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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준 전시상황이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특수부대’란 게 꽤 여럿 생겨났다. 미국의 델타포스에 비견되는 육군 특전사의 707특임대, ‘한국의 네이버씰’이라 불리는 해군의 UDT, ‘붉은 베레’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공군의 CCT, 그리고 해병대의 꽃이라는 해병특수수색대...
그런가 하면 1970~80년대 한반도 남쪽의 군사요충지와 해안선을 물샐 틈 없이 경계하면서도 주민들과의 친밀도는 여타 어느 군대보다 높았던 특수부대가 또 하나 존재했었다. 단기사병 군단, 즉 ‘방위병’이 그들이다.
방위병-. 향토방위와 후방근무지원을 수행하기 위해 1969년 4월에 생겼다가 1994년 12월 31일 입대한 ‘마지막 방위’를 끝으로 이 땅에서 사라져간 ‘전설의 특수부대’ 이름이다.
아! 이쯤 되니 문득 장배기 깨에서 번쩍 섬광 같은 게 감지된다. 필시 방위병을 특수부대로 부르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진짜 특수부대 출신들이 쏘아대는 ‘레이저빔’ 때문일 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특수부대가 맞다는 얘기다.
자, 그럼 그들이 왜 특수부대인지, 이제부터 그 이유를 하나하나 꼽아보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그들의 특수한 신분이다. 여느 특수부대와 달리 방위병은 자신이 원한다 해서 다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학력이나 신체등급, 가족관계와 거주지역의 방위병 수요, 그리고 +∝(사실 요거 무시 못한다) 등을 고려해 국가에서 지명하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방위병은 그 직을 그만둘 때도 결코 ‘제대’나 ‘전역’이란 흔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소집해제’라는 특수한 용어를 썼다. 왜냐하면, 방위병은 입영과 동시에 제대를 시키고 제대한 자를 ‘소집’하여 1년간 복무시키는 특이한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복무기간 계산법이나 복무방식, 지급물품 따위도 일반사병들과 많이 달랐다.
서류상엔 비록 ‘1년 복무’ 혹은 ‘6개월 복무’로 되어있지만, 근무지에 ‘대가리 내민’ 날짜만을 복무한 날로 치기 때문에 실제 복무기간은 14개월 혹은 8개월 정도 되었다.
또, 거개가 자택 인근의 군부대나 예비군중대, 동사무소, 파출소 등지에서 기간요원 또는 병무행정 보조요원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복무했고, 지역의 해안초소, 무기고 등을 지키는 경계병들은 24시간 근무하고 48시간 쉬는 방식으로 복무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물품은, 가슴팍에 ‘방위’ 마크가 부착된 후줄그레 한 개구리복 한 벌(초기엔 완장을 찼으나 여론이 좋지 않아
얼마 뒤 표찰로 바뀌었다)에다 국방색 천과 검정고무 밑창으로 만든 - 팔로군이나 신었을 법한 - 통일화 한 켤레가 전부였다.
월급은 한 푼도 없었으며, 중식도 제공되지 않아 다들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녔다. 무보수임에도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으니, 기실 애국자도 이런 애국자들이 없었다.
게다가, 방위병의 숫자는 여느 특수부대의 그것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신분상 예비군이 소집된 격이었던 터라 당연히 정규군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때문에 막연히 수십만 명일 거라는 설만 무성했는데, 이는 전쟁억지력을 높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세간에는 김일성이 섣불리 남침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숫자 파악이 전혀 안 되는 정체불명의 특수부대와 그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 속의 신무기(도시락)가 두려워서’였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떠돌아 다녔으니까.
이들은 또 하나같이 자신의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린다는(특히 여성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방위병으로 몸담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소집해제 된 이후에도 본인의 ‘역종(役種)’이 노출되는데 대해서는 극도의 거부감을 표출했던 것이다.
