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으로 한국의 서원 9개가 2019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 그 교육과 사회적 관습은 많은 부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소수서원,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의 서원으로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서원의 건립은 조선조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 거의 이루어졌는데 그 중 옥산서원은 1572년 회재 사후 20년이 지난 다음에 건립되었는데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회재 선생은 양동마을에서 태어났고 10세에 부친을 여의고 외삼촌 손중돈문하에서 성장했다. 사림으로 벼슬길에 나가 1531년 김안로의 재임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독락당에서 7년을 자연과 더불어 거주하다가 다시 정계에 나갔으나 윤원형 이기 등이 벌린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강계의 적지에서 시봉하던 서자 이전인이 부친의 운구를 끌고 2달여에 걸쳐 경주로와서 장례를 치루었다는 이야기가 독락당 이전인기적비에 쓰여있다. 이언적은 시대의 비탈길을 힘겹게 걸어가면서도 학문과 사상의 폭을 넓혀 <구인록>, <대학장구보유> 등 여러 서적을 남겼다. 회재의 성리학적 사상은 퇴계에게 전달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옥산서원은 화개산을 뒤로하고 자옥산을 바라보며 서향을 하고있는데 그 앉은 자리가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하여 봉황의 둥지라고 한다 남계서원이나 도산서원과는 달리 .울창한 숲에 싸여 비밀스럽게 자리한다. 자개천을 감돌아 너럭바위에 세심대라는 글귀를 읽으며 삼문인 역락문을 들어선다. 학문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만이 들어오라는 것인가. 서원의 웅대한 누각이 이름표도 없이 앞을 턱 막아선다 . 가운데 3문을 ,양옆으로는 벽으로 막은 1칸씩, 그 옆으로는 부섭지붕에 누각이 딸려있으니 모두 7칸으로 된 대형누각이다. 들어서서 돌아보아야 비로소< 무변루>라는 현판이 보인다. 역락문에서 무변루를 보면 2층의 7칸 건물이지만 마당에서 바라보면 동서양재에 가려 다리가 짧은 5칸 건물로 보인다. 병산서원의 만대루는 사방팔방이 다 트여 시선을 어느곳으로 두어도 좋은데 옥산서원의 무변루는 오로지 마당으로만 집중하게 한다 무변루에 동재와 서재의 지붕이 이어져있다 .강당인 구인당까지 마치 어깨동무를 하듯 긴 벽으로 마당모서리를 단단이 조이고 있다. 마당에선 자옥산도 세심대도 어떠한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마당이 마치 중세의 수도원의 중정처럼 정적에 쌓여있다. 낮은 박공 위로 파란 하늘이 내려앉는 마당 깊은 집이 되었다.
무변루에서 마주앉은 자리 동서재보다 한단 높게 올려진 구인당에 옥산서원이라는 현판일 걸려있다. 처음에는 이산해의 글씨였지만 화재로 소실된 이후 추사의 현판을 받았다한다. 추사체라기보다는 단정한 정자체라 약간 의아함도 생긴다. 아마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가서 추사체를 완성하기 전에 쓴 글씨인가 보다 안쪽 에 구인당이라는 한석봉의 글씨도 있다. 화재이전의 이산해 글씨도 모본으로 걸려 있다.
구인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강당건물인데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깔았고 좌우 한칸씩은 온돌방으로 마당을 향해 창도 없는 벽을 세워두었다. 문은 역시 마루를 향해 있다. 외부시선을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일까 옥산서원은 이렇게 외부를 차단하고 내부로만 열려있다. 인을 구하는 구인당, 인을 체험하는 체인묘, 인이 전부인 수기를 힘쓰는 학문의 전당이 바로 옥산서원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고난의 시간을 살면서도 치열하게 학문의 길을 걸어간 회재선생의 사상이 옥산서원의 건축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숨쉴수 없는 긴장감으로 마당을 지나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여 방자 우물 속으로 들어간 듯하지만 구인당에 올라 마루에 앉아서 시선을 돌리면 무변루지붕에 이제사 자옥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이는 봉황의 둥지에 안긴 선비들의 정신이 날아갈 관념적인 목적지가 자옥산 봉우리임을 지시한다. 자옥산 봉우리는 회재선생의 학문적세계를 상징하는 사산의 하나로서 이상세계를 의미한다 .옥산서원을 인위적으로 폐쇄하여 봉황의 둥지로 만든 뜻이 바로 자옥산 봉우리로 향하는 이 마지막 전망에 있다. 옥산서원을은 절정의 순간에 회재선생의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서향으로 누워 마당을 건물로 꽁꽁 틀어막았다. 옥산서원의 마당은 회재선생의 사상적 우물이며 구인당은 이상세계로 날아가는 사상의 날개다. 옥산서원은 사상의 우물이며 목을 축인 유생들의 이상세계로 날아가는 도장이었다.
서원건축은 이렇게 정신 위에 지은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