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아(自我)의 인식과 자전적 인생론 --유 형 시집 『그애들이랑』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에게 전하는 시적인 메시지 현대시의 주제별 유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자기 중심의 인생 체험에서 창출한 이미지가 주제로 투영하는 형태의 시를 많이 접할 수가 있는데 이는 시의 발상이나 상황의 설정이 자신의 삶의 궤적(軌跡)에서 다양하게 시적 진실을 탐색하는 형태의 작품을 다수 발견할 수 있어서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바로 자아(自我)의 인식이라는 시적인 범주(範疇)에서 명민(明敏)한 주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시가 자연 풍광(風光)의 서정적인 전개에서 언제부터인가 자기 중심의 생활이 골격을 형성하는 의식으로 전환하는 시적인 변화를 목도(目睹)하게 되는데 이는 시정신이나 시의 위의(威儀)의 정립에 새로운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탁월한 시인 C.P. 보들레르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인들은 자신의 체험 속에서 불망(不忘)으로 새겨져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시적인 감응(感應)과 시인의 사유(思惟)로 발흥(發興)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유 형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그애들이랑』을 일별하면서 이와 같은 평범한 상념을 먼저 상기하느냐하면 그가 작품 전체에서 중심 상황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로 그가 한 평생을 살아온 교직에 대한 천직(天職)의 정서가 그의 내면에서 흐르는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비평가 I.A.리처즈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와 시의 소재 사인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는 차이일 뿐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적인 체험에서 생성한 시의 발상이나 이미지의 추출은 어찌보면 당연한 시법(詩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난 해를 띄워놓고 사는 운동장의 모래 뒤집어 엎어놓고 보면 아름다운 모래였던 다시 뒤집으면 동상처럼 서있지 넌 두발로 뛰는 아이였어 늘 웃음을 잃지 않는 피노키오 내 긴 코를 붙잡고는 깔깔거렸었지 무슨 여자 아이가 공을 찬다고 뻥뻥 질러댔었지 한 반에 아이가 둘만 있었어 늘 헷갈렸는데 쌍둥이 같은 참 이상하게도 네가 화를 내면 걔도 화를 내고 네가 웃으면 걔도 웃는 거야 갈수록 난 화가 나는데 둘은 같은 음악을 들고 다녔어 이어폰을 서로의 귀에 한 개씩 끼고 소근 거리던 너희들은 나에겐 차가운 바람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부상당한 병사 다리를 아프게 질질 끄는 운동장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야 아무도 몰랐다고, 맞아 그랬을 거야 하지만 소식이 끊겨도 내 상처는 낫지 않아 네 흔적들이 걸린 복도의 맨 끝을 지나면 나는 동상처럼 서있지 --「나에게 쓰는 편지」전문 우선 이 작품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는 시적 화자(話者)는 오랜 교단(敎壇)에서 감지한 일상의 편린(片鱗)들을 형상화하는 중심에 서 있어서 그가 분사(噴射)하고자 하는 시적 진실이 아주 소상하게 적시되고 있다. 그는 ‘이어폰을 서로의 귀에 한 개씩 끼고 소근 거리던 너희들은 / 나에겐 차가운 바람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는데’라거나 ‘다리를 아프게 질질 끄는 / 운동장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결론적으로 ‘네 흔적들이 걸린 복도의 맨 끝을 지나면 / 나는 동상처럼 서있지’라는 어조(語調-tone)는 그의 애환(哀歡)이 가득 서려있는 그의 진정한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 형 시인의 ‘편지’는 스스로 자신의 고백적이면서도 의식이 재생하는 진정한 자전적인 정황(situation)이다. 이처럼 시적인 상황의 도입이나 설정은 대체로 자신의 생활체험에서 회상하는 이미지가 반영되고 그것이 외적(外的)인 요소가 내적(內的)인 심성과 합일할 때 시적인 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시인들은 그래서 이미지를 중시하게 되는데 C.D. 