때문에 팔도에 ‘해병전우회’를 비롯한 각종 특수부대 출신들의 전우회나 동기회가 널려 있지만 방위병 출신들 모임은 단 하나도 없다. 철저한 신분은폐-, 특수부대 출신의 전형적인 처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군기 또한 꽤 빡센 편이었다. 기간병이나 행정보조요원, PX방위 등 이른바 ‘꽃방위‘들은 ‘빠진’ 면이 없지 않았으나, 해안초소와 탄약고 경계병처럼 일반사병(현역)과 함께 근무하는 곳의 군기는 어느 현역부대에 못지않았다.
다만, 장비고 근무자들의 경우는 현역병의 ‘얼차려’보다 오히려 ‘하느님과 동격이고 아버지와 술친구고 어머니와 소꼽친구’인 근무지 내 선임(고참)으로부터 받는 기합이 훨씬 가혹했다.
간혹 부대로 불려가 선임과 후임이 함께 박박 기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이런 날 선임들은 손상된 권위를 복원하기 위해 근무지로 돌아오기 무섭게 ‘종합기합세트’를 무차별 하사(?)해 후임들을 초토화시켜놓기 일쑤였다.
뭐, 이쯤 되면 특수부대로서의 요건을 두루 갖춘 걸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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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병은 이렇듯 거의 ‘자원봉사’에 준하는 복무체계로 열악한 국방예산을 보전해주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후방을 지켜냈지만, 군대치곤 지나치게 ‘주민밀착형’인데다가 ‘주군야민(晝軍夜民)’의 어정쩡한 신분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는 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현역병보다 빨리 군복을 벗을 수 있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거리였지만, 같은 이유로 인해 툭하면 현역병의 놀림감이 되고 ‘심심풀이 땅콩’이 돼 주어야 했다.
우선 호칭부터가 그랬다. ‘물방위’는 차라리 고급스러웠고, 부르느니 ‘똥방우’였으며, 일각에서는 심지어 ‘조×방우’라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호칭도 거리낌 없이 입설에 올렸다. 대체 누가, 언제부터, 왜 사내로서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한 부위까지 계급에 갖다붙여 불렀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뿐만 아니다. 코미디프로에선 방위병을 비하하는 내용이 넘쳐날 지경이었으며, 혼기 꽉 찬 아가씨들조차 “방위가 군대면 파리는 새다”라는 심히 모욕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날려댔다.
휴가 나온 큰애와 둘째를 데리고 외출을 한 엄마가 “두 아드님 군인인가 봐요?”라는 지인의 물음에 “얘는 군인이고…얘는 방위예요”라고 해 둘째를 좌절에 빠뜨렸다는 이야기도,
그 얼마 뒤 화장실에 간 둘째가 ‘잘 키운 방위 하나 열 현역 안 부럽다’라는 낙서를 보고 뿌듯해 하다가 바로 옆에 쓰인 ‘애지중지 키운 딸 방위사위 웬말이냐!“라는 낙서에 다시 주눅을 빼어 물었다는 이야기도, 방위병들의 심금을 울리는 유머 중 하나였다.
‘좀 배운 놈들’ 사이에는 ‘UDT(우리 동네 특공대)’니 ‘KGB(코리아 지역 방위)’니 하는 영어 이니셜이 유행했으며, ‘아르바이트 솔저’ 혹은 ‘쇼트타임 솔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전시 방위병의 임무’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1. 방위병은 전시에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적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2. 방위병은 전시에 산에 올라가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를 교란시킨다.
3. 방위병은 전시에 대량으로 적에게 투항하여 적의 군량미를 축낸다.
4. 방위병은 전시에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적의 비상소집 허위통지서를 배포시켜 적 민방위 체계를 교란 시킨다.
5. 방위병은 전쟁시 특공대처럼 설치다가 일부러 잡힌 뒤, 방위라는 사실을 알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6. 방위병은 전시에도 오후 6시에는 칼같이 퇴근한다.
