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콩카구아 원정기
2005. 12. 20. 화요일 인천공항 - LA(비행시간 13시간)
오후 3시에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태평양의 하늘을 잘도 날아가고 있다.
현재시간 7시 30분 벌써 4시간 30분이 지나고 있다. 그사이 저녁을 먹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제목은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 한다" 지은이 최 종길. 그의 어머니 조 병순. 식물인간의 아내를 위해 두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간병하는 내용이며 그런 아들과 같이 며느리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어머니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 자신의 감정이 아직은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순수한 것이다. 눈물이 난다. 그냥 눈물이 난다. 이런 선하고 착하고 누구보다 행복해야할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이 다가오다니 이런 분들에 비하면 나란 존재는 참도 행복한 존재이다. 따뜻한 가정이 있으며 건강하니깐..
이제부터 약 26일 동안 나의 소중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나의 존재의미며 내가 함께 해야 할 내 사랑스런 가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행복한 내 가정을 위해 건강하게 돌아가야 한다.
LA에 08:02(오전)도착. 오는 동안 잠 한 숨 자지 못 했다.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칠레 산티아고 갈 때는 잠을 잘 수 있어야 되는데.. LA시내의 거리가 창밖으로 보인다.
LA현지기온 16。C
2005. 12. 21. 수요일 (LA- 산티아고 비행기 안에서)
산티아고행 비행기에서 잠을 한 숨 자고 나니 이제 조금 개운해진다. 산티아고행 란칠레 비행기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약 5시간 정도 잠을 잔 것 같다. 아직도 가야할 비행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는 마음이 편해진다. 집사람이 준 MP3 때문인가 노래를 들으며 모든 일들을 다시 정리해 본다.
내가 왜 산에 가야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산을 가야할지를.. 그리고 후배들에게 어떠한 산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지를.. 그러나 역시 결론은 하나이다. 나도 산을 잘 알지 못 하지만내가 아무리 좋은 산을 가르쳐 줘도 그것을 받아드리는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 못한다면 그 또한 내 몫이고 그들의 몫이라는 점을. 서로간의 이해부족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정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함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정열, 희망, 고통 그리고 끝없는 자신에 대한 자아반성은 누가 알아주랴. 그러나 산을 다니면서 나는 느꼈다. 자아에 대한 끝없는 반성과 의문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고 앞으로도 나를 이끌 큰 등불 이란 걸.
다들 자신을 위해 산을 가려고 한다. 그 말도 맞다. 또 남을 위해서 산을 가기도 한다. 그것도 맞다. 산을 가는 방식은 어떠한 방식이든 다 맞다. 산은(자연은) 인간에게 “너는 나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버리고 자연에 동화하는 등반, 산행.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우리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자연에 동화되려고 왔다. 최소한 이번 원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긍정적인 생각으로 웃으며 등반을 하자. 모든 과정과 만남이 다 지나면 기쁨이고 추억이 아닌가.
2005. 12. 21. 산티아고(10:40분) - 멘도사(11:30분) 도착
멘도사행 비행기 안이다. 짐을 넣을 선반이 없어 발밑에 배낭을 놓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덩치에 비해 왜 이리 비행기가 작은지. 불평하면 뭐 하냐, 그냥 있자. 한 시간 반 뒤에 멘도사에 도착할 것. 창문 밖으로 안데스 산맥의 장엄한 산군이 펼쳐져 있다.저 멀리 멘도사와 주위의 포도밭이 창문 밖으로 가까워온다
2005. 12. 21 산티아고 - 멘도사 도착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상문이 형님이 기다리고 있다. 반가워 악수와 포옹을 하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멘도사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때는 길가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도 보이지가 않는다.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시내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방으로 옮겨달라고 이야기하고 커피숍에서 또다시 그 동안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호텔 앞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방으로 올라와 형님이 부탁한 DVD 플레이어와 다른 장비를 전해주고 인카사(대행사)에 들려 뮬라와 일정에 대해 결정짓고 여수 향암 산악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바로 장비 점에 들려 연료통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예전에는 대공원에 있던 공원 관리소가 시내로 이전되어 있어 공원 관리소에 들리니 6시 02분이다. 이분들이 6시까지 근무라 잠시양해를 구하고 바로 서류 작성하고 입산료를 미화로 지불하려하니 (1인:340달러=1000페소) 환전하여 페소로 내라고 하여 환전소에서 환전하여 입금시키고(환전소에 입금창구가 있어) 시간이 늦어 내일 아침에 다시 공원관리사무소에 들려 입금 확인 시킨 후 입산허가를 받기로 했다. 우리는 까르푸에 가서 필요한 식량을 구입하고 상문형님과 저녁 9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까르푸에 가서 휴지, 물, 사과, 양파, 양상추를 샀다. 과일은 여러 종류가 많았으나 사과 외에는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고 여러 싱싱한 채소들이 많이 있었다. 형님에게서 받은 휘발유와 가스 그리고 우리가 구입한 식량들을 카고에 정리하니 벌써 9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짐 무게가 모두 30kg을 넘어 약 34kg-35kg 정도라 큰일이다. 형님에게 이야기하니 자기가 인카사 사장과 다시 이야기 해봐서 해결해 주신다고 한다. 역시 상문형님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여러 가지 고기 코스로(이곳의 육류는 세계에서도 품질이 정평이 나 있음) 또다시 담소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왜 이리 잠이 오는지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약 2시간의 식사를 나 때문에 1시간 만에 끝내고 더 나오는 고기는 하나도 못 먹고 나왔다. “형님이하 김 영미 씨 죄송합니다.” 집으로 오려고 하니 형님이 멘도사의 야경을 보여주신다고 하여 이곳 교민들이 멘도사의 남산이라는 산에 올라가니 멘도사의 야경이 다 보인다. 크고 정말로 웅장한 모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천둥치는 불빛이 보이고 하늘에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의 날씨가 걱정된다. 다시 호텔에 오는 도중에 나는 차에서 그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호텔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 행.. 고단하고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이글을 적는 시간은 잠시 잠을 깬 새벽 5시경이다.(현지일 22일) 다시 잠을 청했다. 내일도 바쁜 하루가 될 것 같다.
우리 가족들 잘 자요. 아빠도 잘 잘게. 아빠는 우리 가족을 사랑한단다.
짐을 정리 후 홀에 내려와 어렵사리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접속하여보니 연결이 안 된다. 그래서 카운터에 부탁하여 수신자 부담으로 집에 전화하니 집사람이 전화를 이제야 하야며 걱정안인 잔소리다. “여보, 미안해” 그래도 이제 시간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이해해줘.
