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1993년 봄, P는 대구에서 올라왔다. 스물 일곱 살...... 아버지는 시집가라고 다그치기만 했다. P는 장사가 하고 싶었다. 4,700만원, 아버지에게 대학원에 합격해서 서울로 가야 된다고 이야기 하고 원룸 전셋값으로 받아낸 돈이다. P는 혜화동 친구 집에 묵으면서 일자리를 알아봤다.
美術大學을 졸업한 P는 동양화, 특히 산수도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인사동에서 화랑을 내고 싶었다. 미술품 감상도 하고 작품도 팔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P는 무작정 한국화 갤러리들을 찾아다니며 일자리를 수소문하다가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에 취직을 했다. 월급 130만원, 물건을 들여놓고 팔기도 하고 자리를 이동시키기도 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워낙 골동품이 많다 보니 편한 직업이 아니었다. 매주 신기한 그림들이 한, 두 점씩 들어오지만 진품은 아주 귀했다. 그러다‘표구’와 ‘경매’와 ‘감정’ 등 몇 개의 어려운 작업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작아도 자기 가게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P는 덜커덕 2층의 전통찻집을 샀다. 5,500만원짜리 가게를 4,700만원을 주고 800만원을 외상으로 했다. 일단 전통차를 팔면서 조금씩 갤러리로 바꾸고 작품이 꽉 차면 찻집은 하지 않을 계산이었다. 그런데 찻집을 인수한 후 일주일째...... 장사가 너무 안됐다. 다행히 단골손님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이 아저씨였다. 40대 중반쯤...
매일 10시쯤 와서 6,000원어치 茶를 팔아주고 가시는 분...... 전통차 1잔에 3,000원. 아저씨는 후배나 직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와서 2잔씩 차를 팔아줬다. 어떤 때는 동창들을 데려와 20잔도 넘게 매상을 올려주기도 했다. 그분은 찻집 뒤에서 조그만 ‘화랑’을 운영했는데 미술품에 꽤 조예가 깊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둘은 매일같이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사이가 됐다. 주로 하는 이야기가 작품과 가게 운영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만나다 보니 점점 정이 들어갔다. 한 달, 두 달, 석 달......영화도보고 휴일에도 만나게됐다.
'이러면 안 되는데......'
P는 내심 마음 속으로 더 이상 친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곤 했다. 몇일 밤을 고민하다가 P는 가게를 팔기로 마음 먹었다. "벼룩시장"에 가게를 내놓고 아저씨와의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도록 노력했다. 두 달쯤 지나서 가게가 팔렸다.
내일이면 가게의 주인이 바뀌고... 아침에 들른 아저씨는 깜짝 놀랄 것이다. P는 아저씨와 저녁을 먹으러 돈까스 집에 갔다. 돈까스를 먹는데 목이 메었다.
‘이것이 마지막 식사인가......’
“아저씨, 소주 한 잔 하실래요?”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그냥 날씨도 좋은데......”
우리는 인사동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꼼장어, 오뎅 그리고 소주 한 병 주세요.”
“크......”
소주가 톡 쐈다. 가슴이 이내 뜨거워졌다.
“아이구 취하네.”
“아저씨, 아저씨 집에 한 번 가봅시다.”
“뭐라구?”
아저씨는 좀 당황한 듯 했다.
“택시!”
“서초동 극동아파트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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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꼭대기에 5층짜리 소형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16평형 방 2개에 화장실 1개. 그 아파트가 아저씨의 집이었다. 우린 상가에서 맥주와 소주를 사오고, 진공관 전축에 레코드판을 걸고 ‘베토벤’을 들었다. 한 잔, 두 잔, 소주에 맥주를 타고 몇 잔의 소맥을 마셨다. 늘 웅장하다고 느끼던 베토벤은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강남의 불빛만큼이나 화려하고 슬펐다. P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애써서 살려가면서 아파트를 나왔다.
“안녕....... 아저씨...... 그리고 낡은 아파트야.”
한참을 걸어 내려와 택시를 잡아탔다.
다음날 아침 P는 대구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10년 후, 2003년 6월, P는 다시 서울에 올라오게 됐다. 대구에서 은행에 다니던 남편이 서울로 새 직장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이쪽저쪽 집을 알아보다가 서초동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얻게 되었다. 50평형 전세 4억원, 중앙공원이 아름다운 언덕배기의 아파트는 테헤란로가 훤히 내다보이는 초특급 전망을 보여줬다.
입주 후 두 달째......
P는 주차장에서 ‘아저씨’를 봤다.
