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6.20.목. 다시 쓰는 ‘殉命의 사람’ (17P)
🔥 ‘殉命의 사람’ 100
001.예수의 사람 002.聖靈의 사람 003.믿음의 사람 004.生水의 사람 005.아내의 사람
006.子女의 사람 007.아비의 사람 008.貯蓄의 사람 009.禮拜의 사람 010.感謝의 사람
011.康健의 사람 012.散策의 사람 013.運動의 사람 014.登山의 사람 015.聖軍의 사람
016.經營의 사람 017.事業의 사람 018. 55,500,312 019.侍從의 사람 020.神癒의 사람
021.祝福의 사람 022.智慧의 사람 023.知識의 사람 024.家庭의 사람 025.祈禱의 사람
026.말씀의 사람 027.說敎의 사람 028.부흥사 사람 029.集會의 사람 030.禁食의 사람
031.恩惠의 사람 032.復興의 사람 033.비전의 사람 034.寫眞의 사람 035.自由의 사람
036.牧養의 사람 037.殉敎의 사람 038.산殉敎 사람 039.殉長의 사람 040.順命의 사람
041.逐邪의 사람 042.사랑의 사람 043.溫柔의 사람 044.기쁨의 사람 045.肯定의 사람
046.십자가 사람 047.復活의 사람 048.靈權의 사람 049.人權의 사람 050.物權의 사람
051.敎會의 사람 052.使命의 사람 053.宣敎의 사람 054.傳導의 사람 055.黙想의 사람
056.黙靜의 사람 057.靈眼의 사람 058.讚頌의 사람 059.밝음의 사람 060.泰山의 사람
061.이웃의 사람 062.弟子의 사람 063.五能의 사람 064.悔心의 사람 065.方言의 사람
066.亨通의 사람 067.聖潔의 사람 068.正言의 사람 069.讀書의 사람 070.節制의 사람
071.熱情의 사람 072.섬김의 사람 073.努力의 사람 074.禮儀의 사람 075.分別의 사람
076.微笑의 사람 077.寸刻의 사람 078.稱讚의 사람 079.包容의 사람 080.電話의 사람
081.便紙의 사람 082.自然의 사람 083.執中의 사람 084.길선주 사람 085.김익두 사람
086.이용도 사람 087.이성봉 사람 088.한경직 사람 089.조용기 사람 090.김준곤 사람
091.이천석 사람 092.김삼환 사람 093.옥한흠 사람 094.하용조 사람 095.이중표 사람
096.나겸일 사람 097.김홍도 사람 098.김진홍 사람 099.윤석전 사람 100.장경동 사람
🔥 ‘殉命의 사람’ 200
101.貞節의 사람 102.정성의 사람 103.충성의 사람 104.대접의 사람 105.定時의 사람
106.용서의 사람 107.人情의 사람 108.認定의 사람 109.必言의 사람 110.理性의 사람
111.내일의 사람 112.熟眠의 사람 113.안식의 사람 114.인도의 사람 115.친절의 사람
116.유머의 사람 117.여행의 사람 118.보혈의 사람 119.공부의 사람 120.열심의 사람
121.分手의 사람 122.능력의 사람 123.예언의 사람 124.새벽의 사람 125.쉬움의 사람
126.챙김의 사람 127.행복의 사람 128.목적의 사람 129.忍耐의 사람 130.실력의 사람
131.하루의 사람 132.최선의 사람 133.공평의 사람 134.중보의 사람 135.平康의 사람
136.평화의 사람 137.헌금의 사람 138.겸손의 사람 139.소망의 사람 140.계획의 사람
141.성실의 사람 142.진실의 사람 143.순수의 사람 144.대화의 사람 145.敬聽의 사람
146.약속의 사람 147.향기의 사람 148.결단의 사람 149.광명의 사람 150.얼굴의 사람
151.거울의 사람 152.반성의 사람 153.홀로의 사람 154.근면의 사람 155.慈祥의 사람
156.격려의 사람 157.침착의 사람 158.정의의 사람 159.용기의 사람 160.遵法의 사람
161.소박의 사람 162.정직의 사람 163.음악의 사람 164.미술의 사람 165.주앞의 사람
166.삼위의 사람 167.최고의 사람 168.위탁의 사람 169.배움의 사람 170.교육의 사람
171.魂神의 사람 172.淸算의 사람 173.극복의 사람 174.성장의 사람 175.성숙의 사람
176.순수의 사람 177.安靜의 사람 178.安心의 사람 179.존대의 사람 180.헌신의 사람
