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은 담양읍·고서·금성·남·대덕·무정·대전·봉산·수북·월산·용·창평 등 11개 읍·면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담양읍은 경제·문화·관광의 중심이다. 전체 주민의 3분의 1인 1만4300여명이 몰려 산다. 그러나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나 있는 도로를 통해 언제나 쉽게 드나들 수 있어 사람을 끌어들이는 포인트다.
풍광 수려한 전남 담양. 전남 최북단에 둥지를 튼 고을이다. 병풍산·삼인산·추월산·금성산 등이 서북 쪽 경계를 에워싸고, 앞쪽으로 무등산이 바로 눈앞에 있다. 그 사이 드넓은 평야가 자리하고 있어, 예로부터 풍성하고, 풍광 좋은 곳으로 이름을 얻어왔다. 한때는 대나무 천지이기도 했다. 사람은 바로 그 자연을 닮는다고 했던가.
역사적으로 대처 못지않게 대쪽 같은 문사(文士)가 수두룩했고, 반듯한 고관대작을 줄줄이 낸 곳이다. 그들은 바로 그 자연에다 문화를 입힐 줄 알았다. 담양의 힘은 전통문화다. 그 향기는 도도하게 밀려온 바깥 문화를 주눅 들게 한다. 당연히 담양의 멋에 취하려는 인파가 밀려든다. 담양은 현대인들의 찌든 맘과 몸을 씻김하는 안식처로 다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잊혀진 대나무, 그 화려한 컴백
죽녹원여름/담양읍 향교리에 조성된 16여만㎡ 죽녹원.
담양은 대나무로 먹고 사는 죽향(竹鄕)이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선 ‘호남인들은 대를 종이같이 다듬어서 청색과 홍색 등 여러가지 물을 들여 옷상자 등으로 썼다’ ‘그 옷상자는 호남의 담양이 가장 뛰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담양의 죽세품은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명품이었고, 생필품이었다. 하지만,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플라스틱 제품이 일반화하고, 중국 ·동남아 죽세품이 밀려들어오면서 위상이 추락했다. 그러나 이런 외부 도전에 담양이 슬기롭게 응전하고 있다. 다시 대나무의 진가가 빛나고 있다.
죽녹원. 담양읍 향교리 언덕배기 16만여㎡에 울창한 대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2003년 5월 조성했다. 또 다시 “무슨 대나무냐”나고 모두들 핀잔했지만, 지금의 최형식 군수가 앞장서 ‘웰빙시대’를 겨냥했다. 이리저리 돌고도는 2.3㎞ 산책길을 냈다. 대숲 사이로 부는 바람과 스삭스삭 대잎이 스치는 소리가 분위기를 잡는다.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이 안정되는 효과가 알려지면서 죽림욕(竹林浴) 관광객들이 전국에서 들이닥쳤다. 연간 인파 120만명. 대박이었다. 연중 쉬지 않고 문을 연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을 받는다.
대나무 신산업도 다시 불길이 지펴졌다. 바구니·소쿠리 만들던 시대가 아니다. 대나무를 이용한 음료·차·비누, 댓잎가루를 넣은 각종 음식물, 죽초액과 대숯제품, 현대적 감각을 살린 부채·방석·베개 등이 불티나게 나간다.
전국제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그 숲 동굴에 가고 싶다”
관방제림/ 천연기념물인 관방제림. 400여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을 이뤄 산책길로 호평 받고 있다. 죽녹원 못지않은 명품 숲 2개가 더 있다. 죽녹원을 나와 오른쪽을 눈길을 돌리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둥지를 틀고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 담양에서 전북 순창 가는 국도 24번. 매년 전국 제일의 가로수길로 이름나 있다. 양쪽 도로변에 심은 나무가 숲으로 빽빽이 우거져 마치 동굴처럼 느껴진다. 가을엔 갈색 낙엽과 굵직한 가로수 몸통이 마치 동화 속 병정들의 열병식을 보는 듯하다.
강과 숲이 어우러진 관방제림((官防堤林). 죽림원 아래쪽 객사·남산리 일대 담양천을 따라 푸조나무·느티나무·팽나무·음나무·개서어나무·은단풍 등 177개 나무가 서있다. 조선 인조 26년(1648), 물막이를 위해 설치했다. 나무 둘레가 1~5.3m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다. 벚꽃 흐드러진 봄날의 화사함, 참매미 자지러지게 우는 여름날의 추억, 낙엽 깔린 가을날의 호사스러움, 겨울숲의 호젓함을 만끽할 수 있다.