‘10년 전 그 아저씨......’
P는 아저씨를 보고 두 달쯤 지나서 지금 이 아파트가 종전의 그 아파트가 재건축된 것임을 알게 됐다. 천정에서 고독이 똑똑 떨어지던 집, 빨간 불빛을 내던 진공관 램프가 박힌 오래된 전축, 그때 강남의 네온과 가로등 불빛......그 고지대의 저층 아파트가 있던 자리가 여기로구나......
◈ 서초극동아파트와 서초래미안
서초 4동 1682번지, 16평에서 20평형 1080가구, 76년식 서초극동아파트는 IMF가 피크 점에 있던 1998년 말에 재건축을 시작했다. 극동아파트라는 이름의 제법 유명했던 16~20평의 소형평수 단지는 서초래미안이라는 새 이름으로 고층 아파트가 됐다. 용적률은 319 %를 적용 받아서 빽빽하게 올렸고 10층~27층, 13개동 1,129세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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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든 아파트의 평형은 34평형, 39평형, 44평형, 50평형으로 가장 수요가 많은 평형들을 모아 새 단지 안에 넣었다. 이 중 34평형은 2000년 4월, 서울시 3차 동시분양에서 17가구 분양에 4,185명이 청약, 246:1의 기록을 세운다. 이때부터가 부동산이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는 시점이다. "서초래미안"은 삼성이 종전의 삼성아파트를‘래미안’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새로게 만들어 붙인 최초의 현장이다.
1,000세대, 1만5,000평.
건설사와 건축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세대수와 평수이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아 분양이 잘되고 단독시공으로 자신들의 실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정 크기의 아파트 단지이다. 2000년 초, 삼성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고 분양가 규제를 벗어나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새로운 꿈을 키웠다.
서초래미안의 1층은 바로 밑 삼익아파트의 7층 높이에서 시작한다. 언덕위 급한 경사로는 노인들이 걸어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고 경사가 급하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경비실은 정문부터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려 눈을 녹이고 차량을 올라오게하는 쉽지 않은 작업을 밤새 해야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해 도시를 내려다 볼수있는 조망을 가졌지만 오르내리기 불편해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도 가졌다.
강남역이 가깝고 15,000평의 넓은 땅 위에 중대형 평수만 지어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기도 했지만 구릉지여서 설계자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결국 아파트 단지는 구배의 차이로 인해 3단으로 나뉘어져 설계되었고, 그 공간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중앙광장과 상가,분수대, 운동시설을 한군데모아 전세대의 공유공간이 되게 하는 계획은 높낮이의 차이에 의해서 틀어졌다. 아파트동들간의 이격거리가 방해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동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의 로얄층은 테헤란로의 빌딩숲을 내려다보이는 초특급 전망이 가능하고, 남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의 로얄층은 삼익아파트의 낡은 옥상이 내려다보인다. 이런 경우 매수희망자라면 어떤 아파트를 선택해야 할까?
입주 후 3년이 지났다. 비슷했던, 분양시점의 동향,남향아파트 가격은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2006년,동향 50평형은 13억원, 남향 50평형은 16억원. 3억 차이가 난다. 남향의 완벽한 승리였다.
◈ 평당 1억원 아파트, 재건축의 성공시대
세계 최고급 아파트의 가격은 얼마 정도일까?
평당 1억원 정도이다.
뉴욕의 중심부에 더 없이 호화로운 아파트는 300평형이 300억원이다. 지금 서울의 대표 아파트도 평당 1억원을 향해 달려간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세중과, 세무조사 등 각종규제만 없었다면 상승탄력은 계속이어져 주요지역 새 아파트들이 1억원을 넘겼을 것 같다. 무리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의 각종규제는 서울 아파트 평당 최고가격을 7,000만원선에서 억지로 잡고 있지만 모든 여건을 감안할 때 수년 내에 평당 1억원짜리 새 아파트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는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재건축 대표지역이다.
2000년들어 곳곳이 초고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5층 이하 저층 아파트가 개발수익률이 높아 보였다.
그중 선수들은 저밀도 단지라는 원천적 규제를 해소한 반포주공 1, 2, 3 단지가 수혜대상이 될것으로 예상하고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나 1973년식 반포주공1단지는 도로변 상가조합원의 반대로 아직도 그대로 서있다.
올해들어서야 대형평수를 제외한 22평형 1,500세대를 재건축 진행 중이다. 어렵게 상가 조합원과의 합의를 마치고 조합설립을 준비하는 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상가와의 분쟁이 마무리되는 동안 정부는 임대아파트,기반시설부담금, 개발부담금 등 온갖 규제를 만들어냈다.
