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사각형으로 크게 돌면서 주요 도시마다 들어갔다 나오는 방법을 택했다. 미국에서는 41개州 52개 도시를 둘러보았고, 캐나다에서는 4개州 11개 도시를 둘러보았다. 여행을 마치고 보니 총 이동 거리가 1만6000마일(2만5600km)이었다. [고급 휴양지, 팜스프링스] 샌프란시스코에서 무려 여덟 시간을 달려 팜스프링스에 들어서자 뭔지 모를 좋은 향기가 두려움과 설렘에 싸인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할리우드와 가까운 탓에 스타들과 유명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막 한가운데의 고급 휴양지.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보였다. 골프, 스파, 승마, 테니스, 카지노 등 어른들을 위한 게임이 가득한 곳이다. 미국 동부의 부자들은 겨울이 오면 이곳 리조트로 避寒(피한)을 와서 레포츠를 하면서 온천을 즐긴다고 한다. 덕분에 겨울이면 갑자기 인구가 늘어난다고. 고층 빌딩은 어디에도 없다. 팜캐니언 드라이브를 따라 야자수와 사막박물관, 극장, 갤러리, 고급 부티크, 낮은 저택들이 세련된 휴양지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에어리얼 트램(일종의 케이블카)을 타고 사막 위에 우뚝 선 「샌하신토」 산에 올랐다. 이렇게 빠른 케이블카는 처음이었다. 3월 중순의 팜스프링스는 여름 날씨와 비슷했으나, 산 頂上에는 눈이 덮여 있었다. 반소매 차림으로 눈을 밟으며 삼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하니 무척 상쾌했다. 산 頂上에서 내려온 남편은 꼭 가볼 곳이 있다며 어디론가 차를 몰았다. 잭 니클로스 등 세계적인 골퍼들이 설계한 유명 골프장들이 있는 곳을 남편은 용케 찾아내고는 혼잣말처럼 『저런 곳에서 골프 한번 쳐봐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캘리포니아州에만 있는 햄버거집 「인 앤 아웃(IN AND OUT)」에서 끼니를 때우고 애리조나州로 향했다. [끝없는 사막 애리조나州, 피닉스] 이곳엔 작열하는 태양 아래 기괴한 선인장들만이 이 뜨거움을 견디며 살고 있다. 「에어컨을 끄라」는 안내사인이 몇 마일 간격으로 계속 보인다. 이런 사막에서 에어컨 없이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운전하는 건 거의 죽음에 가깝다. 이 와중에 혹 차가 열 받아 고장이라도 난다면…. 엄청 마음을 졸이며 트렁크에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어디 내려놓고 가고 싶은 후회뿐이다. 여행이란 가볍게 떠나야 한다는 것이 이 엄청난 조바심 속에 얻은 교훈이다. 드디어 태양의 계곡, 피닉스에 도착했다. 여름의 평균기온은 39℃.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일대 사막을 비행 훈련용으로 이용하면서 에어컨을 활용하게 됐다고 한다. 에어컨 덕에 이민자들이 밀려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저녁에 피닉스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먼저 템피에 있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의 깨끗한 거리가 장거리 자동차 여행의 피로를 어느 정도 씻겨 줬다. 다음날 아침엔 호화로운 리조트, 쇼핑몰과 고급 갤러리들이 즐비하다는 부자 동네 스콧데일로 향했다. 현대미술과 인디언 아트가 뒤섞여 있는 부유한 거리 아트워크를 여유 있게 걸었다. 먼 옛날에는 이 땅의 주인이었던 그림 속의 인디언들의 표정이 슬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구상의 모든 사막식물이 모여 있다는 사막식물 정원에는 아쉽게도 가지 못하고 세도나를 향해 출발했다. [신비한 氣를 간직한 세도나] UC버클리는 한때 反戰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기가 센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도나는 UC버클리보다 훨씬 기가 센 곳이라고 한다. 신비한 에너지 볼텍스가 흐르는 곳으로 알려진 후, 세도나는 全세계의 뉴에이지 운동가들과 예술가, 명상가뿐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찬 일반인들까지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다. 할리우드 출신 스타와 제작자,예술가가 몰려 살고 있고, 80여 개의 아트 갤러리가 있는 문화의 메카다. 그랜드 캐니언이 자신감 있고 당당한 남자같다면 세도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처녀같다고 할까? 「神은 그랜드 캐니언을 만들었지만 사는 곳은 세도나」라는 말이 있다. 사방이 붉은 산과 기묘하게 생긴 붉은 바위로 둘러싸여 특이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1000피트의 기이한 절벽에 지어진 현대식 교회 홀리 크로스 채플에서 바라본 붉은 바위들과 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은 더 없이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세도나에서 뿜어내는 신비한 치유 에너지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산책用 도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뉴멕시코州는 47번째州로 편입된 젊은 州이자, 오랜 역사를 지닌 州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 아즈텍에 버금가는 보물을 얻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뉴멕시코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첫 번째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시험한 곳이기도 하다. 산타페에 가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알버카키의 올드타운에 들렀다. 유명하다는 정통 멕시코 음식점을 찾았는데 사람이 많아서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음식의 양은 엄청 많았지만 수프를 빼곤 입맛에 맞지 않아 거의 먹지 못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타페에 도착했을 때에야 너무 많은 시간을 알버카키에서 보냈음을 깨달았다. 산타페가 시간을 집중해야 할 이상적인 도시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만을 모아 놓은 것 같다. 이번 여행 중 산타페를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맘에 꼭 드는 도시다. 도시 전체가 나즈막한 황톳빛의 아도비 건물로 가득 차 있다. 아도비 건물과 고급스러운 상점들, 산타페 광장의 인디언 토속품, 맛깔스러운 음식,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과 수많은 갤러리…. 유명한 여류 미술가인 조지 오키페가 이곳에서 살았고, 그녀의 박물관이 있다. 하룻밤 묵는 데 200달러가 훌쩍 넘는 「라폰타 인」은 산타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호텔이다. 남편과 나는 인디언 박물관, 뉴멕시코 박물관, 조지아오키프 박물관, 세인트프랜시스 대성당, 수많은 갤러리와 예쁜 숍을 구경하느라 「다리 아프다」고 투정하는 아이의 원망을 모르는 척했다. 곳곳에 있는 우체통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타페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보내고 싶어 하는지 잘 말해 주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멋지게 차려입은 주민들이 눈에 띈다. 산타페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일식집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주인이 우리를 보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한국 사람을 보고 무척 반가웠는지 주인은 산타페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줬다. 