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경제가 얼어붙은 탓인지 연말 분위기도 스산하다. 그렇다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 건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월을 보내고 맞는 들뜬 기운에 행인들의 마음만은 여전히 설레는 표정이다. 흔히들 화려한 불빛에 휩쓸리다 보면 그 이면의 어둡고 추운 곳은 잊기 십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있는 자들이 내건 일만 개의 등보다는 가난한 자가 지극 정성으로 매단 한 개의 등불이 더 소중하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국제신문은 공자의 '이인위본(以人爲本)' 즉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은 사람이다'라는 정신으로 우리 주위의 어둡고 춥고 아픈 곳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자 1, 4, 5면은 영화 '카트'보다 가혹한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심층 보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영화 '카트' 상영을 계기로 '건설현장 막일에 버금가는 중노동에다 불쾌해도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여성들의 차가운 현실을 아프게 조명하고 있다. 이 기사는 '카트의 사회학'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육체적인 학대보다는 고객들의 비윤리적인 인권 유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정보와 사실 전달에 그칠 뿐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독자에 다가가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12월 3일 자 8면 '올겨울 첫 영하권 떨어진 날, 소외계층의 겨울나기 기사는 일종의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독자의 마음을 건드려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행동을 유발하고 있는 힘이 엿보였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메뉴는 라면이었다. 방은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다'라는 을씨년스러운 쪽방의 건조한 묘사는, 독자의 무관심한 생각을 전환하고 그것을 행동으로까지 유발할 수 있는 사회적 함의가 내재해 있어 우리 주위의 소외 계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겁이 나는 요즈음이다. 가족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오죽했으면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냉소적인 역설을 했겠는가. 지금 이곳의 우리 사회는 가족의 윤리체계가 이미 붕괴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물신주의의 망령에 넋을 빼앗긴 때문이다. 모두가 딛고 뛰어 넘어야 할 경쟁 상대이고, 나 아닌 타인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12월 15일 자 27면 국제칼럼 '어느 요양병원에서 생긴 일'은 붕괴된 가족윤리와 무너진 효의 실상에 대해 아프게 묘사하고 있다. 이 글은 '부모자식, 형제 간의 기능이 무너지고 있는 가족 해체, 파편화된 사회에서 효는 생각하기에 따라 진부해진 단어일 수 있다'고 운을 떼면서 요양병원에서의 몇몇 삽화를 우울하게 제시하고 있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늙은 부모를 나 몰라라 방치하고, 연휴가 끝날 때까지 부모의 목숨을 연명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자꾸 전화하지 말고 돌아가시면 연락하라고 요양병원 간호사를 다그치는 등 어둡고 침울한 가족윤리 붕괴의 민낯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만큼 망가질 수 있는가를 끔찍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은 학교 교육에서 효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가정에서의 부모 교육이 그 무엇보다도 중차대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주고 있다.
자연은 정직하다. 우리가 준 만큼 되돌려 주고 우리가 관심과 사랑을 쏟은 만큼 넉넉한 품으로 안아준다. 12월 6일 자 1면 토요스토리 '을숙도 큰고니 주남지로 이사 간 사연'이라는 탐사보도는 개발독재의 망령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는 우리 시대의 황량한 풍경화를 보여 주고 있다. 이 기사는 철새들이 낙동강 하구를 버리고 떠나는 이유에 대해 '잇단 대규모 개발은 큰고니의 먹이이자 습지 풀의 일종인 새섬매자기의 씨를 말려 버렸다. 조류 흐름이 변하면서 토사가 쌓여 새섬매자기가 자라기 힘든 환경이 된 탓'을 그 원인으로 규명하고 있다.
새해에도 국제신문은 지면 쇄신을 통해 빈자일등의 정신을 구현해 주었으면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에서 나아가 화려함이나 밝음에 가려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관심의 시선을 보내 주기를 바란다.
소설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첫댓글 극빈자들이 더 추운 겨울나기.
돌아보는 마음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밤길 걷는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