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장 꿈을 나눠 접어 ]
- 최형심 -
눈이 내리자 남자는 녹나무 그늘을 따서 말렸다. 강의 절반이 남쪽으로 다른 절반이 북쪽으로 흐르는
시기가 오기를 기다려 녹나무 그늘을 항아리에 넣었다. 낡은 초막이 별빛에 잠길 즈음 고개를 숙이고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는데
좁은 항아리 입구를 지나고 나자 흙으로 빚은 말(言)에 날개를 달아 날려 보내야 했다. 얇은 녹나무
그늘 날개를 단 것들은 낱알처럼 멀리 날아가 흩어졌다. 태엽 시계의 춤이 푸른 선율로 흘러가고
남자는 비의(秘儀)를 품은 시간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아 막 걷어낸 초저녁잠 한 겹을 덧입었다. 수요일에
사냥한 꿈, 푸른 비밀과 젖빛 밀어, 흰 종이배와 마주한 윤슬, 꿈결 무늬 바퀴 같은 것들 그의 깊은 잠
속으로 내리고
꿈속에서 태어난 반쪽과 꿈 밖에서 태어난 반쪽이 등을 돌린 채 서로를 향해 끝없이 걸었다. 이윽고 가장
나이 많은 나무의 세 번째 영혼이 머무르는 달에 이르러 그는 깊은 잠 속에 초승달을 꽂아두고 어둠이
차오르기를 기다렸다.
고양이 실눈 사이로 비치는 삼라(森羅)의 가벼움이 남자의 몸 위에 덮였다. 진흙으로 빚은 고요가 들어와
나란히 누웠다. 이마에서 흰 머리카락이 눈발처럼 날렸고
마침내 그는 몸에 커다란 구멍을 받아 적었다. 그림자만 남은 몸에 바람이 감겼다. 달빛 흉곽에서 청동
종소리 퍼지고 단단한 껍질을 껴입은 시간이 입구를 둥글게 막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천계(天界)가 그 안으로 내려왔다.
ㅡ계간 《다층》(2024,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