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에 사는 최영수(58), 박영예(55) 씨 부부는 귀농 7년차 농사꾼이다. 서울에 살던 부부는 최 씨가 다니던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한 이후 서천에 정착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구절초, 가시오가피 등 산야초를 키우고 아내의 솜씨를 살려 된장, 고추장, 청국장을 만들어 친지와 지인들에게 판매한다. 부부는 귀농 2, 3년 전부터 미리 차 재배를 배웠고, 주말이면 서천에 내려와 차근차근 귀농 준비를 한 결과 큰 어려움 없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었다.
젊은 귀농자들도 있다. 강원 속초에서 게임개발 사업을 하던 김재훈(30) 씨는 2년 전 아내와 함께 아버지 고향인 경기 양평군 개군면 상대포리로 삶의 터전을 옮겨, 한우를 사육하며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한우 9마리를 기르고 있지만 그의 꿈은 좀 더 큰 한우목장에 있다. 두 달 전 아내가 아이를 낳아 아빠가 된 김 씨네 세 식구의 미래가 담긴 목장이다.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에서 3년째 ‘고유나플라워’라는 화훼업체를 운영하는 총각 3인방도 있다. 서울 태생으로 직업군인 출신인 고형록(33) 씨와 역시 서울이 고향인 주방장 경력의 유준영(33) 씨, 그곳이 고향인 나석운(31) 씨 등 세 명이 그들이다. 사업체 이름도 이들의 성(姓)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학연이나 지연으로 엮이지 않은 이들이 함께 농촌에서 청춘을 불사르게 된 것은 2001년 군에서 전역하고 잠시 경기 용인의 화훼업체에서 일하던 고 씨가 이곳에 혼자 내려온 다음이다. 땅을 임대해 비닐하우스를 짓고 관엽식물류를 기르던 고 씨가 곧 유 씨, 나 씨를 알게 되면서 의기투합해 동업에 뜻을 모았다. 나 씨 등은 현재 약 7백 제곱미터의 땅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관엽식물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1월부터는 가로수용 종려나무 2만 그루를 네덜란드에 첫 수출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이처럼 갖가지 사연과 꿈을 안고 농촌을 찾아드는 귀농. 최근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귀농인구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직후에도 한때 귀농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97년 이전 한 해 평균 1천 가구 미만이던 귀농인구는 1998년 6천4백9가구로 급증했다. 이후 급감한 귀농가구 수는 2002년 7백69가구로 바닥을 찍었고, 2000년 이후 매년 1천~2천 가구 선을 유지해오다 지난해 2천2백18가구로 뚜렷하게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귀농가구는 시도별로 경북(4백85가구)이 가장 많았고 이어 △전북 3백85가구 △경남 3백73가구 △전남 2백89가구 △충남 2백27가구 순이었다. 즉 귀농자 10명 중 7명 정도가 농어업이 주요 산업인 전남·북과 경남·북에 둥지를 틀어 지금의 귀농 행렬이 단순한 전원생활 즐기기가 아니라 진짜 농산업에 뜻을 둔 귀농임을 짐작하게 한다.
가구주의 연령은 인력이 부족한 농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40, 50대가 절반 이상(60퍼센트)을 차지했다. 귀농이 농촌의 활기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귀농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귀농·귀촌 교육을 실시하는 각 교육기관이나 설명회장에는 참가자가 넘쳐난다.
10월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경북 상주시 주최 귀농·귀촌 유치설명회에는 5백여 명이 참석해 호황을 이뤘다. ‘여러분은 실패할 이유가 없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설명회에서는 상주지역 ‘농사의 달인’ 10여 명이 참석해 귀농 희망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토지와 정착금 지원을 앞세워 도시의 귀농 희망자를 유치하고 있는 가운데 상주시는 귀농 희망자들에게 지역 내 ‘농사의 달인’, 생산·유통·가공 전문가들과의 체계적인 네트워크를 맺어주는 ‘멘터 제공’ 등 지속적인 농촌 정착 컨설팅을 내세웠다.
상주시 농업기술센터 김주태 과장은 “주로 30~60대의 연령에 회사원, 교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농촌 정착 컨설팅을 원했다”며 “당초 계획은 90명 정도 귀농 희망자를 선발해 멘터 주선 등을 할 계획이었지만 지원자가 예상보다 많아 결국 1백70명을 선발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시작된 한국농업대의 ‘경기 귀농·귀촌 학교’ 과정에는 50명 정원에 2백59명이 응시해 5.2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일자리 창출이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귀농은 농촌지역 일자리 창출 방안의 하나로 추진되기도 한다. 현재 농촌진흥청은 물론 서울시와 경기도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시민에게 새 일자리를 찾아주는 방법의 하나로 귀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귀농 희망자들이 성공적으로 귀농에 정착하는 비율은 3명 중 1명에 못 미친다는 현실도 냉정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충분한 준비 없이 귀농하면 1백 퍼센트 실패한다는 것이 귀농 경험자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귀농을 결심했다면 농촌진흥청이나 농협, 또는 한국농업대, 천안연암대, 전국귀농운동본부 등을 통해 귀농교육을 먼저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정용수 상임대표는 “이 시대의 귀농이란 직업의 전환이나 거주지의 이전이 아니라 삶의 전환이며,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구조 조정하는 자기혁신”이라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며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일구는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글·박경아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