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부모에 관한 시모음 17)
어버이날 /정복선
나도 아버지 어머니의 목에 걸린 가시이던 때가 있었다
나도 아버지 어머니 가슴속 숯덩어리이던 때가 있었다, 아니
꽃밭이던 때가,
나도 한 때는 아버지 땜에 힘든 시절이 있었다
나도 한 때는 어머니 땜에 서러운 시절이 있었다, 아니
햇살의 날들이
그리고 이젠
그리운 날만 남았다
어린 부모 /조영석
평일의 젤리 공장 아니면
장갑 공장 뒷산 기슭일 것이다
표백된 햇볕이 버짐처럼 파먹은
졸참나무 그늘 시멘트 둑
다소곳이 걸터앉아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 색시를 옆에 두고
어딘가 먼 딴 곳을 바라본다
서로 약간씩 비스듬히 몸을 틀고 앉아
시선도 몸을 따라 엇나가
사진사의 속을 계속 태우면서
각자 건너온 세월과 함께 떠나온 고향
헤쳐 갈 앞날에 대해
각자의 꿈을 외로이 꾸다가
사진사의 호통에 기어이 멈추었을 한때
꼭 했어야만 했을 일들
반드시 피했어야 할 사람과 말들
무엇보다 조심했어야 할 허방과
기필코 움켜쥐었어야 할 기회들
한 번은 터뜨렸어야 할 분노와
끝내 삭였어야 할 저주들이 보인다
수제비 반죽처럼 뜯겨 그들 쪽으로 던져질 것들
젊은 부부는 서로의 손도 포개지 않은 채
시퍼렇게 날이 서 쓸쓸하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아직 이 세상에 남아 계신 어머니의
어느 젊은 날이
파리한 모습으로 액자 속에 박혀 있다.
부모님 전 상서 /이재환
먼 여행
떠나가신 지
얼마던가
저 높은 하늘나라에
흘러가는 구름 편에
그리움 띄워 보냅니다
어머님 아버님
잘 계시지요
꿈속에도 안 오시네요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연신 되뇝니다
숭고한 어버이 길 /태안 임석순
가족을 위한
미래를 향한 서슴없는
냉혹한 이별의 저녁을 맞이한다
생명의 전략은
생명의 전쟁에서
은밀하고 처절하게 펼쳐진다
자식새끼를 살리려고
기꺼이 아비 몸을 내어주어
새끼들의 먹잇감이 되어 준다.
번식을 위한
미래를 향한 서슴없는
냉혹한 이별의 저녁을 맞이한다
가족을 지키려
생명의 전쟁에서
은밀하고 처절하게 펼쳐진다
자식새끼를 살리려고
기꺼이 어미 몸을 헌신하여
새끼들의 안식처가 되어 준다.
당신의 이름은 /강보철
제 몸 헐어 지어낸 한 줌 한 줌
못다 준 아쉬움에 새우잠 허리 세워
애정과 응원으로 쏟아내던 잔소리
눈시울 벌겋게 고이는 허기
부딪쳐도 넘어져도
쓸어내리고 털어내고 닦아내는
가질 수 없는 따스한 품
부르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그 이름은
어머니, 어디 계세요
욱신거리는 몸으로 찾아오는 외로움
메마른 가지로 찢어지는 그리움
물려줄 수 없는 몫을 부여잡고
짧고 무뚝뚝한 관심으로 힘 보태주며
시고 떫고 매운 세상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앞장선 당당하고 넓은 등
생각하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그 이름은
아버지, 어디 계세요
부모는 /신동진
학업 성적에 목마름
자식을 품에 두고서
대신 할 수 없는 현실에
두 손을 옥죄며 진주를 낸다
취업 문턱에 주저앉은
넋 나간 자식을 품에 두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을 옥죄며 진주를 낸다
출가한 자식의 삶을 보고
나보다 나으라고
자손의 이름 부르며
밤새워 진주를 낸다
부모는 나날이
예배당 바닥에 진주를 굴렸고
자식은 진주를 받아서 그렇게 산다.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어버이날에 /架痕 김철현
늘 마음뿐인
습관적 부끄러움입니다.
당신 마음을 알고 있다고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정작 내 마음은 주지 못하는
불효자 중의 괴수입니다.
당신이 내게 준 사랑의 그것이란
계수조차 못 하는데
내가 당신께 주는 것은 늘
쉽게 끝나버리는 셈일 뿐입니다.
오늘도 송구스럽습니다.
내 하는 일이 핑곗거리가 되어서
여전히 죄스럽습니다.
남들 누리는 만큼 해드리지 못해서
아-
어- 머- 니---
당신은 내 전부인 것을
이제는 그 고백마저 기억하지 못할
그러나 내겐 혼자만의
영웅일지라도 당신은 내 어머니
내 고백의 유일한 청취자
“사랑합니다. 내 어머니!”