산타페 부근의 로스앨러모스는 미국內에서 최고 명문 학군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최초의 원자폭탄을 제조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현재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는 태양과 핵 연구의 모든 사항 외에 위생·생물·기초핵물리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소 소속의 연구자 대부분이 박사학위 소지자이니 최고 명문 학군이라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생애 최고의 스테이크를 맛보다] 1889년 헤인즈 대통령이 토지를 분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도시, 오클라호마시티는 서부개척의 중심지였다. 이후 석유가 발견되어 공업이 발전했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가축시장이 있는 소의 도시이기도 하다. 1995년에 168명이 목숨을 잃은 연방정부 건물 폭발사건이 일어난 자리는 기념관으로 남아 있다. 오클라호마시티가 자랑하는 국립 카우보이 박물관은 서부개척史의 터프한 카우보이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화끈한 박물관인데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다운타운은 크고 넓은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없어 유령도시 같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이 도시의 진수는 저녁에 느낄 수 있었다. 올드타운에 있는 오클라호마시티의 명물이라고 이름난 「캐틀맨스(Cattleman’s)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봤다. 오클라호마시티의 사람들은 다 여기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카우보이 복장 차림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자주 찾았다는 이 스테이크 집은 스테이크 맛이 예술에 가까웠다. 이보다 더 맛있는 스테이크를 지금껏 먹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오클라호마시티 하면 이 스테이크의 맛이 생각날 정도니까. 댈러스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포트워스는 멕시코 전쟁(1846~1848)의 영웅이었던 윌리엄 J. 워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박물관이 많아 「박물관 도시」라고 불린다. 공원과 함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 거리를 둘러본 후, 도시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 떨어진 히스토린 디스트릭트로 향했다. 소 경매가 열리는 곳이다. 오후가 되자 긴 뿔의 소들이 거리로 나와 시가행진을 벌였다. 댈러스는 하이테크 기업들이 모여 있는 비즈니스 도시다. 석유로 거둬들인 수입으로, 쇼핑에 관해서라면 뉴욕과 라이벌일 정도로 사치스럽다고 한다. 남편은 한국음식을 먹겠다며 댈러스의 한국타운을 찾아 나섰는데, 두 시간 가까이 헤맨 끝에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허기를 오래 참았더니, 막상 음식이 나오자 허기가 온데간데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언제 또 한국음식을 먹겠냐 싶어 오랜만에 실컷 먹었다. 이날 밤은 40달러에 하얏트 호텔에서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 모두가 피곤했지만, 댈러스의 밤도 이날이 마지막인 탓에 우리는 호텔 옆 리유니언타워로 향했다. 댈러스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테이블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댈러스를 모든 각도에서 보여 줬다. 다음날 아침 간 곳은 케네디 박물관. 1963년, 암살자가 존 F. 케네디를 향해 총을 쏜 교과서 창고건물 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케네디에 대한 각종 자료와 업적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들이 세밀하게 제기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샌안토니오의 매력] 한쪽에는 하이테크 키즈들이, 한쪽에는 히피와 무법자, 反문화가 공존하는 곳이 오스틴이라고 한다. 히피의 메카에서 라이브 음악과 예술의 중심지로, 텍사스의 실리콘밸리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곳 주립대(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남편의 회사 후배를 만났다. 이분은 박사과정 졸업시험 중인데도 고맙게 우리 가족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 오스틴의 부자 동네 오크힐에 올라 보니 미국 부자들의 사는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강이 흐르고, 양쪽 강변으로 아름답게 들어선 집들, 집집마다 흰색의 보트가 있고 수영장이 보였다. 보트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데, 석양과 함께 멋지게 어울렸다. 남편 후배는 이어 대학 구석구석, 쇼핑을 즐길 수 있는 6번가와 텍사스 州의사당까지 안내했다. 가이드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샌안토니오의 독특함과 매력은 어디서 올까? 아마도 1700년대 스페인 식민지 시대, 1800년대 독일 이민자들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 멕시코의 지배가 풍겨 주는 오랜 역사와 그 속에서 어우러진 다국적인 문화에서 올 것이다. 그런 독특함 때문인지 이곳의 숙박료는 거의 살인적이다. 다운타운에서 자려니 100달러를 훌쩍 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변두리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찍 다운타운으로 가기로 했다. 다운타운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도시의 첫인상이 참 좋았다. 다운타운 중심에 있는 운하가 이 도시의 매력이었다. 조그만 배를 타고 운하를 한 바퀴 돌면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대체로 음미해 볼 수 있다. 마침 코카콜라社에서 배에 탄 관광객들의 콜라 마시는 장면을 촬영한다며 콜라를 공짜로 나눠 줬다. 여러 나라와 여러 도시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었다. 노천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여행의 재미가 더해진다. [지구의 끝에 온 듯한 자유로운 기분] 멕시코로부터의 독립운동 근거지가 된 알라모를 돌아보고 멕시코灣(만)의 끝인 코퍼스 크리스티로 향했다. 파드라 아일랜드 내셔날 시쇼어에 가기 위해서다. 새들과 물의 고향인 듯한 그곳의 하얗고 단단한 백사장이 나왔다. 이곳은 자동차로 백사장을 달릴 수 있다. 5마일 정도 달리는 동안 마치 지구 끝에 온 것 같은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은발의 백인 아저씨에게 가족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분은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하며 10장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곳에서 캠핑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휴스턴으로 향했다. 나사 로드(Nasa Road)에 있는 존슨 스페이스 센터는 기대만큼 놀랍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미래에 대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만족했다. 