풍류와 선비의 고장 ‘시 한수가 절로 나온다’
송강정/ 송강 정철이 당쟁으로 물러난 후 지금의 담양 창평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선조를 그리며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풀어냈다.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조선 중기·후기에 세워진 조그마한 초정(草亭) 등이 살을 붙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송순(1493~1582)이 가사문학의 길을 열었다. 담양읍에서 광주로 나가는 국도 29번 도로. 봉산면 사무소 인근이 송순의 고향. 그곳에 면앙정이 서 있다. 그 유명한 ‘면앙정가’를 지었다. 이 가사는 전북 태인 출신 정극인의 ‘상춘곡’과 함께 호남가단을 대표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고경명·기대승·임제·송강 등 걸출한 ‘면앙정 가단’을 일궈냈다.
면앙정에서 지근거리에 송강정이 있다. 송강 정철이 당쟁으로 물러난 후 지금의 담양 창평으로 내려왔다. 송강은 16살 때부터 송순·임억령·김윤제·김인후·양응정·기대승 등 당대의 대학자를 스승으로 모셨고, 김성원·고경명 등과 교유하며 살았다. 송강은 이곳에서 선조를 그리며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풀어냈다. 송강정 주위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주차장 옆에 ‘松江亭(송강정)’이라는 글씨가 암각돼 있다.
송강정 길에서 무등산 방향으로 군도 887호선을 쪽으로 달리다 광주호 끝자락에 식영정(息影亭)이 나온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곳. 시심이 절로 발동되겠다. 정철은 이곳에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바로 옆에 환벽당이 있다. 환벽당 주인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 그가 낮잠을 자다 바로 옆 연못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꾼 후 달려가보니, 정철이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옛날 화장실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이웃엔, 임란 때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취가정(醉歌亭)이 있다. 바로 옆엔 담양·무등산 자락에 쏟아진 시문을 비롯, 전국에서 모은 가사와 한국문학 서적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는 가사문학관이 섰다. 문학관 바로 옆엔 조선후기 정원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쇄원이 있다. 터널 같은 대숲 길을 통해 북쪽 토석담의 오곡문에 이르는 길이 50m 나 있다. 계곡을 사이 양쪽 언덕 3000㎡ 지역에 제월당·광풍각이 서 있다. 기묘사화 때 조광조의 죽음을 직접 본 제자 양산보가 낙향해 터를 잡았다. 시냇물이 늘 물소리를 낸다. 눈 내리는 겨울풍광은 넋을 뺀다. 보리암·금성산성·용소 ‘일급 볼거리’
용소의 봄/ 영산강의 발원지인 담양 가마골 용소. 시원하게 내리는 폭포와 봄꽃이 장관이다. 해발 731m 추월산. 담양읍에서 보면 스님이 누워 있는 모양새여서,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린다. 약초가 많아 명의들이 찾았다는 명산이다. 산 아래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여름 휴식처로 인기 만점이다. 산 중턱 울울창창한 숲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좋고, 저 산 아래 담양호와 한데 어우러져 장관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가 지었다는 보리암은 불심을 지피는 명찰이다. 바위에 얹혀있어 위태롭게 보이는 신비한 절집이다.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내 앉은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나머지 2곳은 장성 백양사, 순천 송광사다. 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의 부인 흥양 이씨가 왜군에게 쫓기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순절(殉節)한 터가 있다. 그를 기리는 비문이 바위에 새겨져 전해내려 온다. 동학혁명 때는 세상 바꾸기를 꿈꾸던 농민군들이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처절한 전투를 펼쳤다. 6·25 전후로는 ‘빨치산’의 활동 공간이 되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솟아 있는 송림·참나무·느릅나무·단풍나무가 지천이다. 봄철 산기슭에 어우러져 활짝 핀 진달래와 벚꽃을 먼발치에서 보면 꽃마차 행렬을 이룬 듯하다. 곳곳에 산대나무 군락을 볼 수 있고, ‘추월산란’도 자생한다.
