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업무중에 잠시 짬이 나서 한번 글을 써봅니다. RC와는 관계는 없지만,
전차와 관련된 글이니 재밌게 봐주세요. ㅎㅎ (셔먼은 언젠가는 만들어 봐야지요. ^^)
한국군은 창설당시 독립기갑연대라는 기갑부대가 있었습니다. (현재 맹호의 전신)
많은 분들이 아시는 내용이지만, 창설 당시는 M8 장갑차(37mm포), M13장갑차(APC), 그리고 1/4t 짚차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빈약한 기갑전력이 창설당시, 또한 6.25개전당시의 우리한국군 유일의 기갑연대의 장비이자...
전군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보유했던 기갑장비입니다.
당시 기갑연대에는 일본군 전차부대 출신 지휘관과 지휘자들이 많았습니다.(친일논쟁은 생략합니다. ^^)
전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절대다수였던 당시 한국의 사정을 본다면 어쩔수 없었겠지요.
이들은 빈약한 일본군의 장비였지만, 기갑전이란것을 알고 전차가 무엇인지를 아는 군인들입니다.
따라서, 전차라고는 한대도 없는 기갑연대와 한국의 현실을 개탄하며, 많은 건의를 하였고,
실제로 49년 미국에 400대의 M4전차 요청을 합니다만, 거절 당하게 됩니다.
각설하고, 50년이 되면서 북괴군의 준동이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이에 따라 기갑연대도 중대 및 소대 단위로 출동을 합니다만, 전투가 목적이 아니라...
장갑차에 장비된 무전기로 예하부대들과 국방성을 연결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장갑차에 장비된 무전기로 강릉에서 서울까지 육성통화를 할수 있었습니다.
남산에 기갑연대 전용의 통신소가 개설되었구요.
최초의 대규모적인 출동인 50년 6월 에 이루어집니다.
북괴군이 많은 전차를 전진배치하여 당시 한국땅이던 개성시민들이 불안해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1개중대를 개성에 출동시킵니다.
당시 신문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으나.... 바퀴는 찍지않고 포탑만을 찍어..
한국군에도 전차가 있다는 사실로 보도하였지요.
이들은 전쟁 발발 이틀전 다행히 부대로 복귀하여.. 전화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자 대충... 창설 당시 한국군의 기갑연대의 사정은 이랬습니다.
여담으로, 전쟁기간동안 아군 M8장갑차가 한대가 매복하여 북괴군 T34전차의 궤도를 쏘아 기동불능 시킨 수훈도 있었습니다.
당시 차장은 일본군 전차부대 소위출신이었습니다..
기갑연대는, 낙동강전선에서 아군이 반격을 시작하여, 북진하는 시점에서 마지막 남은 장갑차를 대전차지뢰에 잃어
이름만 기갑인 도보연대로 전락합니다.
육군은 기갑연대와는 별도로 전차부대 창설을 시도하였으며, 마침내 미군으로 허락을 받아
M36 jackson(tank destroyer)의 구성으로 10개 전차중대가 창설됩니다.
M36은 포탑도 있고, 회전도 되긴 하지만, 포탑상면의 철판이없고, 전체적인 장갑판도 얇은...
그나마 궤도도 얇고 접지력도 떨어지는.... 쉽게 대전차자주포 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군도 이를 전차로 분류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한국군은 미군으로 부터 이를 공여받아 M36포탑 상면을 10mm 철판으로 용접하고 다시 그위에
샌드백을 올려 보강하여 전투에 투입시킵니다. 전차는 아니지만, 10개 전차중대의 창설은 M36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들은 52년당시 전투에 투입되어 맹활약하였고, 포 자체는 90mm였기에 보병지원에 큰 활약을 합니다.
육군과는 별도로, 진정한 전차부대는 해병대에서 생겨납니다.
(해병대의 M4전차)
1개전차중대가 미국해병대의 지원으로 창설되었고, 이들은 전종까지 한대의 전차도 잃지 않은채 활약합니다.
M4A3 전차로 구성되어, 기동력도 좋고, 장갑도 뛰어나서 고지전에 매우 활약했다고 합니다.
해병대는 이로서 만족하지 않고 노획한 중공군의 전차를 사용하려 시도하였습니다. 특이한점은..
이 노획전차가, 중공군이 노획한 크롬웰 전차였다는 것입니다만, 영국군이 결국 회수해갑니다.)
(1951년 전차인수 글자는 무시하세요. ㅎㅎ )
(중공군이 노획하여 사용하는 영국 크롬웰 전차 - 서울용산 전투)
이제까지의 글을 보면 한국 최초의 전차부대는 그렇다면 해병대이냐 라는 글로 결론이 될수 있겠습니다만..
(M36은 정확하게는 전차가 아니므로)
그렇다면 반전의 재미가 없지요?
잠시 잊고있던 기갑연대를 떠올려봅시다.
전차부대 창설을 생각했다면, 당연히 최초 떠오른 생각이 기갑연대였겠지요.
육군, 해병대 통틀어 아직 전차중대 창설이 시작되지 않았을때..
막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시작하였던 시점에서....
기갑연대에 육본으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전차중대 창설을 위해 일부 부대원을 차출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기갑연대가 배속된 사단장과 기갑연대장이 이에 반대하여 보내질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전차에 목말라 있던 인원이 이에 불복하고, 육본에 올라가서 마침내 전차중대가 공식적으로 창설됩니다.
.....
좋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전차중대의 내용을 봐야 합니다.
구성원은 직속상관의 명령을 어긴 근무위치 이탈자.... 무엇보다 장비는.............................................
T34/85 - 4대와 Su-76 3대 .........
낙동강을 돌파하여, 진격하던 한국군과 미군이 노획한 북한군 장비입니다.
특히 미군은 이 전차중대 창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후에 Su-76 4대를 더 보내줍니다.
이들은 별다른 훈련 없이 전투투입의 명을 받았습니다만.......
근무위치이탈에 따른 자대복귀의 불가... 그리고..
여유부속품의 부족으로 인한 고장의 수리 불가능.... 또한,, 적군의 장비이기에 아군에 의한 오사격의 부담감...
이런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실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의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참여도 못하고, 도중에서 장비가 망실되어 해체된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만,...
이 부대는 한국군 최초의 전차를 장비한 부대임에도... 이런 이유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적군의 장비로 창설했기에... 대외적으로 발표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사실이지요..
출근후에 시간이 좀남아서 가쉽거리 올립니다.
첫댓글 왜 갑자기 난지도의 쓰래기 더미위의 공원이 생각이날까요? 무었하나 바르게 청산 돼어 지지않고 덮어씌워지고 덧돼어진 굴곡의 역사 이군요
아 이런 일화들이 있었군요,,,해병대 글짜가 선명한 셔먼 멋집니다.^^
이런 장문의 글을 쓰시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역사를 알고 계신게 더 대단하신 것 같네요....ㅎ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아픈 역사이군요 글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숨겨진 히스토리는 알게되면 기쁘죠~ ^^
우리 전차의 초기 비화를 재밋게 엮어주셧네요..
아~~~ 웃어야 할지 불행해서 울어야할지~ ~~~ 하여튼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