위성관제센터와 실제 우주선과 같은 거대한 우주선도 구경하고 달의 암석과 우주비행사가 있는 건물의 구내를 볼 수 있었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미국 대기업의 본사가 모여 있는 휴스턴은 석유 때문에 대단히 풍요롭다.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 박물관에서 그 윤택함이 느껴진다. 휴스턴 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던 에너지회사 「엔론」의 붕괴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하이테크산업과 우주산업으로 여전히 자신감에 넘친다. 1800년대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히스토릭사이트와 거대한 다운타운도 볼 만했다. 아이가 좋아할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는데 공룡이 많아 무척 좋아했다. 미국 남부에는 우리가 TV를 통해 자주 본 플랜테이션 농장이 아직 남아 있다. 뉴올리언스로 향하면서 우리는 미시시피江을 따라 펼쳐진 오크알리 농장을 가보기로 했다. 한 세기가 훌쩍 넘은 큰 저택과 저택 앞으로 난 아치형의 울창한 가시나무 숲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저택 투어를 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우리는 꾀를 내어 가시나무 숲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저택 옆을 지나는 길에 그 당시 노예의 나이와 보유기술에 따른 가격이 나와 있었다. 남편은 그 기준으로 하면 가치가 800달러였다. [피로와 짜증을 한꺼번에 날린 뉴올리언스] 뉴올리언스는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짜증을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화끈한 도시였다. 미국의 도시들은 밤이 되면 죽음의 도시처럼 썰렁하다. 하지만 뉴올리언스는 예외다. 뉴올리언스市의 비공식적 모토는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게 하라」이다. 아프리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카리브 등의 요리법의 영향으로 인해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숙박비가 역시 비쌌지만, 남편은 맘에 들었는지 하루를 더 묵겠다고 했다. 「감정의 해방구」, 프렌치쿼터 안의 거리를 걷다가 유명한 오이스터 바에서 신선한 굴을 맛보았다.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드는 화려한 버번스트리트에서는 사방에서 재즈가 들려오고, 이성을 무장해제한 듯한 사람들의 외침이 넘쳐난다. 『엄마, 여행이 낮에는 재미없고 밤에만 재미있는 것 같아』 마치 알코홀릭 테마파크를 걷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엄마, 여행이 낮에는 재미없고 밤에만 재미있는 것 같아』라고 한다. 아이도 밤문화의 재미를 알아버린 걸까? 우리는 한 시간 이상 긴 줄을 서서 그 유명하다는 프리저베이션 홀에 들어가 재즈의 진수를 들었다. 서너 평의 조그만 방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이 가득찼다. 연주자와 맨 앞줄 사람의 거리는 불과 1m도 채 안 된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흥겨운 재즈에 맞춰 나도 모르는 새에 몸이 움직여졌다. 한참 감동에 빠져들려는데, 아이가 자고 싶다며 떼를 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간 곳은 베니에라는 프렌치 도넛을 파는 「카페 드몽드」. 100년이 넘은 곳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도넛과 카페오레를 산 후 옆 공원에서 거리의 음악가가 연주하는 재즈를 들으면서 먹는 맛이 괜찮았다. 뉴올리언스에서 루이지애나州, 미시시피州, 앨라배마州 등 3개州 경계를 넘어 야자수가 반갑게 맞아 주는 플로리다州에 들어왔다. 쿨(cool)한 젊은이들의 비치로 이름난 파나마시티와 펜사콜라비치를 지나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 부시가든이 있는 마이애미의 서부 탬파에 왔다.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미국인은 이런저런 여행 정보를 알려줬다. 그는 올랜도 디즈니월드를 「마우스 트랩」(쥐덫이라는 뜻)이라 부르면서, 아프리카 테마탐험이 특이한 「부시가든」을 더 추천했다. 플로리다 주민은 정작 부시가든을 더 많이 가나 보다. 우리는 탬파에 와서야 그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아쉽게도 갈 수 없었다. 미국인은 『마이애미는 갱들이 많아 위험하니 아이와 같이 가는 것이 좋지 않다』며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플로리다州는 미국內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州 중의 하나였다. 특히 쿠바系 갱들의 악명이 높다고 한다. 렌트카를 노린 범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마아애미에 가는 분들은 조심하도록. 41번 도로를 타고 광활한 늪지대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지났다. 아이는 늪지에서 본 악어가 신기한 듯 마냥 즐거워했다. 말로만 듣던 마이애미에 도착하니 기분이 새로워졌다. 지중해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고급 주택가 코럴 게이블스에서 빌트모어 호텔을 보고, 번화가 코코넛그로브를 지났다. 끝없이 펼쳐진 흰 모래밭, 해변에 들어선 크고 작은 호텔들이 마이애미를 세계적인 휴양지로 만들고 있었다. 특히 사우스비치의 아르데코 지구는 화려하고 건강한 구릿빛의 사람들로 「물」이 끝내 준다. 밤에는 하바나와 리우, 몬테카를로의 열정이 온 거리에 가득했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기엔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일찍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헤밍웨이가 살던 키웨스트]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지는 US 1번 도로를 타고 152마일 거리다. 그렇지만 편도 1차선이라 거의 다섯 시간이 걸린다. 키웨스트까지 가는 동안 섬이 끝없이 펼쳐졌다. 키웨스트는 이러한 섬들의 가장 끝에 있는 미국 최남단의 섬이다. 키웨스트는 헤밍웨이, 트루먼이 여생을 보낸 곳으로 오랫동안 동성애자, 쿠바人, 어부 등 흥미로운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 왔다. 해질 무렵, 말로이 광장으로 가보니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일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많은 관광객들과 자유로운 거리공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아예 바닥에 앉아 거리공연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일몰은 아름다웠고 앞바다에 떠다니는 배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낭만적 분위기에 흠뻑 빠져 칵테일을 들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헤밍웨이가 단골로 찾던 바가 있다는 듀발 스트리트와 항구 쪽의 거리를 걸었다. 별 두 개짜리 숙소가 100달러에 육박하는 비싼 숙박료가 이유가 있어 보였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 가장 비싼값을 주고 가장 허름한 호텔에서 잤으니 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헤밍웨이가 살던 집 투어를 했다. 이 소박하고 아담한 집에서 10년 동안 「무기여 잘있거라」 등 70% 이상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아직도 그가 키운 고양이들의 후손들이 집안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의 침실, 욕조, 책상 등 유품들이 방 안에 가득했다. 