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6751 ♧ 이름: 홍진흠 ( 남 ) ♧ 2009/12/26(토) 00:01 (MSIE7.0,WindowsNT5.1,Mozilla/4.0(compatible,MSIE6.0,WindowsNT5.1,SV1,EmbeddedWebBrowserfrom:http://bsalsa.com/,InfoPath.2)) 121.132.145.187 1024x768 ♧ 조회: 2050 | |
![]() 내가 맨 처음 장충체육관을 찾던때가 1966년이니 아마도 43년(현50년)전이 아닌가싶다.학업을 잠시접고 금의환향의 목표로 처음 서울와서 취직한게 서대문 창천동에 소재한 "흥진기업사" 란 전축회사였다. 난 음항기기쪽에 형님은 나무로 무엇이든지 가능한 목공부쪽으로---그리하여 당시 형제간에 원대한 꿈(?)을 이뤄보자고 다짐하며 둘 다 공장 한모퉁이의 빈 합판조각에 이불을 깔고 잠자고 밥은 기숙사식당에 대놓고 먹는 처지였다. 그런데 상경한지 일주일도 못돼 그공장은 부도가 났다.
기술있는 형님은 선금받으면서 같은 그계통의 공장인 신설동에 취직이 되었지만 난 당분간 취직될때까지 별 수 없이 사촌누님댁서 기거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만해도 돈암동까지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동소문동의 누님댁은 꽤 잘 나가는 집이었고 높은직책의 매형께선 언제나 고급승용차가 태우러 오곤했으며 당시 대신중학교를 상당한 뒷돈을 대고 들어간 조카를 내가 취직될때까지 당분간 공부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의 누나도 진명여중 3 이었으나 내가 담당하긴 다소 버거웠기에 국민학교 3학년짜리와 둘이만 담당하게 되었다. 얼마전까지도 서울대니 연대니 고대등의 가정교사를 두기도 했으나 아이들 성적이 별로 올라가지도 않았거니와 방 하나 따로주고 적잖은 과외비주고 끼니때 마다 반찬 신경써야지 남을 한가족처럼 대하기가 보통 골치꺼리가 아니었 던차 내가 기거하고난 후 부턴 모든게 팽팽 돌아갈
정도였다. 특히 집안일하던 부엌누나가 누구보다 날 좋아 하였다. 쓰레기를 치우던가 궂은 일등은 도맡아 놓고 도와주니 그럴 수 밖에---또한 공부만 잘해선 안된다며 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합기도 도장도 다니게했고 집안에서 탁구도 가르 쳤다. 한동안 홍하사가 왼손으로도 웬만한 사람과도 대적할 수 있음도 그당시 조카를 가르치면서(오른손으론 웬만큼 쳤었기에)왼손으로 칠때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홍하사가 강남 신사동에서 탁구장을 할때 복식조가 와서 상대해 달라면 왼손,오른손 교대로 치며 두사람 몫을 혼자서 감당해 준 적도 적지아니했다.
그런데 그 보결로 들어간 조카를 두달만에 1등으로, 그리고 16등짜리 여자아이를 9등으로 다시 한달 만에 2등으로 끌어올리니 누님댁은 경사가 날 수 밖에---또한 남도아니고 열심히 조카들을 가르치니 게다가 누님의 심부름을 곧 잘해서 시간,돈 등을 단숨에 벌어주니 비서처럼 계속 머무르기를 바랬다. 당시 조카가 다니던 大新中(당시 배구대회는 언제나 대신고교와 인창고교가 라이벌 관계였고 전국을 재패하던 때였으며)을 홍하사는 응원하는 그를 따라 장충체육관을 몇번 가본적이 있었다.
지금은 뉴우질랜드에서 살고있으며 틈만나면 꼭 외삼촌을 초청해서 관광한번 꼭 시켜주고 싶다지만 내가 도저히 여유(?)가 없다. 그시절엔 장충체육관에서 경기를 볼 정도라면 맘을 먹어야 들어갈 정도 였고 선망의 대상이 대기도 했다.바람이 몹씨 불거나 비가오면 경기를 중단하는 운동장에서만 배구를 하다가 그처럼 으리으리한 체육관에서 경기를 막상보니 바람의 영향을 이용하는 슬라이스 서어브등은 별로 효과가 없겠다고 느꼈다.