몇 년 앞서서 주민동의를 이끌어낸 반포주공 2단지와 3단지는 개발기대감으로 상당한 이익을냈다. 2~3년 새에 6억짜리 아파트가 18억이됐다. 허물기 전 아파트가 최초로 평당가 1억원을 돌파한 기록을세운 아파트들이다. 2005년 봄, 동,호수 추첨이 끝나고 대형평수당첨이 확정된 이 낡은 아파트들의 16평형은 16억원, 18평형은 18억원을 넘어섰다. 반포주공 3단지 16평형을 가지고 79, 89, 91평형을 신청한 사람들과 반포주공 2단지 18평형 소유자로서 72평형, 81평형대 아파트를 배정받은 수백명이 일차적으로 큰부자가 됐다. 이들로부터 이 아파트를 평당 1억원씩 주고 16억, 18억에 산 사람들 또한 이미 백여명이다. 이들은 8억에서 10억원의 추가부담금을 순차적으로 내고 2009년 상반기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결국 평당 3,000만원 정도에 동,호수가 확정된 신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매입한 것이다.
그럼 2010년, 입주 후 1년쯤 지나면 이 아파트가 얼마 정도 가격이 형성될까? 분양권을 산 사람들은 평당 5,000만원 정도까지 순조롭게 가리라고 예상한다. 강남지역에 공급물량이 끊긴데다가 증가되는 세금, 넓고 새로운 대형 아파트 단지 효과, 그리고 아파트 분양가의 연이은 고공행진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이들 계산대로 반포주공 3단지 91평형이 45억5,000만원에 이를 경우 조합설립 당시의 원주민은 엄청난 재건축 투자 수익을 챙기게 된다. 그 외에도 평형결정후 분양권을 판 조합원들은 과감하게 대형 평형을 선택해서 1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고, 평당 1억원에 산 매입자들은 완성 후 누리게될 대형 단지의 각종 메리트를 상상하고 있다.
간발의 차이로 온갖 재건축규제를 피해가고 개발이슈와 맞물려 아파트 투자 성공신화를 만들어 낸 반포주공 2단지와 3단지에게는 용적률 80%, 5층짜리 저밀도 아파트를 용적률 270%, 32층으로 풀어준 행정관청이 일등공신이며 은인이다.
◈ 부자동네 아파트의 조건, 고급백화점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생각지도 못한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엄청난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직접적인 피해당사자와 그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서초구와 서울시, 국가 전체 부동산시장에도 엄청난 타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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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의 대표 아파트로 1990년 초 국내 최고가 아파트 중의 하나였던 삼풍아파트는 바로 옆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넘버원이던 삼풍아파트는 총 2,390세대로 현대건설과 우성건설이 공동시공했다. 1986년도에 분양해서 1988년도 입주했다. 삼풍백화점과 교대역,법원단지를 끼고 고급주택단지를 형성했던 삼풍아파트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삼풍아파트는 현대와 우성건설이 시공사였지만, 삼풍백화점은 우성건설이 시공하다가 삼풍건설산업에 넘겨줬다.
숲을 연상시키는 나무 가득한 단지 내 도로와 명문학군, 고급백화점, 34평형, 50평형, 62평형, 64평형 등 중대형으로 구성된 대단지효과가 한 시대의 최고가 아파트를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주민편의시설로 지어진 지상 5층, 지하 4층의 강남권 최고급 백화점이던 삼풍백화점은 소공동 롯데본점에 이어 백화점매출액 전국 2 위를 달렸다. 나날이 늘어나던 고객과 매출액은 무리한 증축과 불법개조, 형식적 준공검사와 허술한 안전점검으로 하룻밤에 과거의 무상한 기억이 되어 버렸다. 옥상층에 설치한 30톤의 물탱크와 각종 구조변경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린 어이없는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로 삼풍아파트는 하한가를 맴돌며 한동안 매수자가 없는 아파트가 됐다.
그후로 몇년 삼풍은 한번도 랭킹에 끼지못하는 아파트가 됐다. 삼풍아파트가 삼풍 백화점 사고 이후로 가격 회복을 하지 못한 대표적인 이유는 사고의 아픈 기억때문이라기보다는 최고급 상업시설이던 백화점이 다시지어지지 않았다는 측면이 크다.
사고전 삼풍백화점은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처럼 고급주거지에 위치해 부동산가격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백화점이 번화해가면서 삼풍아파트가격도 올라갔다.
