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仁 박사 日 최초 상륙지 '히라도'를 아시나요?
가까운 일본, 더구나 해운계에선 이웃집이나 다름없는 JPN.
그리고 수없이 드나든 나가사키(長崎縣), 사세보(佐世保) 옆인데도
샌드페블 필자가 가보지도 듣지도 못 한 낯 선 곳이 있었다.
바로 이름하여 '히라도(ひらど/平戶)'라고 했고 제법 많이 알려져 있는 규슈(九州) 나가사키현의
인구 32,000명 남짓한 소도시로 이끼즈끼(生月島)와 다쿠시마섬(度島), 다카시마섬(高島)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였고 1550년 포르투칼 무역선이 '핀란도(Finland)'라고 쓰면서 공식 지명이 됐단다.
며칠전 '한강월드투어' 이상해대표가 히라도를 함께 동행하자고 강권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관심 가진 여행업체 40여 대표가 그쪽 코스를 상품화 하기위한 시장조사차 뜻있는 기존 여행전문
업체로 '발해투어'를 경영하는 황백현 박사가 직접 안내와 해설을 맡는다고 자랑을 했다.
초청받을 자격이 모호한 필자는 해운관료 출신 K 절친과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호를 탔다.
국제 터미널에 닿자 (주)고려훼리 최상석 사장과 여객영업팀 구건우 부장은 두 노인을 환대했다.
전장 170m, 정원 640명에 시속 27.7노트로 항해하는 19,000톤의 Camellia호는 날렵하고 깨끗했다.
다인실로 알고 갔는데 전관예우(?)라도 한듯 배정받은 2인용 선실은 편의시설을 고루 갖춘 아늑한
분위기로 친절한 종업원들 서브에 끼니마다 식사도 수준급이었고 후식 커피도 프리였다.
세계적 항만으로 발돋움한 부산항 야경을 멀리하고 초가을 정서를 무르녹이며 어둠 깃든 밤바다의
파도를 가르는 항해는 노년 여심의 설렘과 로망으로 들떼우기에 충분했다.
이튿날 후쿠오카(福岡)항 하선후 첫 관광은 동행한 황백현 박사가 최초로 발굴한 한국김씨(金氏)
비명과 1958년 피랍, 경남 웅천의 도공 거관(巨關)의 고려 가마터가 있는 목적지 히라도를 찾았다.
대항해 시대의 로망과 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히라도성의 천수각을 올라 바둑돌 처럼 즐비하게 자리한
섬들의 옹기종기한 모습도 절경에, 인구 7,000명이 사는 이키츠키시마의 일별 역시 판타직했다.
세계 최장 400m 3경간의 이키스키끼대교, 해발 100m 단애 절벽위의 백아등대도 장관으로 꼽힌단다.
발해투어 황박사가 히라도를 중점적으로 여행지로 개발한 이유는 400년대 백제 왕인(王仁) 박사의
역사적 족적과 흔적을 후세들에게 널리 알려 역사적 거울로 삼기 위함이라고 부연했다.
당시 미개국 수준 일본이 한(韓)나라의 고명한 학자를 초청하여 높은 문화를 수입하기 위함이었고
왕인은 일왕 우지노와 키이라츠코(兎道椎郞子) 태자의 스승으로도 활동했고 오경박사, 재봉녀, 직공,
야공,금공, 완공, 화공, 의사 등이 함께 건너갔다고 한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일몰을 배경으로 자동차 CF 촬영장소로 유명한 선셋 로드의 경관에 이어
무엇보다 장관은 대항해시대 무역상 가와자키가의 식수와 수령 400년을 넘은 소철나무와 명나라
왜구 왕직이 천기를 받도록 설계한 6각우물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또 '천국의 계단' 언덕에 올라 한눈에 펼쳐지는 360도 파노라마 전경은 서큐슈 경관의 압권으로
놀라웠고 일본서도 으뜸가는 가와치도우게 올렛길은 언필칭 환상적이라 완더풀이었다.
왜구의 본거지인 이곳이 중국으로 가는 배들이 바람이 불 때까지 대기하던 포구였으나
해적선이나 포르투칼 배들이 드나들자 무역항으로 번영하면서 '서쪽의 수도.라고 불리울 정도가
됐고 서양의 많은 문물이 퍼져 나갔기에 오늘날 '일본 최초'란 수식어가 붙은 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히라도 1호는 일본 1호고, 일본 1호는 동양 1호란 자긍심이 높다는 것.