홍하사가 쬐그만 키에 배구를 했다면 아무도 믿지못할것이다. 지금은 6인조(국제식)로 우선 키가 커야하지만 당시엔 9인조(극동식)로 하프센터나 빽센타의 포지션은 거의가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리베로(전문수비수)가 있긴 하지만---(각설하고)
며칠전에 모처럼 어머님께 바람을 쐬어 드리려고 한달전에 예약한 "MBC 마당놀이" 를 공교롭게도 전날 동창회에서 얼굴한번 안 보여주면 인연을 끊겠다는 공갈에 좀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오전중으로만 도착하면 되려니하고 下邱 했다. 모처럼의 기대를 저버릴수는 없는노릇---내가 좀 무리를 해서라도 실행을 하지않음 아니되었다.
오래전부터 이미 약속했기에 추운바깥에 떨고계실(내가 차 끌고가도 언제나 미리 바깥에 서 기다리신다.)어머님과 언약했기에 그전날 팔공산 자락의 한 모임장소에서 새벽일찍 아침밥먹고 오전중으로 의정부 도착해야 차질이 없는데 ---울 동창생들은 한결같이 불가능 하다고한다. 언제 이시간에 동대구역가서 ktx 타고 서울역 도착해 의정부 우리집 가서 차몰고 처남댁가서 장모님 모시고 장충체육관을 갈 수 있느냐? 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Little Big Man"(ㅎㅎ) 천하의 홍하사가 아닌가? 재빨리 뛰어가고 숨차면 걷고 또 택시타고--- 추운 길거릴 뛰다가 후둘후둘떨리는 발걸음으로 몇분차이로 간신히 열차에 오르니 느닷없이 에이취~소리가 연발된다. 자꾸 옆자리의 손님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신종플루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덕분에 KTX 352열차의 12호 차량의 휴지는 내가 절반을 쓸 정도였다.
여느 사람만 같아도 서울역에서 바로 장충체육관을 직행할테니 淑이가 어머님 모시고 전철타고 오라고해도 될테지만 그럴순 없는 노릇--- 좌우간 장모님께 실망시켜 펑크 낼수는 없지않은가?
잘 나가는 큰사위는 세탁기다 김치냉장고다 가끔 목돈을 쥐어준다던가 하지만 여유없는 홍하산 기껏 장모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효도라곤 이따금 절에 모셔간것이 유일하다. 포천 아트밸리, KBS방송국, 예술의 전당, 정동극장, 제주도 등에 틈틈히 모셔간적은 있지만 시간많은 작은 사위가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별수있나?
언제나 새벽 4시면 정한수 떠놓고 기도하시는 장모님은 얼마나 절에 열심이신지? 우리가 주는 용돈을 거의 다 절(卍) 에 갖다 바치신다. 거기만 다녀오심 그렇게 평화스러울 수 가 없다하신다.
그러하니 홍하산 효도하는 셈치고 절에 태워드리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근 삼십여년간을 본의아니게 절의 신도가 되었다.
---계속---
장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울며헤진 부산항" --- 남인수 노래 장인어른께서는 가수 남인수님과 함께 음악활동(키타리스트) 하시던 '최대순' 님이십니다.