루이스가 말했듯이 이미지는 우리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시인이 묘사하는 언어의 그림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기술하거나 그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그 체험을 재생시켰을 때 그 시인의 정서에 의해 채색된 대상, 전체적으로 시의 분위기에 따라서 적절하게 기술하는 것 그것이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작품 「나의 소리」에서도 ‘너희들 소리에 귀가 멀어 / 그 살랑거리는 소리 들을 수 있다면 / 다른 소리 들리지 않아도 좋으리’라는 제자들과의 간절한 교감을 적시하면서 ‘나의 소리’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어서 ‘나 홀로 말라가는 잎 / 내 몸 부서지더라도 / 어린 잎맥이 기는 작은 연두 잎을 펴보고 싶다 / 쥐고 있는 가는 햇살 같은 // 나 나뭇가지 끝에 달린 외로운 알갱이 / 고독한 방에서 달랑거려도 / 여린 그 길을 살며시 만져보고 싶다 // 아이들 소리라면 / 엷은 비처럼 소리 없이 / 스며들고 싶다’는 여망으로 기원의 의식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그의 의식은 오로지 하나의 향방(向方)으로 집중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2. ‘나의 2월’과 별리의 약속-사랑 유 형 시인은 다시 그가 일평생을 신심(身心)을 바쳐온 교단을 떠나는 감회가 새롭다. 앞 작품 「나에게 쓰는 편지」끝 연에서 ‘네 흔적들이 걸린 복도의 맨 끝을 지나면 / 나는 동상처럼 서있지’라는 그의 흔적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상상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그는 교단의 단면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느 것이다. 까만 밤에 갇힌 밤마다 밝은 빛 그늘 속의 긴 복도를 걸었단 말이지 약속한 시간이 되면 떠난다는 계약 서버린 시계도 약속을 지키나보다 막 떠나는 뒷모습 너머로 더 밝은 횃불을 밝히고 나서더란 말이지 너희들 세계에서만 살았던 나는 그만 시들어버릴 것 같은데 길을 나서던 교문 앞의 작은 발들 앉아주면 어깨위로 선뜻 오르던 날개가 비상하는 훈련을 마친 새들은 높이 날며 무리 속으로 사라지던 걸 가자 그대들의 길을 축복하러가자 입 맞추듯 멀리 날려 보내자 나는 밤에다 가두고 너희들 멀리 날려 보내자 --「나의 2월」전문 그렇다 . 유 형 시인의 ‘2월’은 어쩐지 적막하면서 고독하다. 그것은 ‘약속한 시간이 되면 떠난다는 계약’이 적시하는 이미지는 별리(別離)라는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너희들 세계에서만 살았던 나는 / 그만 시들어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 밤마다 그의 뇌리(腦裏)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함께 했던 교직을 떠나면서 감응하는 허탈과 동시에 ‘날개가 비상하는 훈련을 마친 새들은 / 높이 날며 무리 속으로 사라지던 걸 / 가자 그대들의 길을 축복하러가자’라는 어조로 새로운 정감이 발흥하는 순정적 메시지가 흡인(吸引)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심경을 더욱 구체화한 작품 「퇴직」에서 ‘다 타버린 / 흰머리가 들켜버려서 교실을 도망 나왔다 // 높은 등불을 달고 공부를 하는 곳 / 뒤꿈치를 들고 다가가 탁 소리를 내면서 사랑했었다 / 꿈을 꾸다 딱 걸리면 / 한창 꿈꿀 나이에 꿈을 꾼다고 한 소리 날렸다 // 떠나버려야 한다 / 꺼벙한 얼굴로 30년이나 걸었던 긴 복도를 지나 / 짝사랑만 남겨놓고 어디론지 떠나야한다 / 다리가 흔들려서 걸을 수가 없지만 / 가버리면 잊힐 것이다 /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 텅 빈 교정만 남아 울고 있을 것이다 / 동그란 얼굴들이 웃고 있어서 / 끝도 없이 울고 있을 것이다’라는 진솔한 시적 진실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분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적 메시지는 그가 봉직한 교육계에서 생성하는 정감이 형상화하고 거기에서 인생의 진실로 승화하는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이 어느 시점에서 어떤 형태로 영위되었느냐 혹은 영되고 있느냐 하는 인생의 문제이거나 인생 철학의 심저(心底)에 까지 상관하는 오묘(奧妙)한 영역을 포함시키는 시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시적으로 탐색하는 인생론의 지향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성에서 창출하는 체험의 중심에서 인간이 간직한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원형(原形)들이 회상을 통해서 재생하는 다양한 경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유 형 시인도 이러한 정감이 작품으로 탐구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언어나 소재가 사치스럽다거나 난해하지 않다. 그는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사유에서 그가 지향하는 시적 진실의 구명(究明)을 위하여 스토리를 전개하거나 결론으로 유로하고 있다. 그는 ‘교무실을 들락거린다 / 도둑질 거리를 찾는다 / 선생님 마음을 훔치고 싶은 게다 // 까치발로 창을 기웃거린다 / 누구를 기다릴까 / 선생님 사랑을 기다리는 게다(「10분짜리 3년 사랑」중에서)’와 같은 사제(師弟) 간의 사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제자 사랑은 아주 보편적인 설정과 언어로 함축하고 있다. 