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도 깜짝 놀란 이야기
곽영석 작가의 동요 동시집 1 '달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방송극 작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40년 전에 동극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한 최초이자 마지막 작가다. 그런 그가 그동안 틈틈이 써서 발표한 동요 동시가 꽤나 된다고 했다.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70-80편씩 묶으면 15권 분량이란다. 놀라웠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이것을 모두 책으로 묶어내겠다는 거다. 370여 편씩 6권으로. 이 말을 듣고 처음엔 '설마'했다.
그런데 정말로 동요동시집이 나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번에 펴낸 것이 1권이니까 앞으로 5권이 더 나올 것이다. 다시 놀라서 다문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번에 펴낸 '달님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80년대 초부터 곡이 붙여져서 노래로 불리는 동요 동시가 많이 들어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17편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동요동시를 많이 쓰게 된 까닭이 무엇인가. 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그가 동극 작가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20년 전부터 새 세대 심장재단이 주관하여 개최하고 있는 '전국유아극 경연대회'에 쓸 작품을 집필해왔다. 이때 오페렛타와 소인극 극본 속에 삽입할 노래가 필요했던 것이다. 할수만 있다면 전문적인 시인이 쓴 동요를 삽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타인이 극본의 흐름에 딱 들어맞는 동요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자 그가 직접 동요 동시를 쓰게 된 것이다.
혹자는 그가 직접 동요 동시를 쓴다고 하니까 의아심을 가질 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작시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기 바란다. 그는 6차 교육과정 때는 2학년 국어과 국정 교과서에 '원두막' 등 동요동시 2편이 실린 숨은 실력자이기도 하다. 또 1970년대에 전국 단위로 발행되던 '학생신문'(The Student) 신춘문예 시 부문에 시 '나비춤'이 당선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때 심사를 맡았던 분은 '절대고독'으로 유명한 김현승 시인이다. 그는 김현승 시인에게 시 지도를 받기도 했다. 또 고교 시절 내내 청주 시내 고교생들의 연합문학동호회인 '푸른문'에서 지도해주던 기성 시인들과 시를 쓰는 친구들 속에서 묻혀지냈다. 그의 시창작 능력은 이렇게 길러진 것이다.
꽃 나라의 시간에는 분침이 없다
맑은 이슬 동글동글 굴러 내리면
세수하는 시간
해님이 돋아나 햇살 송송 뿌리면
꿀과 꽃가루 만드는 시간
꽃나라의 시간에는 초침이 없다
나비아가씨 찾아와 꿀을 푸면
일하는 시간
달님이 찾아와 하얀 달빛 뿌려주면
고운 꿈꾸며 잠자는 시간.
- '시계꽃' 전문
'꽃 나라'는 그가 지향하는 동심의 세계을 상징한다. 이때 '꽃 나라'와 대척점에 놓여있는 시적 사물인 분침과 초침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초와 분 단위의 시각에 쫓기며 사는 현실의 분주한 삶을 가리킨다고 보면 좋으리라. 그렇지만 순수 동심의 세계에는 그런 각박함이 없다. 그러면서도 얼마든지 '꿀과 꽃가루'를 만들고 '고운 꿈꾸며 잠' 잘 수 있다. 어느 정도 새로움도 느끼지만 전형적인 표현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는 동화 속 나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동요 동시는 전문적으로 동시를 쓰는 시인들과 추구하는 방향이 많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현실의 고통이 완전히 제거된 진공 속의 동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도 같다. 때로 이것이 지나쳐서 허구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동요 동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첫째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그는 오페렛타와 극본 속에 삽입할 동요의 필요성을 느껴 자신이 직접 창작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동요 속에는 동극적인 요소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이런 그의 발상법은 독특하다. 하지만 낯설거나 새롭지는 않다. 현실주의적인 시를 쓰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동화 속 이야기로 비칠 것이다. 이것이 그의 동요동시에서 한계로 작용한다.
