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최근 5년 동안 매년 1만 명 이상의 다문화 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2022년에는 다문화 학생이 16만 명을 초과하여 전체 학생 중 3% 정도를 차지하게 되었다(교육부, 2023).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저출산과 이주 배경 학생의 비율 증가,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앞으로 많은 학교가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보이게 되리라 예측된다.
다문화교육은 2006년 이후 학교교육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어 교육 지원, 다문화 가정 부모 지원, 교사 교육 등 다문화교육과 관련된 정책과 조치가 교육 전반에 걸쳐 실행되고 있으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표현을 삭제하는 등 다문화교육과 관련된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교육과정에서도 다문화교육은 범교과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제시되었으며, 다문화교육의 내용이 개별 교과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김한길, 소경희, 2018).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혐오와 인종주의적 정당화가 이어지고 있다(김범선, 조영한, 2021).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특정 집단과 구성원을 지칭하는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논의가 제시되면서, 경기도교육청은 ‘다문화가정 학생’이 다소 차별적 표현으로 사용된다고 지적하며 ‘이주배경학생‘이라는 용어를 병기해서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경기도교육청, 2023). 다문화교육이 꾸준히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증가 현상은 다양성이 증대되는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재 시행되는 학교 다문화교육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다양성이 증가하는 시대에서 다문화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 두 모습의 다문화교육: 교육복지적 다문화교육, 이벤트적 다문화교육
1. A초등학교의 다문화교육
경기도 C시에 있는 A초등학교는 다른 문화의 배경을 가진 학생이 전체 학생의 80% 이상으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자리 잡은 학교이다. A초등학교의 학생들은 국제결혼 가정의 학생, 중도입국학생, 외국인 근로자 가정의 학생, 불법체류자 가정의 학생, 북한이탈주민가정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며, 이에 학교에서는 이들의 학적 등록부터 언어교육, 한국어가 어려운 부모를 위한 안내장 번역 등 복지적 측면에서의 다문화교육 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된 A초등학교는 다문화정책학교로서 다문화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예산을 받고 있다. 교내에 다문화교육과 관련된 협의실이 있고 다문화언어강사들과 다문화교육 관련 교재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교육과정도 다문화 배경 학생들에 맞추어 재구성하였다. 또한, 학부모들과의 소통이 언어 및 가정 배경 등의 문제로 어렵기에 다문화 언어강사 및 교육청 및 연계 기관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언어로 가정통신문을 배부하고, 통역과 같은 지원을 통해 학부모 및 가정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한국어가 어려운 학생이 많아 교사들은 한국어교육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 중 한국어 습득 능력이 낮은 학생들은 다문화특별학급(다문화예비학교)으로 가서 일반 수업에 참여하는 대신 한국어 기본 의사소통능력과 학습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배경과 관련된 언어와 한국어를 하는 이중언어 구사자이기에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도 제공되나 정규 수업 시간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2. B초등학교의 다문화교육
A학교와 같은 경기도 C시에 위치한 B학교는 혁신학교이다. 최근 주변 택지개발이 이루어진 이 지역은 다른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학생이 많지 않다. B학교의 다문화교육 담당자는 다른 업무와 더불어 다문화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다문화 학생 조사와 교육청에서 오는 공문들을 다른 교사들에게 전달하는 정도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다문화교육과 관련하여 학생들은 1년에 두 시간 정도의 다문화인식개선 수업으로 다른 나라의 옷 입어보기, 음식 먹어보기와 같은 체험 수업을 받게 된다. 또한 상호문화교육주간이나 교육과정 내 다문화교육 내용과 관련하여 일회성의 다문화감수성 교육이 진행된다.
