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는 중국과 대한민국 중 어느 민족의 유적인가?
모피어스네오 2022. 1. 31. 18:57
1970년대 이후, 고대 한민족의 활동 무대이던 중국의 만리장성 밖 요령성 일대에서, 세계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충격적인 유적 발굴이 있었습니다. 이 유적을 '홍산문화'라 합니다. 여기서 최고 9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이 발굴되자, 중국은 재빨리 흥산문화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중국을 인류 문명의 뿌리 나라, 종주국으로 만들 전략을 세웠습니다. 중국은 2001년부터 자국의 시원을 확정짓는 탐원공정探源丁程을 기획하고, 그 일환으로 2002년에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하였습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의 동북지방, 즉 요동, 요서, 만주에서 펼쳐진 한민족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역사 왜곡 공작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민족의 고구려와 대진(발해) 역사를 중국 내 소수민족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당나라의 유적으로 조작했습니다.
2007년, 동북공정을 마친 중국은 홍산문화를 요하문명 이라 부르며, 요하문명론을 내세워 단군조선의 역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의 양식은 중국 한족의 문화 양식과 분명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의 과거 역사는 곧 중국의 역사’라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홍산문화를 중국의 문화로 전 세계에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한국 정부는 약 2,500억 원의 예산을 긴급 배정하여 ‘고구려역사재단’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확대, 개편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 단체는 홍산문화를 중국의 고대사에 편입시킨 것에 대해 대응하기는커녕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한국학연구소Korea Institute에 10억원을 지원해서 한미합작으로 역사 왜곡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2013년에 발간한『한국 고대사 속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입니다.
이 책은 ‘한漢 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은 역사 사실이며 한반도의 한강 북쪽에 위치했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세계 교과서 속의 한국사
많이 알려지다시피 세계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중국의 식민지라고 알려져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왜곡을 바로 잡으려는 어떠한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의 3대 교과서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하나같이 ‘서기전 109년경 한국은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특히 프렌티스 홀 출판사가 발간 한 세계사World History에서는 ‘한漢나라의 식민지이던 그 때 중국의 유교, 정치 제도, 한자, 농법 등을 전해 받았다라고 하여 우리나라를 중국으로부터 문명 혜택을 받은 미개한 나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교과서에서는 “조선반도는 상(은)나라 말년에 기자에 의해 개척되었다.” “조선은 주나라 초기에 기자가 국토를 개척한 후 3천년 동안 중국문화의 혜택을 받았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상나라가 망한 후 지금의 산동과 하남 지역에서 머물다 세상을 떠난 인물로, 그가 한반도에 왔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본의 교과서에서는 ‘4세기 후반 최초의 통일왕조인 야마토 조정이 조선에 출병하여 한반도 남부의 임나任那(현 경남지방) 지역에 영향력을 가졌다'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일본이 삼국시대의 신라, 가야 지역을 정복하고 다스렸다는, 사실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진실인 양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기에도 '왜'는 조선통신사를 선진문물을 전해주는 통로로 극진히 대접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랬던 '왜'가 한반도 남쪽을 식민지배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일본 교과서에 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교과서가 모두 한 목소리로 한국사를 축소, 왜곡하고 있습니다.
서기전 5세기에 공자가 당대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한『춘추春秋』를 보면, 과거 주나라 주변의 민족을 ‘오랑캐’로 매도하였습니다. 즉, 중국은 높이고 다른 나라는 모두 깎아 내리는 존화양이,중화中華주의를 취한 것입니다. 이 중화주의 역사 사관은 그 후 모든 중국 역사 서술의 기본 지침이 되었고, 그로 인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한민족의 역사는 대부분 오랑캐의 역사로 각색되었습니다.
일본의 한국 역사 왜곡은 백제가 망하자 나라 이름 ‘왜 ’ 倭’를 ‘일본日本’으로 바꾼(670년) 뒤, 자국의 역사서「고사기古事記』(712년)와『일본서기 日本书紀』(720년}를 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단군조선 때부터 한반도에서 넘어간 이민자들이 개척한 일본의 고대사를 본래 그 땅에서 자생한 왕조 역사로 바꾸어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왜곡함과 동시에 일본 문화의 뿌리, 역사의 뿌리인 한민족을 오히려 그들의 식민지 백성으로 조작 하였습니다.
