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삶과 배움을 연결하고자 하는 교육은 결코 과거 지향적이거나 비교과적 영역에 국한되는 보조적 접근이 아니다. 지난 몇십 년간 배움의 결과를 시험이라는 측정의 방식으로 취해왔던 교육적 접근이 우리의 아이들을 창의적, 진취적, 미래지향적으로 키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대안적으로 부각된 것이 삶과 배움을 연결하기 위한 지역사회 기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는 그 자체가 학생과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중요한 학습공간이다.
학습자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사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민성을 발휘하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지역의 역사·정치·경제·환경·문화적인 여건을 학습하고 지역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움을 실천하면서 성장하는 것은 시대와 영역을 불문하고 교육의 본질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교육과 지역의 교육력을 연결하고자 했던 노력은 역사적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지역사회학교 운동은 1950년대에 우리 교육계와 학계에 소개되었고, 60~70년대에는 이를 관주도의 향토사업운동으로 전개하였다. 70년대 이후에는 민간주도적인 성격으로 전환되어, 90년대 이후에는 학교교육을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보고 청소년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역사회에서 도모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1950년대 | → | 1960-70년대 | → | 1970-80년대 | → | 1990년대 | → | 2010년대 이후 |
교육계·학계 중심의 자발적 교육운동 | 관주도적, 행정지시적 향토사업운동 | 민간주도적 성격의 운동 | 학교 중심 평생교육 | 마을교육공동체 |
[그림 1] 우리나라 지역사회학교운동의 전개과정
출처: 양병찬 외(2003). 지역사회학교 정책연구(p 23)의 내용을 재구조화 함.
이러한 지역사회 중심의 교육 운동은 2010년대에 접어들어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혁신교육지구라는 시도 교육청 단위의 정책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학교 교육의 체험중심 활동을 지역의 다양한 교육 인프라와 접목시키는 한편,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돌봄과 방과후 배움을 지역사회의 교육적 역량으로 해결하는 공동체적 접근이 활성화된 것이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의 교육력을 활용하는 교육이 단순히 학교교육의 보조적 수단에서 벗어나는 흐름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교육자치회’와 같은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지역이 엄연한 교육의 주체로서 지역사회 기반 교육을 주도하는 성장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 추세이다(김용련 외, 2021).
이러한 흐름은 정책과 사업의 부침이 있을 수 있지만,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전환이라는 미래교육의 방향을 고려해 보면 앞으로도 확대·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확정된 2022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기후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생태환경 교육을 초·중·고등학교 교육목표와 전 교과의 내용 요소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김용련, 장은영, 2023). 앞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기후 위기 대응’, ‘생태전환’ 등을 모든 교육적 측면에 반영하기 위해서 생명존중, 공동체와 사회 정의, 다양성, 생태 감수성 등의 가치와 실천의 기준을 교과와 연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적 교육은 결국 지역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배움과 실천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개정 교육과정에서 담고 있다. 이처럼 지역의 삶과 연결된 지속가능한 성장이 미래교육의 방향이 되면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교육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 지역사회 기반 교육의 의미
앞서 언급된 과거의 지역사회학교 운동은 공교육의 중심이었던 학교에서 지역사회를 배우고, 동시에 학교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당시에 지역사회교육이란 지역의 환경·경제·문화·역사 등 모든 삶의 자료를 교육자원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측면과 더불어, 학교를 거점으로 지역의 주민들을 성장시키고자 했던 계몽적 측면을 담고 있었다.