181.영광의 사람 182.눈물의 사람 183.양보의 사람 184.승리의 사람 185.성공의 사람
186.신중의 사람 187.豫備의 사람 188.救援의 사람 189.善待의 사람 190.처음의 사람
191.책임의 사람 192.指導의 사람 193.놀이의 사람 194.경건의 사람 195.친근의 사람
196.自願의 사람 197.知覺의 사람 198.감동의 사람 199.동행의 사람 200.동참의 사람
🔥 ‘殉命의 사람’ 300
201.도구의 사람 202.통로의 사람 203.일념의 사람 204.유능의 사람 205.총명의 사람
206.짧음의 사람 207.영원의 사람 208.再起의 사람 209.종말의 사람 210.등불의 사람
211.소금의 사람 212.하늘의 사람 213.의리의 사람 214.비밀의 사람 215.보답의 사람
216.인연의 사람 217.화목의 사람 218.양선의 사람 219.회복의 사람 220.수용의 사람
221.자상의 사람 222.상대의 사람 223.이해의 사람 224.열림의 사람 225.여유의 사람
226.자비의 사람 227.긍휼의 사람 228.인사의 사람 229.상냥의 사람 230.미안의 사람
231.동정의 사람 232.面前의 사람 233.神靈의 사람 234.거룩의 사람 235.능률의 사람
236.문화의 사람 237.대범의 사람 238.넓음의 사람 239.깊음의 사람 240.근신의 사람
241.端正의 사람 242.풍요의 사람 243.불변의 사람 244.나눔의 사람 245.구제의 사람
246.청빈의 사람 247.청렴의 사람 248.무욕의 사람 249.검소의 사람 250.기적의 사람
251.재치의 사람 252.효도의 사람 253.우애의 사람 254.누림의 사람 255.즐김의 사람
256.敎正의 사람 257.선물의 사람 258.돌봄의 사람 259.정확의 사람 260.취미의 사람
261.소신의 사람 262.미덕의 사람 263.센스의 사람 264.신선의 사람 265.창조의 사람
266.유일의 사람 267.해결의 사람 268.필요의 사람 269.애국의 사람 270.과정의 사람
271.비움의 사람 272.숙고의 사람 273.도전의 사람 274.신사의 사람 275.예술의 사람
276.신비의 사람 277.부요의 사람 278.부자의 사람 279.맑음의 사람 280.하나의 사람
281.풍경의 사람 282.만꽃의 사람 283.호수의 사람 284.바다의 사람 285.구름의 사람
286.햇살의 사람 287.바람의 사람 288.푸름의 사람 289.노을의 사람 290.이슬의 사람
291.풀잎의 사람 292.흰눈의 사람 293.작음의 사람 294.보람의 사람 295.우리의 사람
296.환영의 사람 297.매력의 사람 298.소중의 사람 299.지킴의 사람 300.신호의 사람
🔥 ‘殉命의 사람’ 400
301.正速의 사람 302.映畫의 사람 303.飛行의 사람 304.창조의 사람 305.纖細의 사람
306.높음의 사람 307.영광의 사람 308.닮음의 사람 309.보답의 사람 310.빚짐의 사람
311.견고의 사람 312.열림의 사람 313.화평의 사람 314.悔改의 사람 315.행정의 사람
316.컴퓨터 사람 317.무릎의 사람 318.안음의 사람 319.비움의 사람 320.감동의 사람
321.구령의 사람 322.영혼의 사람 323.증인의 사람 324.은사의 사람 325.영분별 사람
326.선포의 사람 327.환상의 사람 328.투시의 사람 329.골방의 사람 330.주목의 사람
331.소멸의 사람 332.중심의 사람 333.회심의 사람 334.주목의 사람 335.계시록 사람
336.탕감의 사람 337.염광의 사람 338.어머니 사람 339.수고의 사람 340.3 6 5 사람
341.津液의 사람 342.쓰임의 사람 343.안위의 사람 344.무욕의 사람 345.청렴의 사람
346.결백의 사람 347.교육의 사람 348.교양의 사람 349.합당의 사람 350.총명의 사람
351.슬기의 사람 352.청지기 사람 353.전문의 사람 354.기술의 사람 355.유명의 사람
356.견책의 사람 357.새로움 사람 358.偉人의 사람 359.권세의 사람 360.약속의 사람
361.행함의 사람 362.正金의 사람 363.존귀의 사람 364.저명의 사람 365.신용의 사람
366.공의의 사람 367.厚德의 사람 368.공평의 사람 369.찾음의 사람 370.