아득한 별들의 이야기를 꿈으로 속아내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면 눈(目)꽃들이 버릇처럼 일어나 빛의 날개를 따라 꼬박 하루를 들쳐댄다 종일 빛을 따라 일렁이는 푸른 풀들의 춤 까만 망막의 가녀린 얼굴들이 하나씩 지나간다 별밤과 해낮을 종횡무진으로 달려서 밤마다 별빛으로 집을 짓고 햇볕 따가운 낮에는 땀을 흘려 지혜를 배운다 지은 우리들의 집엔 별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어느 날은 수백 마리의 새가 집을 통째로 지상으로 물고 내려왔다 우리는 꽃을 꽂아 울타리를 만들고 향기를 심었다 날개 돋치듯 꿈을 꾸고 있어서 더 빛이 나고 있었다 하늘을 항해하는 영혼의 배였으리라 흰 구름처럼 날마다 뜨고 싶어 들썩거리고 어느 날은 바람타고 휙 날아갈 거야 멀리멀리 까만 밤볕이 내려쬐이는 동안 지상을 밝히는 별이 되어 돌아올 거야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눈썹 너머로 보이는 반짝이는 별들을 쫒고 있었지 환한 달밤에 꿈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던 거야 그 애들 한 장씩 쌓이면서 시가 되었던 거야 --「그애들이랑」전문 이 시집의 표제시이다. ‘그애들이랑’이라는 제재에가 말해주듯이 제자와의 애틋한 사랑의 언어가 공간을 흡인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밤마다 별빛으로 집을 짓고 햇볕 따가운 낮에는 땀을 흘려 지혜를 배운다’거나 ‘우리는 꽃을 꽂아 울타리를 만들고 향기를 심었다’는 어조는 그가 함축하는 제자 사랑의 언어가 더욱 아름다운 정경(情景)을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애들’에게서 교감하는 것은 ‘종일 빛을 따라 일렁이는 푸른 풀들의 춤’과 ‘하늘을 항해하는 영혼의 배’ 그리고 ‘지상을 밝히는 별’이다. 그것인 바로 ‘그애들’과 항상 동행하며 동숙(同宿)하는 ‘풀’, ‘배’, ‘별’ 그리고 ‘새’라는 사물로 의인화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마지막 연에서 적시했듯이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 눈썹 너머로 보이는 반짝이는 별들을 쫒고 있었지 / 환한 달밤에 꿈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던 거야 / 그 애들 한 장씩 쌓이면서 시가 되었던 거야’라는 그의 사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어조로 명징(明澄)하게 남아 있다. 그가 이 시집 ‘서언-시집 그애들이랑을 내면서’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평생 정에 굶주리며 살아왔다. 정의 갈구가 교직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는데 그것이 학생들에 대한 짝사랑이었다. 그들에 대한 내 손짓으로 시를 썼다.’는 유 형 시인의 진솔한 고백처럼 그는 학생들과의 짝사랑이 이처럼 좋은 작품으로 창작되었던 것이다. 다시 그는 ‘주위에는 나비가 날아다녔고 사방으로 꽃이 폈다. 사랑하는 아이들 숲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늦은 저녁은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생들의 공부방을 기웃거렸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홀딱 빠졌고 ‘사랑한다’는 요즘 흔해빠진 말 한 마디에 혼절을 해버렸다. 누가 날 부르면 듣지를 못했다. 그네들 소리만 들렸다. 시와 사랑의 시너지! 이 상승 기류에 마음껏 날고 있었다. 평생의 교직생활이 이렇게 마감되어서 행복하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고 싶다. ’고 절규하면서 ‘이 시들을 그들에게 보낸다. 잘 가거라 내 아이들아, 내 인생아.’라고 감동어린 심정으로 이 시집 발간의 의미를 투영하고 있다. 3. 사랑의 원류-인생적 징표 유 형 시인에게서 다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생 전체를 교직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어쩌면 이때가 내 인생에서 ‘죽어도 한이 없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누가 뭐래도 웃음이 나왔다. 하루하루 눈뜨는 기쁨으로 출근해서 하루 종일 웃다가 퇴근했다. 하루 서너 시간 수면을 취하고도 생기가 넘쳤다. 지천으로 사랑했다.’는 그의 심적인 내면에 피어나는 행복감의 활화산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사랑의 징표로써 영원히 그의 인생적 원류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3월은 파래지는 신입생들을 따뜻이 잡아줘야 한다 그래서 화단으로 봄바람이 미리 날아다니는 거지 머리 디밀고 올라오는 아이들 모두 꿈을 꾸고 있어서 꿈을 찾아 3월이 같이 길을 나선거지 아름다운 책상머리에 앉다보면 하늘처럼 잘 자라리라 다리 쭉쭉 눌러 펴주면 늘씬한 생각들 키가 커겠지 말갛게 쳐다보는 3월의 학생들 어느새 말들이 많아져 교실 가득한 소리 쨍쨍 울린다 --「3월의 교정」전문 여기에서는 유 형 시인이 ‘3월 신입생’들에 대한 사랑의 환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3월 입학을 맞이하여 그들의 꿈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머리 디밀고 올라오는 아이들 모두 꿈을 꾸고 있어서 / 꿈을 찾아 3월이 같이 길을 나선거지’. 