한편, 최근 성장하고 있는 ‘지역사회 기반 교육’은 기존의 지역사회교육의 개념보다 적극적인 실천교육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공교육의 장은 학교라는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 지역사회라는 삶의 공간에서 다양하게 학습하고, 학교교육을 마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삶을 배우는 평생학습의 개념으로 지역사회기반 교육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공교육은 학교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교과목을 선정하고 교수자가 학습자를 안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앞으로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공교육은 학교교육을 지역사회로 확대하는 지역사회기반 교육과정을 지향해야 한다. 교육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곳의 문화와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 기반 교육을 통해서 지역 공동체의 현안을 해결하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시민적 역량을 키우는 것에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지역사회에 대하여 탐구하고 체험하는 교육활동은 개인의 성장과 지역의 성장이 지속적인 관련을 맺는 실천교육의 의미가 있다(양병찬 외, 2003).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사회 기반 교육의 주체는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참여자들을 포함해야 한다. 최근 마을교육공동체 실천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를 도모하는 원동력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시민성과 학교밖 교육 주체들의 협력에 기반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기반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은 지역의 자연생태적 환경과 더불어 정치, 문화, 역사, 인문 등 사회생태적 환경을 학습자의 배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내용으로 설정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며 성장하는 교육목표를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사회기반 교육과정에서 교육목표는 학습자들의 성장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성장이며, 이러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지역 학교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인과 기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 지역사회 기반 교육 운영 방안
1. 기본 방향
지역사회기반 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관련한 인식과 실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는 경쟁에 기반한 암기식 입시교육을 위해 학습자들을 수동적 참여자로 만들었다면, 이제는 지식문화에 기반한 미래사회를 개척하고 스스로의 진로를 탐색하는 주체적 학습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동안 산업시대 교육에서 경쟁은 학생 개인의 몫이었다면 이제는 교육청과 지역사회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한 경주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교육시켜 도시와 중앙으로 보내는 교육에서 앞으로는 지역에 뿌리내리고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힘을 기르는 교육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사회 기반 교육을 위해서는 지역별로 특색 있는 체험탐구 활동을 준비하고 학교와 지역을 연결하는 교육플랫폼을 통해서 학생들이 스스로의 학습과정과 결과를 선택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2. 운영을 위한 세 가지 측면
<정규교육과정의 20% 이상을 지역사회기반 교육으로 운영>
그동안 지역연계 교육이 비교과 활동 정도로 인식되면서 정규교육을 지원하는 부수적이고 보조적인 교육활동으로 이루어져 왔다면, 지역사회 기반 교육을 위해서는 정규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학교교육과정 및 시수의 20% 이상을 학교 재량이나 월별·학년별 자율적인 활동으로 지역과 함께 설계·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교육중심 공교육을 지역사회기반 교육으로 확대>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공교육을 학생들의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 공교육으로 확장하여 삶과 배움을 일치시키는 생태적 미래 교육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통합을 통한 연계학습, 자유학기제, 더 나아가 고교학점제 등을 지역교육과 연계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교육, 기후·환경교육, 평화·통일 교육, 성평등교육, 노동교육, 의사소통 교육 등을 위한 영역은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 교육자원 연계·활용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역교육 협력체제에 기반한 교육>
그동안 추진되어 왔던 혁신교육지구나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교육사업을 교육청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협력을 토대로 운영했다는 점이다. 교육자치, 일반자치, 주민자치의 협력을 통해 비로소 교육을 위한 지역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마을교육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김용련 외, 2020). 앞으로도 지역사회기반 교육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지자체의 교육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하고 지역사회의 교육적 역할과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 나가며
지역교육생태계란 삶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사회가 배움의 터전이 되어 삶과 배움이 일치되고,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자가 성장하고, 개인적 성장이 다시 지역의 성장을 도모하는 공생적 선순환 체제를 의미한다(김용련, 2019). 그동안 경쟁적 산업시대에서 우리는 진화적 관점으로 교육을 규정해 왔다. 다시 말해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발전한다는 것은 경쟁을 뚫고 능력을 쌓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교육의 목표와 과정 또한 그와 유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장에는 진화와 공진화(共進化)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듯이 경쟁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역량을 통해 공진화에 기여하는 시민성을 키우는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더구나 미래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지식의 습득과 경쟁우위를 점하는 능력을 넘어 지식을 창출하고 이를 적용하여 또 다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통합적 역량을 중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사회 기반 교육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지역에 터해 있는 학교교육의 수준은 그 지역의 삶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역의 수준에 따라 학교교육의 수준도 결정되는 것이다. 한쪽이 열악한데 다른 한쪽이 건강할 수 없는 공생적 관계라는 점에서 학교와 지역은 서로를 향해 늘 열려있어야 한다. 지역의 교육생태계 안에서 삶이 곧 배움이 되고 배움이 다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온전한 교육이 마련되어야 한다.
- 필자 : 김용련
- 소속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출처 : 교육정책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