🔥 2004.4.13. 배종부 목사의 일상의 斷想 6편 (14P)
전12:1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 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 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 1>. 2006.12.6. 살든지 죽든지...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건강(健康)하다 자랑하지 말라.
언제 병들지,
그리고 그 병(病)으로 죽을지 모른다.
누구나 다 홍안(紅顔)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다들 철이 없었지!
젊다고 으스대지 말라.
네 젊음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다.
몸이 자주 뻐근해 지다가,
머리칼이 빠지고,
마침내 한 올 두올 대머리가 되기 시작한다.
철이 들어 돌아보니,
인생(人生)의 고개가 절반을 넘었고,
기회는 다 지나 가 버렸구나!
돈 있다고 큰 소리 치지 말라.
바르게, 잘 번 돈인지 다시 한번 돌아 보라.
어느 사이엔가 물이 새어 나가듯
다 내 손을 떠나고 없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관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있는 가난(家難)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
출세(出世)하고 성공했다고, 까불지 말라.
그것은 네가 이룬 것이 아니라,
남이 그저 던져 준 것일 것이다.
정말 네 순수한 힘으로 이루었느냐?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이냐?
부모의 힘, 환경의 힘, 불의한 죄악의 힘, 얄팍한 너의 처세술?...
그 모든 것은 허상(虛像)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것이어야지!
그래서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병들고 아프다고, 절망하지 말라.
질병(疾病)과 싸워라.
기도하여 극복하고 이기라.
고칠 수 없는 병은 지탱(支撑)의 지혜를 배우라.
병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라.
인생이 원래 병들고, 늙고, 그리고 죽어 가는 노정(路程)임을 잊지 말라.
그래도 인생은 긍정(肯定)하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어야지!
인생의 황혼(黃昏)에 서 있는가?
저 건너 편 세상을 준비하라.
여기 이 땅의 삶을 하나, 둘 정리하자.
불변(不變)의 소망을 키우자.
황혼을 자조(自嘲)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말자.
한 인생은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다.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늙을수록 더욱 더 행복해지고,
더 소망(所望)이 두터워져야
비로소 너는 바로 산 것이다.
지속적인 극한 가난 때문에
절망(絶望)스럽고, 분노하고, 좌절되는가?
죄악과 악습(惡習)을 끊으라.
돈을 벌려 하지 말고,
삶을 바르게 열심히 살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기본적인 것들은 언제나 채워 주신다.
부디 돈과 타협하지 말고,
돈 신(神)을 섬기지 말고,
돈의 노예(奴隸)가 되지 말아라.
그릇된 부자를 부러워하지 말아라.
올바른 부자를 존경하라.
네 바르고 정직한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말아라.
가난할 때에만 누리고 받을 수 있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행복들이 있다.
네 꿈을 아직도 성취하지 못하고,
네 소명(召命)이 아직도 거름더미 속에 묻혀 있느냐?
환경(環境)이 돕지 않고,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줄이 없느냐?
네게 하나님이 아직도 침묵하시고 계시느냐?
올바른 영분별의 은혜를 구하라.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의 지혜와 지시하시는 길을 구하라.
좀 더 인내하고, 소망하라.
인내(忍耐)와 소망에 포기하는 인생이 되면 안된다.
그러면 끝이다.
말로만 하는 인내와 소망이 아닌,
피눈물 어린 인내와 소망을 배우고,
마침내 그 인내와 소망을 이루라.
하나님은 분명히 너를 보고 계신다.
다만 고난을 통과하는 네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을 의지(依支)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네 삶이 무너지고,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네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그 분의 인도(引導)하심을 받으며 살아 가야 하는 것이다.
살든지, 죽든지...
🔥 2>. 2006.4.20. 아름다운 목사의 영성(靈性)을 나에게 주옵소서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2024.6.20.목. 다시 쓰는 ‘殉命의 사람’ 중에서...