그렇다. 그들은 ‘다리 쭉쭉 눌러 펴주면 늘씬한 생각들 키가 커겠지’라는 새로운 희망과 인생의 진로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처럼 ‘입학식’과 ‘신입생’에 관한 작품들이 그의 의식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어린 새 교복은 설레고 / 커서 헐렁한 학교는 선생님과 맞춰가야지(「입학식」중에서)’라는 조언과 함께 ‘어떻게 공부할 건데? / 언니들처럼 할 건데요(「신입생 1」중에서)’라는 실질적인 어조로 신입생을 계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가 생기는 걸 용서하지 않는 밤 머릿속 빈살 채우려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하고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잡으려 365일 가림막 안에서 날마다 우리는 손을 뻗는다 정상의 고요한 소리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 내 몸에 물이 졸졸졸 흘러 쉬지 않았으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야무지게 눌러가며 밤마다 당기는 거울에서 밝게 비쳐오는 소리를 듣는다 --「고3의 밤」전문 이 작품에서는 앞의 작품과는 대칭을 이룬다. 입학과 졸업을 앞둔 고3의 상응하는 이미지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그들에게서는 작품에 표현된 내용 그대로 안도의 기원을 희구(希求)하는 어조가 발현됨으로써 그들이 나아갈 장래를 위해서 현재 시점에서 일렁이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머릿속 빈살 채우려’ 또는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잡으려 / 365일 가림막 안에서 / 날마다 우리는 손을 뻗는다’는 조바심에 젖어있는 우리의 입시라는 현실적인 고뇌가 현현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동정(同情)의 시정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정상의 고요한 소리 /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라는 기원의식이 가슴 가득 넘치다가 결론적으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야무지게 눌러가며 / 밤마다 당기는 거울에서 / 밝게 비쳐오는 소리를 듣는다’는 희망이 성취되는 정황에서 우리들은 안도의 공감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작품 「고3의 소낙비」에서는 ‘비라고 했다가 천둥이라고 했다가 / 후드득 물도토리 떨어진다 / 내 간 떨어진다 // 느닷없이 벼락 치는 소리 / 더 컴컴해지고 더 센 바람이 분다 / 가지 부러지게 생겼다 // 여름 내내 알불로 익히고 익힌 / 내 도토리 꼭 껴안고 / 누가 좀 말려 주면 안 되나요 / 간절하게 해를 그린다’는 고3의 아찔한 조바심은 누구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지나간 학창시절의 ‘소낙비’ 같은 애환이 서려 있다. 현대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자신의 생애를 투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시가 종전의 리듬(운율성)을 중시했다면 요즘은 그 회화성(繪畫性)의 이미지를 고도의 표현기법으로 내세운다. 그것은 시가 이미지를 표현의 본질로 하고 있어서 이 이미지(心象)는 언어의 그림으로서 모든 작품 곳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들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누구나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을 회상한다거나 미래의 어떤 아름답고 무서운 일을 꿈꾼다거나 이러한 일은 모두가 상상활동이다. 우리 시인들의 상상력은 대단히 강하다. 시를 쓰는 하나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상이나 회상은 모두 과거에 체험된 그 어떤 것이 동기가 되는데 시는 그것들의 기능을 살리고 언어의 감촉으로 심상적인 세계, 바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주제와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체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매개의 작용은 우선 우리의 신체의 기능인 오관(五官)에 의해서 오감(五感)으로 빠르게 연결되어 어떤 하나의 상(像-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중에서고 시각(視覺), 청각(聽覺) 등 우리 신체의 다섯가지 기능이 총체적으로 생성하는 그림이 이미지로 창출한는 시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4. 