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에 댓글로 달았습니다만, 글이 길어져서 글로 씁니다.
마빈 해리스의 주장에 따르면(더 나아가 스티븐 핑커의 확장된 주장에 따르면), 2살 정도의 어린 아이들은 먹을 것을 가려서 먹지 않습니다만, 3살 쯤부터는 부모가 먹는 음식만 먹게 되고, 부모가 먹지 않는 음식에 대해선 혐오감을 느낍니다.
이건 매우 진화론적인 것입니다. 과거 수렵-채집생활을 했던 인류에게 있어서 식재료란 개념은 현대와 같을 수 없습니다. 현재엔 최대한 식품을 가공하고 안전이 검증된 식품만 먹습니다만, 과거의 인류에게 있어선 드넓은 식단에서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을 가릴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성장해가는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위험한 음식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먹는 음식만 먹는 것입니다. 부모가 먹는 음식만 먹고(부모가 먹는 음식이란 것은, 곧 그 음식은 안전하다는 의미이죠.), 다른 부모가 먹지 않는 음식은 혐오감이란 감정을 통해 회피하게 되면 괜히 독이나 세균 때문에 죽을 위험이 극히 줄어들게 됩니다. 현대의 식약청 역할을 하는 것이 곧 부모의 식단인거죠.
이에 따른다면, 일부 문화 차이(특히 음식문화)는 곧 인류의 진화된 심리가 가장 잘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지역의 부모들이 문화적으로 먹는 음식을 보고서, 진화된 심리과정에 의해 그 자식들도 부모들의 음식습관을 따라하고, 부모가 먹지 않는 음식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보편 대 특수, 본성 대 양육, 문화적 진화 대 생물학적 진화 등등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죠.
어쨌건, 이슬람교도가 돼지고기를 혐오하는 것은 그런 맥락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은 진화적 맥락에 의해 부모가 먹지 않는 음식은 혐오하게 되었고, 그게 문화적으로 정착된 것이 돼지고기인 것이지요.
우리들은 동남아나 아마존강의 원주민들이 벌레를 잡아먹는 것을 매우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누가 벌레를 선뜻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실질적으로 기생충 위험, 세균 위험이 더 적은 것은 돼지고기가 아닌 벌레인데 말이죠. 심지어 밥 위에 살균 소독을 해놓은 바퀴벌레만 올려놔도 강한 혐오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실질적으론 전혀 위험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벌레 혐오는 덩치 큰 동물들이 풍부한 지역에서 이루어집니다. 조그만 벌레를 쫒고서 얻는 이득보다는 덩치 큰 동물을 사냥하고서 얻는 이득이 훨씬 많고, 때문에 벌레가 점차 식단에서 사라져서 문화적 혐오감을 형성시킨다죠. 반대로, 덩치 큰 동물들이 없는 지역에선 단백질 보충원이 벌레 뿐이기에 벌레를 먹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무슬림들이 돼지고기에 느끼는 혐오감은 우리가 벌레에 대해서 느끼는 혐오감과 크게 다른게 없습니다. 인간의 차이는 그 보편성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뿐이고, 문화적 차이의 본질엔 공통적인 심리 관념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무슬림들이 돼지고기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성토하기 이전에, 우리가 왜 아마존강에서 벌레를 먹는 원주민들을 혐오스런 눈으로 살펴보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첫댓글 본성과 양육 논쟁에 있어서 새로운 관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토탈워 카페에서 썼던 글을 스크랩해왔습니다..ㅎㅎ;;
토탈워 카페에서 쓰신 글인가요? 왜 못봤지...
아, 현정게에서 왕X귀 님의 글에 대한 답글로 썼던 글입니다..ㅎㅎ;;; 그 분이 무슬림의 돼지고기 혐오를 성토하는 글을 썼을 때, 답글로 썼던 글이지요...-.-;;;
뭐 이 글의 내용이 본성과 양육 논쟁에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가져왔습니다..ㅎㅎ;;;
으음.. 하지만 맛난 갈매기살을 까는 것은 용납 못해!!
사실 뭐 안먹으면 쟤네만 맛을 모르는거니 신경도 안썻는데..
솔직히 나쁠거 하나도 없습니다. 문화의 차이지요. 우리는 교육이라는 세뇌를 받았거든요.
아, 이 글을 퍼올 때, 본성과 양육 문제와 관련지어서 가져왔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다른 쪽으로 봐주시는군요..ㅎㅎ;;;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적 유전단위로 제시한 meme의 한 예시겠지요. 인간의 사회 정보 전달능력은 놀라울 정도인데, 문자가 없이 수렵생활을 하는 원시적 공동체에서도 최소 수백에서 수천종 이상의 식물, 동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내일로미루자// 뭐, 제가 올린 사례가 밈의 사례이긴 합니다만, 밈만으로는 문화전파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요.
샤르망// 인간의 정보 전달능력에 있어서 언어가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핑커의 언어심리학과 인지과학은 너무 어려워서 대충 훑어 지나가기만 했습니다만, 언어를 통해서 추상적인 대상을 개념화할 수 있고, 여러 사물의 범주를 묶어서 하나의 개념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구문의 존재 등등 정보 저장능력이 극도로 신장된 듯 싶습니다.
거기에 타인과의 원활한 정보 전달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다가 정보용량마저 확장시켰으니..
이런 언어능력에 있어서 '언어본능'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본성에 의한 양육, 양육에 의한 본성 사례가 될만하다고 봅니다..ㅎㅎ
이슬람 지역에선 돼지를 사육하기 힘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장되어 버렸습니다. 각 문화권에선 '식량'으로 쓰기 곤란한 것들을 터부시하거든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선 개고기가 인도 지역에선 소고기가 터부입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지역에선 바다 자체를 신성시해서 해산물보단 개고기가 더 인기있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해당 고기를 먹고 안먹고는 문화적인 취향입니다. 취향은 존중해주어야하지 않나요? 그것이 바로 문화의 다원성 존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들도 우리가 돼지고기 먹는 걸 인정해주어야한다죠.
중국에선 양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중국 특유의 향신료인 샹차이를 뿌린다죠. 처음 먹어보는 한국인들은 거기에 기겁을 하지만요 중국인들은 잘 먹습니다. 물론 저도 양고기 잘 먹었어요.;-_- 제가 전천후여서..-_-;일본에선 회요리가 발달했지만 생(生)음식 자체를 싫어하는 서구권에선 기겁을 했습니다. 먹는 걸 갖고 우월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문제있다고 전 봅니다.;-_-;;
이성적으로 존중하는것과 감정적으로 혐오하는건 서로 다른 문제고, 충분히 공존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너님이 뭔짓을 하고 살건 신경쓰지 않을테니까 내 주위에만 오지 마셈.' 비슷한 개인주의적 사고와, 타인에게 관심 끄고 살 수 있는 환경과 제도(도시나 그에 준하는 상업중심지, 개인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률)가 갖춰져 있다는 가정 하에서는 그렇죠. 스피노자가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을 살았던것도 그런 이유때문이었고요.(그 사람에겐 거기 말곤 살 수 있는데가 없었던 겁니다.)
우린 평생 해야할 것들을 모두 어릴적 다 배웁니다. 먹기 싫다는거 억지로 먹이면 안되죠. 아, 싫다는데 뭐 어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