집사람에게 여러 사람들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해주라고 하고 또 향암산악회의 일정에 대해 계약에 대해 이야기 전해달라고 해달라고, 등등 주위 이야기만 하고 정작 집안 안부는 제대로 이야기 하지도 못하고 전화비 걱정에 끊어버렸다. 후회된다. 다정하게 내일은 이야기해주어야지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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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2. 22일 멘도사(8시30분) - 뻬니뗀떼스(1시 30분)도착
멘도사에서 뻬니뗀떼스까지의 거리는 167km이며 우리의 동벽출발지인 바카스 계곡초입 까지는 159km. 북면과 남벽출발지인 호르코네스 까지는 뻬니뗀떼스에서 10km더 올라가야한다. 아침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먹지 않았다. 이제 산으로 들어가는 날이 된 것이다. 호텔 앞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짐을 정리하니 상문형님이 오신다. 공원관리사무소에 들려 입산허가를 득하고(1회 입산 허가로 산에 머물수 있는 기간은 20일이 한도임) 차량에 짐을 싣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 연결되는 7번 국도를 따라 뻬니뗀떼스로 출발하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형님에게 여러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보니 예전에 점심을 먹던 작은 마을의 그 식당에 도착했다. 용기를 위해 꽃을 한 송이 사고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뻬니뗀떼스에 도착하여 인카사 직원과 함께 카고백 무게를 재니 역시 30kg이상이다. 초과 무게에 대해 상문형님이 해결하기로 하고 호텔 체크인 후 용기가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에 들려 꽃을 심고 담배와 술 한 잔을 올렸다. 잘도 마시고 피운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아직도 마음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나보다. “용기야 내가 너를 보러 다시 왔다. 못난 후배야”라고 용기에게 이야기하며 안전등반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그 동안의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저녁 8시 30분경에 저녁식사를 하고 어느 정도 하루를 정리하니 저녁 10시 40분. 집사람과 전화 통화하여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이제 내일을 위해 한 숨 자야겠다. 집사람이 녹음해준 MP3의 노래를 들으며 가족과 친구들 및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보, 사랑해”, “연주. 성엽아 사랑한다.”
2005. 12. 23일
빼니뗀떼스 - 동벽출발지(바카스 계곡초입) - 레냐스 대피소
(도상거리12km)(고도차이 330m)
아침 7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보니 아침식사시간인 8시까지 조금 시간이 난다. 앉아 있으니 앞으로 일정이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내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해 놓고도 이러니 참 걱정된다. 잊어버리자. 모든 근심 걱정의 90%는 필요 없는 걱정이고 9%는 해결 가능한 걱정이고 나머지 1%가 어쩔 수 없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그 1%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 1% 때문에 나머지 99%를 손해 볼 수는 없다. 걱정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믿고 실천하고 행동해보자.
“아자아자 아자 파이팅”
10시 30분 동벽 출발지(바카스 계곡초입)에 도착하여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출발했다. 레냐스 대피소까지는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계속 좌측으로 길이 나 있으며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긴다. 잠깐씩 도마뱀들이 위태위태하게 내 발을 피해간다. 될 수 있으면 천천히 가려고 노력한다. 빨리 간다 해서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예전보다 작은 골짜기에서 빙하 녹은 물이 많이 내려온다. 예전에는 그냥 건너갔던 곳을 이번에는 신발을 벗고 건너간다. 우리 팀 외에는 남녀2명1팀과 여자 혼자 앞서간다. 알고 보니 혼자 가는 여자는 레냐스 대피소의 레인져 애인이었다. 레인져가 왜 불어난 계곡까지 나와서 길안내를 하는 가 했더니 그 애인 때문이었다. 레냐스 대피소는 레인져가 상주하며 입산신고서를 확인하고 쓰레기봉투를 나누어준다. 내려올 때 쓰레기를 가져와서 확인 후 하산해야 하는 곳이다. 저녁밥을 하고 김치참치찌개를 끓여 집사람이 해 준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하루의 피로가 가신다. 역시 한국 사람은 김치에 쌀밥을 먹어야 하는가 보다.
지금은 8시 15분경 노래를 들으며 오늘을 정리해 본다. 내일은 피에드라 대피소까지 가야 한다. 약 8시간 정도 걸린다. 역시 동벽 카라반 길은 그래도 지루함이 덜하고 사람에게 치이지 않아도 된다. 강 양옆 온천지에 꽃들이 만발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면 카라반은 지루하다. 사람과 뮬라들도 많이 다녀 꼭 국내 설악산 단풍 산행 같다. 거기다 주변 경관도 단순하다. 지금 집에 있는 안사람은 연주 학교 보내려고 서로 씨름하고 있을 것이고, 성엽이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내가 갈 때까지 별탈이 없기를 바란다. 하기야 집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여보, 사랑해, 연주 성엽아 사랑해”.
2005. 12. 24. 토요일 아침 7시 기상
레냐스 대피소 - 피에드라 대피소(도상거리 14km)(고도차이 400m)
어제 남은 김치찌개와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남은 밥으로 점심 주먹밥을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니 9시. 잠시 휴식 후 출발. 레냐스 대피소를 조금 지나 약 500m 올라오니 빙하 물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설치해 두었다. 이 다리를 지나 이제부터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넓은 계곡이 하염없이 이어진다. 날씨는 덥지만 다행히도 바람이 가볍게 불어주어 우리의 발길을 가볍게 해 준다. 한 시간 간격으로 4번을 휴식하고 오후 3시30분에 피에드라 대피소에 도착했다. 피에드라 대피소 도착 전에 B.C 쪽 계곡(렐린코스 계곡)으로 웅장한 아콩카구아 산이 보이고 능선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동벽의 플레쉬 빙하가 웅장함을 더한다. 역시 다시 봐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아니 찍을 수 있을까
피에드라 대피소에서는 태평양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계곡을 지나면서 거세게 불고 있다. 이제 휴식시간. 저녁이 될 때까지 휴식. 6시 30분에 저녁을 해서 먹고 보니 벌써 9시. 그런데 영미가 가져온 청국장을 끓였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리고 말았다. 나 또한 집에서 가져온 소고기 반찬이 상해서 버려야 할 형편이다. 다행이 김치와 다른 반찬이 있어 입맛은 잃지 않고 있다. 그런데 6시경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아프다. 저번 원정 때도 그랬는데 그때와 똑같다면 걱정이 된다. 될 수 있으면 전체 운행에 있어서 속도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뮬라꾼들이 내일 아침 7시에 출발하자고 한다.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다보니 이들도 서둘러 하산하여 가족들에게 가고 싶어서 그러는가 하고 이해가 된다. 나라도 같은 입장이면 그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가족들은 잘 있는 지 궁금하다. 내일은 5시에 기상하여 밥 먹고 7시까지는 짐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일찍 자야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2005. 12. 25. 일요일
피에드라 대피소- 플라자 알젠티나(B.C)(도상거리 10km)(고도차이 1000m)
05시 기상. 다행히 자고나니 두통은 가셨다 다행이라 생각 된다 07시까지 짐정리. 아직도 해가 떠오르지 않는다. 빙하 물을 건너자면 해가 떠야한다. 해뜨기 전에 물에 들어갔다간 칼로 살을 베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데 해가 뜨면 그래도 조금 났다. 해뜨기를 기다리며 뮬라꾼이 가버린 피에드라 대피소에서 새들과 빵조각으로 장난을 치면서 MP3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9시가 조금 넘어서 해가 떠올라 빙하 물을 건넜다. 역시나 그래도 물은 차가웠다. 이제부터 B.C까지 해발 1000m를 올려야 한다. 고소적응이 되어있지 않는 나는 보나마나 머리가 아파와질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진행을 한다. 급경사의 고개를 넘고 또다시 빙하 물을 건넌다. 아직은 눈이 많아 하천 폭이 넓다. 동벽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한걸음씩 전진한다. 약 반 정도 왔을 때 아니나 다를까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위에 콘돌이 나타나지 않는 가 콘돌은 행운의 새며 남미에서는 신성시하는 새이다. 나에게 행운이 뒤따를 란가 보다. 기분은 좋다. 더더욱 천천히 걸으며 오후 4시경에 B.C에 도착했다. B.C는 예전보다 복잡해진 것 같다. 인카사 직원에게 뮬라 서류를 보여주고 텐트 칠 곳을 안내받고 레인져에게 입산 확인 신고를 하고 다니엘 로패즈를 찾아갔다. 옛날 그 자리에서 무전기를 잡고 있다가 흰머리가 더 많이 난 얼굴로 나를 반겨준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그래도 나를 잊지 않고 있다니 너무도 고맙다. 내일 찾아오기로 하고 상주하고 있는 의사에게 가서 혈압과 산소 소비량을 체크한다. 혈압은 87로 나오고 산소 소비량은 69로 나온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약을 주려고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레놀을 보여주니 그것을 복용하라고 하면서 물을 하루에 4리터씩 먹어라 한다. 밖을 나오니 김 영미 씨말이 레인져가 나를 알고 있다고 말을 하더란다. 그 때의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나를 기억한 것이다. 이곳 동벽 쪽으로는 한국대가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잘 기억할 것이다.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는데 머리가 더욱더 아파오고 속도 울렁거려 속에 있는 것을 다 올리고 말았다. 이를 본 영미가 쉬라고 하면서 물을 끓여준다. 너무나 고맙다. 뜨거운 물을 먹으며 잠깐 잠을 자고 있으니 영미가 밥을 하고 김치찌개까지 끓여서 먹으라 한다. 정신을 차리니 머리가 거의 개운해져 있다. 천만다행이다. 저녁을 먹고 내일은 쉬기로 했다. 레인져 말로는 28일까지 날씨가 좋다고 한다. 영미는 내일 바로 C1 으로 짐을 운반하려고 했으나 체력안배를 위해서 쉬기로 했다. 나은 3일 날씨가 좋아진다면 내일 쉬고 27일 C1에 짐을 운반하고 28일에 C1에 입성하고 29일에 C2에 짐을 운반하고 30일에 C2에 입성하고 31일 B.C로 하산하여 휴식 후 1일 휴식 후 2일 C2 올라가서 3일정도 summit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일정은 그저 예상일정일뿐 앞으로의 상황은 누구도 알수 없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소변을 보려고 잠시 밖을 나가니 하늘이 온통 불꽃놀이 중이다. 별이 진짜 무수히 반짝이고 있다. 현재시간 22시 40분 잠을 청할 시간이다. 내일은 종일 휴식이다.
