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순경 소백산 철쭉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하여
접한후, 주말을 이용하여 한번 가보고 싶은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날 서점에 가서 등산 안내책자를 한권 구입하여
소백산으로 가는방법을 연구했다.
도로 상황이며, 숙박업소, 소요시간등 모든것들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가 6월 2,3일로
주말과 일치되어 산행을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소백산 가는길은 막상 실행에 옮기니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천안을 경유하여 충북 증평을 지나 단양방면으로 차를 몰고가니
5시간 남짓 걸렸던 기억이 난다.
미리 파악해본 결과로는 소백산에 오르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었다.
단양에서 오르는 방법과 경북 풍기읍에서 오르는 방법등 등산길은
무수히도 많았다.
그러나 산에 오르기 전날은 숙박을 하여야 했으므로 숙박지에서
산까지 가장 가까운 곳이 좋을것 같았다.
등산 안내책자를 보니 소백산내에 있는 희방사에 좋은 여관들이
많이 있다고 하여 숙박지를 희방사로 정하였다.
특히 희방사에는 계곡이 좋다하여 거기서 하루를 묵으면
운치도 있겠고 여러모로 좋을듯 하였다.
희방사 가는길은 경상북도 영주시 방면으로 가는 국도가 있었다.
소백산의 무슨 고개인지 도로는 무척 가파르고 험했다.
단양쪽에서 영주방면으로 약 50분 정도 달렸던 기억이 난다.
희방사에는 괞챦은 주차장과 작은 음식점들이 군데군데 모여있었고
주차장에는 차들로 붐볐다.
주차장에 그런데로 어렵게 차를 세워놓고 우선 쉴만한 여관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여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몇군데 민박업소는 있었으나 초여름 날씨 때문인듯 축축하고
편의 시설들도 거의 안돼 있었고, 그나마도 나에게까지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꽤 좋은 책이었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실제와 다를까.
너무나 허탈하여 피로가 밀려왔다.
어쩔수 없이 차를 몰고 산에서 내려와 풍기읍으로 향했다.
희방사에서 약 30분 정도 가니까 풍기읍내에 닿을수 있었다.
풍기읍은 장급 여관들이 즐비하였다.
하지만 거기도 마찬가지로 내 차례는 없었다.
이미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온 등산객으로 꽉차
있었고, 여관 주인은 사람을 선별하여 방을 내주는듯 하였다.
여관 주인에게는 1개의 방에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이 숙박할수
있게하여 최대의 수익을 올리고자 단체손님에게만 방을 내어주는
듯 하였다.
2시간 동안 여러 여관을 찾아다녀 보았지만 여관 주인은 나를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방은 이미 꽉찼다는 대답을 할뿐이었다.
할수 없이 방 구하는 일은 포기를 하고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우선 저녁식사나 할까하여 읍내 공터를 찾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니 주택가 깊숙한곳에 공터를 발견하였고, 거기에
주차를 하려는데 공터앞 2층집에 여관이라고 씌어 있는 간판을
발견 하였다.
혹시나 하고 그곳에 들어가 보았다.
50대 중반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주인인듯 쳐다 보았다.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방이 썩 좋지는 않다고 하였다.
나는 더이상 흥정이 필요한 처지가 아니었다.
그자리서 신발을 벗어들고 안으로 들어가 방이 어디냐고 물으니
머뭇거리면서 안내해주었는데, 가보니 훌륭하였다.
가격은 2만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여관주인이 그렇게 고맙고, 위대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아마도 길옆에 있는 여관이 아니라서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않아
방이 남아 있었던것 같았다.
방을 구하고, 여유있게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피로가 밀려서 왔다.
TV를 보는듯하다가 금방 잠이 들었고, 새벽이 밝아왔다.
아침 6시경에 일어나 차안에서 취사용품을 꺼내 대충 밥을 지어먹고
남는것은 도시락으로 싸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희방사로 향했다.
희방사 입구에 7시경에 도착하였는데 희방사까지 벌써 많은차가
길옆에 주차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방을 못구해서 인지
차안에서 숙박을 한것으로 보였다.
