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과대포장 단속률 1% 미만… “규제보다 친환경 문화 장려해야”
한과선물세트 한 상자 분해했더니 플라스틱-비닐-종이박스 한가득
공간 차지 비율-포장 횟수 등 지키면 포장 많아도 현행법상 단속서 제외
규제에 한계… 친환경 문화 정착돼야
28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추석 선물용으로 판매 중인 한과세트를 구입했다. 하지만 포장 공간 비율과 포장 횟수 등을따지는 지금의 과대 포장 기준을 적용하면 이 제품은 과대 포장 제품이 아니다. 이미지 기자
추석을 열흘가량 앞둔 2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 식품관. 이곳에서는 이미 추석 선물 판매가 한창이었다. 스티로폼 재질 받침접시로 과일을 하나하나 포장한 과일선물세트, 여러 영양제를 상자째 넣어 만든 건강식품 종합선물 등은 한눈에 보기에도 ‘과대 포장’이었다.
기자는 이곳에서 5만 원대 한과세트 하나를 구입했다. 가로 48cm, 세로 41cm 상자 안에 유과 20개, 작은 강정 24개, 약과 8개, 다식 4개, 정과 3개, 매작과 3개가 담겨 있었다. 꺼내서 한 곳에 펼치니 B4 용지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였다.
내용물과 포장재를 분리한 결과 과자 양보다 훨씬 많은 포장재 쓰레기가 나왔다. 이미지 기자
반면 이 과자를 싸기 위해 사용된 포장재 양은 적지 않았다. 크고 작은 플라스틱 용기 18개와 뚜껑 12개, 비닐 4개, 작은 기름종이 4개, 종이박스 1개와 종이커버, 띠지, 종이백, 보자기까지 있었다. 고작 선물 상자 하나를 뜯어 정리했을 뿐인데 분리배출함이 꽉 찼다. 추석 선물로 ‘한과를 산 것인지, 쓰레기를 산 것인지’ 모를 수준이었다.
○ 포장 공간 비율만 낮으면 과대 포장 아냐
여기서 문제 하나. 기자가 구입한 한과세트는 과대 포장 제품일까? 정답은 ‘아니다’다. 백화점에서 본 다른 명절 선물세트도 대부분 과대 포장이 아닌 상태다.
정부는 매년 명절 전후로 과대 포장 단속에 나선다. 올해도 29일 단속이 시작됐다. 지난해 추석에는 1만1417개, 올 설에는 1만2049개 제품을 점검했다. 적발은 각각 77건과 55건에 불과했다. 전체의 1% 미만이다. 과태료를 부과한 제품은 적발 건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선물세트 한두 개만 정리해도 가정 내 쓰레기통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데 어찌 된 일일까. 이유는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과대 포장과 법적인 과대 포장 기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과대 포장을 판단하는 기준은 △포장 크기 △포장 횟수 △포장 재질 등 3가지다. 이들은 모두 법적인 규제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포장 크기는 전체 제품에서 포장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포장 공간 비율)로 규제한다. 화장품류(두발세정용·향수 제외)는 10% 이하, 가공식품과 세제류 15% 이하, 1차 식품 등 종합제품 25% 이하 등이다.
하지만 기자가 구입한 한과세트는 플라스틱 상자와 종이 포장재가 내용물(한과) 규격에 딱 맞게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 포장 공간 비율이 제과류 기준인 포장 공간 비율 20% 이하를 위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제 포장재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과대 포장이 아닌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 포장 횟수 기준도 예외 규정 많아
선물세트 포장 횟수는 법에서 대부분 2회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의류만 1회로 제한된다.
여기도 맹점이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백화점에서 본 과일 선물세트에 주로 많이 사용되는 스티로폼 받침접시는 법적으로 포장재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제품을 완전히 둘러쌀 때만 ‘포장’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제품을 반만 싸는 받침접시는 포장재가 아니기 때문에 3, 4개씩 싸도 과대 포장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양제 세트처럼 낱개 포장된 제품을 다시 묶어놓은 세트 제품도 과대 포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보통 이런 세트 제품은 낱개 포장(1회)에 세트 포장(2회)이 더해지니 포장 횟수가 많고 이와 더불어 발생하는 포장재 양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과대 포장이 아닌 이유는 세트 제품 과대 포장 위반 여부를 따질 때 오직 ‘세트의 포장’만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양제가 플라스틱병(1회)과 종이상자(2회)에 싸여 종합세트 상자(3회)에 포함됐다고 하면 실질적으로는 내용물 포장이 3회 이뤄진 셈이지만, 법적으로는 종합세트 포장을 한 1회만 포장 횟수로 인정된다.
