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피는 꽃 ]
- 구지혜 -
태양의 씨족이었던 별은 채색을 거부하다 빛이 닿을 수 없는 어둠의 들판으로 추방당한 꽃이다
빛을 잃은 별은 높은 곳에 자신의 슬픔을 걸어두고 슬픔에 비춰지는 지상의 눈물 중에 순수한
것만 모아 몸에 뿌리는 것으로 영롱한 빛을 얻었다 지상의 빈 눈물자리에 자신의 꽃잎 뿌려주어
활짝 피우도록 하였다 몇 겹의 세월, 어둠 깊은 지하, 모를 여인의 미라 눈에서 지금도 별이 발견
되는 까닭이다
벌 나비가 어둠을 헤치고 별에 닿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길을 잃어 전혀 다른 세계로 사라지거나
설령 닿는다 하여도 빛의 순도에 순식간 익사하고 만다 내일이 없던 별은 매일 죽기 살기로 새벽을
지르는 암탉 둥지에 자신의 오늘을 탁란托卵하였다 그 알에는 우주를 담았고 자기 껍질을 뚫을 수
있는 의지를 함께 담았다 그 오늘이 부화하여 더 많은 별을 낳는 오늘이 된 것이다
일상이 아니었다면 기막힌 일이겠지만 별은 자기 자리를 잃지도 않고 떠나지고 않는다 그 마음이 별
의 향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데 향기란 가장 멀리 피더라도 내 안에 알지도 못하게 조용히 흔들리는 꽃
아닐까 한다 지금 별을 바라보며 내가 끝내 머무를 자리 또한 누군가의 가슴 속, 별 같은 향기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ㅡ시집 『그늘을 꽃피우는 시간』(시와정신,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