위에서 본 두 학교의 다문화교육의 차이는 학교를 구성하는 다문화 배경 학생의 밀집 정도에 따른 일반적인 초등학교의 다문화교육의 현황이다. 물론 A초등학교에서도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교육이 이루어지고, B초등학교에서도 한국어가 어려운 다문화 배경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교육의 대상자가 다른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학생이 다수인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다수인지에 따라 다문화교육의 내용과 비중이 크게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정리하면, 다문화 배경 학생이 많은 A초등학교의 다문화교육은 이들을 학습 및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복지적 측면의 다문화교육으로 운영이 된다. 특히 다문화 배경 학생들이 많은 지역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교육복지지원사업이 다문화교육과 중첩되어 운영되고 있다(김명희, 김경주, 서나래, 2022). 또한, 일반적으로 다문화 배경 학생들은 한국어 능력의 문제 혹은 이주배경 가정의 문제 등으로 학습에 대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다문화교육 프로그램은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한국 문화 체험 같은 한국 생활 적응이나, 대학생 멘토링 및 징검다리 과정 같은 한국어 습득에 필요한 기초학습을 지원하는 것들이 된다.
반면 B초등학교는 주로 비 다문화 학생들로 이루어진 전체 학교 구성원의 문화적 감수성 함양에 다문화교육의 목표를 두고 이벤트성 다문화교육이 진행된다. 이러한 일회성 사업들은 보통 다문화 강사를 초청하여 진행되는 다른 나라의 옷 입어보기, 다른 나라 음식 만들기 등이나 담임교사가 주가 되어 교육과정에 제시된 다문화 학습 등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이러한 다문화교육이 하나의 이벤트성으로 넘어가는 이유는 첫째로 교사들이 다문화교육의 대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으로만 인식하고 있기에 다문화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또한, 다문화 중점학교가 아닌 이상, 다문화교육에 대한 예산이 거의 없으며, 따라서 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의 실천은 교사 중심의 설명식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다문화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및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임선일 외, 2019).
다문화교육은 모든 학습자가 자신이 가진 배경과 관계없이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본질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Banks, 2008).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문화교육은 다문화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구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김동진, 이슬기, 2021; Lee, So, & Park, 2023). 특히, 교육청과 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주가 되는 것은 A초등학교와 같이 다양한 문화적·인종적 배경을 가진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의 다문화 배경 학생들만을 위한 다문화교육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다문화교육의 차이는 자칫하면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혐오로 인식될 수 있다. 즉, 다문화교육 대상자를 특정하여 구분하는 행위는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는 편견과 차별의 원인이 되며, ’다문화‘의 이름으로 ’그들‘을 ’우리‘로부터 분리하는 인종주의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한희정, 2021).
한편으로 다문화교육이 다문화 배경 학생들에 대한 지원으로만 인식됨에 따라, 다문화 배경 학생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나 우대가 기존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지가 제기되기도 한다. 다문화 배경 학생에 대한 지원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지만, 비다문화 학생들은 오히려 다문화 배경 학생들이 얻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차별에 대한 불만은 다문화 배경 학생들에 대한 혐오나 비방으로 이어지게 된다(김범선, 조영한, 2021).
|| 모두를 위한 다문화교육으로의 변화
다문화교육이 한국 교육계에서 시행된 지 15년 이상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다문화에 대한 편향적 태도가 존재한다. 다문화교육이 지향하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포용에도 불구하고, 혐오와 차별이 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겨져 있는가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우리나라 다문화교육의 문제에도 원인이 있다. 즉, 모든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닌 다문화 배경 학생의 언어 학습을 통해 그들을 우리 문화에 통합시키기 위한 다문화교육은 사회에 차별을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Jang, 2023). 이런 맥락에서 Kim(2020)은 백인문화의 특권(Whiteness)이 미국의 다문화교육이 마주한 장애물이었다면, ‘한국인다움’(Koreaness)은 한국의 다문화교육이 마주한 문제라고 제시하면서, 한국의 다문화교육이 타자와 공존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변혁적 다문화 시민성 교육(transformative multicultural citizenship education)으로 변화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다문화교육은 학생의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을 포용하는 변혁적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앞으로의 다문화교육은 인종주의나 차별을 넘어 모든 학생이 주체가 되는 세계시민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국가라는 틀을 넘어 세계 공동체의 관점에서 세계와 나의 연결성을 이해함으로 현재의 단편적인 인종주의적 관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김혜영, 류영휘, 2020). 다문화교육은 기존의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이 아닌, 세계시민적 연대를 가지고 변화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김진희, 2022), 이를 통해 서로 공존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이 되기를 바란다.
- 글 : 문정민(소속 : 시흥초등학교 교사)
- 출처 : 교육정책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