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신윤복 조선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 비단에 담채 113.9*45.6cm 간송미술관 서양에서는 중세나 근세의 초상화 하면 으레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할 만큼 미인들의 초상화가 많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경우는 왕가나 사대부 선비들의 집안에서 부인들의 초상화를 남긴 예가 거의 없었고, 있었다고 하면 계월향이니 운낭자 최홍련이니 하는 의기들의 초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초상화들도 오래된 초상화는 거의 없어져서 조선 말에 채용신이 그린 최홍련의 초상화 한 폭이 겨우 조선 미인 초상화의 여운을 남겨 주었을 뿐이다. 혜원 신윤복은 풍류남아나 기녀들의 생태를 그려서 조선시대 화류계의 연연한 생활정서를 뛰어난 솜씨와 정애로써 후대에 전해준 귀한 업적을 남긴 분이었는데, 이 작가가 실존인물 특히 초상화적인 미인도를 많이 남겨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고 전형필씨 소장품 중에 이러한 미인도 한 폭이 있음이 알려졌을 때, 우리는 이 미인도가 지니는 초상화적인 뜻이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비록 그 화제에서 그림의 본인이 누구였는가를 밝힐 수는 없었지만, 필시 어느 풍류남아의 소첩일 수도 있겠으나, 순정적이고 앳된 얼굴에 나타난 미소의 품위로 보나 옷맵시에서 느끼는 세련된 풍김으로 보나 오히려 지체 있는 어느 선비의 소첩이었으리라고 상상하고 싶어진다. 삼단같이 윤나는 큰 트레머리의 한 쪽에 자줏빛 댕기가 살짝 내비꼈고, 자주고름에 달린 수마노 삼작 노리개를 그 희고 연연한 손으로 매만지는 포즈가 이만저만한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생달같이 길고 가는 실눈썹과 귀 뒤로 하늘거리는 잔 귀밑 머리털에 이르기까지 이 초상에서 풍기는 염려하고 신선한 풍김을 바라 보고 있으면 혜원이라는 작가가 그 수많은 풍속도를 그린 것은 어쩌면 이러한 본격적인 미인도를 그리기 위한 발돋움과도 같은 작업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이 미인도에는 난숙한 느낌이 넘치고 있다. 고려 때 풍류왕자였으며 뛰어난 화가였던 공민왕이 열애하는 그의 아내 노국대장공주가 앳된 나이에 산고로 죽어가자, 상심한 나머지 그린 애절한 초상화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면 아마 혜원의 이 미인도와 함께 한국의 여인을 그린 초상화로써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지만 노국대장공주의 초상은 한 줌 재로 변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지금 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 혜원의 미인도 앞에 끌리는 어리석은 사나이의 향수만이 담담하게 서린다고 해야겠다.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