![]() Saigon에서. -[12/26-00:16]- ![]() 잡는다" 는데... 전에 대신고 배구 선수중에 유재학 이라고 .. 배구 선수론 큰키는 아닌데 점프력이 대단했던걸로 압니다.(하도 출중히 잘해서 선수 이름이 기억났습니다.)홍하사도 그 이상의 실력이 있었던걸로 벌써부터 짐작 하고 있었답니다. -[12/26-00:58]- ![]() ![]() 바랍니다. -[12/26-08:28]- ![]() 건강한 삶을 보내시는데 부럽군요..26일 토요일 아침에 눈발이나리는 하늘을 보며 재미나게 봤어요.... -[12/26-08:48]- ![]() 드신 어른들을 같이 동참하여 같이 뛰고 춤추며 놀이 마당을 펼처가며 노인들을 효도 관광으로 모시기는 안성 마춤인듯 합니다. 옛날부터 풍물단이 신명나게 꽹과리.북.징.장고.소고.등 장단을 마추다 보면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다 보면 구경꾼들도 같이 덩실 덩실 춤을 추는것이 우리 고유의 풍물이 아닌가 합니다. 안성에 오시면 어른들의 구경꺼리로는 일품인가 합니다. -[12/26-08:56]- ![]() 창천동은 신촌역이 있는 동네고 6.25때는 개울물도 흐르던 동네 였습니다. 다음 얘기가 기다려 집니다. -[12/26-09:14]- ![]() 실업팀 유명 감독들 모두 이 학교 출신들 입니다. -[12/26-09:58]- ![]() 남산입구에 있은 리라국교(노랑 교복입는 학교)출신의 남자조카는 꽤 괜찮은 학교를 시험쳐서 불과 몇점차이로 아깝게 떨어졌기에--- 여자애는 지금은 서울 사근동에서 꽤 큰 유치원 원장을하는데 압구정동에 살고있답니다.
더운월남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하시믄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관령의 김영배님은 오늘도 꽤 시원하시겠습니다. 조금전에 천보산을 내려 왔었는데요. 금년의 마지막 등반이라고 울회원들이 33명이 참석-홍하사는 얼굴도장만 찍고 약수터까지만 가고 혼자 하산 하여 이곳 종친회모임과 송년횔 참석하려고 오는중에 도봉역 버스정유장에서 백하사님과 멀리서 인사를 나누게되었답니다.
역시 전우애란 대단한것인지? 제가 강렬한 메시지를 보낸게 텔레파시이로 연결됨이었는지 차창밖의 백하사님께 전달되어 서로 손을 흔들게 되었답니다. 글씨는 이정도면---선배님이 안경을 끼셔야될듯합니다. -[12/26-12:29]- ![]() 주시고 항상 좋은 일만 있스시길 바랍니다 -[12/26-12:40]- ![]() 보내시며 조금은 비루(beer)를 적게 마시었음합니다. 엊저녁에 전 못마시는 술이었지만 식구넷이서 잔을 부딪치는 행사로 말미암아 쬐금 마셨더니~암튼 이국땅에서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이곳서 전우애를 나눴으면 합니다. 윤특방 아우님! 울장모님 소릴 내가 자주했었나 부지요? 올해까지만 좀 피알하구 내년부턴 좀 자중해야지. ㅎㅎ 수뢱이가 제댈했으니 이제 한시름 놨겠으요. 멀리서 오시는 형님이 오시는 중이기에 잠시 들렀다우. -[12/26-12:43]- ![]() 부인이 연노하신 보살을 대동하고 항상 사찰에 나왔는데...그 젊은 부인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인 인데 시어머니 가 불심이 돈독 하셔서 년노하신 시어머님을 부축해 드릴려니 자연 절에 나오게 되는데...법당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찬송가 소리를 흥얼 거리게 된다 하였습니다.
나왔는데. 나중에 시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그 젊은 부인은 혼자서도 틈틈히 절에 나왔는데....아마도 내 생각엔 그 젊은 부인은 종교간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오직 진리만 추구하는 고단위 신앙인이 되었을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의 모든 종교는 이런 젊은 부인 같은 ![]() 으로 조용히 한말씀도 안하시던 장모님... 그동안 맏사위에게 무심한듯하신 장모님이 치매에 걸리시고 딸들을 요양원에 모실때 마음이 아팠 는데...일년만에 찾어 뵜을때 막내처남도 놀랄 정도로 맏사위를 알아 보시고 옷깃을 여미시는 것을 보고 뒤돌아 올때 많이 울었습니다... 평상시에도 찾어뵈면 "안동권"씨 무남독녀 답게 조용히 "왔나"하시면 말이 없이 조용하시던 나의 장모님.....