2005. 12. 26 월요일 B.C 휴식
7시 30분 기상 머리가 조금 아프다. 물을 끓여 수통에 가득 채우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도 보고 내일부터의 일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에게 가장 맞는 일정은 어떤 것인가 여러 가지 일정들을 고려해본다. 짐은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갈 것인가 모든 것들이 정리가 잘 안 된다. 입술은 자고나니 터있는 데다가 한쪽으로는 물집까지 잡혀있다. 하산 때까지 괜찮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점심은 라면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텐트에서 정리중인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텐트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역시 아콩의 바람은 알 수가 없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간다. 집을 떠난 지 벌써 7일째가 된다. 집사람과 연주, 성엽이가 간절히 보고 싶다. 떠나면 이렇게도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왜 떠나려 하는지 나 자신을 알 수가 없다. “여보, 얘들아 이해해줘. 사랑 한다”
2005. 12. 27 화요일 B.C - C1(4850m)(고도차이 650m)
(6시 기상 08시 30분 출발 - 12시 30분 C1 도착, 14시 30분 하산시작 - 16시 15분 BC도착)
힘든 하루였다. C1까지 짐을 올려놓고 왔다. 레인져가 눈이 많다고 하여 이중화를 신고 갔는데 속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그냥 워킹화로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힘만 뺐다. 심장박동수와 산소 체크하니 75에 82이다. 거의 정상 컨디션에 와있다. 그래도 C1까지의 짐 운반은 힘들다. C1을 4850m 지점에 3시간에 걸쳐(휴식시간 포함) 설치하고 하산을 하는데 다리에 힘이 없다. 정상 갔다가 내려오는 외국 대를 보니 부럽기만 하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의 컨디션을 봐서는 운행을 천천히 해야 할 것 같다. 빨리 한다고 해서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천천히 무조건 천천히 운행하자. C1에서 아팠던 머리는 B.C에 내려와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나니 한층 개운해졌다. 그래도 내일은 휴식을 취하며 다음 일정에 대비하기로 했다. 서두르면 낭패를 본다. 저녁을 백숙으로 먹었다. 식사 후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9시 15분이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할 시간이다.
2005. 12. 28 수요일 B.C 휴식
오늘은 B.C에서 휴식하기로 한 날이다. 오늘의 휴식이 도움이 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C1 으로 올라가는 것이 도움이 될지는 나중에 확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늘의 휴식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하루의 휴식만으로도 지금 모든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얼굴상태, 입술상태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정상으로 갔다 오는 길만이 남아있다. 날씨가 나를 도와주기를 바란다. 날이 갈수록 가족들 생각이 난다. 그동안 이곳에 와서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참고 참았지) 집사람 사진을 꺼내보았다. 처녀 때의 사진인데 벌써 두 자녀의 어머니이며 한 남자의 아내가 된지 만 9년이 되었다. 속 썩인 일도 많았고 마음에 안든 때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벌써 3번째의 원정을 보내주었으니 속마음이야 얼마나 걱정되고 아프겠나. 미안해. 그리고 연주, 성엽아 못난 아빠 만나 잘 놀아주지도 않고 매번 출장이내 원정이내 산 이내 하며 돌아다니기만 하니 얘들아 미안하다. 우리가족에게 미안하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한다. 가족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저녁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소화제 2알을 사용했다. 원정 떠나서 처음 사용한 의약품이다.)
2005. 12. 29. 목요일 (B.C - C1)
(07시 기상. 10시 10분 출발 11시 40분 중간 맑은 물 흐르는데 도착 휴식
13시 57분 C1도착, 17시에 김 영미 씨가 C2에서 C1 으로 도착 17시 20분 B.C로 하산)
그제 C1 올라갈 때 보다는 조금 몸이 개운해졌다. 1차 상어이빨같이 생긴 만년설 지대를 벗어나서 B.C와 C1간의 중간지점 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니 11시40분이다. 간단하게 미니 햄으로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C1까지 올라갈 지역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다시 출발하여 C1마지막 만년설 지역을 올라가는데 위에서 4명으로 구성된 1팀과 6명으로 구성된 1팀이 내려온다. 4명 1팀에는 일본인이 한사람 포함되어있어 같은 동양인으로 반갑게 악수하며 헤어졌다.
6명 1팀에는 여자대원이 1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정상에 갔다 왔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힘들기도 했고 그들도 매우 지쳐 있었다. 내가 하산할 때 혹시나 저러지나 않을까 생각해보니 힘이 빠진다. 천천히 운행을 하여 힘의 소비를 줄여야겠다. C1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물을 확보하고 보니 C2에 올라간 영미가 아직도 내려오지 않는다. 4시가 지나도 C2에서 내려오는 지역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4시 20분쯤 되어 다시 위를 보니 한 점이 움직인다. 분명히 영미라고 직감적으로 생각이 돼서 물을 끓이고 핫 초코를 준비했다. 5시에 영미가 도착하고 자초지정을 들어보니 텐트 치는데 애를 먹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한다(바람 때문에).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영미는 B.C로 바로 하산을 한다. 해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영미를 내려 보내고 물을 끓여 전현진형님 집에서 가져온 산마차를 마시니 몸이 한결 나아진다. 현재시간 18시 26분 . 해는 산마루에 걸려 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지고 온도는 급격히 내려갈 것이다. 텐트로 들어갈 시간이다. 오늘의 하루를 마감해야겠다. 보고 싶다. 우리가족이.
집사람(김 은희), 연주, 성엽이 모두 사랑한다. 아빠가 산행 끝나는 대로 하산하면 바로 전화할게. 사랑해. 낮 시간에는 그렇게도 불어대던 바람이 잠잠해졌다. 바람의 변덕이 심하다.
