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필마 단기로 풍차를 향해 돌격을 했다는 라만챠의 기사 돈키호테를 실제로 봤다.
신림동과 봉천동을 이어주는 은천길에서...
사실 이 사람을 어제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정면에서 마주 본 것은 처음이다. 비록 옆에서 곁눈질로 살짝 보았었지만 너무 강한 인상을 풍겨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의 평에 상관없이 오직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
아무리 무섭고 험난한 도전이 눈앞에 있어도 결코 굴하지 않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50cc 스쿠터를 타고 도로를 역주행하면서도 앞에 차가 달려들어도 끄떡도 하지 않는 우직한 할배였다.
4차선인 은천길에서 내 차선으로 진행하는 중에
나는 저 멀리 앞쪽에서 무언가 아주 작은 것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경악스런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신호 대기가 걸리고
그는 내 차의 10m 앞 정지선에 서서 당당하게 나를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혹시 내가 잘못된 차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둘러 확인해봤지만
나는 제 차선에 있었고 그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저 사람이 왜 저러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답이 안나와 고민하던 중에
순간 머릿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라만챠의 기사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다.
이유는 무슨 아무 이유 없는 거다. 그냥 그러고 싶은 거지...
절대 길을 비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강인한 눈동자...
전장에서 보낸 세월을 보여주는 움푹 팬 주름과 구릿빛 피부....
이 용맹한 기사는 내게 결투를 신청하고 있는 거다.
양쪽의 말이 투레질(엔진소리)을 하고
전장의 함성(운전자들의 원성)이 하늘 높이 울릴때
그는 장갑을 벗어던져 결투를 신청하는 대신 길에 침을 뱉어 내게 일기토를 제안했다.
이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나 신림동의 기사 돈 할배탱이는
순결한 레이디이자
신림동 원할머니 보쌈집에서 일하신 김씨 할머니의 영예를 위해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
“나 봉천동의 기사 비해믈린 백곰탱이는
성절이 개떡 같아 순결할 수밖에 없고
학창시절 껌 좀 씹었으며
엄청난 연체료를 부과하여 무협지 애독 노총각들의 심금을 울린
봉천동 모 비디오방의 최씨 아가씨의 영예를 위해 그대의 결투를 받아들이겠다. “
잠시의 긴장이 흐르고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그는 애마 로시난테를 몰고 내게 돌진해왔다.
그의 주저없는 돌진에 기가 죽은 나는 투레질하며 야성을 뽐내며 달리고 싶은 토숙이를 달래며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주행을 멈추지 않고 내 차와 내 오른쪽에 있는 차 사이를 유유히 지나며
별 시덥잖은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끗 보고는 그냥 스쿠터를 몰고 달렸다.
한 달은 깍지 않은 것 같은 긴 수염을 휘날리며
옆 차선에 있던 기사의 분노에 찬 욕설은 귓등으로 들으면서
콧방귀를 뀌고 그대로 역주행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왜 그냥 멈췄을까 생각해보니
저번에 최씨 아가씨가 연체료를 500원을 더 받은 것도 같고
처음 봤을 때 마을버스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던 그의 당당함에 기가 죽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 마을버스가 갑자기 정지하는 바람에 승객들이 넘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용맹한 신림동의 기사 돈 할배탱이
제발 다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 눈이 뚱그래졌다 인상을 써 댔다가 다시 풀 죽는 모습의 백곰님이 연상됩니다. 꿀꿀했는데 이 글 보고 꺽꺽 웃었습니다.
그게 웃기는 포인트가 아니란 말입니다. 왜 그런 요상한 상상을 하세요?TT
백곰님,,, 마치 소설의 한 장면 같사옵니다. 그나저나 토돌이 모시나요?
허걱... 혹시 토돌 토숙 가족이신가요? 언제 한번 술한잔 거하게 마시고 음주운전이나 함께....^^
leslie님 클토에 답글 남기신 것 잘 봤습니다. 대선배시더군요. 잘 좀 지도해주세요.^^
저도 클토에 답글 남겼어요. ㅎㅎㅎ 두 카페를 오락가락하니 좀 묘한 기분입니다.
토돌이가 뭐래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멀뚱멀뚱...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 백곰님 대신하여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토돌이라 함은 GM대우에서 나오는 자동차로 얼마 전에 서태지를 광고모델로 했으나 별로 재미를 못 봤던... 브랜드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차 이름이 TOSCA라서 동호인들 끼리는 토돌이, 토순이, 토숙이 뭐 이런 식으로 부른답니다.^^
아... 그렇군요.
헉 이젠 소설 창작까지 넘 보실려고요??? 욕심 좀 그만 부리삼... ㅋㅋ // 백곰님에게도 이런 글 솜씨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오... // 근데 ~~ 일본은 잘 다녀 왔나요??? 쿄쿄~~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솔직히 요새 오토바이들 무법운전이 좀 쩔죠...
그 할배는 최소한 40년은 그런식으로 운전했던 것 같던데요?^6
ㅡ,.ㅡ 쩝...... 제목 보고는 소춘 님 얘긴줄 알았다는....
아마 그래서 소춘님은 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 영감님 말고 다른 분들은 양호하신 것 같던데요?^^
헛~~ㅎㅎㅎㅎㅎㅎㅎㅎ 모 비디오방 아가씨 성이 최씨인걸 어찌 알았데요? 무더운 날씨에 기분까지 꿀했는데,, 몸개그 말고 글솜씨로도 재주를 부리십니다 그려~~굿입니다~굿~베리 굿~
비디오방/책방 레이디들 신상명세는 당연히 다 꿰고 있습니다. ㅋㅋ
"신림동 원할머니 보쌈집에서 일하신 김씨 할머니의 영예를 위해" 이 부분에서 피식~~
역쉬 필립흉의 공력을 못 따라간다는...
크윽~! 저는 라만차의 돈키호테 연극 관람 후기인 줄 알았어요. 백곰님의 필력을 오늘에야 제대로 감상했네요.
저랑 연극 관람은 좀 발란스가 안 맞죠.^^
덧글까지 다 읽고도 무슨 얘긴지 파악 못한 띨띨한 소춘...
그냥 찔리신다고 고백하시죠.
제 동생 돈키호테는 오래 전에 죽었고 저는 요즘 외출을 삼가고 있는데 어째서 신림동에서 제 흉내를 내는 영감탱이가 활보하고 있는지 원...
그러고보니 야한님을 조금 닮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네의 유명한 모 총각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무협지 한 질은 그냥 서비스로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고나.
그쵸? 요즘 책방 레이디들 좀 너무합니다.
실제 상황을 상상하니 상당히 심각한데 이렇게 재밌게 쓰신 백곰님, 탈을 벗으신건가요? 이런 글솜씨가 있는걸 이제껏 몰랐어요.^^
심각하다기 보다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앞에서 달려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