장인(해병대1기 한국전 참전용사)이 돌아 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크게 울지 않으신 장모님....딸이 흰머리가 보인다고 노인을 만들 었다고 요양소에서 사위인 저를 힐책하신 우리 장모님...(맏사위지만 씨암닭 다리도 구경 해본적이 없습니다)...홍하사님은 너무 너무 행복 하십니다....부럽습니다...항상 건강하십시요. -[12/26-14:04]- ![]() ![]() 예를들면 저가 칼치를 좋아하면 우리장모님은 비린내가 난다면서 잡수실 생각을 아예하시질 않고 못먹고 버린다면 버리지 못하게 하시고 잡수시는 분이시지요 40에 혼자 되셔서 먼 안동장 60리길 왕복 120리를 걸어다니시면서 점심도 굶어시고 고생을 하셔서 지금도 허리가 90도를 굽어 있습니다.
몇년전 부터는 거동도 불편해 하시고 움직이시질 못하시지만 우리내외를 위하는 마음은 천국박물관에라도 전시를 해야 되시는것 같아 저는 박물관할매라고 말을 합니다 아들 내외가 주일마다 왔다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장모님의 기력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 지십니다 년말이라 모임들이 많고 자리를 뜰때가 많으면 아예 밥을 자시질 않으실려고 하시고 시간적인 감각이 없어셔서 우리가 애를 먹지만 주일과 수요일 예배를 꼭 참석 하시길 윈해서 휠체어로 모십니다 우리세대와는 달리 특별히 더 많은 고생을 하신 장모님이 더 건강 해지시길 바랄뿐입니다 홍 하사님 장모님 자랑에 집에 계시는 장모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2/26-21:32]- ![]()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남은 인생이나 열심히 잘 살아야겠지요. 지금 의정부에도 눈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내일 출근이 걱정되네요. 안성마춤이란 말이 생긴고장 안성의 백마 홍석진님! 며칠전 장총무님의 장례식장을 찾았을때 어쩜 그곳 안성에 계신 선배님과 제가 선착순 으로 영안실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그러면 두 홍하사가(물론 백마와 맹호의 같은 시기는 아니었지만)일이등으로 테입를끊을것 같았기에 말입니다. 그 이튿날 오셨드군요. 요즘엔 어떤 농삿일을 하시는 중인지요? -[12/27-22:42]- ![]() 이불보따리 하나 달랑 어깨에 질머지고 십이열차로 서울역에 도착한 홍하사는 새벽 부시시한 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레! 나도이젠 서울의 하늘아래서 호흡하는 사람이되었구나. 꼭 성공해서 내려가자" 고 다짐을 했건만~ 그후 두달만에 누님댁을 도망나오다시피 빠져나와 당시 서울대학교(이화동)앞에서 "윤 진흠"(얘기하자믄 사연이 김)으로 이름까지 바꾸고 서점에 취직되었고~
다시 한달도 채 못 버티고(몸에 이상이생겨)눈물을 머금고 대구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답니다. 백동기님의 지방학교론 부산동성고와 이리 남성고(?)가 알아주었던것 같습니다. 경북,대구지방에선 경북공고가 제일 알어주었는데 제가 주경야독하던 회사에서 배구를 처음할때 그 고교선수 두사람이 우리팀으로 등록해(그들은 현장실습으로 등록한 우리회사이니)대구에서 중소기업연맹에서 주최한 배구대회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요. -[12/27-23:17]- ![]() 차량을 제공해 주시는 님에게 "고맙습니다" 로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그날 회사에서 어떻게 그사실을 용케알고(평소엔 근무시간 중에 인터넷을 거의 들어가지 않을뿐만아니라 회사에서 차단시킴)재빨리 집에다 파킹시킨후에 집앞에서 버스로 장암역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7호선으로 고속터미널로 다시 3호선으로 남부터미널로 시외버스로 안성까지 그곳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로 병원을가게되니 도합 여섯번을 각기다른 운송수단으로 간 결과였답니다. 물론 올땐 맹호수색대(이상수님)의 수고로 편안히 왔습니다만 전 별로 그러고싶지 않았지만 심사령관님왈 이왕이면 함께 얘기도하면서 情도쌓고 나중에 수고비조로 연료를 한번 넣어드리던가 술한잔사면 되잖느냐고 하셨습니다만--- -[12/27-23:47]- ![]() 기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랑과 봉사를 실천할 수 있게 해 달라구요. 또한 만약에 성당에간다면 성모마리아님께 빌게 되겠지요. 요즘 가끔 석가탄신일때 기독교를 대표한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함께 석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온누리에 자비로 동참한다거니 성탄절에 스님들이 함께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모습이 얼마나 좋습니까?
