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황악산
울창한 초록숲에 빨간 느낌표 '나리꽃'
김천 황악산
기상청은 48년 동안 계속해오던 장마예보를 올해부터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농사를 짓는데 긴요하게 이용되었던 장마예보가 이상기후 탓으로 의미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의 기후가 장마전선이 사라진 이후에도 국지성호우가 쏟아지고 여름강우량이 증가하는 등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장마예보가 없다고 해서 장맛비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예년과 같은 지루한 장맛비가 전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린다. 장마예보에 관계없이 가끔 구름사이로 내미는 햇볕에 빨래를 널고 눅눅해진 가재도구를 말리는 일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루한 장맛비 사이로 가끔 내비치는 햇살은 유난히 눈부시다. 장맛비에 씻긴 나뭇잎에 반사된 초록빛에는 강한 생명력이 넘쳐난다. 여름 숲은 비 갠 후에 쏟아질 강렬한 햇빛을 이용하기 위하여 짙은 녹음으로 대비했다. 짙푸른 색으로 채워진 한여름 숲은 더위를 잊게 하는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산이 깊어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도 이웃한 숲이라면 여름한철 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 된다.
야생초산행은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의 경계에 위치한 황악산(黃岳山 1111m)을 찾았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리었다고 하나 이 산의 동쪽에 위치한 직지사의 현판과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적혀있다.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운수봉, 형제봉, 신선봉, 백운봉이 늘어선 산세가 평평하고 완만하여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는 산이다. 백두대간이 추풍령에서 잠시 지세를 낮추었다가 쾌방령을 넘어 갑자기 솟아오르며 힘찬 산줄기를 삼도봉을 거쳐 덕유산으로 이어주는 산이다.
산행은 직지사를 출발하여 운수암을 거쳐 능선인 백두대간에 이르고, 정상인 비로봉을 넘어 형제봉, 신선봉을 둘러 직지사로 하산하는 회기산행을 했다.
황악산 기슭에 위치한 유서 깊은 사찰 직지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418년)이 창건하여 수많은 국사와 왕사를 배출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다. 직지라는 사찰이름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따왔다고 한다. 황악산의 누를 황(黃)은 음양오행의 한가운데를 뜻하는 것으로 산이 해동(海東) 즉, 조선의 중심부가 되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직지사를 뒤로한 등산로는 운수암에 이를 때까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른다. 딱딱한 시멘트 길이지만 울창한 숲이 드리운 그늘이 있어 느긋하게 걷기 좋은 곳이다. 운수암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길은 나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흙길에 경사가 급한 곳에는 나무계단과 철제계단이 기다린다. 다소 경사가 급한 등산로는 능선인 백두대간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울창한 숲속은 텅 비어 있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무그늘이 드리우기 전 이른 봄 한철 흥겨웠던 얼레지, 현호색, 개별꽃 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피어 있는 원추리와 작고 흰 꽃이 귀여운 ‘가는장구채’조차 없다면 삭막한 풍경에 질식할 것 같다. ‘가는장구채’는 석죽과의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종이다. 다섯 장의 작은 꽃은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10장처럼 보인다. 가늘고 긴 꽃봉오리가 장구채를 닮아 ‘가는장구채’라는 이름이 붙었어나 약한 바람에도 흔들려 카메라 포착이 쉽지 않다.
능선에 올라서면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해지며 한결 편안해진다.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따가운 햇살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아쉬움이라면 돌출된 바위나 도드라진 봉우리가 없어 시원한 조망이 어렵다는 것이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의 식생이 판이하다. 남쪽 사면에는 땅바닥에 푸른빛이 빼곡할 정도로 빈틈이 없는 반면 북사면은 듬성듬성 비어있다. 식생이 다양한 곳에 꽃도 많아 ‘하늘말나리’도 한창 흐드러졌다. 백합과의 ‘하늘말나리’는 잎이 돌려나는 말나리의 하나로 꽃이 하늘을 향에 핀다. 마치 어두운 숲을 밝히는 등불이 타오르듯 여기저기 피어 있다. 잎이 어긋나게 달리고 아래로 향해 이웃하여 나란히 핀 털중나리와는 자태나 모습이 판이하여 신비감을 더한다.
제대로 돌출한 바위하나 없는 황악산이다. 여느 산과 다르게 시원하게 확 터인 곳을 찾을 수 없어 언뜻언뜻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전부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에는 위치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상에 오르면 넓은 헬기장이 있어 주변의 산과 경관을 다소나마 볼 수 있다.
하늘말나리
정상주변 초원에는 잦은 장맛비에 무성하게 자란 온갖 꽃들이 즐비하다. 무성한 미역줄나무는 꽃이 덤불을 덮었고, 햇빛을 제대로 받으며 성장한 털중나리와 하늘말나리는 큰 꽃이 주렁주렁 달렸다. 싱아는 키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쑥 자랐고, ‘속단’은 무리를 지어 꽃이 피어 있다. ‘속단’은 꿀풀과의 식물로 줄기는 네모졌고 털이 있으며 가지를 벋는다. 꽃은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를 따라 층을 이루며 핀다.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속단’이다.
정상에는 백두대간을 알리는 해설판과 두개의 표지석이 어지럽게 늘려있다. 황악산 정상은 바위가 아닌 흙으로 덮여있다. 여느 산과 다르게 정상이 뾰족하게 솟아오르지 않고 밋밋한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이다.
정상을 지나도 올라왔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생에 변화도 없다. 큰 오르내림이 없는 길은 신선봉 갈림길까지 계속된다. 신선봉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바람재 쪽으로 이어진다. 신선봉을 지나면 길은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며 고도를 급격히 낮춘다. 경사가 급한 길이 끝나는 곳에는 단풍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더 내려서면 완만한 등산로 주변으로 가는장구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곧이어 은선암 오르는 길과 만나고 오래지 않아 직지사가 보인다. 직지사에 도착하여 거리를 가늠해보니 10km남짓에 회귀산행에 걸린 시간은 4시간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찾아가는 길
-.88고속도로 거창 IC→3번국도 김천시구성면 소재지→903번 지방도 직지사
-.경부고속도로 김천 IC→4번국도 덕천네거리→903번지방도 직지사
(농협중앙회 거창군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