가이드는 연신 헤밍웨이가 바람둥이였음을 반복했다. 낭만적 분위기에 빠진 탓일까, 남편은 『랍스터가 먹고 싶다』는 나의 말을 흔쾌히 들어 주었다. 키웨스트를 떠나 마이애미에서 1박을 한 우리 가족은 올랜도로 향했다. 지루해하던 아이를 지금껏 『올랜도 디즈니월드에 간다』며 달랜 터였다. 4개의 테마파크와 2개의 워터파크로 이루어진 올랜도 자체가 거대한 디즈니 세상이다. LA 디즈니랜드의 거대함에 입이 떡 벌어졌는데, 올랜도는 그 수십 배에 달한다니 그 엄청난 규모가 대단하다. 올랜도에는 디즈니월드 외에도 유니버셜스튜디오, 시월드 등 온갖 테마파크가 있고, 외곽에는 케네디 우주센터가 있어 全세계로부터 몰려온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짧은 기간에 후회 없이 즐기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입장료가 1인당 40달러를 넘어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껏 기다려온 아이를 생각하면 비용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2박3일 코스로 잡았는데, 실제는 4박5일이 되었다. 하룻동안 한 테마파크를 제대로 보려면 머리를 써서 전투적으로 다녀야만 효율적으로 시간낭비 없이, 피곤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 테마파크의 지도를 보고 대강의 동선을 정한 後, 「패스트 트랙」(표를 미리 끊어 놓으면 정해진 시간에 줄을 길게 서지 않고도 입장할 수 있음)으로 해놓을 것과 줄서서 기다릴 것을 구분하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세인트오거스틴과 남부의 심장부 애틀랜타] 아쉬움 속에 올랜도를 뒤로 하고 해안가를 따라 A1A도로를 타고 「데이토나 비치」를 거쳐 아담하고 고요한 세인트오거스틴 비치에 도착했다. 1565년 스페인 개척자가 처음 들어오고, 후에 영국인이 점령한 세인트오거스틴은 어느 곳이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멋진 상점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스페인풍 건축물이 독특하다. 침략자로부터 이 아름다운 도시를 지켰던 별 모양의 캐스티요더샌마커스 요새는 꼭 한번 가볼 만하다. 플로리다州의 주도인 「탤러해시」에서 남편 선배의 가족을 만나 맛있는 한국음식을 대접받은 후 新남부의 수도, 애틀랜타로 향했다. 남북전쟁 후 완전히 폐허가 됐지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처럼 강한 성공의 의욕을 가진 사람들의 힘으로 비약적으로 발전, 1995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新도시의 전형이 되었다. 코카콜라에서 CNN까지 굵직한 기업의 본사들이 위치해 있는 애틀랜타에는 다섯 가지 볼거리가 있다. 첫째는 코카콜라 박물관. 코카콜라에 관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옛 코카콜라 광고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둘째는 전철을 쇼핑몰과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개조한 언더그라운드. 지상과 지하로 여섯 블록에 걸쳐 있다. 오래된 것을 허물지 않고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지혜가 부럽다. 셋째는 마틴 루터 킹 기념관. 애틀랜타에는 흑인들이 많았는데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이들이 主流가 되어 활기차게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소박하게 꾸며졌지만 넓은 마틴 루터 킹 기념관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네 번째로 가본 곳이 스톤 마운틴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영웅 3인방인 데이비스, 리, 잭슨 장군의 기마像이 화강암에 새겨져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톤 마운틴에 올라가면서 3명의 장군像이 한눈에 다가왔다. 제작기간만 50년이었던 이 작품은 높이 122m에 가로 45m인 대작이다. 頂上에 오르니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 가슴 가득히 애틀랜타의 활기찬 향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다섯 번째는 우리가 이름 붙인 「애틀랜타의 코리안타운」이다. 남편은 그 『도시의 코리안타운은 우리한테 하나의 어트랙션이다』고 늘 주장했다. 어느 도시의 코리안타운이 어떻더라는 것도 기억에 남는 일 아니냐면서. 미국 어느 도시에서나 대개 그렇듯, 이곳 코리아타운도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음식은 맛있었다. 우리는 다음날 이곳을 찾아 미용실에서 단체로 머리를 잘랐다. 神의 경지에 이른 남편의 운전 솜씨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입성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韓人타운 애난데일. 여행지의 맛난 음식이 더 좋은 나로서는 여행 초기 코리안타운을 찾으려 하는 남편과 늘 싸움을 하는 편이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스스로 코리아타운을 찾게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저녁을 먹고 페어펙스에 있는 친구집에 들렀다. 폭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우 도착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운전은 이제 神의 경지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매일 난생 처음인 곳을 가는데 남편은 어떻게든 숙소며, 관광지를 찾아내고야 만다. [공짜로 즐긴 스미소니언 박물관] 남편이 東京大 교수인 친구의 가족 역시 일본에서 워싱턴에 정착한 지 3일째로, 워싱턴 첫날인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정말 기적같이 만난 우리는 친구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면서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들. 그런데 그 박물관이 모두 무료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주차하기 어려운 게 흠이지만, 일찍 서두르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서둘러 자연사박물관, 우주항공박물관, 미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을 대충 둘러보는 데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워싱턴의 상징인 국회의사당과 어느 방향에서도 볼 수 있게 우뚝 솟아 있는 워싱턴기념관에 들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아담한 조지타운 대학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보였지만 아담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베트남국수로 허기를 채운 우리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링컨기념관에 들러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했다.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 들른 후 뉴욕을 향해 떠났다 환상적인 마천루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해저터널인 링컨터널에 이르자 혹독한 트래픽 잼(교통혼잡)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32번가의 한국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맨해튼 중심에 위치한 남편 후배의 집을 찾아 하룻밤 신세를 졌다. 방 두 개짜리의 방세가 月 3000달러 안팎 한다는 말에 기가 죽었다. 뉴욕의 호텔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4박5일 중 주말에는 뉴어크공항 근처에서, 주초에는 맨해튼의 호텔에서 지냈다. 