물론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항변하는 내용도 없지 않았다. 다음은 사이버공간에 떠돌고 있는 반박‘성명서’의 일부다.
…(중략)…밤만 되면 기어나오는 바퀴벌레들이라는 욕설에 위병소에서의 오리걸음, 제대 후 가진 미팅에서 방위 출신이라는 말에 일그러지던 여자 얼굴까지 그 아픔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그 중에서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터무니없는 유언비어였다.
* 전쟁 시에도 6시에 퇴근한다."
- 우리가 언제 칼퇴근을 했다고 이러는가.
*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를 교란한다."
- 플라스틱 도시락과 보온밥통은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때는 배식받았다.(이 양반 90년대 방위인 듯싶다)
* 적의 포로가 되어 식량을 축낸다.".
- 그럼 현역은 포로되면 단식투쟁할 거냐!!!
아 그러나 우리는 묵묵히 참았다. 단지 우리가 방위라는 이유만으로, 그래도 또래 젊은이들이 내무반에서 고생할 때 집에 가서 엄마 밥을 먹는다는 위안으로 그 통절한 설움과 부당한 유언비어를 인내하였다…(후략)…
방위병은 1996년 6월을 전후하여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당국은 방위병 제도를 폐지하면서 그 이유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출퇴근 근무와 짧은 복무기간 등으로 인하여 전투력이 현역에 비해 30% 수준이었고, 이러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진 방위병이 상비군의 27%, 예비군의 37%를 점하게 되어 총체적 전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되어서…’.
하지만 이는 ‘방위병을 두 번 죽이는’ 말이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댔다고, 비록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이왕 없어지는 조직임을 감안해 좀 더 기분 좋은 ‘덕담(?)으로 그들의 사기를 고양하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마무리 지을 수는 없었을까?
예컨대, 이렇게 말이다.
‘대~한민국 현실에선 꼭 필요한 제도였을 뿐아니라 전쟁억지력을 제고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한 특수자원이었으나, 대도시 인구 집중화로 인한 지역별 자원의 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가 야기됨에 따라 이의 해소와 형평성 제고, 충원보장 차원에서 부득이하게 없애게 되었음을 심히 안타깝게 생각하며, 본 조치가 국군의 전투력 약화 등 국가의 안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사실 방위병의 주된 임무는 현역병을 ‘지원(support)’하는 것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방위병이 득실거리던 시절 그들이 다수 배속된 부대 내 현역병은 – 작대기 하나까지 - 다들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던 게 사실이다.
행정병이나 전투요원으로 차출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방위병들이 부대 내 이발소, 식당, 매점, 수송부, 옷 다림방 등을 접수(?)하여, 원래 현역병 몫이었을 온갖 궂은일들을 몽땅 도맡아 해냈기 때문이다.
이건 현역병의 사기진작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현역병이나 방위병이나 국가가 정한 잣대에 따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 한 것은 동일한 것 아닌가?
방위병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도에 태어난 세대)가 청년기일 때 병역자원이 넘쳐서 ‘변칙적으로’ 만들어진 복무방식이었다. 본디 한시적 운용을 목적으로 생겨난 복무방식이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병역의무를 모두 이행한 뒤에는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제도인 셈이다. 그래서 없앴다면 되는 것을, 당국은 ‘현역병의 30% 수준’ 운운하는 말로 방위병 출신들에게 또 한번 상처를 안겼다. 그야말로 남의 금쪽같은 자식들 공짜로 실컷 부려먹고는 능력미달 운운하며 내치는, ‘토사구팽’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당국의 시각이 ‘요따우’다 보니, 방위병 출신들은 엄마 밥 먹고 다녔다는 원죄(?)로 인해 소집해제 이후에도 친구나 직장동료들이 군대얘기로 침을 튀길 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못질 하나 어설퍼도 마누라로부터 “방위 출신이 다 그렇지 뭐~”하는 비아냥을 듣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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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방위병이 사라진 지도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방위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때 우리나라 예비군의 1/3을 상회하는 숫자가 방위병 출신이었다고 한다. 현재 약 350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뿌리를 내리고 정·관계는 물론, 언론계, 문화계, 체육계 등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얼마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박원순 병역 면탈 공방’의 당사자 모두가 방위병 출신이거나 방위병 출신을 남편으로 둔 후보였다.
