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에서 다시 마땅한 아이템을 찾기는 힘들었다. 너구리 이십단계 쯤 메론과 바나나를 깨면 동네 누나들과 여자 후배들은 날 갖고 싶어할 정도로
그것을 심취해 구경했고 그녀들이 너구리 하는 중 위기에 직면하면 그녀들의 등뒤를 감싸고 몇판을 대리게임 해줄때 내 가슴과 밀착된 여자들의
등에서는 진땀이 배겨났고 지금이라도 지나다 만나면 그녀들의 잎은 귀밑까지 입을 벌여 미소로 반겨 함은 그런 연유이다. 그러다 용돈이 일약
급부상 할 만한 아이템을 발견 하였는데 잘못하면 전국의 오락실을 혼란에 빠뜨리게 만들 뻔한 아이템이었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 해석 해봐도
엄연히 불법이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범죄 행위였다. 다만 아이들의 준법정신에 의하여 불처럼 유행 하다가 사그라 들었다. 그 아이템의 핵심
기술은 누구나 모방이 가능하여 처음에 짭잘했지만 여러놈에게 도용 당하여 곱절 장사로 하루 800원도 넉근히 벌어 들였다. 다만 오락실 주인 아들이
친하지는 않은 또래 친구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오락실 단독 집행 현상금 2천원이라는 용의선상에 오르는 불편을 얻었다. 이때 국민학교 5학년
이었는데 현행범으로 잡힌건 아니라 그럭저럭 사업을 포기하고 개과천선 오락실을 한동안 끊었다. 카지노로 말하면 출입정지 같은 징계를 받을
처지였다. 그 범죄에 관하여 30년이 지난 오늘 사실상 공소시효도 끝났을테니 이제는 말 할수 있다. 회폐위변조법이 있는것 같은데 아마도 중죄
일거라 생각된다. 범죄의 시작은 이랬다. 같은 마을 재현과 공모했는데 오락실을 어떻게 공략 할것인지 고민하다가 배고픈시절 비용의 절감을 고민하던
중 50원의 크기와 같이 십원을 갈아내면 될것 같았고 마을 창고 콘크리트 벽면을 이용해 주욱 갈아서 그라인딩 했다. 하지만 노동력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어 경제성이 떨어졌으며 동전 무게가 줄어 여러번 코인 투입구에 집어 넣어 겨우 성공하였다. 조금 많이 갈아내면 무게가 가벼워 그냥
꿀꺽 먹어 버리는 허탈함도 경험해야 했다. 집게 손가락의 지문이 둔탁해지는 신체적 결함에 비하면 너무 비효율적 이다보니 우리는 좀더 효과적인
발명이 고안되길 바랬다. 이 일은 훗날 내가 디벨로퍼라는 고급 직종을 갖게된 씨았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꿈은 과학자였는데 방법이 다를 뿐
그것은 과학이었다. 과학의 뜻은 이미 발견되어있는 학문을 지나 넘어서는것이 아니던가.! 내가 십원짜리 동전을 갈때 형들은 미쳤다고 했다.
오락실은 건전한곳은 아니었으니 그곳과 대적 하는것에 죄책감이 적었다. 당시 경이로운 그 발견의 날.! 한쪽 귀퉁이 까지만 오십원 크기로 갈다가
힘에 붙여 주머니에 넣어 둔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상현달 모양과 비슷하다. 게임 동전이 떨어진 후 더 달리고 싶었으므로 그것을 혹시나 하여
오락기에 투입 시켰는데 '띵강' 하고 머니인이 되는 쾌거를 보게 되었다. 오십원 크기로 굳이 맞추지 않고 한쪽면만 그 크기로 맞추어도 투입기는
잘 인식했고 한쪽면만 갈아서인지 그 무게가 오십원권과 비슷하여 자연스레 무게에 대한 문제까지 해결 된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십원짜리를 한쪽
면만 하루 이십개 정도를 갈아서 두판 게임이 가능하게 작업된 20원을 50원에 팔았다. 고객들은 오십원으로 백원치의 게임이 가능했고 단골들에게는
가끔 50원에 세판 30원 까지도 내어주는 VIP고객 관리의 치밀한 상술까지 더하였다. 아버지의 연장 중에 톱날을 세우는 줄(속칭 야스리)을 몰래
공수한 후로 생산 기술이 곱절로 늘어나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노랗게 동전 가루가 묻은 톱줄을 유심히 살피시던 아버지의 눈빛은 간담을 서늘하게
겁나기도 했다. 이후 모방 범죄가 극성하여 오락실에서 쏟아져 나온 상현달 모양의 십원 동전이 수두룩 해졌고 급기야 오락실 가족과 끄나플 들이
게슈타포가 되었고 현행범에게는 현상금도 걸렸다. 어리버리 뒷차 탔다가 잡히게 된 아이는 내 바로 옆에서 오락실 아주머니에게 뺨 싸대기를 얻어
맞았는데 마치 내가 맞는것 처럼 움찔했다. 들리는 소문에 그 아이는 오천원을 오락실에 변상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잡히면 큰일이기에 오락실과