포장 재질 규제 역시 재활용이 매우 어려운 소재에만 적용된다. 예를 들어 폴리염화비닐(PVC) 코팅 같은 소재는 포장재로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 소재는 규제가 없다.
○ 규제만으로는 한계… “과대 포장 안 만들고 안 사야”
과대 포장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제품 손상 우려와 업계 반발로 인해 환경 규제를 마냥 강화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스티로폼 받침접시와 완충제를 규제하고 재활용이 쉬운 종이 재질로 대체하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종이는 식품에서 물이 나오면 찢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반대가 거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규제도 필요하지만 친환경 포장 문화 정착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정부가 모든 포장재와 포장 방식을 규제할 수는 없다”며 “‘쓰레기 없는 선물’이나 친환경 포장재 모델을 선보이는 등 포장 문화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종철 연세대 패키징학 및 물류학과 교수는 “소비자들도 내용물만 주거나 간단히 친환경 포장을 한 물건을 적극 구입해 기업들이 친환경 포장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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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트 완충용 받침접시-천 포장재는 일반쓰레기로 버리세요”
명절 선물세트 폐기물 처리방법
양면코팅 종이박스 재활용 가능
나무상자는 불연성 마대로 배출
명절은 선물세트가 많이 들어오는 데다 만드는 음식의 양도 많아 1년 중 가장 많은 쓰레기가 배출되는 기간이다. 당장 과대 포장을 없애거나 모임을 줄이긴 어렵지만, 분리배출을 잘하면 폐기물 양은 줄일 수 있다.
과일 선물세트에 많이 사용되는 스티로폼 받침접시나 그물 모양 스티로폼 완충재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기존 스티로폼 재활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흔히 이들 완충재는 과일상자 바닥에 까는 스티로폼과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비슷한 재질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두 완충재는 전혀 다른 재질이다. 받침접시나 그물 모양 완충재는 발포폴리에틸렌(EPE)이다. 스티로폼이 아니다. 스티로폼 재활용에 섞여 들어가면 기존 스티로폼 재활용을 어렵게 만들고 재활용품 품질을 떨어뜨린다. 일부 지자체는 EPE를 소각해 열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고 있어 비닐류로 분리배출하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하지만 별도의 안내가 없다면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반면 스티로폼의 공식 명칭은 발포폴리스틸렌(EPS)이다. 흰색은 물론 유색도 재활용이 가능하다. 다만 각 주택이 계약한 재활용업체에 따라 유색은 수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확인해야 한다.
종이상자는 재질에 관계없이 일단 혼합폐지로 분리 배출하면 된다. 양면코팅이 된 종이는 재활용이 어렵긴 하지만, 재활용 과정에서 물에 풀어 코팅 부분을 걸러낼 수 있다. 일단 폐지로 배출하는 편이 좋은 이유다.
음식쓰레기를 버릴 때도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쪽파나 대파, 미나리 등 야채의 뿌리와 양파, 마늘은 가급적 음식쓰레기가 아닌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음식쓰레기를 사료로 만들 때 퇴비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옥수수대, 조개나 갑각류 껍질, 뼈와 씨앗도 마찬가지 이유로 일반 쓰레기 배출 대상이다.
술이나 와인 선물세트는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해 내부 완충재에 천을 붙여놓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천을 떼어내서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완충재를 분리배출해야 한다. 깨질 위험이 있는 나무 상자나 도자기류는 별도의 불연성 마대를 구입해 배출한다. 깨질 위험이 적고 겉면이 날카롭지 않다면 종량제 봉투에 버려도 된다.
이런 과정이 귀찮고 번거롭다면 가급적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제품과 식품, 조리법을 이용해야 한다. 소비가 바뀌어야 배출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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