다 알 듯이 타켓이 되었던 박원순 후보는 ‘6방(6개월 방위)’ 출신이었다. 또 이를 물고 늘어졌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12개월 방위병 출신이었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남편(판사) 또한 ‘6방’ 출신임이 밝혀졌다.
생각해보라. ‘마초이즘(masochism)’의 화신과 같은 여당 대표님이나 근엄하신 현직 판사님이, 젊은 시절 아침이면 위병소 앞에서 도시락 가방 껴안은 채 토끼뜀과 오리걸음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저녁엔 “보오람찬 하루일을 끝마아치고오서~”를 힘차게 합창하며 열을 맞춰 퇴근하던 그 ‘똥방우’들이었다니, 상상만 해도 왠지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국민스포츠로 떠오른 프로야구 판에서도 방위병 출신들의 면면은 바로 보면 망막이 손상될 정도로 눈부시다. 선수시절 ‘양신’으로 불리며 ‘30년 레전드’에 선정되기도 했던 양준혁과 영원한 야구천재 이종범을 비롯해 김용희, 신경식, 유지현, 송진우, 류중일, 정민철, 박정태, 박동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플레이어들이 죄다 방위병 출신이다.
또, IT업계에서도 방위병 출신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는 방위병 출신들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타 군 출신들을 압도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사장은, 숫제 자신이 방위병이었기 때문에 한글을 적기에 내놓을 수 있었다고 토로하기까지 한다. 저녁 퇴근시간을 이용해 한글을 세운상가 러브리컴퓨터에 팔았고 그 돈으로 한글과 컴퓨터를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위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짐작컨대, 그건 상대적으로 짧은 복무기간, 그리고 군사문화 중 부정적 측면(이를테면 ‘까라면 까’라는 말로 함축되는 군대문화)이 현역병 출신에 비해 덜 체질화 되었다는 점, 자존심 강한 시절에 멸시와 조소를 견뎌내면서 이후의 세상살이에서 부딪칠 온갖 어려움을 ‘가불하듯’ 일찍 당겨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 등에서 발현되는 게 아닌가 한다.
아! 동네 강아지들까지 “똥방우 똥방우”라고 짖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돌리랴 예비군 통지서를 누가 돌리랴.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외치랴 등화관제 불 끄라고 누가 외치랴” 군가를 목메어 부르며 이를 악물고 참아냈던 그대들!
이 또한 나라의 부름이요, 나라가 지정한 나의 쓰임새가 아니더냐 자위하며 더욱 가열차게 해안초소를 지키고, 군용트럭을 몰고, 칼빈총을 소제하고, 머리를 깎고, 초코파이를 팔고, 반찬을 만들고, 군복을 다렸던 그대들!
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니며 이런 일들을 도맡아 해준 그대들이 있었기에 부대는 더욱 부대다울 수 있었고 현역병은 더욱 현역병다울 수 있었으며, ‘굽은 나무’ 취급을 당하면서도 ‘선산’을 묵묵히 지켜준 그대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처럼 안락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한때 수난과 멸시의 아이콘이었음에도 어느덧 시대의 주류로 거듭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예비역 일병과 예비역 이병(육방)들이여, 그대들 가는 길에 영광만 가득하시라!!
방위 얘기 들으면서 무슨 감동 속에 잠기기까지...ㅋ
방위가 민간인에게 훈훈한 감동도 주는구나
교복입던시절 김일성이가 방위 무서워 못 쳐내려온다는 말이 무지 재미있었던 생각이 난다
기억저편에 있는데 엊그제일처럼 느껴진다
김일성이가 방위병의 실체를 파악하다가 포기 했단다.