084.길선주 사람 085.김익두 사람 086.이용도 사람 087.이성봉 사람 088.한경직 사람
089.조용기 사람 090.김준곤 사람 091.이천석 사람 092.김삼환 사람 093.옥한흠 사람
094.하용조 사람 095.이중표 사람 096.나겸일 사람 097.김홍도 사람 098.김진홍 사람
099.윤석전 사람 100.장경동 사람
나의 아버지 하나님!
저 배종부 목사에게,
조용기 목사의 경영(經營),
윤석전 목사의 영성(靈性),
전광훈 목사의 카리스마,
김삼환 목사의 구수함,
장경동 목사의 유우머,
하용조 목사의 섬세함,
김진홍 목사의 여유(餘裕),
김홍도 목사의 성령(聖靈),
나겸일 목사의 기도(祈禱),
김남준 목사의 목양(牧養)의 권능을
함께 부어 주옵소서.
먼저 가신 길선주, 김익두, 이용도, 이성봉, 한경직, 이중표 목사님 들의 권능을
늘 가슴에 간직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한국교회와 한국 강산을
오능복음(五能福音)과 회심(悔心)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게 하옵소서.
지금 제 나이 49세!
내년 50세부터 30년을 불같이 사용하여 주옵소서.
불꽃같이 살다가 주님께 가게 하옵소서.
2006년 4월 20일 금식 20일째
‘殉命의 사람’
배종부 목사의 기도
큰 기도는
오랜 불 같은 연단을 먹고서야,
비로소 성취된다.
🔥 3>. 2006.3.7. 목사(牧師)의 잘 할 것 7가지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 1.목사는 입 조심을 해야 한다.
1>.설교할 때에 스스로 칼을 물고, 입 조심을 해야 한다.
설교는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설교자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설교하라.
2>.교회에 목사가 연류된 문제가 회자(膾炙)될 때에는 침묵으로 일관해야 한다. 떠도는 말을 중지시킬 사람은 목사 뿐이다.
🔥 2.목사는 健康(건강)을 조심해야 한다.
꾸준한 운동과 건강 관리가 목회의 제일 원리이다.
목사가 죽으면, 일주일 이내로 사택을 비워 주어야 한다.
한 40세의 목사는 열정적으로 목회하여 교회를 키웠다. 어느 날 아침 사모가 깨우니, 죽어 있었다. 장례식도 끝나기 전에 장로들이 와서, 사택을 비우라 했다.
그 일이 당신의 일이 되지 않기 바란다.
목회 성공하려고, 健康(건강)을 망치지 말라.
‘곽선희 목사’ 는 볼링 점수가 300점 만점이다. 국가대표의 평균 점수가 230점 대이다. 볼링은 원래 공이 하나인데, 루터 때에 9개가 되고, 지금은 10개가 되었다.
나름대로 자기의 건강을 관리하라.
육의 건강, 마음의 건강, 영의 건강이다.
🔥 3.목사는 物質(물질) 관리를 잘 해야 한다.
🔥 4.목사는 가족 관리를 잘 해야 한다.
🔥 5.목사는 사모(師母) 관리를 잘 해야 한다.
籌策(주책) 바가지인 사모가 목회를 그르치고, 목사를 매장시키고, 교인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 6.목사는 인간 관리를 잘 해야 한다.
🔥 7.목사는 재충전 관리를 잘 해야 한다.
1>.육적(肉的)으로 건강에 이상이 오면, 교인들은 숨은 죄가 있나 보다 생각한다.
2>.혼적(魂的)으로 건강에 이상이 오면, 교인은 목사의 마음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한다. 교인은 언제나 세상적, 상식적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3>.영적(靈的) 건강에 이상이 오면, 교인은 이단(異端)이라 한다.
재충전을 꾸준히 평생을 해야 한다.
나는 나의 경험대로 목회하게 될 것이다.
1.나처럼 45세 이상이 되도록 능력과 성령과 자격이 있으나, 환경적으로 길이 막혀 있는 목사를 건져, 새출발하게 하리라.
2.개척교회들을 살리고, 붙드는 일에 나의 모든 남은 생애를 바치리라.
3.목회를 능히 할 수 있는데, 현실에 묶여 있는 목사들을 구제하리라.