중국은 역사서를 비롯한 모든 문헌에서 동방문화의 주인인 한민족의 나라 이름을 아예 밝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국호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이상한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13경을 보면, 중국의 고대 삼왕조인 하상주夏商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조선의 국호 ‘조선’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조선 후반기를 살던 유가의 창시자 공자부터 조선을 구이九夷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중국은 우리나라를 구이(논어), 이예(여씨춘추』), 직신穆愼(「일주서』), 숙신肅愼(『산해경』), 맥貃(『논어),예맥, 산융山我, 동호東胡 등 혐오스럽거나 야만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예穢는 ‘더럽다’는 뜻이고, 맥類은 짐승의 한 종류를 가리킵니다. 산융은 ‘산에 사는 오랑캐’, 동호는 ‘동쪽에 사는 오랑캐’를 의미합니다.
한민족을 짐승이나 야만인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기록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 주변에 흩어져 살던 야만스럽고 미개한 부족의 역사로 조작한 것입니다. 나라 이름을 없애버린 것은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너무나 악질적인 소행입니다. 이런 중국이 우리 역사를 저희들 입맛대로 왜곡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중국 정사正史의 비조로 꼽히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첫 머리에서부터 철저한 역사 왜곡이 등장합니다.
황제가 제후들의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 잡아 죽였다(舍殺蚩尤)’
그러나 사마천은 이 구절에 앞서 ‘치우가 기장 강포하여 능히 그를 정벌하지 못했다’고 하여, 치우천황은 누구한테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헌원이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주장으로 ‘금살치우’가 조작된 내용임올 스스로 드러냅니다.『사기정의J(장수절張守節의『사기」주석서)에도 당시 치우천황의 위엄과 군사력에 대해 “치우 군대가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習]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력을 천하에 떨쳤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치우천황
한민족 상고사의 정통 시서 환단고기를 보면 그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치우천황은 배달의 제14세 환웅으로 중원을 정략하여 한민족사에서 강역을 가장 크게 넓히고 배달을 가장 강성한 제국으로 만든 분입니다. 치우천황은 151세를 사시며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에게서 전수받은 선仙 문화를 동북아 전역에 뿌리내린 동방 신선 문화의 원 종주입니다.
동방문화의 주인에 대한 중국의 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치우천황은 후대에까지 병법兵法의 시조로 추앙될 만큼 강력한 제왕입니다. 그들은 치우천황을 두려워한 나머지 치우천황의 인격을 말살하고 머리에 뿔이 달린 도깨비로 둔갑시켰습니다. 치우천황뿐만이 아닙니다. 인류 문화의 창시자인 배달국의 태호복희씨와 염제 신농씨의 인격도 말살했습니다. 5,500년 전, 주역 팔괘를 처음 그린 철학의 아버지 복희씨는 뱀의 몸뚱이를 가진 사람[人頭財身]으로,그리고 5,200년 전, 의학과 농경의 아버 지인 신농씨는 소의 머리를 한 사람[牛頭人身]으로 폄하했습니다.
단순히 신화의 인물이라서 이렇게 묘사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뿌리인 황제헌원의 경우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동시대의 치우천황의 경우에는 도깨비로 묘사했습니다.
동방 배달의 위대한 성인 제왕인 세 분을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추악한 괴물로 왜곡한 것입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응징해야 할 추악한 역사 불의입니다.
그러던 중국이 최근에는 치우천황과 염제신농씨의 혈통 까지 왜곡하면서 역사를 탈취해 갔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와 홍산문화가 발굴되자, 홍산문화의 주인이며 동방 천자 문화의 종주임을 자처하기 위해 그 동안 괴물로 그려 온 치 우천황과 염제 신농씨를 그들의 조상으로 탈바꿈시켰습니 다. 하북성 탁록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라는 사당을 지어놓고 헌원과 함께 염제신농, 치우천황을 ‘중국의 위대한 세 조상’으로 모셔 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를 5천 년 전, 6천 년 전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출처:한민족과 증산도(상생출판, 안경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