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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거시기 Abba 모음집
房長 추천 0 조회 35 07.03.25 17:0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유럽에서 비틀스 다음은 아바(Abba)였다. 남녀 혼성2인조로 스웨덴에서 온 이들은 영국을 초토화한 이래 유럽 전역을 석권했고 이어서 아시아와 남미를 강타했다. 심지어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의 암시장마저 침투했다. 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은 이제 70년대의 스칸디나비안 인베이전(스웨덴의 침공)에 자리를 내주었다.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로드 스튜어트,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영국의 거목 누구도 아바와 유럽 중원(中原)의 1대1 승부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그들은 74년 유명한 음악경연대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스웨덴 출신이라는 약점을 딛고 '워터루'(Waterloo)와 함께 우승하면서 히트 정상가도를 질주했다. 영국이 먼저 그들 손아귀에 들어갔다. 발표하는 노래마다 영국차트를 마치 제집 드나들 듯하면서 무려 18곡이 톱10을 기록했다. 그 중 아홉 곡이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미국이 문제였다. '워터루' 이래 'SOS' '마마 미아'(Mamma mia) 그리고 '페르난도'(Fernando) 등을 전미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으면서 미국진출에 성공한 것은 분명했지만 유럽처럼 정벌의 수준은 못되었다. 그러나 디스코 음악이 독식의 화염을 내뿜고 있던 77년 신년 벽두에 발표한 '댄싱 퀸'(Dancing Queen)에는 미국의 팬들도 흔들렸다. 자국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과 결혼한 실비아 소머라스를 경축하듯 '왕국의 웨딩' 하루 전에 발표해 스웨덴 전체를 잔치로 만들었던 이 곡은 먼 나라 미국마저 포섭해 염원하던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그것은 하지만 우연의 성과가 아니라 미국을 관통하려는 절치부심의 결과였다. 아바의 음악을 담당한 남성 두 멤버 비욘 울베우스와 베니 앤더슨, 매니저 스틱 앤더슨(그는 울베우스가 영어를 마스터할 때까지 영어가사를 썼다) 그리고 아바 음악을 결정한 또 하나의 인물인 엔지니어 마이클 트레토우는 “미국을 잡으려면 미국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이클 트레토우는 나중 “우리의 당면 목표는 미국의 레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댄싱 퀸>을 만들면서 미국의 넘버원 히트곡 조지 맥크레(George McCrae)의 '록 유어 베이비'(Rock your baby)를 가이드 음악으로 사용했고 심지어 몇 소절을 응용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에의 소구를 위한 노력이 말해주듯 그들은 지구촌 사람들 누구나 좋아할 전천후 음악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들의 글로벌 스타덤은 바로 보편화에 성공한 음악이 가져다준 승리였다.

남성멤버들과 작업자들은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의 풍요로운 멜로디를 한시도 놓치지 않았고 특히 '아바 가족' 마이클 트레토우는 리듬에 대한 고민은 물론, 더빙을 통해 사운드에 두께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비욘, 베니, 스틱, 마이클은 기술적 완벽함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고리짝처럼 낡게 들리지 않은, '세월에 부패하지 않는' 사운드를 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치밀함은 아바의 생명이라 할 두 여성의 보컬과 코러스에 극에 달했다. 모든 음을 그들이 낼 수 있는 것보다 모두 높여 상대적으로 옥타브가 높은 고음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그네사와 프리다는 “너무 고음을 구사해야 하는 통에 녹음할 때마다 매번 녹초가 될 정도였다”고 투덜거렸다. 그 때문에 아바가 남긴 팝 보석들인 '댄싱 퀸' '페르난도'를 위시해 '날 알고, 널 알고'(Knowing me, knowing you), '돈 돈 돈'(Money, money, money), '내게도 기회를'(Take a chance on me), '게임의 이름'(The name of the game) 등은 듣기는 쉽고 흥겨웠지만 막상 부르기는 어려웠다.

확실히 아그네사와 프리다는 북구 여성 특유의 늘씬한 신체와 빨아들일 듯한 외모에 큰 덕을 봤다. 남자 관객들은 그 두 여자의 몸매 굴곡과 얼굴을 가까이 체험하려고 공연장마다 떼거리로 앞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오늘날 신세대들도 아바의 음악에 열광하는 것은 두 여자의 엉덩이가 아닌 치밀한 사운드와 공들여 부른 노래였다. 아바의 앨범 <골드>는 98년에도 영국 앨범 판매량 3위에 올랐다. 아바와 사운드가 유사했던 영국의 댄스그룹 스텝스(Steps)가 90년대 말 출현해 인기몰이에 성공한 것도 아바가 재평가 받는 시점과 맞물린 결과였다.

아바 이후로 많은 스칸디나비아반도국 가수들이 미국시장에 상륙했다. 노르웨이 아하(A-Ha)와 스웨덴의 록시트(Roxette)가 80년대를 휩쓸었고 90년대 초반에는 남자 둘과 여자 둘이라는 라인업까지 표절(?)한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가 시대를 갈랐다. 아바는 영미 앵글로색슨 외에는 인색한 배타적 미국시장에 스칸디나비안 침공을 일궈내는 역사적 발자취를 남겼다.

아바는 활동당시 '틴에이저 소녀에서 할머니까지'를 포괄했다. '영국에서 극동의 한국까지' 지구촌 전 지역을 집어삼켰다. '70년대에서 뉴 밀레니엄인 지금까지' 아바에 대한 팬들의 격찬은 변함없다. 히트 레퍼토리를 총망라해 2장의 CD에 담은 이 결정판에는 그처럼 '세대' '지역' 그리고 '시대' 등 음악인의 3대 드림을 성취한 환상적 성공담이 응고되어있다. 아바 이전에 그것을 해낸 그룹은 비틀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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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7.03.25 17:08

    첫댓글 맘마미아의 감동 재연! 우리보담 더 늙은 "아바"의 청춘을 위해..

  • 07.03.25 21:55

    아바의 음악은 늘 춘천의 추억을 떠올리곤해.섬세한 청춘 음악.

  • 07.03.26 08:03

    방장 !고마워.친절하게스리...아바의 판을 사들고 열심히 들으며 청춘을보낼때가 엊그제 같은데...

  • 07.03.26 13:54

    별일 없지 여름방학까지기다릴까? 아님 벙개한번 추천할까?

  • 작성자 07.03.26 14:01

    하늘이 벼락 치는 데 눈치보랴? 번개 맞고잡은 사람 알아서 오겠지.. 인화네서 모이든.. 한강 둔치에 벌써 꽃이 피었다는데.. 문자 돌려라. 너랑, 인화랑 시간 맞춰서.. 바쁜 미정이도 나도 가끔은 불참해도 덜 미안케스리 마구 불러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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