종두법 소개>
(4). 기술학 → 이앙법, 견종법 → 어법과 어구개량, 17세기 김양식, 18세기 후반 냉장선 등장. → 정약전의 <자산어보>
(5). 건축술 → 거중기를 이용하여 한강주교?수원성축조(정약용)
Ⅲ. 신종교의 유포
1. 민간신앙의 성행
(1). 불교?유교의 쇠락
(2). 예언사상의 유행 → 사회변동이 심하고 기존의 가치질서의 붕괴상황하에서 예언사상이 유행. → 풍수지리설에 근거, <정감록> → 19세기 초엽의 세도정치기에 현저해짐
(3). 무격신앙 → 개인적?구복적 성격의 민간신앙
2. 천주교의 전래
(1). 초기 천주교(17세기) → 17세기 북경을 왕래하는 사신들에 의해 전래. → 서학이라하여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여김. 서학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 →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천주실의> 소개, 이익등 주로 남인학자가 수용.
(2). 신앙운동화(18세기 이후) → 천주교가 학문연구에서 종교신앙으로 수용됨. → 남인학자와 상민?중인?부녀자에게 유포됨.
(3). 4대 박해의 발생
◈ 신해박해(1791,정조) - 일명 진산사건으로 윤지충의 신주소각 사건이 원인. - 정조는 남인 시파를 우대하고 천주교에 비교적 관대. - 윤지충 처형 ◈ 신유박해(1801,순조) - 노론벽파가 남인시파에 대한 탄압으로 박해. - 이승훈(최초의 세례자), 이가환, 주문모(최초의 중국인 신부),정약종 사형 정약전(자산어보), 정약용은 유배당함. ◈ 기해박해(1939,헌종) - 풍양조씨가 집권하면서 박해. - 프랑스신부인 모방?샤스탕?앙베르와 정하상등 처형 - 오가작통법이 제정되어 통제 강화. ◈ 병인박해(1866,고종) - 대원군이 박해. - 병인양요의 원인이 됨.
3. 동학의 발생
(1). 배경 → 서양제국주의의 침략과 천주교 유포등 위기감 고조
→ 최제우가 철종(1849-1863)에 창시, 주로 농민층에 보급.
(2). 성격 → 민족주의적 성격, 서학에 반대, 반봉건
(3). 내용 → 윤리적?초세속적 종교 : 인내천 사상 → 평등사상 주장 → 민간신앙 흡수(질병치료, 예언사상) : 현세구복적 성격 → 주기론적 입장, 불교?도교?천주교의 일부 교리까지도 포함한 종합적 사상. → 경전 : <동경대전>, <용담유사> → 정부는 사교로 규정하고 최제우를 처형(철종,1863)
Ⅳ. 세도정치기의 조선사회
1. 세도정치와 정치질서 와해
(1). 세도정치의 발생 → 종래의 노론의 일당전제마저 청산, 특정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 → 영?정조대의 탕평책에 의해 갈등봉합. → 순조부터 철종에 이르는 3대동안 실시됨.(순조:안동김씨, 헌종:풍양조씨, 철종:안동김씨) → 과거제 문란, 매관매직 현상 성행, 삼정의 문란
(2). 수취체제의 문란(삼정의 문란)
① 전정의 문란 → 면세지 증가(18세기 이후) : 궁방전, 관둔전등 → 각종 부과세 부과 : 소작민들이 세부담 ② 군정의 문란 → 신분제의 붕괴로 양인이 감소, 빈농들의 부담가중. ③ 환곡의 문란 → 환곡이 고리대로 변하여 삼정의 폐단 중 가장 심함.
2. 조선후기 민란의 발생
(1). 농민의 황폐화 - 영세농?소작전호?무전농민으로 전락 - 유망 : 화전을 개척하거나 간도?연해주 등지로 이민 - 도시나 광산으로 유망하여 임금노동자화.
(2). 계의 성행 → 양반지주 - 친목도모의 목적(종계, 동갑계, 혼상계, 동계) → 농민 - 경제적 곤란의 타개목적(군포계, 농구계, 우계, 제언계)
(3). 구황작물의 보급 → 고구마, 감자등
(4). 농민의 정치?사회의식의 성장 → 음성적 표출 - 괘서사건, 관서비기(순조,1804) → 적극적 표현 - 도적유행, 유단(거지), 채단(광대) → 홍경래난(순조,1811) - 몰락양반인 홍경래,우군칙,이희저, 김창시가 주도 (관서농민전쟁) - 몰락농민, 광부, 일용노동자, 뱃사공등이 가세
3. 민란의 전국적 확대
(1). 진주민란(철종,1862) → 이난을 계기로 민란이 전국적으로 확대 → 잔반 유계춘이 주도, 정부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
(2). 정부의 대책 - 강경책으로 진압 - 회유책 : 선무사, 안핵사 파견 - 삼정이정청 설치
[출처] 한국사|작성자 ehdrbsal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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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yful의 뜰 원문보기 글쓴이: Joy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