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아이에 관한 시모음 21)
어린이 놀이터 /牛山 김응길
깔깔거리며 웃다가
발끈 성내다가
서운해하고 슬퍼했다가
갸웃거리며 고민하는
온 세상의 축소판.
그런데 참 다르다
웃고 우는 것도
성내고 고민하는 것도
오래가지 않고 짧다
모두 함께 한다.
어린이 /박인걸
별을 먹은 아이들이
민들레 핀 벌판을 달린다.
꽃을 입은 어린이들이
교정에서 함박 웃음을 웃는다.
구름 타고 하늘을 날고
은하수 위를 걷는 꿈을 꾸며
노랑나비 떼와 하나가 되어
꽃밭을 휘젓고 다니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들이마시는
햇빛 처럼 눈부신 아이들이다.
그늘 한점 없는 얼굴에
찬란한 태양빛이 종일 서려있고
거짓 하나없는 마음에
맑은 도랑물이 연이어 흐른다.
해맑은 눈동자에는
한 낮에도 별이 반짝이고
거짓 하나 없는 표정에서
천사의 얼굴이 보인다.
어린 새싹처럼 돋아나는
너희들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아이들 /이원문
아이들아
오늘은 어린이날
마음껏 뛰어 놀고
내일의 꿈 꾸려므나
아이들아
내일도 너희의 날
다음도 너희의 날
무엇이 부족하더냐
아이들아
참 되게 자라다오
희망의 나라 위해
무럭 무럭 자라다오
어린이날 /鞍山백원기
꽃밭에 꽃처럼
예쁘게 자라고
심은 나무처럼
쑥쑥 자라거라
어서어서 부지런히
믿음직하게 자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든든한 기둥이 되거라
비바람 몰아쳐도
조금도 끄떡없이
잘한다 칭찬받는
어른이 되거라
몽당연필의 꿈 /김경윤
나는 너희들의 몽당연필이 되어도 좋다
침 발라 쓰다가 쓰다가 쓸 수 없을 때 버려도 좋을
한 자루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이 시커먼 흑연빛이 아니라
5월의 푸른 하늘같이만 될 수 있다면
그 푸른 하늘을 나는 종달새같이만 될 수 있다면
나는 너희들의 몽당연필로 살아도 좋다
엄마의 기도 /장경복
아들아
웃으면서 살아라
너의 웃음소리는
엄마가 살아가는 유일한 기쁨이다
아들아 울지 말아라
네가 눈물을 흘리면
엄마의 가슴은 피눈물이 흐른단다
들판의 작은 풀잎도
미풍에 흔들리고
바람도 외로워서 소리를 낸다
살다가
힘들고 외로울 때면
언제나 너를 향해 기도하는
이 엄마를 기억하여라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니
작은 잘못에 고개 숙이지 말고
옳은 일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라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너를 향한 이 엄마의 사랑처럼
세상을 품고 사랑하여라
사랑을 할 때는 네 모든
정성을 쏟아서 올인히여라
아침 아이들 /허호석
거미줄은
아침 이슬
아기바람
새소리까지 모두 걸었습니다
거미는 몇 번이나
하늘을 내다봅니다
처마 끝 새 하늘이 걸렸습니다
부신 해가 철렁 걸렸습니다
발자국 소리도
지껄임 소리도
아이들은
하늘을 도르르 말아
해를 가져갔습니다
거미는 구멍 난 하늘을 다시 깁고
온 마을은 햇살의 나라가 됩니다
집 보는 아이들 /박영춘
게딱지같이 납작한 작은 토담 집
거적문 펄럭이는 봉당부엌
생솔가지 불 지펴
아홉 살 남자아이 눈물 밥 짓네
새우젓 한 보시기 보리쌀 한 됫박 바꿔오는
광주리장사 힘든 어머니 기다리다
세 살 여동생 토방에서 풋잠 들었네
굴뚝에 기대 제 눈물로 제 얼굴에
그림 그리는 여섯 살 남동생
조속조속 졸며 어머니 기다리네
지붕에 올라간 하얀 박꽃 낮달과 놀고
토담 밑에 채송화 울음 참느라 빨가네
새끼줄 따라 지붕에 올라서려는 나팔꽃
얼른 어머니 마중하고 싶어
이파리에 방울방울 이슬 맺혔네
멍멍이 사립문 앞에 나앉아 집 지키네
해거름 멀리 어머니치마 감실감실 보이네
싸움터에 나간 아버진 언제 올지 모른다하네
이자(利子)의 감기에 걸린 어린이날 /맹문재
소를 부려 밭을 갈던 아버지의 목청이 가라앉았다
거실의 텔레비전이 가라앉았다
걸려온 전화를 조심스레 받는 어머니가 가라앉았다
안방의 장롱이 가라앉았다
야근한 뒤 점심도 굶고 잠자는 동생이 가라앉았다
화장실이 가라앉았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가라앉았다
안부전화를 건 제철소의 동료가 가라앉았다
쿨룩거리는 냉장고가 가라앉았다
먼 지방의 공사장으로 간 여동생 남편이 가라앉았다
십년째 쓰는 전기밥솥이 가라앉았다
고객의 호출을 착하게 받는 막내 동생이 가라앉았다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낡은 수첩이 가라앉았다
윤기 없는 아내가 가라앉았다
세숫대야가 가라앉았다
날아드는 먼지를 막지 못하는 현관이 가라앉았다
취직 걱정에 몸살이 난 내가 가라앉았다
인터넷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가라앉았다
물 위의 암각화 /문인수
지금은 모르고 안 운다.
