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을 녹이는 훈훈한 사랑의 연탄나누기
새해를 맞아 동민들의 단합을 보여준 설맞이 대청소
‘상패동’은 본래 양주 은현면에 속했으나 동두천 시 승격 2년 후인 1983년 2월 15일 동두천으로 편입됐다. 동두천시의 남서부를 차지하는 동이며 면적은 7.99㎢로 시 전체의 8%다. 인구는 2006년 12월 말 현재 시 전체 인구의 7.6%인 6526(남 3428, 여 3098)명이 2676가구에 거주하고 있다.
13개통 88반으로 이루어진 상패동은 신천변 건너편인 1~7통, 11~13통은 아파트 및 연립, 단독주택과 공공시설이 자리하고 있으며, 양주 은현면과 경계한 상패천 일대인 8, 9, 10통은 축산업과 벼, 상추, 열무 등의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가가 자리하고 있다. 무궁화유지를 비롯해 피혁, 염색 등의 소규모 영세 업체 및 환경업체 등 총 345개 기업 및 상가가 동 전체에 산재해 있다.
시민회관, 시립도서관, 장애인종합복지회관 등의 주요 공공시설과 한북대학교가 소재해 있으며, 조선조 시대 사천현토와 삼충단이 소재하고 있는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미군기지로는 캠프 님블이 있다.
자유신도시 예정지 상패동
도농복합도시인 상패동은 마차산(588m) 자락에 ‘’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상패동은 양주 은현면과 남면에서 동두천을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유지이기도 하며, 현재 경기도와 토공이 협약을 맺고 추진 중인 자유신도시와 신도시 내 국가산업단지의 예정지로서 향후 시의 인구증가와 도시발전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시민회관, 시립도서관, 장애인종합복지관 등 동두천시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주요 공공시설이 들어서 있으나, 대중교통여건이 좋지 않아 타 동 주민들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성영동장
주성영 ‘자전거 동장'이 말한 상패동
활발한 봉사활동 통해 애향심 고취
거의 매일 오후 때면 자전거를 타고 동 곳곳을 살펴 ‘자전거 동장’으로 불리고 있는 주성영 상패동장. 주 동장은 지난 1월 시 환경보호과장에서 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 본청에서 환경보호과장을 맡으며 신시가지 악취문제를 맡아온 주 동장은 “상패동이 편입될 때 양주 은현면 하패리가 함께 편입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상패동과 양주 은현면 하패리에는 신시가지 악취의 원인으로 꼽히는 음식물처리업체, 축산농가 등이 모여 있다.
주 동장은 또, “캠프 님블 상패 4, 5, 6통 지역은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다”며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장으로 부임해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배려심 많고 순박한 동민들 덕에 동장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된 동사무소 재건립 추진
동두천시 편입 1년 후인 1984년에 지어진 상패동사무소는 협소하고 노후한 관계로 재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3개동 중 제2동은 동사무소로 쓰이고 있으며, 제2동 준공 1년 후인 1985년에는 현재 사회단체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제3동이, 1988년에는 농촌지도소로 쓰이고 있는 제1동이 준공됐다.
현 동사무소는 농촌지도소, 동사무소, 3개 사회단체가 함께 쓰지만 주차장이 협소해 농촌지도소, 사회단체 방문자와 동사무소 방문 민원인간의 주차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자치프로그램을 운영할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 타동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은 사물놀이, 노래교실 등 5개 뿐이지만 앞으로 개설을 추진할 서예교실, 수지침, 발맛사지, 농촌일손돕기 등 주민들이 원하는 프로그램 5~7개에 달할 것으로 보여 공간확보가 시급한 형편이다. 주성영 동장은 “올해 설계를 마친 뒤, 현 동사무소 앞 부지에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새로운 동사무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패 주민들의 숙원사업은…
도시기반시설 개선 절실
상패동 주민들은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도시가스 공급의 혜택을 높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패동은 신천변 일부를 제외하고 곳곳에 주택이 산재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도시가스 공급율이 2006년 말 현재 48%에 불과해 시 전체 평균의 77%에 크게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상패 11통 223세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도시가스 공급을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민간사업자측에서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투자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 상패동 외에 소요동의 소요초교주변, 중앙동의 서울의원 뒤 편을 비롯한 일부지역 등에 비해 사업성, 시급성 등에 있어 우선순위에서도 밀려 있어 주민들의 숙원은 빠른 시일내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패 9통에 소재한 삼충단 진입로 개설도 주민들의 주요 숙원사업이다. 1453년(단종1)부터 1456년(세조2)까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항거하며 단종의 복위에 가담했던 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김문기(金文起) 등 세 충신의 업적을 기리는 ‘삼충단’이 소재해 있다. 주민들은 이러한 유서 깊은 향토문화유적지인 삼충단 입구의 제대로된 도로를 포장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밖에 상패 1통의 아스콘 덧씌우기 공사, 상패 10통의 배수로 U형 측구 설치공사, 9통의 가마소 진입로 포장공사, 하수관거 준설, 신천변 자전거도로 개설 등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며, 상패주공아파트 앞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에 대한 개선도 수차례 시에 건의한 바 있다.