2005 12. 30. 금요일 C1 - C2,(5800m) - C1,(고도차이 약 1000m)(08시 45분 출발 - 12시 47분 C2도착 텐트 장소 확인 및 정리 - 13시 05분 하산 - 13시 55분 C1도착)
06시 30분 기상 날씨 맑음. 조용한 아침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적막 속에 잠겨있다. 적막을 깨는 버너의 불꽃소리. 오늘 하루의 시작이다.
아침 식사를 햇반에 미역국에 말아 죽같이 해먹고 오늘 올릴 짐을 정리하니 8시 45분 출발이다. “천천히” 항상 강조한거지만 이유 없다. 무조건 천천히 운행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 오늘 올려야 할 높이는 1000m이다. 무리하게 빨리 올리면 위험해질 수 있는 높이다. 아르헨티나 2인 1조 팀, 프랑스 남자 미국인 여자 1팀, 그리고 나 이렇게 5명 중에 나는 가장 빨리 출발했으나 중간지점 이후에는 가장 나중에 서게 됐다. 나의 의도에 의해 그리됐다. C1에서 C2까지는 전체적으로 자갈지역이며 만년설 구간이 3곳 나온다. 모든 사람이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으나 혹시나 추락 시에는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지역들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체력이 어느 정도 바닥이 날려고 할 때 C2가 보인다. 텐트 20동 정도 칠 수 있는 공간이며 바람이 계속 불어오는 지역이지만 이곳이 가장 적당한 C2 캠프 지역 이다. 이곳에 장비와 식량을 대포 시키고 내가 등반할 코스를 점검하고 13시 05분에 C1 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C1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말썽이었다. 너무 빨리 내려오다 보니 체력이 저하되어 머리가 아파온다. 내일까지도 머리가 아프면 운행을 변경해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다행히 3-4시간 휴식을 취하며 미숫가루와 물을 먹으니 통증이 호전된다. 남겨놓은 미역국에 햇반으로 죽을 해서 먹고 나니 한결 개운해져 물통에 물을 충만 시키고 날진통에 물을 끓여 가득 담아 계속 먹는다. 다행히 물맛이 맞아 아무런 차를 넣지 않고도 물을 잘 먹고 있다. 좁은 텐트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나와 햇빛이 있는 동안 계속 있기로 했으나 날씨는 추워 몸이 차가워진다. 그러나 텐트 안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으면서 조금씩 움직여 주는 것이 고소적응에 한결 도움이 되고, 날씨의 변화도 볼 수 있어 내일의 날씨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에 밖에 나와 있음이 한결 도움이 된다. 날씨와 아콩카구아 산신이 도와주고 두통만 없다면 3일 정도면 B.C에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모든 조건이 좋아지길 바랄 뿐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거대한 산과 날씨 앞에서 또다시 느낀다. 여보, 연주, 성엽아 아빠에게 힘을 다오. 무사귀환 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사랑한다. 내일도 자연에 순응하며 천천히 운행을 해야겠다. 무조건 천천히... 지금 시간이 20시 30분인데 잠이 안 온다. 정상에 대한 생각 때문인가?
2005. 12. 31. 토요일 (C1 - C2)
07시 기상. 바람이 저녁 12시 이후에 계속 불어온다. 그러나 하늘은 쾌청하다. 13시 00분 C2도착. 14시 44분 까지 캠프사이트 구축 완료. 태극기 게양 완료.
물을 끓이고 휴식을 취하려고 하니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구름이 플레쉬 빙하를 완전히 가려 버렸다. 날씨는 춥지는 않지만 눈구름에 시야가 가려진다. 밖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싸리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텐트 안으로 안 들어갈 수가 없다. 밖에서는 눈 내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으나 바람은 크게 불지 않아 다행이다. 현재시간 17시 11분. 밖에 설치한 태극기가 바람에 거세게 흔들린다. 혹시나 하여 태극기와 돌을 묶어 놨다. 혹시나 날아가 버리면 황당하니깐. 하나밖에 없는 태극기다. B.C에서 C2까지 오늘 올라오기로 한 영미가 아직도 오지를 않는다(고소적응된 사람은 가능한 운행임). 주인 잃은 텐트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그래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등정하고 하산하지. 날씨가 나쁘면 운행변경까지 고려해봐야 한다.
현재시간 18시 00분. 이른 저녁을 해먹고 내일을 기다린다. 계획은 새벽 2시에 기상하여 4시에 정상으로 출발할 것이다. 그런데 밖에 싸리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내일은 그쳐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몸 컨디션은 좋다. 날씨만 화창해주고 아콩의 산신만 허락한다면 내일 등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두자. 여보, 얘들아 아빠를 위해 기도해다오.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18시 25분에 영미가 C2에 도착한다. 18시 35분 취침.
2006. 1 .1. (일요일)
C2 - 인디펜덴시아 대피소(6377m)(고도차이 약 580m)
(02시 15분 기상. 4시 출발. 인디펜덴시아 대피소까지 2시간 만에 갔다가 돌아옴)
바람이 너무 심하고 싸리 눈이 계속 내려 더 이상 전진이 어렵고 스틱한쪽 핀이 파손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기가 힘들고 설상가상으로 열나는 깔창을 생각하고 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만 발가락에 감각이 무디어온다. 그래서 인디펜덴시아 대피소에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C2로 1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했다. 나에겐 마의 6200m인가? 매킨리도 6200이요 저번에 아콩카구아 원정 때 최고도달 높이도 6200m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현지의 최근 공식 지도에는 인디펜덴시아 대피소가 6377m로 표기되어 있다.) 이번에는 무조건 마의 높이를 깨고 싶다. 깨진다면 그 높이가 아콩카구아 정상 높이가 되기를 바란다. 체력 소모만 하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오늘 하루운행이다. 엄지, 검지 발가락에 동상 초기 증상이 있으나 다행히 운행 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어제저녁부터 불던 바람이 아직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불어대고 있다. 대단한 아콩카구아 산의 바람이다. 제발 발가락이 이상이 없어야 될 텐데. 그래야 내일 한 번 더 정상에 도전해보지. 이대로 그냥 내려가면 너무나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제는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고 집사람도 이제는 아예 절대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휴가내기가 힘들 것이고 발가락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 힘내자. 영미가 준 바세린거즈를 발가락에 동여매어 놨다. 의약품을 B.C와C1에 나누어 놔두고 오고 말았다. 나의 실수다. 가지고 온 거라곤 진통제와 압박붕대, 입술연고, 썬 크림, 테라마이신, 우황청심환 정도다. 정작 내가 발에 땀이 많아 항상 걱정인 동상에 대한 약은 가져오지 않았으니 나도 정신이 없지 C1까지 지금 내려가지도 못하고 지금 내려간다면 올라올 자신이 없다 . 아콩카구아 산에서는 해가 뜨고 나서 운행해도 절대 늦지 않다. 카라반 외에는 될 수 있으면 해 뜨고 나서 운행에 나서길 부탁한다. 또한 바람으로 인한 온도 변화가 크므로 화창하더라도 바람이 불면 위쪽에는 급격한 기온변화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시간 18시 00분 . 물 끓이고 저녁을 해먹고 있는 중에 또다시 싸리 눈이 내린다. 어제보다는 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이다. 바람도 잦아들기를 바랄뿐이다. 19시 10분. 아직도 밖은 맑다. 그러나 바람은 거세다. 21시 10분 바람이 멈추고 날씨가 쾌청하다. 내일은 정상가야겠다.