방위병의 주특기는 모두 올림픽금메달감이다
예비군기지에서 꽃밭가꾸는 방위 : 서른골에도 한명 있었다
해안에서 처들어오는 적들에게 써치라이트 비춰서 눈멀게 하는 방위
동사무소 민원담당 동방위 : 이때 나가 타자와 복사의 달인이 되었다
해안초소 해초방위(해초에는 다시마 김 미역 등)
오토바이 출되근하는 오방위
제대하고 훈련 안받으려고 숨어지내는 예비군 잡는 귀신 방위
무기고에서 지구상 모든 특수무기 연구하는 무기고 방위
순경들 근무 점검하려고 경찰서 파견된 방위
기타 너무 많다
경운기 타고 댕긴 방위는 어디 소속이냐?
대평리 무기고에 민물고기 맨 손으로 잡는 방위도 있었다....
국가기밀이어서 간단하게 말했을 텐데...종해 얘기 듣고 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종해야....얼핏 듣자 하니.....'정당방위'라고 있더라~~어렵겠지만 그 방위 임무가 뭔지
핸드폰으로 알려 주라! 여기 쓰면 잡혀갈지 모르니까 말이다~~~
출중한 글솜씨와 넘치는 재치는 세월탓에 적당히 녹슬었을텐데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더라
아직도 무궁무진한 유머는 우리만 나누기엔 너무 아까와서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했더니 내 표현이 짧아서 제대로 전
명자야~~하루 날잡아서 아파트 주민들 다아 불러라~~밥해서 먹이면서 한꺼번에
모두 보여조라~~특히, 방위 출신들은 무조건 우대하고~~그분들에겐 술 사조라~
돈은 성기랑, 나랑, 종해가~~가부시끼로 내마~~암튼, 잘 좀 전해바~~~ㅎ
아참! 얘기할 꺼 있었는데.....신입사원 시절, 어느날 해병대 입대한다고 군대간 후배넘이 있었다....
그땐, 입대전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다들 해병대 가는줄 알고, 거하고 송별회도 해주고...며칠동안 술에 절어
지냈지....그리고 얼마 후, 후배가 해병 신발, 해병 모자, 빨간 명찰에 이등병 계급장 달고 휴가 나와서 회사
들렸지...무지하게 고생하는 녀석을 위로하기 위해....동료들은 또 회식을 했지~~녀석은 훈련 받은 거, 자대생활
등등 목줄대 핏대 세워 가면서 강한 자부심 느낀다며 얘기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켜 가면서
들었다. 솔직히 공병대 중장비병 출신인 나도...할 말 없어서 듣기만 해따~~~
갠히 껴서...땅개소리 들을까바 말이지....암튼, 1차 끝나고, 2차로 스탠드빠로 이동했지....거기 갔더니
해병대 진면목을 보이더라....스트립쇼걸이랑 단둘이 춤 출 기회가 있었는데, 이넘이 나가니 아무도
경쟁하려 하지 않았고, 녀석은 해병 정신으로 끈적끈적하게 춤까지 춰대고.....그런데, 스트립걸이랑
춤이 끝났는데....스탠드빠에 들어 앉아 있던 해병 출신들이 너도나도...맥주, 안주 기본을 보내주면서
선배가 보내니 맛있게 먹으라고.......
그러면 녀석은 어느 자리냐고 찾아 가서...."필~씅!!"이라고 졸라 큰 소리로 인사하고 돌아 오곤 했다.
덕분에 우리는 술을 공짜로 마시다시피 하였고, 술 안팔아 준다고....그자리 여자에게 눈총만 받았지.....
암튼, 그날 녀석의 생쑈는...그 안에 있었던 다른 해병들과 합세해서 가관이었고, 끝내 스탠드빠는
해병들이 점령하고....우리는 숨도 못쉬면서 술만 마시다 나왔다....
