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플러/ 이서하
“…성실한 사람의 일상이 꽂혀 있다
최후의 일이라는 듯
철은 그것들을 지나 산책한다.”
1.
공원을 배회하는 것은 누구의 환영인가
천변을 건너면 공장이 있고
다 자란 아이들이 있고
세계의 식탁에는 아침과 빵이 있지
접시 위로 잠든 부모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나의 미래는 평평한가?
개는 평화롭게 잠든 주인의 손등을 핥는다
2.
물의 섬에는 작은 바다가 살고
파도에 쓸린 해안 절벽은
애인의 등처럼 세계에서 유린된 것
여기서 떨어져도 죽지 않아
수면 위로 미끄러지던 검은 눈동자는
물의 형상을 닮아 파란 멍이 들었다
3.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오랜 투석과
지켜보는 자의 슬픔은 스스로의 것이고
우리는 서로의 증오심을 이해할 수 없기에 견딜 수 있다
내일을 기다리는 죽음의 연계는 살기 위해 필요한 의사의 처방만큼 간단한 것이었다
희망은 언제나 가장 단편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소원을 모아 세 사람의 생활을 대신하던 상상은 미래에 대한 환멸로 각자에게 주어졌고
그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찾던 우리는 서로 틀리지 않았다
4.
오래된 식사보다 권태로운 사랑을
지켜보는 동안 접시를 비웠다
유리잔이 강물처럼 넘치고 있어
입 안에 네 몸을 가지런히 두었다 우리의 피가 흐른다
역사에도 가정이 있다면
나의 말은 곧 네게로 향할 것이고 네 말에 답하는 이것은 사랑인가 사랑의 폭력인가
5.
실로 우리를 엮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살이고
—이것은 철의 일이기도 하다
철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극히 어느 한 점에서
바늘의 방식으로
작은 쇳덩이가 온몸을 찍어 누르는 상상의 고통에서 깨어나 그들은 소중하고 소중한 사랑에 대해 지성에 대해* 어느 날의 젊음과 신념을 이야기하며 공장으로 향하는 이 길은 어제도 걸어온 길이고, 옆을 돌아보면 진실로 어제와는 다른 우리의 모습이 걸어가고
* 사뮈엘 베케트『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오르도스 시의 조각상-西夏國 4/이서하
그것은 오지와 백지가 넘쳐흐르던 마을이었다. 태양은 일곱 겹의 시간을 지났다.
가벼운 것은 가장 작은 수처럼 멀리서 날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둘이라 불렀
지. 머릿속에 봉합된 기억이 텅 빈 그릇처럼 조용하고 투명하게 흔들렸다. 조용하고
투명하게 슬픔의 상실은 아무도 오지 않는 숲의 무덤가에 있다. 色은 진하거나 옅은
빛이다. 나는 그 안에 있다. 안쪽 바깥에 있다. 물이 마르는 시간은 지난 시간의 성역
이다. 바깥은 이미 한 걸음 멀어진 뒤였다. 성은 세계였다. 사람들은 어디서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른스런 사랑을 하던 아이는 더 작고 귀여운 아이를 낳고 이것을
행복이라 말하던 그는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릴 수 없어 지난 것을 오래
말하는 습관을 가졌지. 죽어가는 짐승의 하얀 이를 들여다보며, 대지와 육체와 푸른
무덤의 외면은 나의 내면의 공포였던가? 일곱 개의 머리가 달린 용이 하늘을 오르려다
어느 망자의 혼을 삼켰던가? 사자의 서는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읽는다. 천천히 어느
날 그 사랑이 싫어졌다.
성 밖으로 신이 지나간다.
지금도 그곳엔 수만 마리의 말이 내달리고 있다.
붉은 모델*/이서하
오브제 머리말;
신발은 인간의 벗은 두 발로 서 있다.
우리는 가끔 속아 넘어간다. 머리말과 말꼬리에 대해, 전부와 일부에 대해, 발과 신발에 대해,
날씨와 창문에 대해, 화분과 둘레에 대해, 여자와 슬픔에 대해. 첫 경험과 두 번째 애인에 대해,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상징과 상상에 대해, 어른과 아이에 대해, 너는 왜 머리가 자라지 않
니? 언어와 질서에 대해, 신神은 아직도 많으니까, 근심과 감시에 대해, 강박과 히스테리에 대
해, 마그리트와 베를린에 대해, 벨기에와 독일에 대해, 멈춘 곳과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해, 이를테
면 벽과 문에 대해, 반대로 여십시오. 검은색이 벽이라면 흰색은 뭘까, 흰색은 뭘까, 거품과 구름
에 대해, 첫눈과 엑스터세에 대해, 세 번째 애인과 자위에 대해, 사랑과 폭력에 대해, 동화와 비
극에 대해, 순화와 우화에 대해, 실수와 미수에 대해, 살인과 교사에 대해 세계와 번역에 대해,
오해와 해석에 대해,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말과 침묵에 대해, 시와 음악에 대해, 파멸과 태초에
대해, 꿈과 현실에 대해. 1부의 기도가 끝났다.
*르네 마그리트 1935년 作
신발은 인간이 벗은 두 발로 서 있다/이서하
작은 사람 뒤에 큰 사람을
세우는 종렬이 싫었다
땅을 팠더니 거대한 개미굴이 나왔다
갱들의 무리가 국경을 넘어
숲을 헤집고 창문에 부딪친 새가
풍경을 흔들고 있다
뼈가 부러지는 날에는 세상의 질서가
조금씩 움직일 거야 순서가 정해지면 적을 만들자
말씀하셨던 겨울 개미는 어디로 갔나요?
아버지 우리 함께 가요 똑같이
생긴 개미가 나와 둘이 되는 일
추운 날에는 불쏘시개를 가지고 놀았다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외출을 해도
단추가 떨어진 곳은 알 길이 없고
네가 찾던 단추에 대한 그리움이란
단춧구멍에 찔러 넣은 실처럼
개미굴을 빠져나오는 개미를 보며
여자는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석고를 붓고 여왕개미를 부르자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옆집 엄마가 불에 타서 죽었대
나는 걸을 수 없어서 뛰었지*
그건 우리가 잘하는 일이잖아?
갈라진 콘크리트 안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어느 광부의 손이었던가
발이 뛴다 길이 도망간다
우리를 입에 올리지 말라던 아버지,
당신은 길에 놓인 신발의 의미를 아는가?
* 존 레논, Mother(1970년 12월)
[ 이서하 시인 약력 ]
이셔햐 시인
* 1992년 경기 양주 출생.
* 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 2016년 〈한국경제〉청년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