저 원시적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된
다섯 살, 권 모 어린이.
시방 가족 중에 홀로 ‘침몰’ 바깥에 앉아, 춥다.
아직 비극이란 걸 몰라
그저 놀란, 새까만 눈만 말똥말똥 뜬 채
엄청 큰 바다 앞에 꽉 눌려 무표정하다. 다만
조그만 손으로 애써 젖은 양말을 벗으며, 한 가지는
대답한다. 한살 터울 오빠가 벗어준 구명조끼,
그 구명조끼만은 한사코 벗지 않는다. 봐라,
아이가 한평생 껴입어야 할 여러 벌
젖은 그림들.
저 물 위에 이미 깊이 새겨졌다.
훗날엔 자주 울고 있다.
솜사탕 /김명수
5월 5일 어린이날
아빠 엄마 손잡고
대공원에 왔지요.
풍선 장수 만나서
빨간 풍선 샀어요.
풍선 끈을 꼬옥 쥐고
기린 우리 찾다가
솜사탕을 팔고 있는
아저씨를 보았어요.
솜사탕 아저씨가
황하게 웃으시며
솜사탕 기계를 빙글빙글 돌리자
구름 같은 솜사탕이
막대기에 감겼어요.
아저씨가 웃으시며
솜사탕을 건네 주자
쥐고 있던 풍선 끈을
나도 몰래 얼른 놓고
신이 나서 솜사탕을
받아 들었지요.
그 바람에 풍선은
하늘 높이 날아가고
나는 발만 동동 굴러
울어 댔지요.
솜사탕을 움켜쥐고
울어 댔지요.
딱 하루만 /김미혜
아빠를 딱 하루만
저한테 보내 주세요.
딱 하루니까....
어린이날!
아니...... 크리스마스
아니...... 4월25일, 제 생일!
아니 그냥 아무 때나
아빠를 데려다 주세요.
하나님, 딱 하루만
아빠를 보내 주세요.
밥과 건전지 /신형건
"학원 늦지 않게
빨리 먹어라."
엄마가 재촉할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건전지를 끼우고 있다는
생각.
잠시라도
멈추게 될까 봐,
엄마가 내게 매일매일
새 건전지로 갈아 끼우고 있다는
생각.
꽃씨를 따며 /오태인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 해 늦가을
어둑발이 내릴 때까지 꽃씨를 따며
이따금 마른 꽃대궁 속에서
떠나간 이름들이 벌레소리처럼
윙윙거리며 달려 나왔지만
우리들은 열심히 사루비아
맨드라미 당국화
나팔꽃 등의 이름표가 붙은
봉지에다 익은 꽃씨를
가려 넣고 있었다.
개학을 하기가 무섭게
영이가 부산으로 전학을 가던 날
우리는 예보된 단비 속에
교장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대로
아무 차질없이 꽃모종을 옮겼었다.
작업을 마치고
운동장 배수로에
모종삽을 씻으며
돌아서 쏟아 내던 슬픔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척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의
불문율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다 되었을 무렵
동성이가 훨씬 간편해진
전학수속에 얹혀 훌쩍
우리들 곁을 떠났을 때도
뒤이어 화주가 인천으로
뿌리뽑혀 갈 때에도
우리는 입을 앙다물며 침묵했다.
슬픔은 더욱 슬프게 안으로 닫아
꽃씨는 익고
성급하게 내리는 늦가을 어둑발
씨앗의 외피처럼
단단해진 어둠이 우리를 에워쌌고
어둠의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어둠을
꽃씨와 함께 밀봉하며
봉해 지는 봉지처럼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낙엽을 쓸며 /오태인
한 아이가
나무를 칵 베어삘라 한다
또 한 아이가
떨어질 테면 한꺼번에 떨어져라
나무에 발길질을 한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낙엽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성화
가을 내내 아이들이 학교를 비질한다
가을 내내 아이들이 학교를 발길질한다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 /유안진
어린이는
어른 아닌 어른의 아버지
하느님 나라의 입국 비자를 가진 완벽한 자격자
따라서 어른이 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데
어른이야말로 어린이가 되어야 할
어린이의 아들인데도
힘만 센 어른들은 어린이의 완전함을 구기고
때 묻히며 자유로운 어린이를 틀 속에 쑤셔 박아
찌부러트리며, 어린이는 미성년자라고,
미성년자를 성년자로 키우는 일이
어른의 사명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려 들며
행복한 어린이를 불행한 어른으로
퇴행시키려 들며
어른의 아버지에게 어린이의 아들을
닮으라고 윽박지르는
교육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거꾸로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