2006. 1. 2(월) C2 - 정상 - C2 (고도차이 1160m)
(05:00기상. 07:20 분 출발. - 10:00 인디펜덴시아 (인디펜덴시아 대피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음. 높이는 6377m) 대피소 도착 - 13:16분 정상 도착
소시지 1개먹음. 이태리 친구와 같이 사진 촬영. 기록 남기고 - 14시 15분 하산시작 - 15시 45분 (소시지 1개먹음. 인디펜덴시아 대피소 도착) - 17시 10분 C2 도착 (총 9시간 30분소요))
6시가 되니 해가 기웃기웃 거린다. 오늘은 될 수 있으면 정상에 갔다 와야 한다. 식량도 내일아침 양밖에 없고(햇반 300g 한 개가 하루 식량분임) 동상 걸린 발도 신경 쓰인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했다. 고소증세를 걱정했는데 그동안 체력훈련을 잘 한 건지 C1이후로는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고소에 적응이 된 것이다.
마음으로는 천천히 걷자고 해놓고서는 발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다행히 몸 컨디션은 좋다. 2시간 40분 만에 인디펜덴시아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 대피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대피소이다. 이곳에서는 동면에서 올라오는 팀과 북면 로말 루트에서 올라온 팀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며 정상까지의 시간을 간음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잠시 휴식하며 파워 젤과 물을 먹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등반가가 정상 갔다가 벌써 내려온다(북벽의 베를린캠프에서 어제 저녁에 출발 했다고 함). 그는 북면 쪽으로 붙으면 바람이 심해질 거라고 경고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것은 인종을 떠나 나라를 떠나 고산에서 볼 수 있는 좋은 모습이다.
이곳부터는 내가 가보지 못한 높이이다. 매킨리도 6200m이고, 저번에 왔었을 때 우리가 최종적으로 올라온 높이가 이 높이다. 이제부터 한발 한발은 나의 높이가 되며 영훈 선배와 용기가 올라가고자 했던 높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을 하니 눈물이 쏟아진다. 멈추지가 않는다. 고글 앞에 눈물이 계속 쏟아진다. 우리가 오르고자 했던 이 산에 나밖에 못 오르고 있다니 슬퍼진다. 가야된다. 우리가 오르고자 했던 그 산이 아닌가. 내가 왜 이곳에 왔는데.. 가야된다. 마음이 안정이 안 된다. 고글 앞으로 무수히 많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가자가자. 내가 왜 이곳에 왔는데 가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정상에 서서 대장님과 용기의 마음을 달래주리. 눈앞에 외국 대 한분이 솔로로 등반중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태리 사람이다. 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고글 속에서 무수히 흐르는 나의 눈물을. 의미를.. 정상까지 3시간 정도의 시간을 눈물을 흘리며, 참으며 올랐다. 정상에 섰을 때는 나의 기쁨보다 내가 이제야 그 두 사람의 한을 풀었다는 것이 더욱 더 기뻤다. 그들이 오르고 싶은 산이고 오르려 했다가 먼저 간 산 아닌가.
내가 이제와 조금이나마 한을 풀어준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아니다. 그 두 분의 한이, 아니 그동안 나의 한이었다. 내 마음속에 고이고이 담아둔 나의 한이었다. 이제 그 한을 한 꺼풀 풀었다는 것이 나의 눈에서 눈물을 그치지 못하게 한다. 정상에 섰다고 기쁨의 눈물이 아니다. 이제 그들을 내 마음에서 놓아줄 수 있다는 마음의 눈물이며, 영원히 산으로 보내야 하는 헤어짐의 눈물이다. 오늘만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리. 다시는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 그들도 나의 눈물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가소서. 나의 악우여. 영훈 선배, 용기야...
정상가기전 마지막 오르막길은 정말로 힘든 길이다. 사람의 진을 다 빼놓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정도로 한발 디디면 한발 뒤로 내려오는 길이다. 거의 탈진 상태까지 됐을 때 아콩은 정상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정상에는 알루미늄 십자가와 여러 가지 물건이 있었으며 십자가 옆에는 정상 등정을 기록을 할 수 있도록 볼펜과 방명록이 준비되어 있었다. 또한 스테인레스 통에 개인적으로 등정기록을 작성하여 넣어둘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종이가 없어 방명록에 등정시간, 날짜, 코스, 이메일, 국적 및 개인기록을 기록하고 같이 올라온 이태리 친구와 사진을 찍고 개인적인 사진을 찍었다. 이태리 친구는 빨리 하산을 해야 한다기에 먼저 하산하고 나는 1시간가량 있으며 개인적인 일들을 마무리하고 14시 15분에 하산을 시작했는데 올라올 때 얼마나 힘을 소진시켰는지 내려오는데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등정 시나 하산 시 가장 힘든 구간인 정상 200m 아래 부분에서 일본팀 2명을 만났다. 그들은 길을 잘못 들어 고생을 하고 있어 바른길로 가르쳐주고 인디펜덴시아 대피소까지 오니 몸이 거의 탈진 상태정도로 나빠진다. 그래서 잠시 휴식하며 소시지로 허기를 면하고 그 사이 사진 몇 장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에는 또다시 눈구름이 일기 시작한다. 빨리 하산하여 텐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빙하지역을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운행을 하였다. 몸의 컨디션이 많이 나빠진 상태라서 부담이 된다. 만약에 여기서 미끄러지면 경사가 심하여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조심조심하여 텐트에 도착하니 외국 대 사람들이 등정을 축하한다고 환호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텐트에 들어가 신발을 빨리 벗으니 다행히 동상은 더 이상 진전되어 있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바로 햇반 반쪽과 일회용 국거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내일은 나머지 햇반 반과 국거리로 요기를 하고 B.C까지 하산이다. 지친 몸을 침낭 속으로 넣으니 그냥 눈꺼풀이 내려온다.
2006. 1. 3 화요일 C2 - B.C
07시 기상. 9시30분 출발. 해가 떠오르고 오늘 하루를 느긋하게 시작한다. 이제는 하산이다. 등반만큼 중요한 하산이다. 체력도 고갈되고 마음도 풀어질 수 있는 시기이다. 조심하여 하산하여 C1에 도착하여 대포 시켜 놓은 쓰레기와 장비를 찾는데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누가 손댔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하산을 계속 하였다. C1에 대포 시킨 짐 중에는 하산 중에 먹으려는 행동식도 있었는데 생각하니 더욱 배가 고파와 힘이 없어진다. 약 4일 동안을 햇반 4개로 견디어냈으니 말이다. 멀리 B.C의 텐트들이 보인다. 올라올 때보다 텐트수가 4배는 많아진 것 같다. 역시 이제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역시나 B.C에 도착하니 왜 이리 사람이 많은지...
