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했다는 일부의 기대와는 달리 ‘임대주 보호’에만 편향된 ‘세입자 보호법’에 따라 수천여명이 길거리로 내쫒기고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카렌과 윌프레드 부부는 스카보로 한 아파트에서 38년을 살았다. 3베드룸 아파트에서 네 명의 아들을 낳고 키워 독립시켰다. 이들 노부부는 그래서 이 아파트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집’에서 나가라는 주인의 명령서가 날아온 것이다. 이유는 ‘렌트비 미납’. 잊어 버렸거나 일부러 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 부부의 탓 또한 아니었다. 월 725달러64센트의 렌트비를 충당할 노인연금이 늦게 지급된 탓에 돈이 없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가슴이 서늘해진 부부는 서둘러 렌트비를 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온주임대주거재판위원회(ORHT)에 서둘러 호소했지만 그래도 ‘강제 퇴거 명령’의 법적 진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연금수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이들 노부부는 주말이면 32세의 장애인 아들까지 돌봐야 한다. 이곳에서 나갈 경우 지금까지 내던 월세로는 1베드룸 아파트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다. 온주세입자보호센터(ACTO)의 도움으로 항소를 제기한 해리스씨부부는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소매점에서 캐셔로 일하고 있는 라모나 네폴(여,23)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있다. 일터에서 돌아온 작년 5월 어느 날 그녀는 파크데일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문 열쇠가 바뀐 것을 알았다. 집주인이 자물쇠를 교체한 것이다. 그녀가 내던 렌트비는 월7백81달러. 월급이 늦어지면 그녀는 가끔 씩 렌트비를 늦게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수를 받는대로 항상 렌트비를 냈고 그녀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제 퇴거명령서’가 날아온 그해 2월 네폴은 즉각 렌트비를 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연체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관련 재판위원회에 출석한 그녀는 이미 퇴거를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부부의 경우도 그랬지만 네폴 역시 퇴거 명령서에 기재된 ‘이의가 있는 세입자는 발급 5일 내에 주거재판위원회에 반드시 소정의 서류를 통해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몰랐기 때문이다.
ACTO측은 『패리스부부와 같은 피해는 주전역에 걸쳐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98년 도입된 세입자보호법(TPA)은 이같은 상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ACTO는 『집주인들은 TPA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며 『이름만 세입자보호법일 뿐 실제로는 집주인들에게 마음대로 세입자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공공시설세입자평등권센터(CERA)의 테레사 손턴은 “퇴거명령서의 기재 내용은 세입자들이 이해하기에 매우 어렵다. 명령서를 살펴본 대학교수들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결국 세입자보호법(TPA)에 근거해 발급되는 퇴거명령서는 맘에 안드는 세입자들을 내쫓기 위한 임대주들의 손쉬운 법적 수단일 뿐 세입자들의 권익은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는 것.
실제로 옴부즈만 클레어 루이스가 건설부 존 게레트슨 장관에게 지난해 11월19일자 발송한 서한에 따르면 퇴거명령을 받은 세입자들은 대부분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이민자, 장애자, 연금 생활자 등 약자들이다.
따라서 ‘세입자’ 보호라는 허울을 쓰고 ‘임대주’편에 서있는 현행 TPA에 대한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TPA는 과거 보수당 정부가 98년부터 시행한 법으로 자유당 정부는 선거공약으로 이의 수정을 약속한 바 있다.
주거재판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해 온주에서 퇴거명령을 받은 세입자는 6만2천명. TPA가 시행된 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총 26만7천18명이다. 그중 60%인 15만8천5백65명이 위의 노부부나 네폴의 경우처럼 명령서에 기재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무작정 퇴거 조치를 받았다.
임대주들의 권익옹호단체인 공정한렌트정책기구(FRPO)측은 이에 대해 “세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퇴거명령서의 형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법이 임대주들에게 유리하다는 의견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주거재판위원회가 임대주들의 편이라는 것에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FRPO에 따르면 세입자가 퇴거 명령에 이의를 제기해 재판위원회가 재심에 들어갈 경우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는 수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그 기간동안 세입자들을 공짜로 아파트에 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한번 퇴거명령서가 발급되면 일단 세입자는 나가는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온주정부의 민원책임자인 클레어 루이스 옴버즈맨(Ombudsman)은 지난해 11월19일 존 게렛슨 주택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TPA는 행정 효율면에서는 종전 법규보다 우수할지 몰라도 세입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특히 은퇴노인, 어린 자녀를 둔 편부모, 장애인,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중재나 청문회조차 없이 퇴거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자유당은 지난해 가을 집권한뒤 보수당당의 작품인 TPA를 대폭 뜯어고치고 단기간 월세를 밀린 무주택자들을 위한 대출기관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와 관련 주택부측은 『입법에 앞서 건물주와 세입자의 이익이 공평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여론을 수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