4.그렇게 하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성령 충만함에서 오는 영권,
사람들을 다스리고 인도할 수 있는 인권,
능히 사람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물권!
3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
🔥 4>. 2005.4.13. 고난의 터널속에서...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다시 기도의 무릎을 주시고,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 가게 하시며,
이제 한국강산을 살릴 성령의 불의 종, 悔心(회심)의 종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는 회심(悔心)해야 합니다.
“회심의 종들의 전기(傳記)를 읽으라.”
‘눈물의 종’의 은혜를 주옵소서.
종이 단에 서기만 하면, 사람들의 가슴에서 그냥 눈물이 쏟아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고난에 들어가면, 주변의 사람들이 끊어지고, 떠나가고, 사라집니다.
내 마음 하나 둘 곳이 없어집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어둡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명심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기도하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보고, 주님 만을 의지해야 하는, 할 일 없고, 갈 곳 없고, 의지할 데 없고, 붙들 것 없고, 바라 볼 곳 없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인생의 광야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누구나 이 인생의 광야에 한번 이상은 들어 가 보아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주님!
제 손에 신유의 복음, 문제해결의 복음, 축복의 복음, 은혜의 복음, 은사의 복음 5가지의 ‘五能福音(오능복음)의 능력’ 과 ‘悔心(회심)의 말씀의 권능’ 을 들려 주사, 삼천리 반도강산 곳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여, 주의 종 목사들과 청지기 장로, 권사, 집사, 성도들이 悔心(회심)하는 불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방언 통역에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필요성에 목마릅니다.
배 고픔, 자고 싶음, 눕고 싶음, 게으럼, 性慾(성욕)을 풀고 싶음......
우리의 육체의 情慾(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갈망은 그 끝이 없습니다.
요일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저는 젊은 날, 금식을 20일 이상하면서도 내 속에 性慾(성욕)이 살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이란 죽음 직전까지 살아 꿈틀대는 욕구로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 후에 저는 육체의 소욕과의 전쟁을 포기했습니다. 이건 영원히 이길 수 없는 무의미한 싸움이었습니다.
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는 길!
그 길 밖에는 없습니다.
육체와 육체의 삶을 이기는 길은 오직 성령 충만 밖에는 없습니다.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40대 젊은 목사님이 암으로 요절하셨습니다. 암에 걸린지 불과 6개여월 만에 참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 한 줌의 재로 사라졌습니다.
“기도원에 가신다더니, 오셔서 얼마 못 가 죽으셨단다. 사모와 어린 자녀가 어디 식모살이 하러 간다더라.”
어머니의 말씀이 오랫동안 귓가에 쟁쟁했습니다.
살았을 때, 아버님의 회갑에 오셔서 설교를 하시는데, 큰 누이가 설교하시는 목사님에게 아무 것도 모르고 가서는 “빨리 설교를 끝내라." 하여 허겁지겁 당황하여 설교를 끝내던, 그 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착한 40대의 젊은 목사!
시골교회의 배 고픈 목사님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가셔야 했나요?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그 때 부목사였던 나는 어렵게 10만원 상품권, 15만원 구두 티켓, 현금 10만원 금일봉을 내 손으로 직접 준비하여 드렸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신 그 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虛無(허무)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와 깨닫는 진리 하나가 있다면, 사람은 꼭 그렇게 아둥 바둥 오래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수업>,<상실수업>에서 “인생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가는 과정이다.” 라고 했는데, 정말 옳은 말입니다.
“<인생수업>이 죽음을 맞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라면, <상실수업>은 남겨질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인생수업>이 죽음 앞에서 삶의 열정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상실수업>은 죽음 뒤에 더욱 타오르게 될 삶의 열정을 불러 일으켜 주는 책이다.
감당 못할 만큼 신은 가혹하지 않다는 것,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됐을 때 느껴지는 분노와 통곡, 혹은 원망과 자존심, 그 밖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 만가지의 감정을 ‘제발 부인하지 말고, 100% 드러내 놓아라’고 저자는 부탁한다.
이는 삶의 마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상실은 ‘모든 것이 끝났다’ 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 의 증거에 다름 아니다.”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 간 것들에 대해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 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의 증거가 된다.”
그렇습니다.
짧게 살아도 주님이 오라 하시면, 그냥 다 중지하고 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정말 내세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억울함과 해답을 얻지 못하는 문제에 답이 있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났는데,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가 수십 번 나왔다.