먼길로 돌아서 다니며 그 경이로운 곳에 갈수 없었다. 발견은 획기적이었으나 핵심기술 유출 대처에 미흡했고 원가대비 30원 남기는 사업전략은
훗날 생각해 보니 형편없는 상술이었다. 인건비를 계산했다면 적어도 제조된 세개의 동전에 100원은 받았어야 타산이 나올 일이었다. 훗날 호떡이
세개에 백원으로 판매되는것을 보고 깨달았을 뿐이다. 기술과 상술이 복합 되어야만 진정 과학으로서 빛을 발 할것이다. 난 그렇게 고스돕판의
개평과 오락실의 비도덕적 상행위로 얻어진 돈으로 다른 애들이 한 두달에 한번 맛이나 볼까 말까하는 짜장면과 찐만두를 나의 동업자이자 공범인
두살 후배 재현과 함께 만끽 하기도 했고 제법 값나가는 장난감 키트를 사서 조립하고 과학적 두뇌를 진화 시키는 일에 투자했다. 오락실 수배사건으로
사업도 잃고 농번기가 되어 고스돕 판도 열리지 않게 되자 수입은 거의 전무 하였다. 선비는 물에 빠져도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했지만 나는 선비가
아니었다. 돈을 만들 궁리를 했다. 읍내의 새로 생긴 오락실에 보도 못한 게임들이 대거 유입 되었다는 뉴스에 더 궁금해 미칠 듯 했고 돈은 꼭 필요했다.
그러던 중 국민학생 주제에 짜장면을 넘어 탕수육까지 시켜먹었던 대범함에 재현과 나는 중국집 아저씨의 의협심어린 고자질로 엄마들에게 고발되었고
돈의 출처를 아마도 불미스러운 짓으로 추정하여 꼰지른것 같았다. 흔들패 사건 최씨의 증언으로 고스돕판 개평의 알리바이가 겨우 성립되어 곧
집행 될것 같았던 빗자루 매질을 피해 갈수 있었다. 남아있던 돈마저 벌금형 압수되는 불운을 맞고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다시 돈이 생긴다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 중국집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범죄의 댓가는 냉혹했다. 잘먹고 잘 쓰다가 빈털털이가 되고나니 일상이 무척 무료했다.
재현이 걱정되어 찾아갔는데 재현 엄마는 재현에게 나와 접선 금지령을 내려 매우 속상했다. 하지만 돈맛의 힘은 강했다. 재현 그도 내가 오기를
기다렸었고 우리는 엄마들의 눈을 피해 옆동리 저수지에 낚시꾼 부호들을 찾아가 호객했다. 우리 동네 갈색 개구리를 미끼로 쓰면 팔뚝 만한 가물치가
무척 잘 낚인다는 것은 재현과 나의 오랜 노하우이다. 내가 재현을 좋아하고 잘 어울린 이유는 아마도 둘다 머리가 좋지만 공부 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하는것이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더 신경쓰고 노는것은 죄짓는 것처럼 어른들이 교육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우리들은
거진 매일매일 죄를 지었다. 잔 개구리를 처음에 세마리 백원 받았고 정말로 가물치가 제법 잡히자 주문이 쇄도하여 한마리 오십원도 호가하였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버렸는지 낚시꾼은 세배로 늘었고 그 저수지가 갑자기 낚시꾼들로 북적여진 이유는 우리만 알고있는 일이다. 나는 큰 가물치를
잡은 낚시꾼을 골라 호객했다. "아저씨 환타 사다 드릴까요.!" 하면 기분 좋은 상태라 거진 적중이다. 음료수 심부름하여 한잔 얻어도 먹고 거금
오백원을 받은적도 있었다. '훌륭한 어른은 훌륭한 어린이를 알아본다 했던가.?' 영웅 뒤에는 심부름값 두둑히 주는 훌륭한 어른이 있었을것이다.
비록 재현은 두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냉동기기 기술자로서 지금의 삶을 살아가지만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겜블러의 삶을 이어갔고 내가 결실을
맺는다면 그날 낚시꾼의 오백원 지폐는 값지게 쓰여진것이다. 우리는 그 거금들을 벌어 들여 읍내의 새로운 오락실 게임들을 간파해 나갔으며
그곳의 쌈치기 패거리판에 섞여 잃기도 했지만 많이 이기기도 했고 덩치큰 불량 놈들에게 삥 뜯기기는 일도 있었다. 도박판에 대한 조기체험 이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전 또 동전에 구멍내서 실 연결해서 하는 그런 범죄(?)인 줄 알았네요 ㅎㅎㅎ
즐감 했습니다 꾸벅 ~~^^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 연일 올라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