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들려준 깨달음의 시
“부처님 가르침은 언제나 ‘와서 보라’”
이 학종 | | 2024-03-15 (금) 06:45
수행자에는
네 종류가 있네.
길을 아는 자
길을 가리키는 자
길 위에 사는 자,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자가 있네.
이렇게 네 종류가 있을 뿐
다섯 번째는 없네.
수행자라고 해서 다 같은 수행자는 아니다. 그 중에는 훌륭하여 귀의의 대상자로서 손색이 없는 분도 있고, 모양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형편이 없는 자도 있으며, 그렇고 그런 수행자도 있다.
귀의의 대상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그런 수행자를 외호하며, 가르침을 받는다면 재가의 수행자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반면 겉모양은 거룩하고 고귀하며 완전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면을 그렇지 못한 수행자에게 속아 그에게 공양을 올리고 나아가 가르침을 받는다면 낭패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아서 훌륭한 수행자와 그렇지 못한 수행자를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는 <숫타니파타> 뱀의 품 ‘쭌다 경(Cundasutta)’에 나온다. 부처님께서는 많은 수행승들과 함께 말라(Malla) 국을 유행하다가 빠바 마을로 들어갔다. 부처님과 수행승들은 빠와에 있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암바와나(망고 숲)에 머무셨다. 부처님은 오전 중에 발우를 들고 가사를 수한 후 수행승들과 함께 쭌다의 집을 방문했다. 쭌다는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릴 때 황금그릇을 사용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돌로 만든 발우를 갖고 있었으므로 황금발우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황금그릇에 욕심이 발동한 한 악한 수행승이 이 그릇을 훔쳐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쭌다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부처님이 이끄는 상가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으므로 못 본척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쭌다는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도 수행자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저녁 무렵에 부처님을 찾아가 이렇게 질문했다.
“지혜로 충만한 성자, 깨달은 님, 진리의 주인이신 님, 갈애를 여읜 님, 인간 가운데 최상의 님, 뛰어난 길들이는 님께 저는 물어 보겠습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어떠한 수행자들이 있습니까? 일러주십시오.”
그러자 쭌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부처님께서 그 답으로 이 시를 읊으셨다.
부처님의 시를 들은 쭌다는 다시, 길을 아는 자, 길을 가리키는 자, 길 위에 사는 자, 길을 더럽히는 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수행자인지에 대해 말씀해줄 것을 요청했고, 부처님께서는 시에 언급된 수행자의 종류에 대해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셨다.
- 시구 ‘길을 아는 자’는 의혹을 건너고 화살을 떠나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비롯한 세계를 안내하는 사람을 말한다. 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구분된다. 유여열반은 번뇌를 파괴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속박을 끊었으며 궁극적인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경지이다. 그러나 유여열반을 성취한 자에게는 다섯 가지의 감관은 남아 있으며 그것에서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쾌·불쾌를 경험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낀다. 무여열반은 해탈의 경지를 성취했음은 물론 모든 느껴진 것은 향유되지 않은 것으로 냉정해진 경지를 말한다. 그러나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은 모든 장애와 속박을 끊어 궁극적인 지혜를 체득한 최고의 경지라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 시구 ‘길을 가리키는 자’는 위없는 것을 위없는 것으로 알고, 이 자리에서 가르침을 설하고 분별하고, 의혹을 버리고 동요하지 않는 해탈자를 말한다. 위없는 것이란 열반의 경지를 뜻한다.
- 시구 ‘길 위에 사는 자’는 새김을 확립하고 자제하고, 허물없는 길을 따르며 잘 설해진 가르침의 길 위에 사는 자를 말한다. 여기서 새김을 확립했다는 것은 행주좌와어묵동정에 사띠를 놓치지 않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며, 자제하는 것은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여섯 가지 경계에서 기분 좋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주고 유혹적인 것들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고 찬양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 경지를 성취한 경지를 뜻한다.
- 시구 ‘길을 더럽히는 자’는 맹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무모하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거짓이 있으며, 자제함이 없고, 말 많고, 위선적인 사람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쭌다에게 이 시를 설한 뒤, 이러한 것들을 꿰뚫어 배운 바가 많고 지혜로운 재가의 고귀한 제자라면 수행자들이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알고 또한 보아서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알고 본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와서 보라.’는 것이지 ‘와서 믿으라.’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앎과 봄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봉사가 붉은 신호등 앞에서는 서고 푸른 신호등 앞에서는 가야한다는 앎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 신호등 앞에서 봄이 없으면, 그의 앎은 소용이 없다. 그리고 어린 아이가 신호등 앞에서 붉은 신호등이나 푸른 신호등을 볼 수 있어도 붉은 신호들 앞에서 서야 하고 푸른 신호등 앞에서 갈 수 있다는 앎이 없으면 그의 봄은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