우선 다도(茶道)와 선종(禪宗), 빵과 카스테라, 도자기와 담배, 페인트와 맥주 등이 그것이다.
일본 최초의 커피 등장, 서양의술 해부학, 일본 최초 성당 천문사 등의 효시가 이곳이다.
한나라와의 관련사사로는 893년 신라군이 히라도군을 공격한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있고
1223년 히라도 왜구가 김해를 약탈했고 임진왜란때 끌려온 평민들이 집단생활을 한 '코라이
마치(高麗村)', 조선도공 후예 비문, 조선 우물 흔적 등이 있어 흥미로웠다.
히라도 특급 '카이죠(海上)호텔'에서는 우테(팔)탕 및 족탕을 체험할 수 있으며 특히 노천온천은
수질이 좋기로 이름난 곳으로 온천을 크게 즐기지 않는 필자도 1박에 3회나 찾았다.
늘 여행을 다녀도 술마시는 일이 주업인 필자의 눈에는 그 많은 사적이 언제나 그렇듯 주마관산.
또 하나 황박사 아이디어가 인상적인 것은 해설을 리시버 주파수에 맞춰 들을 수 있어 편리했다.
모두가 여행사를 운영하는 투어 전문가들이라 걸죽한 유머 또한 여흥삼아 귀를 간지렵혔다.
종래는 주로 이름난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를 대상으로 하던 일본 여행을 샐러리맨들이 주말을
이용하여 고려훼리의 카멜리아호 운항 스케줄에 맞춰 왕인박사 최초 상륙지에 있는 '왕인텐만군
신사'를 비롯한 한나라와 관련된 역사의 발자취와 흔적을 더듬으며 짧은 해외여행을 즐기기에
안성마춤이란게 발해투어 영업본부 신강섭 팀장의 설명이 장사속만은 아닌 것 같았다.
첫댓글 샌드옹 님 ~ 빨강 티셔스 입은 분 맞나요?
하얀머리 염색 하시면 50대로 보이겠어요
멋져용
빨간 티셔츠 입은 분은 작년에
하늘나라로 출장을 갔답니다. 미연님!
세분 중에 가운데 왼쪽 독사진 같아요
누가 누군지 비슷해서 ....ㅎㅎㅎㅎㅎ
웃음으로 그냥 넘어 갈랍니다
아주 당당 하셔서 좋습니다 배짱이
두둑하신 기분이 들어요 ㅋㅋㅋㅋㅋㅋ
샌드옹은 재래종이라 자그맣답니다, 연지님!
일본과는 서로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아픔의 상처가 있기 때문에
우호적인 관계가 되기는 쉽지 않은데다
더욱이 일본이 세계에서 경제대국으로 잘나가니까
더 싫어져서 일본을 가서도 우리보다 선진화 된 면을 보면
마음이 편하질 않았답니다. ㅎㅎ
거기다 우리 백제 출신인 왕인박사께서
일본가요를 창시하고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아스카(飛鳥)문화의 원조가 되어
일본사회의 정치 경제와 문화 예술을 꽃피웠다고 하니
더욱 약이 오릅니다.
히라도가 왜구의 본거지였기에 외래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 최초'란 수식어가 붙은 게 많다는 글을 읽으면서
쇄국 정책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집안싸움이나
하다가 속국, 식민지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남긴 선조님들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젠 생각을 바꿔야 되겠지만
쉽지 않네요. 아무튼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하는 해외여행은
나름 의미도 있으려니와 재미도 있을 것 같군요.
올려주신 기행문 재미있게 배독하였습니다. 감사해요.
쓰다가 보니 댓글이 너무 장황하게 길어졌습니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을 만나서 저도 모르게 주절주절
나왔습니다. 이해 해주세요.
저는 그저 여행을 밥삼아 즐길 따름이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은
도외시하고 술이나 한잔하며 떠돈답니다, 思岡안숙자님!!
일본에 조카가 살아서 한달동안 여기저기
다녀보고 온천 욕탕 다 다녀 왔으나 전 정감이
가지 않더라구요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
친일잔재와 적폐청산...
반드시 해야합니다!!
위 댓글 안숙자님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소중한 것들과 늘 함께하지만,
무관심 속에 지나치고 있다는 것’,
더 늦기 전에 자연과 동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공존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Happy together~!!
소당/김태은님, 역사나 문화는 절차를 생략하지 않기 때문에
이 샌드옹은 보이는대로 보고 느끼는대로 호흡만 할 따름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