비싸더라도 맨해튼을 제대로 보려면 맨하튼 안에서 호텔을 잡는 게 정답이다. 트래픽 잼이 만만치 않아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주차할 곳도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통행료가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뉴욕에서는 차를 버려야 뉴요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나로서는 8년 만의 뉴욕 방문이다. 9·11테러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걸을 때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모습이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차이나타운의 중국음식점에서 남편의 선배가 사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향했다. 大英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은 약탈품이 상당수지만, 이곳은 거의 약탈이 아닌 구입한 것이 다른 점이라 한다. 하루 종일 봐도 부족할 것 같았지만 지루해하는 아이 때문에 반나절 이상을 볼 수 없었다. 뉴욕에서 뮤지컬을 못 본다면 뉴욕을 가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당일 티켓을 50% 안팎 할인한다는 창구에 가서 뮤지컬 「미녀와 야수」 티켓을 사서 관람했다.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삼성과 LG의 큰 광고판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흐뭇했다. 넘쳐나는 사람들, 빽빽한 자동차,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택시, 사방의 광고판이 현란한 타임스퀘어 한가운데 서 있으니까 마치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장난감 가게 토이재러스 간판을 본 아이는 연신 졸라댄다. 안 가고 배길 수 있는가. 다음날은 아트 갤러리와 바, 음악인들, 예술인들과 쇼핑객들로 북적이는 소호를 비롯해 그리니치빌리지, 워싱턴스퀘어, 유니언스퀘어, 매디슨스퀘어까지 엄청 걸었다. 남편은 회사 동료들을 만나 한국음식점에서 저녁과 함께 모처럼 소주를 마셨는데 무척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기분좋게 주차한 곳에 돌아오니 자그마치 115달러짜리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지 않은가. 위에 붙어 있는 요일과 시간만 확인하고 정작 바닥에 있던 소화전은 보지 못한 것이다. 벌금 가격이면 맨해튼의 호텔에서 하루쯤 더 묵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후회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 다음날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뮤지컬 「42번가」를 봤다.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고 싶었지만 표를 구할 수 없었다. 뮤지컬을 보고 센트럴파크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었다. 자유와 거리공연, 댄스와 음악이 거기 다 있었다. 뉴욕을 떠나기 전 트럼프타워에 들렀는데 운 좋게도 출근하는 트럼프氏를 볼 수 있었다. 그를 보자 여학생들이 「꺅」하고 소리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는 웃으며 사진 촬영 요청에 응했다. [대학도시 뉴헤이븐과 보스턴] 뉴헤이븐은 예일大 자체가 뉴헤이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고 지적인 인상을 주는 도시이다. 아담한 규모에 외부와 격리되어 학문만을 연구하는 듯한 정갈한 인상을 주었다. 미국은 현재 예일大 전성시대다. 現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클린턴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이곳 출신이다. 미국에서는 출세하려면 명문 로스쿨이나 MBA를 해야 하는데, 로스쿨 중에서 으뜸이 예일大다. 우리는 예일大 구내에서 예일大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아이에게 사 주었다. 『너 이 다음에 어느 대학 갈 거지?』 눈치가 빠른 아이는 『예일大』 하며 기분을 맞춰 주었다. 보스턴에 입성한 우리는 곧바로 하버드 대학으로 향했다. 역시 다른 어느 대학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법대 앞에서 사진 한 컷. 남편은 이곳에서도 한마디 한다. 『학부를 하버드에서 나오고 예일大 로스쿨을 나오면 환상일 텐데…』 하버드 대학을 가르지르는 강가 풀밭에서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다시 대학생이 될 수 있다면 멋지게 보낼 수 있을 텐데…. 보스턴에서 캐나다 퀘벡으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멀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여섯 시간을 달려 버몬트州를 지나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도착했다.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캐나다로 들어서자 모든 게 달라졌다. 라디오에서는 절반 이상 프랑스語 방송이 흘러 나왔다. 「마일」로 쓰여 있던 도로표지판은 어느덧 「킬로미터」로 바뀌었다. 중국음식점에서 요기를 하고 퀘벡에 예약한 호텔로 들어서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캐나다의 작은 프랑스」라고 불리는 퀘벡의 올드타운은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았지만 예쁘고 근사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게 중세 城 같은 건물이 즐비하고 그중에서도 퀘벡의 상징, 샤토 프롬트닉이 눈에 띈다. 아줌마의 힘 영국이 지배할 때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 이 도시의 특징. 성벽 곳곳에 옛 대포가 그대로 놓여 있다. 퀘벡은 지배권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한때 캐나다로부터 독립을 요구할 정도로 프랑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주민의 95%가 프랑스語를 쓴다고 한다. 어느 작은 레스토랑 앞에서 프랑스語를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룹의 사진을 찍어 드렸는데, 우리도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서 그 레스토랑이 퀘벡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며 꼭 들르라고 권한다. 한 바퀴 둘러본 우리는 속는 셈치고 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나는 캐나디언프렌치 음식을 시켰는데, 양도 많고 건강식인 것 같았다. 남편은 주방장 특선 요리를 주문했는데, 돼지족발 같은 게 푸짐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맛도 있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싸가기로 했다. 그런데 「투 고(To Go: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것)」가 안 된다는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웨이트리스 몰래 냅킨에 음식을 싸왔다. 남편은 『역시 한국 아줌마는 대단해』라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오타와는 1858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캐나다의 수도로 낙점되었다. 수도답게 캐나다의 국보들이 모여 있는데 아름다운 공원과 6개의 국립박물관, 3개의 대학, 내셔널 아트 갤러리 등 독특한 캐나다의 역사와 전통이 곳곳에서 숨쉬고 있다. 