2000년 10월, 삼풍백화점의 종전고객을 타겟으로 새롭게 문을 연 신세계 강남점은 신세계백화점 전체 점포 중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서초동과 잡원동, 반포동, 양재동, 방배동,과천의 구매력있는 고급고객들을 쉽게 확보할수있었기 때문이다.
대지면적 6,870평의 삼풍백화점 현장은 1년 반 동안 공지로 남아있다가 1996년 11월, 서울시가 상업지역으로 공개매각해서 (주)대상의 몫이 됐다. 대상은 IMF로 백화점, 금융센터를 지으려던 당초의 계획을 수정해 대림건설을 시공사로 아크로비스타라는 37층짜리 주상복합을 지었다. 최고급 조망을 말한다는 뜻의 아크로비스타는 분양 당시부터 삼풍백화점 사고와의 연결고리를 벗어나려 애썼으나 결국 미분양상태로 상당 기간을 보냈다.
다행히 2003년 이후 불어 닥친 주상복합 열풍이 미분양 재고를 소진해 줬다. 언덕배기 위에 푹 꺼진 자리, 삼풍백화점의 핸디캡을 만회하고자 대림산업은 구조공사에 엄청 신경을 썼다. 아크로비스타가 입주할 당시에는 A, B, C 동이 차별화되어 가격이 형성됐다. A, B 동은 삼풍백화점 자리, C 동은 옥외주차장 자리 등으로 구별되어 C 동이 훨씬 비쌌다. 하지만 대형주상복합이 생기면서 교대역에서 고속터미널로 이어지는 도로는 만성화된 교통체증지역이 되고 앞을 가로막는 고층아파트에 조망권이 가리면서 삼풍아파트는 고갯마루 주택가에 숨어있는 특색없는 아파트가됐다.
아크로비스타 입주 후 2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도 이제 희미해진다. 택시를타고 삼풍백화점자리로 가자고 이야기하면 이해못하는 택시기사가 늘고, 아크로비스타도 조망권에 따라 전세가와 매매가가 재편성되면서 새로운 주거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삼풍아파트는 복도식34평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준비중이다.
◈ 삼성타운과 롯데타운
지금 서울과 수도권의 중심은 강남역이다. 2000년 이후 부동산의 급격한 상승은 강남을 서너 배 들어올렸고 그 여파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군데군데 공지가 많던 강남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특급지역이 되었다. 사람들은 강남역에서 약속을하고 금융권의 PB센타도 강남역을 중심으로 몰려든다.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역까지 쭉 뻗은 강남대로는 강남구와 서초구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1988년까지 강남구에 속해 있던 서초구는 강남구의 급격한 팽창으로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분리되어서 지금의 서초구가 됐다. 강남역은 강남구과 서초구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동쪽으로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의 인구와 서쪽으로 서초동 정보사에 이르는 아파트 밀집지의 주거지역 인구를 만나게 하는 중심점이다.
이제 2010년이면 강남역에 특급전철 신분당선이 들어온다. 신분당선은 2010년에는 강남역에서 분당 정자역까지 개통하고, 2015년에는 북쪽으로는 용산역까지 , 남쪽으로는 광교신도시까지 이어진다. 2020년이면 수원도심을 통과해 호매실까지 연장될 계획이다.
신분당선은 기존 지하철보다 역이 적고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철도노선이어서 제법 쓸모 있는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혜택지의 대표적인 곳중에 하나가 강남역이다. 지금도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하철역이 강남역인데 신분당선까지 개통하고 나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지하철역이자 번화한 지역이 된다.
1999년 6월, 강남역에서 최초로 평당가격 1,000만원을 넘어선 분양가의 아파트가 나왔다. '서초가든스위트'. 비싸야 600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평당 분양 가격을 분양가 자율화와 함께 1000만원으로 올려놓은 최초의 프리미엄 아파트.
서초가든 스위트는 한동안 9시 뉴스의 주인공이었다.
"21억원? 금을 발라 놨나?"
1999년 6월 2일, 이 아파트의 최고층 펜트 하우스 2301호, 107평형 가격을 빗댄 한 일간지의 기사제목이다. 일반분양 최초로 100평을 넘긴 아파트인 파인애플조각 평면의 펜트하우스의 평당 분양가는 1970만원. 서초동에서 삼성이 만들어낸 신기록중의 하나이다. 삼성물산건설 부분은 강남역 삼성전자 직원 아파트 부지에 72평에서 107평에 달하는 최고급 아파트 '서초가든 스위트'를 내놓으면서 강남역 삼성타운에 신고식을 치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