그 날은 알고 보니 굉장히 힘들고, 좋지 않은 날이었다.
하루 종일을 형사들과 경찰들과 함께 있는 날이었다. 동생이 두 조카를 데리고 죽으러 서울로 올라 와, 내가 살리게 된 날이었다.
성령님이 이 사실을 미리 아시고, 나의 영으로 감사하게 하신 것이었다.
배목사여! 너는 늘 성령의 감동과 감화에 예민하라.
주님! 주어진 원고를 바탕으로 오직 성령으로 설교하게 하옵소서.
주님! 이렇게 하루 하루, 한 주간 한 주간, 한 달 한 달이 가서는 아니됩니다.
변화를 주옵소서.
제 길을 열어 주옵소서.
기도하는 일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을 24시간 성령님과 오로지 동행하며, 언제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아멘.”
친구 전00 목사 -“저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났는지, 아무리 이유를 생각해도 모르겠어. 오늘날 교인들의 무책임주의, 무간섭주의의 성향 만을 알 뿐이야...”
나의 교인이라야 할아버지, 할머니 몇 명 만이 앉아 있다.
오호! 주님. 동역자들을 구합니다.
장로 감, 권사 감, 안수집사 감, 기둥 감, 교사 감, 찬양 인도자 감, 지도자 감, 집사 감, 장차 리더가 될 청년들을 수 없이 보내 주옵소서.
오직 주님께만 구합니다.
동역자 없이 어찌 목회합니까?
저 혼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제 목회가 은혜로나, 성령으로나, 사람으로나, 돈으로나, 힘으로 부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돌아보니,
나는 이러한 좋은 일군들을 거느릴 리더 감이 아니었다.
아아! 너무나 답답하고 괴롭다.
내 그릇이 이것 밖에 되지 못했음을...
신순금 할머니의 넉두리:
“며느리에게 잘 보이게 해 주세요.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 내가 왜 이렇게 서러움을 당합니까?
아침도 한 끼 안먹고, 점심 때 복지관에서 주는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하루를 삽니다.”
“왜 며느리에게 미운 털이 박혔는지 몰라...”
“낙양산 십리 하에...”
“하나님 아버지!
제 서럽고, 억울하고 분한 가슴을 알아 주세요......”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 그 분도 죽고 없겠지!
한 두어 달 교회 나왔나?
이생보다 다음 세상에
더 큰 인생의 무게를 두어야 한다.
“내가 죽으면, 저 은하수 한가운데서 춤출 거예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이다.
그렇다...
가야 할 세상!
거기에 내 모든 보물을 다 쌓아야 한다.
20-30년 후면 끝날 내 인생!
아아! 인생이 이 땅 뿐이라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그러나, 진정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 데리고 목회하려니,
너무 낙심되고, 맥이 빠진다.
이 낙심의 마음을 어찌 이기리!
이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리!
2005.4.13. 박요한 장로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사업 차 출국했다.
십일조를 송금한다면서, 구좌번호를 알려 달라 하여, 불러 주었다.
하나님은 꼭 필요한 만큼 챙겨 주신다.
진은이 등록금 10만, 생활비 25만, 30만, 핸드폰 9만, 동생 528,000원...
인생에 항상 정답(正答)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불공정 게임이다.
강자가 약자를 여지없이 짓뭉개고 이기는 게임이다.
항상 예외는 없다.
약자는 언제나 진다.
어떤 이는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도, 그 삶이 힘들게 살고, 갖가지 고통과 문제에 휘말리고, 가난하고, 병에 걸리고, 불행하게 죽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허랑방탕하게 살고,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고, 악하고 게으르게 살아도 그 인생이 멋지게 장식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정욕을 누리며, 쾌락을 만끽하며 산다.
이 모든 불합리한 인생의 길들!
진정 내세(來世)가 없다면,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어찌 다 이루어지리?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목회(牧會)도 마찬가지이다.
큰 교회 목사는 잘 났고,
작은 교회, 개척교회 목사는 자격 미달(未達)이 아니다.
이 일도 불공평한 일이다.
그러나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다 계획하신 일들이다.
나름대로 최선(最善)을 다하여 살자.
해답을 다 몰라도 좋다.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보자.