소외 이웃을 위한 사랑의 김장 담그기
어려운 이웃돕기는 상패동이 최고
상패동 주민들은 여러 봉사활동 외에도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이제 소박한 시민으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문옥희 전 시의원은 “상패동은 동민들과 동사무소가 함께 펴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지원사업을 통해 애향심과 자긍심, 협동심을 높이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 봉사활동 외에 적십자회비가 모두 거쳐지는 것은 상패동이 거의 유일 할 것”이라며 “서로돕는 따뜻한 마음과 정이 베어 있는 소박한 동네가 바로 상패동임을 알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패동에서는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 사랑의 김장김치 전달, 경로당 노인 중식제공, 경로당 월동기 유류 지원, 이·미용서비스, 독거노인 생신상 차려 드리기, 독거노인 요구르트 전달, 독거노인 밑반찬 만들어 주기, 가사 도우미 지원 등의 생활지원 사업을 활발히 펴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사물놀이패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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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패동 지명 유래
상패동은 고려 현종때까지 포천군의 영현(領縣)이었던 사천현의 형세를 그대로 포용하고 있다. 1패리, 2패리를 상패리라 하던 것을 1965년 1월 1일 상패 1, 2, 3리로 분리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 양주 은현면에 속해 있던 상패리가 동두천시로 편입되어 상패동이란 행정동이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남산모루(南山隅), 사천(沙川), 정감(井甘), 가마소(釜谷), 샛골(間村), , 선곡(仙谷), 새말(新村), 인사적골(仁谷) 등이 있다.
남산모루(南山隅)
남산모루는 옛 동두천에서 볼 때 남쪽 산모퉁이에 위치한다. 마차산의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나가다 다시 기봉(起峰)하면서 문필봉을 잉태하는데, 이 산을 남산이라고 부르며 그 산 모퉁이에 마을이 있어 이름을 남산모루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는 한양 조씨가 3백여 년간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한다.
가마소(釜谷)
고려 말엽 이 마을 입구에 가마솥 모양의 큰 소가 있었는데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는 적이 없어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소를 귀중히 여겼으며 마을 이름을 소의 모양을 따라 가마소(釜谷)라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엽에 대홍수로 마을 근처 지형이 크게 달라졌고 귀중히 여겨오던 가마 모양의 소도 없어졌다 한다. 그러나 비록 소가 없어졌어도 마을 이름은 여전히 가마소로 불려 전해지고 있다.
샛골(間村)
샛골은 이 마을 북서에 위치한 미동(彌洞) 마을이 근원이 되어 인구가 늘고 남쪽에 있는 골말(谷末)과의 사이에 마을이 형성됨으로 미동을 포함하여 샛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골말(谷末)
골말은 가마소 고개 아래에 있는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로써 골짜기 안에 있다 하여 골말이라 부른다.
사천리(沙川里)
본래는 사천현인데 지금은 사천리라 부른다. 고구려 때에는 내을매였는데 신라 경덕왕 때 사천으로 개칭하여 견성군(현 포천시)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그 후 현종 9년(1018)에 양주에 예속되어 조선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선곡(仙谷)
선곡마을은 옛날 신선이 사는 동네 또는 어진 선비가 모여 사는 곳이라 하여 선곡이라 불러오고 있으며, 이 골짜기를 통하여 남북을 잇는 큰길이 있고 산마루에는 통행인들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서낭당이 있었으므로 일명 사낭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에 의해 1910년 경 서낭당은 없어지고 그 유래만 전해지고 있다.
새말(新村)
새말은 구한말 양천 허씨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부터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불러졌다.
인골(仁谷)
고려때 이곳에 어진 선비가 살았다 하여 인곡이라 불러왔으며 인사절골(仁士寺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정감(井甘)마을
정감마을에는 옛날부터 동네 중안을 중심으로 동남간에 세곳의 우물이 있어 마을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하였는데 그 물맛이 하도 좋아 정감 즉, 단우물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것이며 지금도 세 곳에 우물이 있다.
그러나 각종 공해로 두 곳의 우물이 오염되어 폐정하였고 한 곳의 우물만 사용하고 있다 한다.
출처 : 동두천시사
첫댓글 상패동 이런사진이 조만간에 추억으로 됩니다. 급속한 도시화로 주변변모가 급속하게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