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노트]
있던 것도 없던 것도 없다
박정원
백두산 화산폭발 임박설을 보도한 한 TV프로그램이 며칠 전에 있었다. 2002년 6월을 기점으로 증가하고 있는 백두산 지진이 최근 들어 규모 7의 큰 지진이 발생하는 등 백두산 아래의 마그마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과학자는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백두산이 화산 활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 바 있다. 서기 698년에서부터 926년까지 존재하던 <발해>도 화산폭발로 사라진 것으로 추측 보도하고 있다.
최근의 중국 스촨성 지진이나 아이티 지진, 아이슬란드 화산폭발 등의 가공할만한 위력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한겨레의 눈물샘인 백두산이 소리 내어 엉엉 운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가 그린 그림들이 연일 산산조각난다
여진餘震은 비명소리까지 먹어치운다
고갱은 왜 아이티에 묻혔을까
‘우리는’이 밟히고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는 흙먼지구덩이에 반쯤 묻히고 ‘어디로 가는가’는 죽은 얼굴을 뭉개고 있다
그의 역작을 조심조심 수정한다 매독에 걸린 고갱이 캔버스를 바꾸고 있다 망고를 든 여자 몇, 팽개쳐진 팔레트를 주워 고갱에게 건넨다
십자가를 질근질근 씹고 있는 고갱, 그 아래쪽에서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은 여자가 절규한다 신이여, 용서하소서!
고갱의 붓끝에다 덧칠을 하며 수음을 한 첫새벽, 원색을 고집하다 기어코 원색에 묻힌 고갱을 경배하는 이부자리 속,
시뮬레이션으로 펼쳐진 진도 7.0의 3D좌표가 속수무책으로 갈라지고 무너진다 온몸이 동강난 예수가 매캐한 한강물에 둥둥 떠다닌다
나의 아이티는 나의 고갱은 어디에 있을까
- 졸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전문 (『애지』2010, 여름호)
아비규환阿鼻叫喚, 지진으로 인한 아이티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을 때, 나는 고갱의 1897년 작품인 그의 역작 ‘우리는 어디서 왔으면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고갱이 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아이티에서 평생을 보낸 그의 행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순간에 묻혀버린 생령 앞에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내 상상인 시뮬레이션은 고갱의 삶도 무너뜨린다. 예수도 부처도 나약하기 그지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법과 제도와 윤리 등의 경계를 논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벨이 울린다 거칠게 들어섰던 욕지거리가 번쩍, 칼날에 베인다 한마디 구하려고 꼭두새벽까지 걸었던 발자국들이 눈발 속을 그치지 않고 걷는다 허기진 눈빛 실어 전송한 메일을 끝내 열어보지 않는 그,
마음 언저리에서 빙빙 돈다 다다르기엔 너무나 버거웠던, 쨍하던 허공이 띄워주는대로 도착했던, 따뜻한 촉감이나 시선보다도 더 크고 넓게 파이던, 기필코 그게 아니면 아니었던,
띠잉∼또옹∼, 메신저 도착소리가 한기를 흩뜨려놓는다
산도화 분분한 그날까지는 아직 멀었다 넌지시 내려다보는 老松들께서 시키는 대로 다시 한 학기 추가!