씨팍눔이 근데....해병대 방위였단 거다.....그눔 친구가 찾아 와서 들통을 내게 됐지.......
'저시키...해병 현역 아니고....포항 모 해병대 방윈데...피엑스 근무해요!' 라는 거다. 일단, 그 사실을
다른 해병 출신들에게 알리지는 않았지....어쨌거나 덕분에 공짜 술 실컷 마셨으니까!
그때 난....해병 방위가 진짜 해병보다 강하다는 걸 알았다.....해병 방위 한 눔이 스텐드빠를 접수했으니
말이다....오늘은 왠지 그눔이 생각난다....강남에서 옷장사 하고 있는데......아직도 오리지널 해병이라고
떠들고 다니겠지......
원초 해병이구먼
삼화에도 그런 친구 하나 있었징..ㅋ 내가 알기로 이넘 분명 해군방위였는데...주말에는 완벽한 해병대 복장에다 선그라스까지 챙겨쓰고, 5.16때 차지철이 처럼 버스부 앞에 버티고 서있는 게 주요 일과였던거라...하루는 지나가다 깜짝 놀라서 “야! 너 지금 여서 뭐하는 거야?” 라고 물었더니, 주변눈치 슬슬 살피면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주절거리는거 있지... “야야, 모르는 척 하고 기냥 지나가~, 얼른!!!” (IHS 이넘 ㅋ)
ㅋㅋ 나도 기억난다 ㅋㅋㅋ
누구지? 나도 아는 사람인가?
화끈하게 알려주라. 그 친구도 지금은
자랑스런 추억으로 생각할꺼다.
성기야...정춘교 말이다.....이런 일도 있다.....무기고 방위 초소 옆에 막걸리 집이 있었는데....
그 눔은 근무는 수암리 유격장에서 하고, 쉬는 날엔 꼭 대평리 초소에서...나랑 놀기도 했는데...
막걸리 안마신 날이 없었다....막걸리 마시다가 거의 막판에 근무 끝난 방위병 한 넘 오래서
같이 마셨지....그리고 계산해야할 순간이면~~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야~~시꺄~~~니 앞으로 달아 놓던지~~니네 초소 앞으로 달아 놔!! 아런냐?"
그 상대가 누구든...그렇게 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막걸리 집에서 술값 선불로 달랬다가...
그 집 물타 버리는 줄 아러따~~세상천지에 술값 선불로 받는 집이 어딨냐며...불태워
버리겠다고~~
나도 생각나는게 있다 김남억이라고 야는 무코 저기 언덕올라가는데(1급비밀이라 지명 정확히 말 못한다) 무기고 방위였는데 이눔하고 막걸리먹는 날은 마지막에 통닭 꼭 먹는다. 끝날무렵 꼭 한놈 불러 통닭가지고 오더라
요즘 그 통닭이 많이 생각나는구나
남자들 군생활이야기 끝날날없는건 다 아는 일이지만
방위스토리가 이렇게 길게 갈줄은 상상 못했다
계속되어도 너무 재미 있구나
어느날 날 잡아서 아랫목에 앉아서 들어 보고 싶다
수원에서 계산되는건 내가 쏜다
한번 뭉치자
거기 수원에 삼성인가 다니는 친구 있는데 그 친구가 방위 특수교육(4주 훈련)받을때 내무반장했다
그때 난 그친구가 저승사자인줄 알았다
수원의 삼성 다니는 친구? ㅎ
이건 또 어떤 전설이지? 숨은 전설들이
정말 많군~ㅎ
아직도 남아 있는 사연들이 쌓여있어서
2부에 또 올려야 되는건 아닐까
내기억속의..방위는..부르조아다..정말..아무나할수있는게 아니고 아주특별한..
집안 자제들이 할수있는거라고 알고있었는데..서울서는행세쫌..한다는집에서는..
어떻게든자식 군대안보내려고..빽써서..아들방위로만든..부모들..꽤..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