현장의 생생한 ‘본 대로’의 시점 유 형 시인은 마지막으로 그가 ‘본 대로’라는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우리들의 지각활동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이 시각에 의존하고 있어서 시각적 이미지(visual image)는 표현이나 주제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능을 맡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는 그림으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더구나 현대시가 사물만이 아니라 의식이나 감정 그리고 심리적인 작용까지도 그 모습을 나타내기를 희망하고 있다면 더욱 좋은 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는 시원한 바람도 젖는 비도 없어서 에어컨 바람으로 차갑게 익혀가다 보면 학생들 바삭거려 열 오르는 감기와 생리불순이 유행한다 거칠한 피부에는 상품성 왁스칠을 한창 한다 학생도 반질거리고 학부모도 반질거리고 교문도 반질거려 아무리 눈을 감아 봐도 미끄러워 서로 밀어내고 있는 것 마음 가는대로 뛰어다니는 운동장은 온데간데없고 몸에 맞지 않는 교복에 얌전하게 순종하는 교실만 남아 못된 냄새를 가리려 방향제로 칠판을 과대 포장한다 강제로 밀어 넣는 마른공기에 중독되도록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키지도 않으면서 무슨 중독검사, 무슨 정서검사질만 오질 나서 너는 너대로 가버리는, 날이 새지 않는 길고 추운 밤 쉼표도 없는 겨울밤을 꼬박이 걸어가다 보면 언제 녹을지 모르는 표백제표 눈이 뿌려진다 --「본 대로」전문 현대시는 의미 전달이 아닌 구체성의 표상을 그 본질로 하고 있어서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새겨진 상(像)으로 영감(靈感)으로 보존 유지하는 것이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전달을 통한 감동에 대해 이 감동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이미지 시학(詩學)이라고 할 수 있다. 선(線)과 색(色)의 조화라면 시는 언어가 매체이고 이 때문에 언어로 구상하고 채색하며 조화를 창출하는 언어구도가 되는 것이다. 위의 작품에서는 유 형 시인이 ‘본 대로’ 묘사한 그림이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거기에도 ‘바삭거려’라는 청각과 ‘방향제’라는 후각(嗅覺) 그리고 ‘추운 밤’이라는 촉각(觸覺)의 이미지까지 포괄하고 있어서 시의 구성이나 구도에서 적절한 이미지를 공감각화(共感覺化-imagery)하는 시법을 활용하고 있어서 작품의 활기를 높이는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야(視野)에는 다양한 언어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학교’와 ‘학생’, ‘학부모’, ‘교문’, ‘운동장’, ‘교실’, ‘교복’ 그리고 ‘칠판’ 등에게 착목(着目)되고 있어서 그는 직접 ‘본 대로’에서 그의 심성은 복합적으로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거기에서 획득하는 이미지는 바로 그의 관념에서 다변적인 형태의 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의 대미(大尾)를 주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바로 ‘너는 너대로 가버리는, 날이 새지 않는 길고 추운 밤 / 쉼표도 없는 겨울밤을 꼬박이 걸어가다 보면 / 언제 녹을지 모르는 표백제표 눈이 뿌려진다’는 허망과 일탈(逸脫)의 상념이 그의 뇌리에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 「눈이 쌓이네」에서도 ‘눈이 쌓이네 /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 / 새들이 발을 걸던 가지에도 / 별 발자국들 남은 운동장에도 / 선생님하며 부르던 허공에도 / 하얗게 덮으려고 / 밤새 눈이 내리나보네’라는 설정과 전개 그리고 이미지가 ‘별 발자국들 남은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허공’의 연결이 ‘밤새 눈이 내’려서 ‘하얗게 덮으려’는 청순한 그림이 바로 그의 진정한 시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살펴본 그의 시집 『그애들이랑』의 시법은 그의 순정미가 넘치는 자전적인 인생론에 대한 순수한 정감이 형상화는 유 형의 시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자아 인식은 이러한 인생의 체험에서 승화하는 생활철학의 한 면모를 들여다보는 듯 해서 그의 순진한 가치관의 결집이 그의 시로 창조된 점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의 말대로 ‘시의 의미의 주된 효용은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서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데 있다’는 말과 하이데거가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버리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같은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뒤바뀐 것으로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이다’라는 명언을 깊게 새겨 둘 필요가 있으리라.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