영원해병님의 좋은 글월-언제나 제겐 위안으로 삼고 큰힘이 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격려의 말씀과 칭찬 부탁드립니다. 김병장 (김영)님의 장모님의 사랑-어느 누구라도 장모님을 위한 사랑과 장모님의 사위사랑을 모를리가 있겠습니까만! 저도 살아계실동안 울부모님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 해 드릴려고 노력은 하건만 참으로 제살기가 바빠서 십분의 일도 못 해 드리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부디 자주 찾아뵙고 전화라도 수시로 해 드리기로 우리 함께 약속합시다요. 홧팅! -[12/28-00:08]- ![]() 작사:추미림 작곡:박시춘 노래:남인수
![]() 서대문에 위치한 대신중고와 인창중고는 배구에는 일가견이 있는학교입니다.ㅎㅎ장모님이야기 2편이 기다려지네요.. -[12/28-10:29]- ![]() 합니다. 제가 물었지요,"저야 사업이랍시고 수십년을 매달려 있었는데 홍하사님은 무슨일을 하시며 오늘에 이르렀습니까?" 했더니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내 얘기는 이미 이 홈에 다 써 놨는데 못보셨어요?" 가슴이 뜨끔했지만 얼른 둘러댔지요. "에이~왜 못봐요.
그러나 요새 깜빡깜빡해서 그기 생각나겠습니까? 다시 올려 주시지요" ㅎㅎㅎ오늘 장모님 얘기를 쓰시면서 1966년도 젊은 시절 일화를 쬐끔 언급하신건 아마도 그런 배려에서 다시 옛얘기를 시작하실 모양이라고 여깁니다.글솜씨 좋은 양반이니 앞으로 흥미진진한 추억들이 나올겝니다.그러다 보면 당근 예쁜 사모님과의 로맨스도 다시 리바이벌 될꺼이구....걸 기대입니다. -[12/28-10:42]- ![]() 맏딸이 저에게 코가 끼여서 결혼한다고 하였으니 장모님이 저를 이뻐하실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당시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저는 해병대 출신이신 장인 어른 한테 속전속결로 결혼승락을 받았습니다...치매로 태백시립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을 위해 우리 부부는 하루에 한번 꼭 기도하며 삽니다...항상 건강하십시요. -[12/28-12:34]- ![]() 계시답니다. 그걸 모르시는 스님께선 왜 자주 오지않으시냐고? 제대로 알려드리지도 못하고---장모님을 위해 우리네가족이 달마다 얼마식 갹출해서 일부는 식사하고 일부는 저축하여 1년에 한번 몫돈을 드리는데---(울부부가 영원한 총무)그자리서 손자,손녀들에게 일부는 나눠주고 나머진 절에 몽땅 다 갖다준답니다.
