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이리아 -
어렸을 때
이른 봄
논 가득 일렁이던 짙푸른 파도
너나 없는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던 것은 바로 자운영이었습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참기름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
하얀 백자 접시에서 단아한 자태를 뽐낼 때면
저절로 꼴깍 침이 넘어가곤 했었지요.
그렇지만
하찮은 계집애인 내겐 입맛조차 다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만큼
귀한 나물이었습니다.
가끔은 쌀을 아주 조금 넣고 자운영 죽을 끓여
너무나도 맛있게 먹던 날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너무나 귀해
소나무 껍질까지 두들겨 삶아먹던 그 힘든 시절
우리 마을에 제일 부잣집인 대성상회 집 논은 아침마다
한 바탕 소동이 일었습니다.
"어느 년놈이 남이 논에 애써 심어놓은 걸 비어갔는지
손목아지를 잘라버려야 한당게."
걸걸한 대성상회 안 주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산동네를 울렸습니다.
물론 자운영을 훔친 사람 중엔 우리 어머니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 전체에 자운영이 있는 집은 대성상회 논 뿐이었으니깐요.
간밤에 몰래 뜯어온 자운영 나물.
엄마가 하늘만큼 귀하게 여기던 아버지와 오빠는
훔쳐온 장물을 먹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자운영 나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뜻하지 않은 횡재에
나는 엄마에게 옆구리를 쥐어 박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도
입안 가득 퍼지는 자운영 나물의 향기와 상큼한 맛에
아버지와 오빠가 마냥 고맙기만 했었지요.
비록 이따금 자운영은 훔쳐오셨지만 엄마는
우리에겐 엄격하기가 비수 같으셨지요.
그리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남의 물건은 지푸라기 하나도 들고 오면 안 된다. 알겠지?
행여,
우리 형제 중 누군가가 남의 것을 가져온다던지 조금이라도 말을 듣는 날이면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없이
피가 철철 날 만큼 회초리로 사정없이 종아리를 맞아야 했었습니다.
늦은 봄 논 전체가 보랏빛 자운영 꽃으로 살랑 물결이라도 치면
설레는 마음에 논으로 내달려 앞집 순이와 반지를 만들고
목걸이를 만들어 걸곤 했었지요.
그 귀하디 귀하던 자운영 꽃이 저리도 지천으로 피어났군요.
이제 세월이 흘러
자운영 나물 맛조차 희미해졌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운영을 훔친 엄마도,
그 나물을 먹지 않아 엄마 애를 태우던 아버지와 오빠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만 남았는데,
여전히 그 옛날처럼 보랏빛 자운영 꽃이 물결치고 있네요.
★cafe 이리아님의 글을 옮겨봤습니다. 참 감성이 살아있는 가슴에 다가오는 글이죠?
이리아님! 찾아보니 리아의 이야기란 글을 연재하고 있네요.
천천이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_^
★구례 산동, 모내기 전 논에 자운영이 융단을 펼쳤습니다.
중국원산인 두해살이 풀인데, 뿌리 혹박테리아가 있는 콩과의 식물이라서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빨아들여 스스로 질소 비료를 만들기 때문에
겨우내 심어뒀다가 봄에 논을 갈아엎어 버리면 비료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자운영을 심으면 화학비료 사용이 절감돼 땅힘이 커지고
유기농법으로 미질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붉은 자운영 들판을 가꾸어 농촌을 관광자원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온천지구가 있는 산동면에 어울리는 나물이라는 생각이 들어군요.
함평, 장성, 구례 등 자운영 쌀 브랜드화로 성공하거나
자운영 밭을 밀원으로 활용한 극히 일부 집단재배단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일반농가가 재배한 자운영은 키가 자라지도 않아
갈아엎을 정도도 안됐고, 관광상품화할 수도 없어서
중국에서 해마다 수십억원을 들여 수입하는 것은
외화낭비일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20년쯤 전에는 모내기 전, 넓은 논에 일제히 핀 자운영 꽃이 꽃융단을 깔아놓은 듯
일대 장관을 연출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많이 쓰면서부터 차츰 사라져 이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는군요.
추위에 약해서 중북부 지방에는 자라지 않고 남부지방에만 자라구요.
염소먹이로 주니까 맛있게 잘 먹더군요. 토끼, 소같은 집짐승들도 잘 먹는답니다.
제가 꼬마때(Seoul) 클로버로 꽃팔찌(시계)도 만들고 꽃반지도 만들곤 했는데,
이리아님 얘기론, 남녁땅 호남에선 자운영이 클로버 역활을 대신했나 봅니다.
윗글 이리아님처럼 자운영에 관한 추억이 하나 둘 있는 분이 꽤 되겠죠? ^_^
자운영 꽃잎먹고 자란쌀!!
멋지죠. 꽃을 먹고 자란 쌀이니까요.
