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이 걷는 집' 남흥재사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時空間)에서 살고 있다. 공간과 시간이 분리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공간을 통해서다. 거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거리와 거리의 다른 방향들이 우리에게 살펴지면서 장면과 장면이 시간적 순서를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낀다.
조선집을 구성하는 가구식 구조(架構式構造·목재로 기둥과 보를 조립해 만드는 구조)는 지형과 지세를 이용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장면과 장면의 시간의 순차를 통해 공간을 느끼게 하는 데 더없이 탁월한 구조다. 안동의 와룡면 중가구리에 있는 영남 남씨 문중의 남흥재사(南興齋舍)는 이러한 가구식 구조가가지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남흥재사가 있는 남흥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인 가느실에서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남흥재사를 충분히 느끼려면 적어도 이 가느실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좋다. 이 좁고 긴 가느실 마을의 지형을 따라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남흥마을이 나온다. 잘못하면 사람 그림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올 수도 있는 이 동네의 제일 높은 곳에 남흥재사가 잇다.
이제부터는 경사가 좀 가파른 길을 따라간다. 남흥재사의 2층 누각인 원모루 처마가 가까워 올수록 고조되는 음계처럼 펼쳐져 있는 재사의 지붕들이 일정한 화음을 갖고 변주된다. 원모루의 판벽에 낸 두꺼운 영쌍창(靈雙窓)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처마의 그림자로 무겁고, 움울하다. 반변에 재사 1층의 흙벽들은 눈부시다. 약간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재사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서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가느실의 좁은 길과 마을을 둘러싼 산들까지 남흥재사의 안뜰은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경사지에서 각각의 마당을 구성하여 가운데 안뜰로 흐르는 듯하고, 지붕들은 지붕들대로 산맥이 달리듯이 서쪽 채에서부터 대청으로, 종손방을 돌아 2층 누각인 원모루에서 크게 일어서고 있다.
원모루에 앉아 비로서 숨을 내수면 다시 안들 위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지세를 따라 주초에 다리를 내리고 있는 가구식 구조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와 같이 걷는 집. 나는 혼자 걷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