녹색 빛깔의 의사당과 국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도시는 그야말로 아름답다. 남편은 지금도 『만약 이민을 간다면 오타와로 가고 싶다』고 할 정도다. 온타리오江을 바라보며 오타와의 멋에 흠뻑 빠져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사우전아일랜드(천섬)을 가기 위해 킹스턴으로 출발했다.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이 만들어진 곳] 지나는 길에 록포트港에 우연히 들렀는데 「천섬」 관광을 한다는 게 아닌가. 역시 현장에서 부딪혀야 한다니까. 킹스턴에서 동쪽으로 브록빌까지 130km에 걸쳐 펼쳐지는 세인트로렌스江 위에 1800여 개의 섬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 천섬에는 어떻게 우편배달을 할까? 우편배달부가 모터보트를 타고 각 섬으로 우편물을 배달한다고 한다. 자동차는 없어도 배가 없으면 살기 힘든 곳이 이곳이다. 외로운 섬에 사는 부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담 요리사가 선보인 드레싱이 바로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의 유래다. 이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한 시즌에만 이곳에 머물고 나머지 기간은 비워 둔다고 한다. 토론토는 영국계 캐나다의 최대 중심지로 국제적인 경제·문화·상업도시다. 차가 도시 속으로 들어가자, 도시가 엄청 크다는 느낌이 든다. 토론토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553m의 CN타워는 이곳의 명물 중 명물. 땅바닥이 보이도록 맨 꼭대기에 마련된 글라스 플로어에 누워 있으면 금방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아 기분이 아찔하다. 코리아타운이 생각보다 컸다. 한국음식점에 들렀는데, 어찌나 반찬을 많이 주던지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20년 동안 한국음식점을 운영했다는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요즘 조기 영어연수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도 이제 여행에 익숙해졌나 보다. 숙소에서 만나는 외국아이들과 잘 어울려 논다.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 사람보다 더 친절하고 친화력이 좋은것 같다. 오늘도 같이 논 아이들에게 『아이 러브 유』라고 한다. 이러다 파란 눈의 며느리를 데려오면 어쩌지? 토론토에서 한 시간쯤 달리니 나이아가라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비가 와서 흐리고 안개가 많이 끼었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장관이다. 호텔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폭포의 모습이 무척 멋있다. 1km에 이르는 넓은 강폭, 54m 높이에서 매초 300만ℓ의 물이 곤두박질치며 내려오는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위대한 자연교향곡을 들려 주는 것 같다. 캐나다 쪽 폭포가 아무래도 미국 쪽 폭포보다는 훨씬 웅장하고 멋지다. 다시 미국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다시 미국으로 넘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냥 다리를 하나 넘으면 미국이니까. 미국으로 들어올 때 검문이 꽤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아이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갈 곳은 오하이오州의 클리블랜드. 안 그래도 태풍이 중서부를 휩쓸고 있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우박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막 떨어진다. 그러더니 조금 가니까 또 쨍쨍한 날씨다. 정말 미국은 넓고 날씨는 다양해서 어딜 가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 시카고는 역시 바람의 도시이다. 시카고로 가는 길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토네이도가 보였다. 회색 모래기둥 같은 것이 저 멀리 평원에 보인다. 바람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어진다. 듣던 대로 시카고의 스카이라인과 건축물은 너무 멋지다. 예약한 호텔에 들어가니 발레파킹 비용이 36달러라고 한다. 거의 하루치 호텔값과 비슷하다. 다운타운 중심가의 매그니휘슨 마일을 따라 걷다 보면 고급 상점과 백화점들이 즐비하여 눈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는 셋이서 탈 수 있는 재미있는 자전거를 빌려 아름다운 강변의 공원을 달렸는데,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정말 만점이었다. 저녁에는 이름난 블루스하우스에 가 분위기를 잡고 싶었지만 아이가 있으면 입장이 불가하다고 해 시카고의 야경을 보기 위해 94층 존콕센터에 올라갔다. 야경도 아름답지만 건물이 예술 작품에 가까워 오히려 낮에 보는 것이 더 멋질 것 같다. 시카고에서 맞은 아이의 생일을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놓고 축하해 줬다. 이날 기분이 좋았던 우리 가족에게는 멋진 생일파티였다. 밀워키는 독일계와 폴란드계 이민자들에 의해 전해진 맥주, 소시지, 치즈가 유명하다. 밀워키에 들어서자마자 밀러공장을 견학하러 갔다. 공장의 규모가 크고 한 시간 정도의 무료 공장견학은 체계적이다. 맥주 맛의 비밀은 어디 있을까? 바로 이스트와 공기를 압축시키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한다. 견학을 끝내고 방금 만들어진 밀러를 시음했는데 그 맛이 고소하고 신선하다. [「분수의 도시」 캔자스시티] 西進(서진)을 하려다 계획을 바꿨다. 그 좋다는 덴버를 가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 자동차를 남쪽으로 돌렸다. 「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캔자스시티는 로마를 제외하고는 분수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가볼 만한 곳은 스페인 건축양식의 아름다운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컨트리클럽 플라자.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일요일이라 도시는 텅 비었고 이곳에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하다. 캔자스州의 주도 토피카에서 잠을 잔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여덟 시간을 달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도착했다. 콜로라도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정리되고 청정한 느낌이다. 만년설로 하얗게 덮인 해발 4300m의 파이크스 피크가 병풍처럼 도시를 두르고 있다. 현재는 하이테크 통신산업 타운으로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는 은퇴한 장성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 하여 「미국에서 별이 가장 많은 도시」로 불리기도 했다. 압권은 세 시간 동안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피크콕 열차를 타고 파이크스 피크에 오르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 왔는지 열차는 만원이었다. 열차를 타고 頂上에 오르니 새의 눈높이에서 전체 산을 바라볼수 있는데 頂上의 만년설이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한다 이제서야 왜 산 이름이 로키인지 알았다. 정말 바위가 많다. 심하게 말하면 돌산이다. 