북면은 더 할 거라고 생각된다. 쓰레기를 들고 레인져 사무실에 가서 확인시키고 혹시 C1에 있던 내 짐과 쓰레기를 물으니 자기들이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쓰레기를 버렸으니 벌금 200달러를 내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버린 것이 아니고 혼자 등반하다보니 B.C까지 갔다 올 수도 없고 그래서 C2에 올라갈 필요가 없는 내짐과 함께 대포 시킨 것인데 어찌하여 내가 쓰레기를 버렸단 말인가. 뭔가가 착오가 있는 것이다. 내 짧은 영어로 대포 시킨 경위와 상황을 이야기하고 강력히 버린 것을 부인하니 5시에 다시 이야기하잔다. 뭔가가 있다. 이들이 주인 없는 줄 알고 가지고 내려왔는데 내가 주인이라며 짐을 달라고 하니 짐은 주면서 쓰레기를 버렸다는 이유를 달아 주지를 않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5시에 다시 가서 다시 이야기하니 그럼 쓰레기를 버린 것이 아니고 봉투를 지참안한 것으로 벌금 100달러를 먹이겠다는 것이다. 이게 뭔가.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나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자신들이 내짐과 쓰레기를 가져와서는 장부에 기록을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쓰레기 버린 벌금 200달러가 아닌 봉투 미 지참으로 100달러를 먹여야 한다는 봐주는척하면서 벌금을 부과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덮어버린다. 기분이 상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들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다. 언제 내 물건 운반해달라고 했는가. 그 짐 속에는 하산 시 먹으려는 내 행동식도 있는데 그 행동식이 없어 얼마나 배가 고팠는데 이 자식들이 그리고 지금껏 산에 다니면서 쓰레기 하나 주웠으면 주웠지 버린 적 없는 나를 이렇게 이 먼 나라까지 원정 온 나에게 아콩카구아 이 산 레인져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고 저희들 맘 대로다. 이의 있으면 5일 후 지적서 우측 상단에 있는 곳으로 이의를 제기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외국 원정대에 가당키나 한 처사인가. 누가 100-200달러 가지고 현지에 남아 말싸움할 사람이 있는가. 하여튼 저희들 맘대로 서류작성하고 싸인 하고 나에게 싸인 해라고 내민다. 내나라 같았으면 면상에 끝까지 따지고 볼 상황이지만 다음 일정도 있고 해서 말도 안 돼는 상황이지만 이 나라 거지에게 기부했다는 심정으로 싸인 을 했다. 쓰레기봉투는 B.C에서 각종 쓰레기를 담아 두어야 했기에 지참하지 못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실랑이를 포기했다. 다니엘 로페즈의 텐트에 들려 정상등정을 했다고 말을 해주니 자신이 등정한 것과 같이 기뻐해준다. 2002-2003 시즌의 그 일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며 그때 그 고통을 함께한 사람이 안인가.
맥주를 하나 달라니 그냥 먹어라 한다. 안된다면서 5달러를(공식요금)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여 맛난 점심을 대접받고 왔다. 역시 사람 살아가는 곳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본성, 심성은 통하는 법이다. 텐트로 돌아와 성질 날 때는 배가 든든해야 된다고 오래간만에 밥통에 밥을 가득하여 성훈형님이 준 고추장조림, 김치, 마늘종김치, 마른 무 무침, 고추장에 저녁을 실컷 먹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안 좋아 일기 쓰다 말고 화장실을 갔다 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약 4일 만에 화장실을 간 것이다. 하기야 하루에 햇반 300g 으로 보냈으니 나올 무엇이 있겠나. 아니 벌써 9시다. 취침을 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아직 안자도 되지만 다른 등반 할 사람들은 잠을 청해야할 시간이다. 하여튼 기분 좋았다가 기분 나빴다가 다시 기분 좋아지는 하루였다. 정말 이런 날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내일 휴식하고 5일(모레) 뮬라로 와서 내려가면 늦어도 6일이면 집사람과 애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등정 소식도 전해줄 수 있다. 그 날을 기다리며 파이팅!
2005. 01. 04. (수요일) B.C휴식
오늘은 베이스에서 휴식하고 내일 레냐스 대피소까지 하산한다. 어제 사진을 하루 종일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 와중에 로페즈 가이드 팀에 가서 이야기하며 환대받고 사진 찍고 그와의 우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정말로 고마운 분이다. 진짜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다. 나이를 떠나서 말이다. 지금도 나를 기억하고 나에게 관심이 많다. 어떻든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마운 친구를, 영원한 친구를 만나는 마음이다.
“영원한 친구 로페즈”
그에게 정상갈 때 쓴 고글을 전해주었다. 고마움에 대한, 나를 기억해 준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인카사에 들려 여수 향암 산악회 쪽 소식을 알 수 있는지 타진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지금 콤프렌시아에서 바로 북면 B.C인 플라젤 델 뮤라스까기 바로가기 때문에 저녁 늦게 나 B.C에 도착한다고 하여 오늘은 통화하기 힘들고 내일 하산하기 전에 연락하여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한다. 정말로 고마운 마음씀씀이다. 안된다고 해도 그만인데 내일이라도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준다니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정말 고마울 뿐이다. 내일은 레냐스 대피소까지 약 8시간 이상 걸리는 하산길이다. 올라올 때는 2일이 걸려 올라온 길을 내려갈 때 1일 만에 내려가는 긴 시간인 것이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자. 여보, 얘들아 모레면 아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사랑 한다”
B.C의 다른 원정팀이나 이곳 아르헨티나팀은 식사나, 식당, 텐트, 심지어 목욕시설까지 이용하는데 모든 것이 돈이 해결하는 것 같다. 특히 식사는 B.C또는 캠프1 운행 시까지 아침, 점심, 저녁을 다 해주고 있다. 특히 가족단위, 친구단위, 혹은 단체 팀의 등반 팀이 많이 있다. 우리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등반방식으로 등반을 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등반을 즐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원정등반을 즐길 수 있는 등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다음에 내가 원정을 간다면 이렇게 즐기면서 가고 싶다. 이렇게 부담이 되는 원정이 아닌 나도 처음 목적은 부담 없이 즐기는 원정을 오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그리되지 않고 말았다. 하여튼 등반은 즐거워야 한다. 그것이 모든 운행의 첫째 목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즐거운 등반.
2005. 01. 05. (목요일) B.C- 레냐스 대피소
09:50분 출발 - 19:30분 도착 (07기상)
아침을 해먹고 텐트 정리하고 짐 무게를 체크한 후 수 북면으로 등반을 간 여수 향암 산악회 김종철 대장과 무전으로 통화하며 안전등반을 기원해 주었다. 하여튼 좋은 등반과 함께 정상을 갔다 오기를 바란다는 안부를 전했다. 레인져 사무실에 들러 다시 한 번 쓰레기에 대한 언급을 하고 로페즈 텐트에 들리어 떠난다는 인사를 했다. 언제나 이별은 슬픈 것이다. B.C에서 레냐스 대피소까지는 최소 7시간에서 9시간까지 걸리는 거리로서 올라갈 때는 이틀 걸리는 거리를 하루에 내려와야 하는 길고도 지루한 길이다. 역시나 길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피에드라 대피소 도착 전에 3부자 등반 팀을 만났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명이서 등반을 하고 혹시나 해서 사고에 대비할 목적으로 인카사 가이드 한명을 대동하고 (할아버지가 고령이라) 우리와 같이 하산을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도 자신의 짐을 직접 메고 하산하고 있다. 얼마나 보기 좋은 광경인가. 할아버지를 뒤에서 보좌 아닌 보좌를 하면서 레냐스 대피소까지 왔다. 나도 늙어 성엽이와 손 주 아들과 같이 이런 산행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도 내가 늙을 때쯤엔 이런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힘든 하산길이지만 좋은 광경을 봐서 마음은 흐뭇하다. 이곳 레냐스 대피소에 쓰레기를 반납하고 입산허가서 1장을 주어야 모든 등반(입산, 하산) 절차가 끝나는 것이다. 우리는 텐트를 설치하지 않고 비박을 하기로 했다. 넓은 대피소 뒤 편 적당한 곳에 매트리스를 깔고 저녁을 해결하고 하루를 정리하니 태양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어둠을 몰고 온다.
