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川 金千鎰(1622~1696)의 문집에 만사가 한편 실려있다.
송천 김천일선생은 임란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健齋 金千鎰(1537~1593)과는 다른사람이다. 음연 할아버지 보다 한살 많다.
송천선생은 거창 가북면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음연 할아버지는 1651년 식년시에 진사에 입격하고, 송천선생은 1652년 증광시에 진사에 입격하여 동년배로서 친분이 있음을 알수 있다. 송천문집이 거창문화원에서 2015년 국역본으로 발간하여 최근 소장 할 기회가 있었다.
음연 할아버지 송천문집 만사
진사(進士) 정회(鄭澮)
석년래방시(昔年來訪時) 옛날 방문 하였을 때에
임별재전기(臨別在前期) 이별에 임하여 기약 있었소.
금일유명격(今日幽明隔) 오늘 이승과 저승으로 기약 있었소
상수갱유수(相隨更有誰) 누가 있어 서로 따르리오.
*김천일(金千鎰)[1622~1696]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백강(伯剛), 호는 송천(松川)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언평(金彦平)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 김응복(金應福)이다.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김식(金湜)이고 아버지는 참봉(參奉) 김중기(金重器)이다.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이용(李蓉)의 딸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다. 부인은 첨정(僉正) 박덕창(朴德昌)의 딸 숙인(淑人) 순천 박씨(順天朴氏)이다.
김천일은 1622년(광해군 14)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1537~1593]과는 다른 사람이다. 동계(桐溪) 정온(鄭蘊)에게 배웠으며, 1652년(효종 3)에 30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653(효종 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전적(典籍), 직강(直講), 학유(學諭), 병조(兵曹)와 예조(禮曹)의 낭관(郞官), 전중 감찰(殿中監察), 예빈시 정(禮賓寺正), 오학관 교수(五學館敎授),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 양현고 주부(養賢庫主簿),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과 같은 내직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유곡승(幽谷丞), 자인(慈仁)·청안(淸安)·결성(結城)·함평(咸平) 현감(縣監), 풍기 군수(豊基郡守)를 역임하였다. 1696년(숙종 22년)에 7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천일의 저서로는 『송천집(松川集)』관련항목 보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