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자기주장의지가 자꾸만 발동하려 합니다.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한 것인 양 자랑질을 하고 싶어합니다.
주여,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감추어주시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런 나를 알아주기 원하는 자기 의를 박살내 주소서.
이것이 나의 실존이오니 환난과 곤고의 증상이 있는 사망으로 이끌어가는 죄의 세력에 지배당하지 않기 원하나이다.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로 나를 보호하소서.
내 영에 주의 성령을 부으사 오늘도 주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주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넘어지오니 주의 의로운 오른 팔로 나를 붙잡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1:1-17
제목 : 주의 언약을 이루시는 손길은 신실하십니다.
1.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입니다.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습니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습니다.
4. 람은 아마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습니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습니다.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러므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끌려간 때까지 14대요, 또한 바벨론으로 끌려간 때부터 그리스도가 태어난 때까지 14대입니다.
* 나의 묵상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야기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또한 다윗의 자손임을 먼저 증거하고 있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 그리고 다윗 언약과 연관이 있으며 그 언약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먼저 창 12:1-3, 그리고 창 15:5-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다.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는 아브라함을 세워 큰 민족을 이루고, 또한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8-9절에서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갈 3:8-9)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 말씀은 창 12:3절의 말씀이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한 복음이며 이 복음을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 즉 이방인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방인들이 받을 복은 다름 아니라 복음을 통한 복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데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이는 창 15:5-6절에서 약속한 자손(씨)을 말한다.
(창 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은 갈 3:16절에서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증거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약속된 씨이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오실 그리스도를 마치 오신 것처럼 멀리서 계시로 보고 환영하며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던 믿음의 조상이다.
(히 11:13) 이 사람들(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그리스도)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따라서 갈 3:9절에 나오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한 그 믿음은 다름 아닌 오실 그리스도이며 또한 오신 그리스도 그리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래서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이 약속은 창세전에 이미 오시기로 약속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의 언약의 성취임을 또한 알 수 있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벧전 1:20) 그(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이런 사실을 아브라함은 계시로 알았기 때문에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이는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 즉 창세전 영원부터 계신 분이시기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 다윗의 언약은 사무엘하 7:11-17절에 나온다.
다윗은 자신이 살고 있는 백향목 궁과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장막을 비교해 보니까 하나님의 장막이 너무나 초라해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고 계획을 세우지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신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너의 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 바로 다윗 언약으로 알려진 나단 신탁이다.
(삼하 7:11b-13)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어주시마고 약속하시는 집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가문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가문이 왕의 가문으로 영원히 견고한 왕의 가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물론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왕위를 이은 솔로몬을 이야기 하지만, 구속사적으로는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 몸에서 날 네 씨’는 솔로몬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롬 1:2-3절을 보면 다윗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롬 1:2-3)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시간의 순서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먼저 자손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약속하셨고 그로부터 1,000년 후에 다윗에게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마태는 마 1:1절을 기록하면서 원문에 아브라함보다 다윗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즉 다윗의 자손이요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 즉 나단 신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확증하셨기에 이제는 다윗의 자손이 먼저 언급되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고 속이며, 어제 한 약속도 어기고 취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이 약속 어기기를 했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사람을 상대로 한 약속도 그렇지만, 특히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밥 먹듯 하였던 자이다.
1년에 성경을 몇 독 하겠다든지, 올해는 전도를 몇 명 하겠다, 다시는 그런 습관적인 죄를 짓지 않겠다는 등 송구영신예배 때마다 결심하고 결단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런데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다.
나는 이것이 주의 일이고, 이것이 영적인 일이기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 년마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그러면서 자포자기에 빠지기도 하고, 내 자신에 실망하여 학대를 하기도 하였다.
영적인 일을 하지만, 나는 창세전의 세계를 몰랐기에 영적인 결과 또한 만물 안에 있는 크로노스의 세계에서 얻으려고 한 것이다.
그런 나에게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게 되는 놀라운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았고, 야곱의 우물을 전전하는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이 주신 생수였으며, 밤중에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해 주시므로 그가 땅에서 하늘 위로, 어둠에서 빛으로, 밤에서 낮으로,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밝히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만난 복음, 복음을 통하여 만난 예수님, 그분의 생명을 얻어 하늘의 기쁨을 맛보고 누리는 나는 나 혼자만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 개월 동안 성도들은 복음 때문에 피로감에 싸이기도 하고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것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기도 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인하여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튀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복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생명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면 여전히 애벌레처럼 땅의 것만 찾다가 죽을 것 같은 우리 성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성도들과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알기 전에는 성도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등이나 토닥거려 주면서 그저 숫자 늘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복음을 알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니까 그것은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애벌레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어 꿀을 먹는 생명인데, 어떻게 땅의 것만 바라보면서 여전히 나뭇잎만 갉아 먹을 수 있겠는가?
그 싸움은 1년 넘게 지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복음은 승리한다.
성도들이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아하, 이것이 복음이구나.”라고 깨닫기 시작하였다.
물론 말씀묵상이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완전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증거되는 복음을 대적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땅의 것을 전하는 그런 설교를 들어내지 못한다.
이들은 이제 하늘을 날면서 꿀을 먹는 자들이 된 것이다.
복음을 전하니까 성도들이 동요하기 시작해서 몇몇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다져지는 것처럼 복음으로 다져지니까 성도들이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사람이 없다.
오히려 복음에 생명에 갈급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작년 12월부터 매주 새가족들이 와서 등록을 하였고 어제는 3가정 10명이 등록을 하였다.
다음 주에도 등록할 가정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내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할 때는 끊임없이 갈등이 생기고 환난과 곤고가 끊이지 않았으며 교회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어려워졌는데, 이제는 세상적인 방법이나 꼼수가 아니라, 숫자와 목회의 성공 그리고 부흥에 대한 나의 꿈을 버리고 오직 복음만 전하니까 주님이 하시더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제 모든 사역을 마치고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복음을 전하면 성도가 떨어진다고 누가 그랬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말야.” 하면서 서로 웃고 기뻐하였다.
어제는 앉을 자리도 없었고, 식당에서 밥 먹을 자리도 부족하였으며, 밥도 모자라 나와 아내 그리고 몇 분들은 밥을 먹지도 못했으나 내 안에서 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내 안에 자꾸만 자기주장의지가 발동된다.
마치 내가 한 것인 양 말이다.
복음 설교를 마치고 나니까 몇 몇 성도들이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처음에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아차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내 힘과 의지로 할 때는 내가 나를 속이고 성도들을 속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속이는 자였다.
그러나 내 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언약 안에서 감당하니까 주님이 하신다.
창세전부터 약속하셨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하여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셨다.
나는 오늘 그 주님을 다시 한 번 만났으며 그로 인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누린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누리는 영광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나의 특권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주인이시다.
오늘 그 주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게 주신 이 하늘의 기쁨은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여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님이 보셨던 그 하늘의 영광, 아버지의 영광을 나에게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기쁨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요 영광이니이다.
주님...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복음이 나를 살렸습니다.
죄의 수렁에서 나를 건지셨으며, 세상적 가치와 나의 꼼수에서 나를 끌어 올리셨나이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고 깊나이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다시 한 번 찬양합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사오니, 오직 주의 손, 주의 오른 손으로 나를 붙잡으소서.
주의 은혜는 무궁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생명이 사망을 이깁니다. 생명이 결국 이깁니다.
주님의 양들, 영혼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먹이되 새벽부터 충성을 다하는 목사님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흥황하여, 이 시대 교회가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