2005. 01. 06.(금요일) 레냐스 대피소 - 뻬니뗀떼스
09:00 출발- 11:20분 도착
이곳은 2002-2003년 원정 때 사고 장소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용기에게 안녕이라 전하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오늘은 나의 발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고 싶다. 빨리 걸음을 재촉하니 2시간 20분 안에 하산을 끝냈다. 뮬라 꾼 숙소의 그늘에서 휴식을 약 1시간 정도 취하고 있으니 영미가 온다. 차를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목도 말라 검문소 너머에 가서 환타와 콜라를 사왔다. 음료수를 먹고 있으니 인카사 차량이 온다. 짐을 싣고 호텔에 도착하여 그동안 못한 목욕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이제부터 지루하게 입국 날짜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될 수 있으면 돈을 아껴 써야 하니 아침은 호텔에서 주는 것을 든든히 먹고 점심과 저녁은 밖에 나가서 남은 부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아껴야 산다. 집에 전화해서 등정소식을 알려주고 나니 이제 마음이 개운하다.
2005. 01. 07. (토요일) 뻬니뗀떼스 - 호르코네스
07:00 기상. 세수하고 8시에 아침식사를 정말로 든든히 먹었다. 계란 반죽에 햄이 들어간 찜과 같은 것에 빵과 커피, 주스, 우유를 든든히 먹었다. 남벽으로 갈 사람은 가고 나는 동상 때문에 가지 못하고 대신 호르코네스 북면 출발지에서 뻬니뗀떼스까지 옛 철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중간에 푸엔데 델 잉카란 마을이 있는 데 예전에 왕족, 귀족들이 즐기던 노천 온천이 있어 구경을 했다. 지금은 출입금지고 강 건너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온천이 있는 곳이 예전 철길을 통해 이동됐을 때는 이 지역의 중심 역이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까지는 한참 내려와야 한다. 중간에 아콩카구아에서 죽은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있으며 용기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묘지에 들러 용기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진 혁만 선배가 빌려준 시계의 나침반을 떼 내어 슬링에 연결하여 용기에게 걸어주고 호텔까지 내려오니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3시다. 방에 들어와 몰래 햇반으로 저녁을 해결하니 아무생각이 없다. 호텔에서는 500리터의 물 한 병을 3.5페소를 주어야 하나 주유소 옆 슈퍼에서는 1.5리터 한 병이 3.5페소였다. 슈퍼에서 사먹는 것이 이익이다. 슈퍼에서 환타나 사이다는 1리터에 3페소정도로 물보다 싸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
2005. 01. 08.(일요일) 뻬니뗀떼스 휴식
07:40분 기상. 세수하고 08:10 식사하러감. 오늘 하루 종일 뻬니뗀떼스의 호텔에서 뒹굴며 휴식이다. 이것은 휴식이라기보다는 시간 죽이기다. 휴식이란 일정한 재충전의 목적이 있지만 내가 보낸 오늘은 재충전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어쨌든 보낼 수밖에 없고 (다른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또는 이 주위에 특별히 할 것이, 볼 것이 더 이상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지루하지만 그저 시간 죽이는 과정의 일과이다. 지루하다. 발가락의 동상은 조금씩 차도가 있어간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 같다. 오늘은 이곳 뻬니뗀떼스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다음 기회에 이곳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옆에는 인카사의 짐과 인원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어 하루 종일 정신없이 차와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 옆에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그 옆에는 인카사와 다른 대행업체의 사무실이 있고 그 앞에는 아주 작은 주유소가 있고 그 옆에는 편의점과 식당을 같이하는 휴게소가 있다. 이곳에서 물과 음료수를 사다먹기를 바란다. 호텔은 너무 비싸고 이곳은 진짜 싸다. 원래 가격을 받는 것이다. 7번국도 건너에는 또 다른 식당 2곳이 영업하고 있다. 자주 손님이 드나들고 있으며 나머지 시설들은 스키장에 맞게 스키시즌에만 사용되고 있는 콘도식 호텔들과 같다. 그 중에 리프트는 손님이 있을 때 가동되며 스키장 최고높이까지 가지 않고 중간까지만 올라가 전망을 구경시켜주고 있다. 이것이 뻬니뗀떼스 스키장 앞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주위의 전부며 이곳에서 조금위인 푸엔데 델 인카의 마을은 이곳보다는 마을이 크고 강 건너에 온천관광지가 있어(지금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건너에서 유적지 관광만 할 수 있음) 규모가 이보다는 크지만 아콩카구아 등반 인구의 대부분은 이곳 호텔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고 있다. 인카 마을 조금아래에 아콩카구아 등반 중 사망한 사람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원묘지가 있다. 이것이 이곳 주위에 대한 설명의 전부이다. 그리고 뮬라 꾼들은 인카 마을에 묵고 있다.
2005. 01. 09. 뻬니뗀떼스 휴식
07:30 기상 - 08:00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항상 똑같은 뷔페식 아침식사. 그래도 입맛에 맞아 다행이다. 점심과 저녁은 햇반 남은 것과 반찬으로 해결하고 있다. 식당에서 사서 먹으면 돈도 아깝고 입맛도 별로다. 우리 입맛에는 그저 밥과 김치가 있어야 한다. 오늘 하루도 남벽으로 트래킹 간 팀을 기다리다 하루가 저문다. 내일이면 멘도사로 간다. 이제는 며칠만 있으면 그리운 고국으로 갈 수 있다. 나머지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원정을 즐기는 방법이다. 하루하루를 즐겨라. 행복하게.
2005. 01. 10.(화요일) 뻬니뗀떼스 - 멘도사
06:00 기상. 짐을 밖으로 내놓고 잠시 휴식 후 항상 똑같은 식사로 아침을 해결했다. 10시에 호텔 체크아웃 하니 3일치 호텔비가 136.5달러다. 예약가격보다는 16달러정도 더 나온 것 같다. 예약과 하지 않음의 차이가 이정도면 우리로서는 큰 차이이다. 11시에서 30분까지 오기로 한 박 상문 씨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1시간 후면 상문형님이 도착할 것이다. 이제는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그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 나의 자리에 서고 싶다. 12시경에 박 상문 씨가 왔다. 오늘이 우리를 데리러가는 날인 줄 긴가민가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확인전화를 해줄 걸 그랬다. 쓰레기에 대해 인카사 직원과 다시 한 번 이야기 했는데 레인져 들이 한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사항) 차는 출발하고 그 동안의 우리나라 사정과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기착지인 식당에 다시 들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점심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다 먹지 못했지만 나는 양이 모자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1시간에 걸쳐 식사와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보다 싼 호텔로 이틀을 묵기로 전화예약하고(형님에게 여러모로 폐를 끼친다.) 멘도사에 도착하니 형님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호텔이 있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형님 집에서 해결하고 아침은 호텔 가격에 포함되므로 호텔에서 해결하니 모든 식사가 해결됐다. 샤워를 하고 9시경에 형님 집에 도착하여 집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고 저녁초대에 참가했는데 형수님과 두 딸 (11살, 5살), 형님 이렇게 네 식구만 있다. 어머님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형님 집에 가셨다고 한다. 어머님 얼굴을 보지 못해 죄송하지만 우리로서는 행동의 제약을 조금은 벗어난 기분이다. 불고기에 된장국에 제대로 된 한국식 저녁을 배불리 먹고(밥 두 공기 뚝딱) 인터넷 검색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호텔에 돌아와 TV를 켜니 쉬리라는 한국영화를 상영해주는 것이다. 반가워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2005. 01. 11. (수요일) 멘도사 호텔
07:00 기상. 샤워하고 8시에 아침 먹고 주위 산책함. 오늘의 일과는 주위 산책과 도시 풍경 관광, 쇼핑이다. 오전에는 시내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점심때(1시 30분 이후) 상문 형님 집에서 국수를 점심으로 대접받았다. 형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 하다 보니 벌써 점심식사 시간이 끝나는 오후 4시다. 다시 시내에 보지 못한 곳의 아이쇼핑을 하고 호텔에서 좀 휴식하다보니 저녁 9시가 되어 다시 형님 집에서 저녁을 닭 도리 탕으로 대접받고 저녁상설시장에 가기위해 11시에 나와 공원에 가보니 11시 30분밖에 안됐는데 벌써 파장 분위기다. 알고 보니 주중에는 일찍 마친다고 한다. 그래서 호텔에 와서 취침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내일은 다시 호텔을 이동하는 날이다.