심대흥님! 배려해서 젊은시절 일화를 언급한게 하니구요 할말은 많은데 쓸게없어서 괜히 이런저런 얘길 갖다부치는것이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는 얘길 잘도 쓰시는데---누구말마따나 소재는많은데 재주가 메주라서 영 파입(3.14)니다. -[12/29-18:10]- ![]() 살아계시다는 자체가 복받으신겝니다. 저의 경운 부모님을 거의 기억조차 못하는 어린나이에 돌아가셨기에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답니다. 누군 식물인간으로라도 있어줘도 만족한다지만 사실은 그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겠습니까? 말도 못하지요. 약속시간이 되어서~ 그럼 전우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또 뵙지요. 홍하사는 내일 뱅기타고 어야 휙 갑니다. 단결!!! -[12/29-18:21]- ![]() 예쁘게 보인다 했는데 울숙이 하시는 분을 낳아주신 장모님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멋쟁이 장모님께 잘하셔야 겠습니다. 보기 좋은 글과 사진입니다. -[12/29-20:12]- ![]() 류공수님. -[12/30-03:27]- ![]() 장충체육관하면 전 김기수선수가 생각납니다. 1966년도일겝니다만......벤베누티와의 챔피언전이........... 장모님 얘기에 깜짝 놀란 표정입니다. 신년연휴땐 꼭 한번 찾아 뵈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소서~~~!! -[12/30-10:48]- ![]() 결정전이 있었지요. 당시 참피온을 초청해서 2:1로 판정승을 거둠으로 울선수로썬 역사상 세계참피온이 처음 된 김기수선수는 사이스 포 였지요. 그날 무지 비가 쏟아졌는데 홍하사가 누님댁서 기거할때였습니다. -[01/01-18:55]- ![]() ![]() 홍전우님은 그 전에 쓴 꽁까이 이야기며 참전기도 그렇고 참으로 감탄입니다. -[01/0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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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홍하사님! 어제는 반가웠구요 넘볼 걸 넘봐야죠 주제파악을 못하고 오지랖 넓으신 작은 거인 홍하사님을 뱁새걸음으로 따라잡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바람에 그만 풀썩 주저 앉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앞으로 반에 반 만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너무나 올만에 들어와 보니 쑥스럽네요
허걱! 되나 안되나 연습삼아폰으로 올려봤는데 글이 올라가네요 참, 이름값 하느라고 생명력 하나는 끈질기나 봅니다
참 신통방통하네요 전에 단 한 번도 폰으로 글을 올린적이 없을 뿐더러 오랫만인데 어떠코롬 내 아뒤를 기억하고 자동으로 올라갔을까요
잡초님! 아니 大(특히 악센트를 넣어)대한민국 참전전우 인테넷전우 사무총장님!
그런 겸손의 말씀을 하십니까? 좌우간 이제까진 홍하사가 아무말않고 있었지만 ~
이제 부터는 아니 봐 줄것이니 각오하십시오.ㅎㅎ 핸폰으로 글도 달 수 있으므로~
이제 증명되셨으니 변명을 못하실겝니다. '잡초' 생명력 하난 긑내주지요. 헌데 홍하산
남진씨의 "잡초" 노래 아주 좋아하지요. 좌우간 이제 이름값이라도 좀 하십시오. 아님!
홍하사 승질(?) 그냥 아니 있습니다. 시간읎다는 말씀 못하시겠지요? 서울로 오셨으니~
이제까진 충남이라 봐 드렸지만 거리멀다고 꽤병 부를 염려도 없고 여차하믄 홍하사가
"씨바스" 한병들고 들이 닥칠겁니다.(아차! "No More 시바스" 라고 신임회장님께서 曰)
암튼 그간의 죄(?)를 상쇄하는 의미로 님의 그 훌륭한 솜씨로 "깡패 이야기" 속편을 꼭~
소설보다 더 재미있군요. 오늘에야 보게 되어 미안화외다. 계속 건필하세요.
진솔한 삶의 일상의 기록 잘보고 갑니다.
이수님, 언젠가 홍하사가 울인터넷 회장! 한번 맡아주십사 부탁드린바 있음을 기억하죠?
다음 차례는 뉘신지 알겠지요? 그나저나 의정부 이수(二水)회는 선거때문에 못참석했죠.
바이칼호수님! 저는 항상 님의 닉네임을 생각할때마다 춘원 이광수님의 유정(有情)이 생각
납니다. 당시 그영화를 계기로 "남정임" 도 탄생되었구요. 칭찬 감사드리며 남은하루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