그런데 위엄 있는 근육질의 남자처럼 너무 멋들어지게 버티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길이는 총 4500km이며, 최고봉은 앨버트 산으로 높이가 4399m에 이른다. 전체 로키 마운틴 중에서 미국에 걸쳐 있는 부분은 북쪽으로 몬태나州, 아이다호州, 중앙에서는 와이오밍州에서 유타州에 이른다. 남쪽에서는 콜로라도州와 뉴멕시코州까지 펼쳐지고 서쪽으로 네바다州와 애리조나州까지 펼쳐져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좋은 날씨와 산, 바위, 태양과 눈, 소나무가 완벽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로키마운틴의 상징인 큰 뿔 양과 엘크(Elk), 사슴, 사자, 비버들까지 어울려서 말이다. 좁은 산길을 달리다가 남편이 갑자기 깜짝 놀라 황급히 차를 세운다. 엘크가 우리 차 바로 앞으로 뛰어들려고 한 것이다. 엘크도 놀란 듯 우리를 쳐다보다가 황급히 길을 건넌다. 남편은 십년 감수한 표정이었다. 아이는 차 뒤에서 좋아 환호를 부른다. 5월의 로키 마운틴은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완벽했다. 언젠가 이곳에서 캠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연과 조화되어 브라운색의 낮은 건물로 아기자기하게 지어진 콜로라도 대학을 둘러보고 콜로라도州의 주도인 덴버로 향했다. [국립공원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물과 불의 작용으로 형성된 부지 80만ha의 옐로스톤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한마디로 모든 미국 국립공원의 장점을 다 모아놓은 것 같다. 그랜드루프 로드를 따라가면 그랜드 캐니언 같은 캐니언(옐로스톤 그랜드 캐니언)도 볼 수 있고, 나이아가라 같은 폭포도 볼 수 있다. 레이크타湖 같은 호수(옐로스톤湖)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매머드 핫스프링스와 올드페이스풀까지 모두 볼 수 있다. 100% 야생으로 자란 바이슨(아메리칸 들소. 버팔로라고 한다), 엘크를 수시로 만날 수 있는데다가 운이 좋으면 곰까지 볼 수 있다. 처음엔 『바이슨이다』 하고 신기한 듯 놀라서 소리 지르던 아이도 어느새 『또 바이슨이네』 하고 얘기하게 됐다. 이곳에서 캠핑하면서 낚시를 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공원 밖으로 빠져나가려는데, 바이슨들이 떼지어 도로를 점령하는 게 아닌가. 경적을 울려댈 필요가 없다. 이처럼 신기한 장면을 언제 또 볼 수 있겠는가. 남편은 재미있다는 듯 창문을 열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우리는 옐로스톤에 잠시 놀러왔을 뿐, 주인은 바이슨들이 아닌가. 차 바로 앞에 떼지어 지나가는 바이슨들의 모습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공원 입구에서 받은 경고장에는 해마다 바이슨의 뿔에 받혀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적혀 있다. 1시간30분 정도의 주기로 폭발하듯 솟는 뜨거운 간헐천 올드페이스풀도 볼 만하다. 노란 바위들 위로 흐르는 매머드 온천─ 이 노란 바위 때문에 그 이름이 옐로스톤이다. 여기 저기에서 끓고 있는 물들을 보면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고 계속 변하는 자연의 힘이 실감난다. [캘거리를 거쳐 밴프·재스퍼 국립공원에] 그레이셔 국립공원을 스쳐 지나갔는데 아직 여름철 시즌이 아닌 탓에 스산하기까지 했다. 너무 황량해 그냥 캐나다까지 계속 달려 캘거리로 향했다. 198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캘거리는 평균 연령 30세의 젊은 개척자들의 도시라고 한다. 다운타운으로 들어서자 차이나타운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동양사람들이 많고 낯설지 않다. 차츰 눈이 뿌리는데 거리에 음악이 퍼지고 어디선가 사람들이 마라톤 복장을 하고 하나둘씩 모여든다. 주민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제 가야 할 곳은 그 유명한 밴프와 재스퍼가 있는 캐나디언 로키. 몇 년 사이 한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는 곳이다. 캘거리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밴프를 향해 서둘러 가는데 도로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린다. 캐나디언 로키의 관문인 밴프는 5월인데 겨울이다. 겨우 밴프의 조그마한 다운타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다운타운에 나갔다. 알프스 마을처럼 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급스럽고 예쁜 밴프 다운타운에는 7000명의 주민들과 더불어 엘크가 살고 있다. 엔진오일 교환하는 곳을 찾는데 이게 뭔가? 사람들이 사는 거리의 집 앞에 엘크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황급히 사진기를 찾아 찍는데 주민인 듯한 남자가 오히려 우리가 더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며 웃고 간다. 나중에 들으니 여기 주민들에게는 엘크를 거리에서 보는 것은 우리가 길에서 개를 보는 것과 같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한다. 짝짓기 철이나 출산 시기에는 엘크들이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캐나다의 어느 고위 관료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자연을 수출할 수 없다면 대신 관광객들을 수입해야 한다』고. 밴프에서 재스퍼로 가는 길은 그의 말이 실감나게끔 해준다. 봐야 할 게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빙하에 깎여 끝이 뾰족한 3000km가 넘는 높은 산들에 구름이 걸려 있는 풍경은 마치 하늘나라를 상상하게끔 한다. 어느 쪽을 봐야 할지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아름다운 경치의 연속이어서 아예 한쪽만 보고 다음날 재스퍼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른 쪽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먼저 「캐슬 마운틴」이 보인다. 산의 모양이 성처럼 우뚝 서 있어 캐슬 마운틴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주 웅장하다. 다음부터는 계속 에메랄드빛 호수들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5월의 이곳 호수는 얼음과 눈에 덮여 있다. 경치에 푹 빠져 두 시간쯤 달렸을까, 컬럼비아 아이스필드가 나온다. 북극권을 제외하고 북반구에서 가장 광대한 325km2의 빙원이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시베리아 雪原(설원)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로 매년 빙하가 조금씩 녹아 줄어들고 있다. 아이스필드 센터에 가보니 놀랍게도 한국의 사발면이 있지 않은가. 꽁꽁 언 아이스필드를 바라보며 먹는 사발면 맛은 정말 별미다. 우리는 바퀴가 어른 키보다 훨씬 크게 특수 제작된 雪上車(설상차)를 타고 아이스필드로 들어갔다. 아이와 남편은 얼음과 눈 위를 걸으며 무척 좋아한다. 일본 관광객들이 정말 많다. 설상차를 운전한 투어 가이드는 자기가 산을 타는 사람이며 스키어라고 소개한다. 멋있게 생겨 사진을 함께 찍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산에서 나서 산에서 살고 산을 즐기며 평생을 산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캐나다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재스퍼는 「옥」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재스퍼에서는 「캐나디언 제이드」라는 초록색 옥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우리는 피라미드 레이크에 있는 산장에 묵었다. 모처럼 過用을 했다. 