2005. 01. 12. (목요일) 멘도사 휴식
07:00 기상. 8시 아침식사를 하고 오늘 호텔을 옮기기로 한 날이기 때문에 짐을 내려놓고 상문형님을 기다렸다. 11시경에 형님이 와서 원래 계획되어져 있는 호텔로 짐을 옮기고 다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와인 투어가 있어 (시간은 5 시간가량, 가격은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 신청하여 두었다. 출발 시간은 14시 30분이다. 잠시 휴식 후 형님 집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대접받고 호텔로 돌아와 와인투어를 갔다. 와인투어라 해서 와인 생산 공장(농장)에 가서 와인의 숙성방법과 과정을 듣고 보고 하는 것이다. 두 곳을 갔는데 처음 간 곳에서는 대중적인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두 번째 간 곳은 고급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와인의 맛과 향이 처음간 곳과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그런데 와인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교회인데 이 교회는 마리아상을 모시고 있는데 이 마리아상은 포도 축제 때 가장 선두에 서서 축제의 축복을 내리고 그해의 포도 소득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리아상이라 한다. 이 마리아상은 스페인에서 옛날에 직접 가져온 것을 잘 보관하여 축제가 토, 일요일에 열리는데 금요일에 가두행진 할 때 사용된다고 한다. 투어를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어 잠시 휴식 후 9시경에 형님 집에 가서 그동안 대접받은 것에 대한 감사에 보답하는 마음에서 내가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그래서 멘도사에서 가장 큰 음식점에서 (뷔페식 식당) 저녁을 상문형님 가족과 함께 했다. 정말 실컷 먹고 이야기하다보니 새벽 12시 30분이다. 형님 가족을 집에 바래다 드리고 호텔에 오니 새벽 1시다. 정리하고 일기를 쓰고 나니 벌써 1시 30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겠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가 가고 말았다. 내일 저녁은 비행기를 타고 이 나라를 떠나는 날이다. 벌써 끝이 되어간다. 날짜로는 23일이 지나가 버렸다. 정말 시간은 역시 빠르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자.
2005. 01. 13(금요일) 멘도사 - 산티아고 - 리마 - LA
08:20 기상. 09시 아침식사. 오늘은 이 나라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날이다. 즐거운 추억, 나쁜 추억 모두 이제는 추억이라는 기억 저편으로 접어두고 떠나야 한다. “항상 처음과 같이”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로서 나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한다면 나에게 나쁜 결과보다는 좋은 결과가 다가온다. 이것이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가졌던 마음이고 계속해서 가져가야할 마음인 것이다.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 행동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과 행동 남을 행복하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싱그러운 멘도사의 아침공기, 나를 항상 즐겁게 밝게 해 준 도시였다. 10시에 호텔에서 상문 형님을 만나 필요한 선물을 구입하고 점심을 형님 집에서 김치두부찌게에 해삼회와 함께 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그동안의 과정 또는 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5시. 호텔에 가서 카고백을 찾아 싣고 가게에 와서 형수님에게 인사하고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 밟고 공항 세를 미화 18달러를 지불하고 수속을 마치니 벌써 출발시간이다. 형님과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메일로 나머지 인사를 대신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과정만 남아있다. 24일간의 기간이 이렇게 빨리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시간은 빠른 것이다. 다 추억으로 남을 과정이다. 비행기는 19시 20분발 비행기다. 산티아고까지는 약 40분 정도가 걸린다. 도중에 비행기에서 아콩카구아 산이 보이는데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런데 기내에서 아콩카구아 산을 보았다. 역시나 아름다운 산이다. 음료와 빵을 먹고 나니 바로 하강하여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다. 도착 20시 30분 연결 편을 타기위해 20번문을 찾아 도착하니 20시 40분. 이제부터 출발시간인 22시35분까지 약 2시간 동안 이곳 청사 내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화장실에서 잠시 얼굴을 보니 내가 멘도사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얼굴이 너무 탄 것 같다. 하기야 누가 봐줄 얼굴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람. 건강하니 괜찮다. 얼굴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LA행 란칠레 933기편을 탑승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 멘도사 에서는 상문형님가족과 우리밖에 없었는데 산티아고 공항에만 와도 이리도 우리나라 사람이 많아진다. LA에까지 편안한 비행이 됐으면 한다. LA에 12시에 도착했다. 약 13시간정도 비행하여 도착했다. 잠도 잘 잤고 리마에서 탑승한 한국인 부부 여행객과 2시간가량 이야기하다보니 편히 도착한 것 같다. 수속을 마치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이곳은 지금 아침이다. 11시 20분 출발시간까지 또다시 3시간가량 기다려야 한다. 이정도 시간은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기다림에 적응됐나. 아무튼 이제 대한항공만 타면 인천에 도착한다. 대한항공편은 KE018편이다. 역시 LA공항에는 한국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 안내방송도 한국어로 해준다. 이제는 한국에 가까워간다는 느낌이다. 아직도 태평양을 건너가야 하지만 말이다. 지금 한국 현지시간은 새벽 1시 27분경이다.
2005. 01. 14. (토요일) LA - 인천공항(비행시간 14시간)
LA에서 11시 20분에 KE018편은 출발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했다. 그런데 알래스카의 오키스틴 화산이 12일 폭발하여 그 여파로 1시간가량 늦게 도착한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비행시간이 약 12시간 정도인데 1시간이 늘어난 13시간 정도 걸린다고 승무원이 이야기한다. 도착시간을 5시간가량 남겨놓은 시점에서 아마 마지막 일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기를 쓰고 있다. 뉴스를 들어보니 한국의 톱뉴스는 떠날 때의 시기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황 교수의 문제, 사학법의 문제, 그리고 환율이 급락한 문제. 현실세계로 들어온 머리 아픈 뉴스들이다. 그리고 김정일 이가 중국을 극비에 또 방문한 문제 등등 역시 우리나라는 뉴스거리가 참 많은 나라이다. 이제는 현실이 느껴진다.
2005. 01. 15. (일요일) LA - 인천공항 - 경주
현재시간 오후 1시. 한국 현지시간이다. 마지막 기내식을 준비하는 승무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공항에는 여러분들이 나와 있을 것 같다. 멀리 인천공항이 보이고 공항에 비행기가 안전하게 안착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땅에 도착한 것이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집사람과 아이들이 나를 반긴다. 그중에도 성엽이가 아빠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서 안긴다. 차 극돌 씨와 전현진형,정보영,광우가 나와 있다. 사진을 찍고 등정을 축하하는 여러 전화 및 메일들이 들어오고 정신이 없다. 현진형님의 차에 광우는 서울로 함께 가고 우리는 차극돌 씨 차에 짐을 싣고 경주로 향했다. 내일 바로 출근을 해야 함으로 시간이 없다. 경주 집에 도착하니 16일 새벽 1시. 대충 씻고 잠을 청했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다. 나의 이번 원정도 이제 집에 도착했으므로 끝이 났다. 원정기간동안 만난 모든 사람들과 자연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같이 하길 바라며 나의 원정일기도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