용서라는 숫눈밭이 아직도 낯설다 처절처절 올려다보는 눈빛 하나마저 찬찬히 음미해볼 시간, 그리 오래남지 않았다
- 졸시 「무릉계곡 입문入門」,‘두타산 숫눈밭에 옴팡 들어앉은 낙엽 한 장에게’ 전문 (『애지』2010, 여름호)
겨울산행 중에 만난 졸시다.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 사이에 있는 두타산. 눈이 쌓인 산행길은 도끼날 같은 서슬 퍼런 빛을 띠고 있다. 숫눈 위에 옴팡 들어앉은 낙엽 한 장이 마치 내게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가만히 만져보니 온기가 느껴진다. 낙엽이 들어앉은 자리만큼 숫눈도 양보하고 있다. 따듯하게 감싸주고 있다. 잠시 머무는 낙엽의 집이다. 낙엽도 생명인 것이다. 마지막 눈빛, 낙엽을 그대로 두고 돌아서는 길, 나는 그 낙엽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차갑고 어두운 방에서 호흡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나를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내려다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때때로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는 것처럼 낙엽이 건네는 말을 아리송송 지금도 물론, 잘 모른다. 내안의 정이 많아 바깥 선을 짙게 긋지 못하는 성격 탓만은 아닐 것. 겨울은 길고 봄은 짧다. 사랑만이 삶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하늘은 변함없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든 이를 용서하고 그들에게서 용서받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진정한 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지구에 전쟁이나 애증, 갈등 등은 사라질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숫눈은 고요히 우리들의 상처를 끌어안고 물 흐르듯 사라지고 만다. 있던 것도 없던 것도 없다. 그것이 진리다. 싸우지 말고 살 일이다.
버릴 것 다 버렸다는 폭포수를 따라간다
실지렁이 얽히고설킨 웅덩이가 되어보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가 되어보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는 여울목 속살을 훔쳐보기도 하다가
거대한 子宮 앞에 닿으니 빳빳해지는 혜욤, 침만 꼴깍꼴깍 넘어간다
머릴 묻고 애무하는 머리 뒤쪽으로 생리혈 한 무더기 핑크빛으로 비치는데
어머니, 나를 어디에서 주워오셨나요?
애기향유고래 한 마리, 솜털구름 한번 들었다 놓고 팽팽한 수평선을 또옥똑 끊어놓고
혼절하지 않으면 결코 나만의 고래를 가질 수 없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맹물들
고요히 젖무덤 속으로 파고든다
- 졸시 「개어귀에 들다」전문 (『애지』2010, 여름호)
바다로 드는 강물을 내려다보니 먹먹해진다.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엔 바다 품에 안기는 강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디카로 찍은 개어귀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깔아놓고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바다는 원초적 생명을 출산한 거대한 자궁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를 지구별 아이로 내보낸 어머니의 성性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성인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 강물은 정자처럼 달려왔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어귀에서 그들은 안도의 절정을 맛보는 것이다.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나를 나은 어머니의 유일한 사랑의 입구처럼 개어귀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세상의 여자들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다. 아기 같은 남자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돌팔매질도 해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며 서운했던 일,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일러바치는 것도 기실, 바다는 이러한 모성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여
그대가 물푸레나무인 줄 몰랐다
물푸레라고 숨죽여 읊조리면
그대 우러르는 먼 산이
시 한편 들려주고
돌아보는 뒷모습이
그림 한 장 남겨줬다
물푸레나무 아래서
이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었듯이
사랑이여
나는 그대가 사랑인 줄 몰랐다
웃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치어다볼 때마다
정강뼈 아래 물빛을 온통
물푸레로 물들이던
사랑이여
물푸레 옆에서 물푸레를 몰랐다
점점 내가 물푸레로 번져가는 것을 몰랐다
물푸레 물푸레 되뇌기만 하면서
맑은 물 한 종지 건네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 졸시 「물푸레나무」전문 (『우리시』2010, 6월호)
그렇다. 몰랐다. 내 생활반경에 있는 모든 동식물과 인간, 산과 바다, 강 등의 자연이 내게 베푸는 사랑을 수시로 잊고 살았다. 등하불명燈下不明, 바로 내 주변 가까이에 찾고자하는 그 무엇이 있었음에도 무심히 지나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별 볼일 없는 내게도 기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장애우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 삶의 끈을 매듭짓지 못하는 연인일 수도 있다. 소망천사원일 수도 있고 꽃동네, 소록도일 수도 있다.
조그마한 불꽃이 큰불을 일으킨다. 외롭고 힘들 때 물 한 잔을 권하는 그대가 내 인생의 큰 스승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