호수와 산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기에 조그마한 야외풀이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뜻밖에도 모두 한국분들이었다. 50代 안팎의 세 남매 부부가 밴을 빌려 LA부터 여기까지 해안선을 따라 올라왔다고 한다. 패키지 여행이 싫어 운전을 번갈아 하면서 재미있게 여행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세수하는데 물에서 옐로스톤의 물 같은 유황 냄새가 난다. 아침에 일어나니 피부가 매끌매끌한 게 오염되지 않은 물 덕분인 것 같다. 눈이 더 많이 내린다. 「호수 중의 호수」로 유명한 레이크 루이스는 빙하의 침식으로 생긴 웅덩이에 빙하가 흘러내려 고인 호수로, 빅토리아山과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남편은 풍만한 여인네가 누워 있는 다리 사이로 호수가 들어 있는 모습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꼭 여자에게 비유를 해야 하나? 에메랄드빛의 호수가 아름답다는데, 오늘은 호수가 꽁꽁 언데다 눈이 덮여 있어 그 색깔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설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루이스」라는 호수 이름은 빅토리아 여왕이 캐나다로 시집보낸 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뜻한 도시 밴쿠버] 태평양 바다와 울창한 숲, 도시가 잘 조화된 밴쿠버의 眞價는 스탠리파크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도시 옆에 거대한 자연을 그대로 두고 있는 행복한 밴쿠버 주민들이 부럽다. 산책로가 아주 잘 돼 있고 사방에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다운타운은 서울과 뉴욕을 섞어 놓은 듯 시원하게 뻗어 있고 관광 휴양지라서인지 사람들이 친절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중심부를 조금 벗어나면 한국음식점이 모여 있는 먹자거리가 나온다. 이곳 음식은 싸고 맛도 좋다. 배불리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다. 한국 사람들이 살기에 물가와 인프라가 안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기유학의 천국으로 떠오르는 걸까. 밴쿠버에서 페리로 바다를 건너면 빅토리아 섬이다. 1868년 영국인 이주민에 의해 개척된, 캐나다에서 가장 영국적인 냄새가 난다. 페리에 차를 싣고 가는데 절차가 간단하다. 빅토리아 섬에 내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인 부차드 가든으로 갔다. 영국에서 온 부차드 부부가 탄광을 아름다운 꽃들의 정원으로 가꾼 곳이다. 5월의 부차드 가든은 갖가지 색깔의 꽃들로 황홀할 지경이다. 사진을 계속 찍게 된다. 꽃에서 찍으면 더 예쁘게 나오려나? 부차드 부인은 세계 각지에서 꽃씨를 가져다 이곳에 심었는데, 정원은 몇 가지 테마로 꾸며 있다. 「일본 정원」, 「이탈리아 정원」, 「장미 정원」 등이다. 정원 옆의 레스토랑에는 영국식 애프터눈 티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다운타운에 들어서자 빅토리아의 상징인 州의사당, 임프레스 호텔 등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빨간색의 2층버스가 영국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노을이 지는 항구에 여유롭게 세워져 있는 배와 요트들 사이에 거리공연들이 한창인데, 분위기가 키웨스트 같기도 하고 낭만적이다. 특히 두 남녀의 타악기 연주와 노래에 빠져 아이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잠 못 이루는 도시 시애틀과「포도주의 도시」나파밸리]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는 시애틀은 호수·산·바다로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보잉社와 마이크로 소프트社가 있어 산업 또한 번창하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도시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날씨가 흐리고 북쪽이라 그런지 좀더 차분한 느낌을 준다. 시애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간 곳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들어서자마자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하다. 시애틀의 해산물이 미국에서 최고라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어떤 상점은 누가 해산물을 살 때마다 그 해산물을 주고 받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기도 한다. 스타벅스가 처음 오픈한 이곳엔 커피숍이 많다. 그중 한 곳에 들러 시애틀 사람처럼 여유롭게 커피와 코코아를 즐겨 봤다. 쌀쌀하고 습기가 많은 날씨 탓인지 커피향이 그윽하게 몸속까지 퍼지는 것 같다. 밤에는 끝부분이 바늘처럼 뾰족한 타워인 「스페이스 니들」에 올라가 시애틀의 야경을 봤는데, 시애틀에서 왜 밤 늦게까지 잠 못 이루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포도주 익는 뜨거운 도시 나파밸리로 간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독특한 맛은 샌프란시스코 해안의 날씨에서 비롯되는데 낮에는 30℃ 이상을 웃돌고 밤이면 10℃ 이하까지 떨어져 산도와 당도가 견실한 와인을 만들어 낸다. 그런 날씨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나파와 소노마 밸리다. 먼저 들른 곳은 산타로사라는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마을인데, 이곳에서 와이너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베링거·몬다비·스털링 등이 유명한데, 우리가 선택한 곳은 나파밸리의 스털링 와이너리. 와이너리와 관광을 합친 현대식 개념의 와인 제조공장으로 포도밭에서 와이너리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리프트를 타고 넓은 포도밭을 죽 조망할 수 있다. 와이너리 견학은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 주고 나중에 시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포도밭의 풍경이 너무 한가로워 이런 곳에서 포도주를 만들며 뜨거운 태양을 즐기며 지내는 넉넉한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폭탄주에 찌들었던 남편은 이곳에서 1년 동안 나파밸리의 포도주를 마시며 우아하게 지냈다. 역시 사는 환경이 중요한 것인가.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떠난 지 68일 만에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섭섭한 야릇한 마음이 든다. 짐 싸고 풀고 또 짐 싸고. 가는 곳마다 새로워서 좋았지만 정들면 떠나야 하는 외롭고 힘든 생활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약간 쌀쌀한 바람과 강한 햇살을 맞으니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반갑게 느껴진다. 머무를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또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가족에게 일생일대의 살아 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은 하나의 세포 같은 일체감이다. 무엇보다 여섯 살 난 아이가 아프지 않고 여행을 마쳐서 다행이다. 여행 준비에서부터 여행하면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산 지식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 소중한 자산이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 |
첫댓글 많은 것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