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문화] 아랍문학 읽기 18
오늘부터 아랍 유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나집 마흐푸즈 작품을 10여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작품 소개에 앞서 작가를 우선 소개합니다.
흔히 우리가 나집 마흐푸즈라고 부르는 그의 본명은 나집 마흐푸즈 압둘 아지즈 알-싸빌쥐이다.
소설가이자 단편작가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그는 1911년에 이집트의 고도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우리의 서당에 해당되는 쿳탑 과정을 거쳐 1925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푸아드 Ⅰ세 고등학교와 이집트대학교(현재 카이로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졸업 후 대학교 행정직원을 거쳐 종교성 근무, 문화성 예술 감독국 국장, 이집트 영화협회 사무총장․이사장을 역임했다. 문화최고위원회 및 국립문화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공화국 1급 메달을 수상하였다. 또한 아랍인으로는 최초로 198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해외여행으로는 예멘 및 유고슬라비아를 여행한 바 있으며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그의 성장과정은 다음과 같다.
나집 마흐푸즈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바로 위의 형과 9살 차이였고 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누이들은 출가하였으며 형도 사관학교를 나와 수단에서 복무중인 상태여서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같이 살았다는 것밖에 기억이 없다고 한다. 마치 외아들인 것처럼 성장했다. 친척을 방문한 경우는 많아서 자신의 집보다는 친척집을 많이 기억할 수 있었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항상 유지되었기 때문에 형제애를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따라서 다수의 작품에서 그는 형제간의 우애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삼부작, 시작과 끝, 칸 알-칼릴리 등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기억에서 집은 특히 옥상은 항상 놀이와 연관되어 있다. 즉 옥상의 창고와 오리, 닭과 병아리, 화분, 향료 풀과 덩굴 그리고 광활한 하늘이 작품 속에 빈번히 묘사되고 있다.
그에게 당시의 동네는 이집트국민의 모든 계층을 대변하는 하나의 낯선 세계였다.
그의 모친은 항상 혼자 집에 남아있던 아들 나집 마흐푸즈를 친지나 이웃을 방문할 때 데리고 다녔다. 이처럼 그는 쉬브라, 알-압바시야 및 당시 정원과 들판으로 카이로 중심부에 위치했던 많은 장소를 눈여겨볼 수 있었다.
공무원이었던 그의 부친은 가정에서 항상 싸아드 자글룰, 무함마드 파리드, 무스따파 카밀 등에 관해 이야기를 하였으며, 그들의 소식에 관해 커다란 관심을 가졌었다.
은퇴 후 상인인 친구와 함께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 1937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1924년 이후 이사했던 알-압바시야에서 모친과 살았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는 항상 그전에 살았던 알-자말리야 지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10살 경 초등학교 시절, 그의 친구로부터 『존슨의 아들』이라는 탐정소설을 빌려 본 후, 그 시리즈를 읽은 것이 생애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 후 역사소설 등을 읽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개혁주의자 및 사상가들의 책을 읽었다. 이제 문학이 그의 취미가 되었다.
수학과 과학을 잘하여 본인도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길 원하였으나 알-악까드 등의 철학서적을 읽으면서 철학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 후 철학과 문학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영어로 된 세계문학을 읽고 문학 속에서 그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문학을 사랑하게 된다. 러시아 문학, 영국 문학, 프랑스 문학에 심취했다. 어느 특정 작가보다 그들 모두가 그의 문학적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 철학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민족주의가 이집트에 팽배하면서 고대 파라오 문명에 관심을 갖고 이집트 역사를 읽고 소설의 형식으로 글을 쓰기로 작심했다. 그 결과 『띠바의 항쟁』 등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성향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나집 마흐푸즈는 50여 년간의 집필생활을 통하여 33권의 소설과 10권의 단편 그리고 약간의 희곡과 30여 편의 자신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대본을 썼으며 현재도 ‘알-아흐람’ 일간지에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는 왕성한 작가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진다면 그 날이 바로 내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라고 하여 작품에의 끝없는 욕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보통 4기로 나눠지는데,
우선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당시 이집트의 정치적, 사회적 제반 상황 등을 비유하여 표현한 낭만주의 경향의 역사소설에서 시작하여,
둘째 『새로운 카이로』 이후 『삼부작』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부패와 부조리 속에 버려진 가난하고 무지한 하급계층의 삶을 탁월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경향의 사회소설,
세 번째로 『우리 동네 아이들』로 시작되어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겪는 역사적 운명을 날카롭게 우화화 하거나 독재자의 허점을 과감하게 상징화해서 비판하는 등 이전에 보이던 기지와 해학에서 벗어나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는, 하층계급의 삶보다는 위기의식, 고독, 고뇌, 절망 등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사실주의, 상징주의, 신비주의, 실존주의 등을 통합한 새로운 문체로 형상화한 시기,
마지막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소위 탈 이즘의 시기로서 어느 특정한 경향에 매몰됨이 없이, 아랍 문학 풍토에서 새로운 문학장르인 소설을 보다 아랍화 하는 작업에 정진하는 말년의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는 것이 보통이다.
해외 경험이나 시골, 농촌 경험이 매우 부족한 그가 번역과 독서를 통한 부단한 노력의 실력배양과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자유로운 창의력을 발휘하여 참다운 문학작품을 토해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이 순간 나는 나보다 먼저 따하 후세인, 알-악까드, 따우픽 알-하킴 같은 작가들이 이 상을 받아야 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은 그의 겸허한 자세와 아울러 그 동안 끊임없이 걸출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아랍세계의 환경이 그가 수상하게 된 것이며 그의 문학적 토양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나집 마흐푸즈는 간결하고 순수한 문체로 표준 아랍어 문장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어 자유로이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내가 태어난 동네를 사랑하며 이 동네는 또한 나의 주요 작품들의 작품 배경이 되고 있다. 즉 골목은 나의 인생의 이야기이다.” “나는 옛 카이로 동네에서 태어났고 그곳을 사랑한다. 작품 배경에 있어 작가를 장소, 사람 또는 높은 이상과 연결시키는 것은 사랑이라고 믿는다. 이들 오래된 동네들은 내게 있어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동네는 나의 체험의 무대이고 나의 동네에 관해 글을 쓸 때 최상의 컨디션임을 느낀다”라고 말하듯 사회의 축소판인 동네가 그의 주요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