모내기 준비로 바쁜 5월 호남의 논을 보라빛(자색)으로 물들이는데,
서울촌님 눈에 비추는 보라색은 황홀 그 자체입니다. ^_^
꽃잎을 갈아 엎어 만든 쌀이라도 판로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산동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판로만 확실하게 확보된다면 농민들은
쉽게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데, 아무리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만들어도
판로가 불확실한 것이 농촌의 가장 큰 문제로 보입니다.
힘들여 생산해낸 쌀이나 먹거리로 도시 사람들의 살이 오르는데? ^_^
또 그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하고 지방을 흡입하고...
손에 흙도 안 묻혀본 사람들(저를 비롯한 도시 소비자)이 상점에 넘쳐나는
쌀을 비롯한 값싼 농산물의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쌀의 핵우산 아래 있는 사람들은 흙만지는 농부님네들 생각하기 쉽지 않죠.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줄 알기때문이죠.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밥먹는 모양 한가지만 보면 여러가지를 알수 있습니다.
쌀 한톨이 생명이고 우주이고 농민의 피와 땀인데,
아무 거리낌없이 밥그릇에 밥풀을 남기죠.
밥풀만 남기면 양반이고, 웬만한 음식 남기고 버리는 것은 예사일입니다. ^_^
저는 김치그릇에 고추가루 묻었으면 물부어서 붉은 물로 만들어 먹습니다.
된장을 먹고난 뚝배기에 물을 부어서 노란물로 만들어 먹습니다. ^_^
생명을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제가 사는 중랑천 물이 더러워질까바?
화학공장인 제몸에서 미리 정화(분해)를 시키려고 밥먹는 모양이
좀 지저분한데, 제 얼굴이 철판이라 게의치 않죠.
사실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마음 걸림이 많습니다.
고기를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식물이 사료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산에 가서 된장풀어 푸성귀나 몇 잎넣고 간단하게 먹고싶은데?
주위 산친구 여러 님들 눈치에 행동이 이뤄지지(따라주질) 않습니다.
이제 산에서도 간단하게 먹는 것으로 바뀌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구우벅. ^_^
★자운영의 효과
자운영을 한자로는 홍화채(紅花菜)라고 쓴다.
잎을 씹어보면 단맛과 약간 비릿한 맛, 매운 맛, 떫은 맛이 섞여 있다.
성질은 평하다.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염증을 삭이고 출혈을 멎게 하는 작용이 있다.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이며 눈을 밝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또한 신경통과 눈이 빨갛게 충혈된 것을 낫게 한다.
대상포진이나, 종기, 악창, 갖가지 피부염, 외상으로 인한 출혈 등에는
짓찧어서 즙을 내어 바르면 효험이 있고,
치질로 인한 출혈이나 잇몸에서 피가 날 때에는 생즙을 내거나
생것 30∼50그램을 물로 달여 한 번에 50밀리리터씩 하루 3∼5번 마시면 출혈이 멎는다.
인후염에는 자운영과 은행열매를 그늘에서 잘 말려 각각 같은 양으로
곱게 가루 내어 거기에 용뇌를 약간 넣은 다음
이 가루를 종이 대롱 같은 것으로 목 안에 불어넣는다.
인후염이 심하지 않다면 3∼5번이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치질에도 쓸 수 있는데 숫치질에는 자운영을 즙을 내어 바르고
암치질에는 하루 40그램씩을 물로 달여서 하루 3번에 나누어 마신다.
기침이나 가래에는 생즙을 내어 마시거나 그늘에서 말린 것 40그램쯤을
흑설탕을 약간 넣고 달여서 마신다.
초여름철에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달려서 그 속에 납작한
콩팥 모양의 윤이 반짝반짝 나고 연한 갈색의 씨앗이 익는다.
이 씨앗을 자운영자(紫雲英子)라고 하여 결명자와 마찬가지로 눈을 밝게 하고
소변을 잘 나게 하는 약으로 쓴다.
자운영 씨앗은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고 간의 열을 내리며 시력을 좋게 하고
충혈된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
하루 5∼10그램을 물로 달여서 먹거나 가루 내어 복용한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쓴 사람이 자운영 씨앗을 6개월쯤 복용하고 나서
안경을 벗게 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대 잠든 새벽길 걸어
자운영 꽃을 보러 갔습니다
빛무리 새벽길
아직 꽃들도 잠깨지 않은 시간
입 꼭다문 봄꽃들을 지나
자운영 꽃을 보러 갔습니다
풀들은 이슬을 달고 빛나고
이슬 속에는 새벽이 빛났습니다
붉은 해가 빛무리 밝히는 아침에
그대에게 꽃반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자운영 붉은 꽃반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의 맹세를 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대앞에 가슴 뛰는 소년이 되어
그대 고운 손가락에
자운영 꽃반지를 묶어주며
다시 사랑을 약속하고 싶었습니다
내게 자운영 꽃처럼 아름다운 그대
늘 젖어있어 미안한 그대 손등에
내 생애 가장 뜨거운 입을 맞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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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운영이 이렇게 좋은 반찬도 된다니 신기하고 / 꽃이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