그리고 결과는 훗날,
그것도 아니라면
죽은 이후에 말하자.
하나님에게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 5>. 2005.4.13. 눈물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오늘 밤 저를 붙드사,
눈물을 전하게 하옵소서.
마땅히 울어야 할 일에 울게 하시고,
울지 말아야 할 일에는
냉정해지게 하옵소서.
영적인 일에 울고,
육적인 일에
울지 않게 하옵소서.
영혼을 위하여 울고,
육체를 위하여
울지 않게 하옵소서.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남을 위해 울게 하옵소서.
사람 의지하지 말라.
값싼 동정(同情) 바라지 말라.
자기 연민(憐愍)에 빠지지 말라.
나를 진정으로 불쌍히 여길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하늘의 가치를 위하여 울고,
땅의 가치를 위하여 울지 않게 하옵소서.
눈물을 알게 하옵소서.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하옵소서.
눈물을 주옵소서.
2005.4.13.
2017.5.23. 12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는 글
2020.9.19.토. 세 번째로 15년 후에, 다시 읽어보다.
2024.7.6.토. 19년 후에 또 다시 읽어보다.
🔥 6>. 2004.8.1. 늘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간다
(96.8.7일 일기 중에서...)
‘殉命의 사람’,
‘성령님의 侍從’
배종부 목사
20대 초반의 고수미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어 달 전 전화를 했더니, 앳되고 밝은 목소리로 목사님을 한 번 찾아 뵙겠다고 하더니, 그 다음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한 열흘 정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지난 7월 31일 화장을 했다는 것이다.
병명은 ‘급성 뇌종양’ 이라고 한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젊은 새댁이었는데...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남편과는 헤어져 있고, 갓난 아기가 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픈 생각이 든다.
숱한 장례식과 죽음을 대하면서도 무감각 했었는데, 사람이 이렇게 죽어 갈 수가 있는 것일까?
정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충격을 설교하고 싶다.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이란?
고수미 씨 같은 분의 웬지 모르게 너무나 슬픈, 어이없는 쉽게 가 버린 죽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왜 건강한가?
나는 왜 죽지 않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수미 같은 분에게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비록 뒤늦었으나 부의금을 갖고 그 친정 어머니라도 한 번 찾아 가 보아야겠다.
사정을 들어 보고, 부조라도 전달하고, 당신의 따님을 기억한 목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구원 초청을 해야겠다.
고수미 씨가 나를 만나 주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비록 그녀는 갑자기 갔고, 교회에 나오지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천국에 갔을 것이다. 구원 받은 의로운 심령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 너무 너무 불쌍한 사람!
오늘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내일이면 죽어 땅에 묻힐 사람들이다.
살았을 때 잘 하고, 한 순간이나마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하고, 아끼며, 한 번이라도 더 만나며, 살아야겠다.
채호석 할아버지 장례식을 오늘 방금 치르고, 돌아 왔다.
부친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예배 드려주고, 위로해 주었었다. 가시고 나니, 좀 더 많이 찾아 뵙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러나 그 어른은 복된 삶의 길을 가신 분이다.
김금순 권사는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하다. 찾아가면 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목사를 박대한다. 그러나 나는 계속 간다.
몇 달이 되었다. 아마 내가 가지 않으면 김권사는 잊혀진 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데, 두 번을 영락기도원에 데리고 가서, 함께 기도했다.
어제는 땅에 꿇어 앉아 몸이 불편하신 분이 나를 위해 얼마나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 주시는지 감개무량했다. 나는 그 기도가 성령의 감동하심에 이끌려 하신 나의 미래에 대한 예언기도라고 생각한다.
그 기도 문구가 김권사의 知性(지성)으로는 할 수 없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배목사님 영락교회 같은 큰 교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한 양도 그 울타리를 빠져 나가지 않도록 능력을 주옵소서.”
눈물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내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면 뭔가 분명히 잡히지 않지만, 김권사님이 기도하면 나의 미래의 비전이 손이 잡힐 듯 분명해진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가서 권사님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며, 축복기도를 받아야겠다. 생각하면 어느 기도원, 어느 분에게서 그러한 축복기도를 받을 수 있으리...
김권사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 주신 은혜의 여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김권사님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아마 내년 2월 쯤, 내가 무궁교회를 떠나기 전에 천국으로 가실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