둘째 '달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읽을 때는 동요와 동시를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요와 동시는 창작 방법이 엄연히 다르다. 동시는 디테일한 표현과 심리묘사를 위주로 한다. 또 현실의 삶을 많이 반영한다. 하지만 동요는 무엇보다도 먼저 많은 어린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 또 음악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디테일한 표현으로부터 차츰 멀어지게 된다. '달님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동요와 동시가 별다른 구분 없이 섞여 있다. 그의 동요는 동요의 특성을 생각하며 읽고 동시는 동시의 특성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동요를 읽고 동시의 잣대로 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논길따라 저 멀리 원두막 하나
네 다리에 밀짚지붕 들새 놀이터.
참외 수박 토마토 빨간 인삼꽃
얼마만큼 자랐나 신기도 하지.
네 쪽 문 활짝 열고 바라봅니다.
발길따라 저 멀리 원두막 하나
네 다리에 초가지붕 산새놀이터.
빨간 고추 오이 밭 남빛 도라지
얼마만큼 자랐나 몰라보겠다.
네 다리 뒤뚱뒤뚱 살펴봅니다.
산들바람 들녘에 원두막 하나
해님 달님 별님도 알고 있지요.
예쁜 아이 예쁜 꽃 와서 보라고
산바람 들바람에 소식 전해요.
날마다 푸른 꿈도 꾸고 삽니다.
- '원두막' 전문
원두막 풍경을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7.5조의 리듬에 따라 흥겹게 읽는 맛도 있다. 곡을 붙이면 누구든지 즐겁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가 읽으면 원두막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고 새롭게 느낄 것이고 어른이 읽으면 아련한 추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동요가 이런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다시 말하면 동요의 작법에 충실하게 썼다고 할 것이다. 오래도록 살아남은 동요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향의 봄'이 그렇다.
그러나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든지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시는 삶의 위안이요 깨달음이요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주관적인 정서를 동시라는 그릇에 담아내고 있다.
2학년 교실
창 밖에 나팔꽃이
고개를 들고 교실을 바라보아요
국어시간, 산수시간,
미술시간, 사회시간에도
내 친구 무엇을 할까
발꿈치 들고 힐끔
파란 아기 손을 들고 힐끔.
무얼 배웠니?
궁금해서 다시 바라보는 모습 가여워
우리 선생님 넝쿨 펴고 올라와 보라고
처마 끝까지 새끼줄 매어 주었어요.
오늘은 창문을 활짝 열어줄까?
친구야! 그럼 네가
발꿈치 들고 바라보지 않아도 될 거야.
- '내 친구 나팔꽃' 전문
추억 속에서 시골 학교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시를 몇 년에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산수 시간, 새끼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1980년대쯤 되지 않나 싶다. 창밖 화단에서 자라는 나팔꽃에게 잘 자라라고 새끼줄을 매여주고 창문을 활짝 열어 맞아주겠다는 내용이다. 비록 흑백 사진처럼 지나간 시대의 시골 학교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시 속에 담긴 정겨운 풍경은 잔잔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그와 함께 우리는 동심을 느낀다. 시대가 변해도 동심은 불변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 시를 지금 어린이들의 생활을 바라보는 눈으로 재려들면 안 되는 이유다. 이 시는 1980년대라는 시대의 풍경과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2011년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생활을 그려낸 시들도 20년이나 50년 후에 본다면 지나간 시대의 아주 낡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시를 쓸 것인가. 시류에 너무 치우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시류를 반영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진실의 세계를 그리는 것,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시 문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오늘 당장 반짝이는 것이 아니다. 비록 빛은 덜 나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는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모습이란 지나와서 보면 낡은 껍질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1 동요동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40년 자신의 시 작업을 정리하는 깊은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 한 마디는 꼭 해주고 싶다. 이미 다른 책도 엄청나게 많이 내었으니 발행 권수에 연연할 처지도 아니다. 그러면 범작은 과감하게 버리는 용기를 발휘해 주기를! 금광석은 광석일뿐이지만 이것에서 순금만을 정련해내었을 때는 귀금속이 된다. 그것이 분신같은 자신의 동요동시를 더 아끼는 길이다.
아무튼 370여 편씩 6권이라니! 그야말로 달님도 깜짝 놀랄 이야기다. 그만큼 그는 열심히 살아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 수정 중입니다. 아직은 퍼가지 마세요.
첫댓글 370여편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