어버이는 영웅이시다 /초랑(超郞) 윤만주
모태의 기적
자궁의 하늘은
태양을 밀어 올리고
격앙된 울음
시공의 벽을 허물어
불끈 쥔 두 주먹
파란의 여정으로 결기를 다진다.
노해(勞懈)*한 삶은
총성 없는 격전의 드라마
피고 지는 일선의 리얼미티*
선의의 경쟁은 유혈이 낭자하고
등뒤의 후원
과도한 급체는
좌절의 피라미드
어머니의 약손으로 와해되고
가계부의 다이어트
적립으로 재정지원
꿀팁으로 상근(常勤)하는
어버이의 무한사랑 내 인생의 영웅이시다.
*노해(勞懈) : 피로하여 게으름을 부림.
*리얼미티 :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부모님 생각 /이재환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신 고향
아무도 반기는 이 없다
눈 덮인 횡성호는
넓은 광야의 들판으로 보인다
흰 눈으로 하얗게 화장한
두 분의 묘지엔
인적이 없고
고라니와 야생동물 발자국만 있네
무릎 꿇고 엎드려 절을 하고
살아생전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해 가슴이 아파
부모님 생각에 한참을 엎드렸네
내가 받은 부모 사랑
내 자식에게도 잘 못 하니
부모든 자식이든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목필균
계묘년(癸卯年) 올해는
윤 2월이 낀 해이지요
오랜 전부터 망설이던 일이지만
부모님 산소 봉분을 없애고
조상님 납골묘로 모셨네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이사 잘 하셨나요?
우주여행이 가능한 세상
벌초도, 성묘도, 제사 문화도
점점 사라져 가는데
장손이라고 조상 모시는데 의미를 찾을까요
이제는 칠십 고개를 바라보는 자식들이
괘씸해도 봐 주시고
서운해도 봐 주세요
제가
어머니,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자식들이
제 마음을 헤아릴까요
어리석은 자손들 그저 살펴주세요
가슴에 품어 살펴주세요
어버이날 /鞍山백원기
어버이의 넓고 깊은 사랑
어찌 측량할 수 있으리오
언제나 나를 돌보아 주시기에
시무룩할 때면 어루만지시고
기쁠 때면 함박웃음 웃으십니다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옆에 계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되라 시던
부모님의 말씀 귀에 들립니다
만난 것은 먼저 자식에게 주시던
잘 자라거라 어머니의 기도 마음
대문 넘나들 때마다 희망 잃지 않게
묵묵히 바라보시던 아버지
일취월장의 삶은 어버이 은혜였습니다
부모의 기도 /未松 오보영
사랑하는 자식들아
부모로서
우린 그저
너희들이 곁에
있음만으로도 행복 하단다
너희들로 인해 큰
기쁨 누리며 살아간단다
귀한 너희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좋기만 하단다
그러니 언제나
복된 삶 살아가거라
변함없이 오늘도
우린
너희들
잘됨 위해서
너희들
행복 위해서
기도한단다
우린 참 바보다(어버이날에 생각한다) /박의용
우린 참 바보다
있을 땐 있음을 감사히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당연 함으로 받아들인다
내 곁을 떠나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야
비로소 그 있음의 소중함을 안다
우린 참 미련한 바보다
.
우린 참 바보다
받기만 좋아하고 주기를 꺼려한다
주는 자가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지 못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얼마나 더 큰 기쁨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받을 수 없을 때
비로소 그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아갈 때는
이미 줄 상대가 없을 때이다
우린 참 미련한 바보다
.
어버이날에 생각한다
왜 살아계실 때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왜 우린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까
왜 우린 받을 수 없게 돼서야 그 감사함을 알까
왜 우린 줄 수 없을 때 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될까
우린 참 미련한 바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하영순
꽃 중의 꽃은 인 꽃이 제일이고
농사 중의 농사는
자식농사가 제일이라
해지는 줄 모르고 골을 파고 북을 치고
잡초를 뽑느라
손에 물집이 생기는 줄 모르고
밤을 낮처럼 살아온 세대
봄 되어 푸른 동산에 예쁘게 핀
노란 민들레
제대로 한번 쳐다보기도 전에
꽃씨 날아 다른 토양에 뿌리내리는 동안
세월은 저만치 훌쩍 달아나 버렸다
부모라는 이름이 앓은 불치병
일류 병
최고 병
최고로 일류로 키운 자식은 나라 자식
그렇다
부모는 늘 오답에 밑줄 긋고 있었다.
어버이날 /심의운
아내와 왼손으로
스테인리스 새 칼로
썰었다
짤 록 날씬한 허리
유리잔 홍 소주 한 잔
취한다
6살 손자 접은
계산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눈이 침침해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가물가물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그렇다
잘 모르고
작년 묵은 쌀 20포대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