영산강의 시원(始源)인 가마골 용소를 지나칠 수 없다. 용소는 마치 용이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형상을 한 4단 폭포다. 암벽에 부딪친 물살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솟구치는 모습이 발길을 잡는다. 향교·학당 등 ‘글 읽는 소리 들리는 듯’
금성산성/ 옛 성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금성산성. 바로 성 밑, 담양호의 운무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담양엔 인재가 많이 배출했다. 면앙정 송순, 송강 정철, 미암 유희춘, 제봉 고경명, 녹천 고광순, 소쇄공 양산보, 명곡 오희도, 석천 임억령, 석헌 유옥, 서하당 김성원, 하서 김인후, 고하 송진우 등 인재를 헤아릴 수 없다.
담양향교, 창평향교, 수남학구당, 수북하구당에선 아직도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창평면 용소리 상월정은 담양 근대교육의 발상지다. 춘강 고정주가 이곳에서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등을 가르쳤다.
슬로시티 창평 삼지천 마을, 타임머신 타고 ‘옛날 여행’
5월 초에 열리는 담양 최대의 축제인 대나무 축제 광경 창평면 삼지내 마을. 면소재 중심마을이다. 고재선, 고정주, 고재환 가옥 등 이름에서 보듯 고씨마을이다. 광주광역시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이곳이 아시아최초의 슬로시티다.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에서 시작됐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가롭게 거닐기,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 꿈꾸기, 기다림의 여유, 글쓰기, 명상하기 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여유를 갖자는 취지로 생긴 마을이다.
아직도 수세기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한 마을. 돌담길 사이로 고즈넉한 한옥이 한껏 품위를 낸다. 맑은 바람, 햇빛이 가득한 삼지천 마을을 돌아보자.
작고 조용한 마을 들머리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서 있다. 곧이어 독특한 형태의 토석담이 굽이굽이 이어져 운치 있는 골목길을 이룬다. 이 돌감길은 등록문화재 제265호다. 3600m.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마을답게 한가롭다. 돌담너머 보이는 싱그러운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고작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만이 ‘현대’다.
슬로푸드도 있다. 창평쌀엿이다. 엿 만드는 전통수공업이 슬로시티로 인정되는 평가요소가 됐다. 전통장류, 한과, 창평국밥이 자랑거리다. 매주 둘째 주 토요일에 놀토달팽이 시장이 열린다. 숙박시설과 체험시설이 있으며, 마을탐방을 돕는 슬로시티위원회(061-380-3807)가 있다.
가는길/ 자동차로 서울 쪽에서 내려올 경우,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담양 JC에서 빠져나와 담양 IC로 빠져 나오면 담양읍이다. 순천쪽에서 올라올때도 같은 통로로 나간다. 광주시내를 거쳐가려면, 광주교도소~국립5·18묘지 입구~담양읍 국도 29호선을 타면된다. 고속버스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담양 상·하행선이 각각 2번 다닌다. 3시간45분. 안내 전화(061)380-3141~5. 기타내용/ 먹을 거리·축제 예부터 한우 살코기를 으깨 만든 ‘담양떡갈비’가 으뜸 음식이다. 맑고 깨끗한 물과 초록을 먹고 자란 한우로 만든 생고기, 숯불 돼지고기, 대향 가득한 대통밥, 담양호에서 건져올린 매운탕 등 먹을 거리가 지천이다. 5월초에 담양 최대 규모 행사인 대나무축제가 열리고, 용면 벚꽃축제, 고서 포도축제, 창평음식축제 등이 열린다.
삼지천 마을/ 한국 최소 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에 온 관광객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돌담길을 돌고 있다.
죽녹원/ 대숲 사이로 부는 바람과 스삭스삭 대잎이 스치는 소리가 분위기를 잡는다.
담양의 대표적인 음식.죽순무침.
죽녹원의 겨울/ 담양읍 향교리에 조성된 16여만㎡ 죽녹원의 겨울 모습. 매년 120만명 이상이 휴식을 위해 찾는다. 위축된 담양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은 보물단지다.
식영정/ 송강정 길에서 무등산 방향으로 군도 887호선을 쪽으로 달리다 광주호 끝자락에 식영정(息影亭)이 나온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곳. 정철은 이곳에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소쇄원/ 조선후기 정원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쇄원. 터널 같은 대숲 길을 통해 북쪽 토석담의 오곡문에 이르는 길이 50m 나 있다. |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