더이상 올라가면 주차공간이 없는것으로 판단하고 나도 길옆에
차들 대어놓고 걸어서 올라갔다.
한참을 포장도로를 타고 산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는지
그룹을 지어 올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수 있었다.
희방사는 작은 절 이었다.
그러나 나의 산행 목적은 철쭉을 보는데 있었으므로 절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유래가 무언지 기억하지 않았다.
희방사에서 약수를 마시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후 본격적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조금 오르니 희방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아래로 쏟아붓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산길이 멀다는 생각에
폭포수를 뒤로하고 산행을 계속했다.
산은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별 차이점이 없었다.
기대했던 철쭉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 가파른 등산로가 숨을 가쁘게 할 뿐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가고 오고 하는것이 마치 시골 5일장과도 같았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옛날 스님들이 산위에 작은 암자를 지어놓고
수행하러 홀로 올라가던 기분이 어떤건진 몰라도, 그런 심오한
나만의 길을 걸을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산행 내내 와글와글 사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혹시 발을 헛디디지나 않을까 발등과 땅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나무에 둘러싸인 흙과 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쉼없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몸은 젖어들어 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할지, 지금껏 얼마나 올라왔는지
산속에서는 도무지 알길이 없었다.
그저 이미 올라온 길이니 더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힘든 발을 옮길 따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나 일행이 아니었으므로 산행의 외로움은
깊어만 갔다.
한참이 지나자 가빠오는 숨을 참으며 위를 바라보니 어렴풋이 하늘이
조금 보이는것 같았다.
거의 정상이 다온것으로 알고 거의 달리다 시피하여 그곳에 오르니
정상으로 가는 또하나의 길이 시작되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곳에서 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산길이 놓여 있었으며
작은 오솔길 사이로 꽤 많은 나이를 가진것으로 보이는 철쭉이
연이어 터널을 이루고 서있었다.
피어오른 철쭉향은 땀에 젖은 옷속에 분홍빛으로 베어들었다.
초록빛 이파리 사이로 내민 꽃잎은 산에 오르기전에 겪었던
어려움들을 잊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철쭉꽃에는 독성이 있고 또 거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는 얘기는
어렸을적 동화에서 읽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쭉에 묻혀 걷노라니 차츰 철쭉에 대한 생각은 희미해져 갔다.
지금 나의 목표는 정상, 그러나 정상은 또 얼마나 더 가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로 머리위로 피어있는 철쭉의 위안을 받으며, 한없이 걸었다.
1시간 남짓 걸었을까 다시 철쭉사이로 하늘이 나타났다.
그런데 거기도 정상은 아니었다.
커다란 돌탑에 연화봉이라는 글씨가 써있었다.
연화봉에 오르니 세상이 환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세상 아래까지 다 보였다.
이제 정상도 볼수 있었다.
정상까지는 몇개의 봉우리가 있었으나 거의 완만한 능선의 연속이었고
능선 아래로 펼쳐진 소나무들은 초록빛 비단을 펼쳐놓은듯 고아보였다.
멀리까지 겹겹이 세워져 있는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천문대가 서있었고, 철쭉제를 알리는 플래카드와
냉커피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냉커피 한잔에 1500원, 1회용 종이컵에 따라주는 냉커피로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것이
그곳에는 없었으므로 한잔을 사서 들이켰다.
그리고 이렇게 맛이있는 커피는 처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을 쉬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능선을 따라 걸었다.
길옆에는 작은 들꽃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거렸다.
이제는 가야할곳이 어디인지 얼마나 더 가야할지 가늠할수 있어서인지
산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대략 서너시간은 걸어 올라왔을까 드디어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도착할수 있었다.
정상에는 완만한 언덕위에 학교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주목군락이 있었다.
산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처음 산에 오를때처럼 붐비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연화봉에서 발길을 돌려 하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며
정상에 올라왔을때 느낄수 있는 자유,
이제 더이상 내가 올라가야할 곳도, 산에대한 궁금증도 없었다.
다만 내가 할일은 정상의 풀밭에 앉아 쉴만큼 쉬고
나만의 기분을 만끽한후, 내려가고 싶을때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젖은 옷이 마르면서 베어있던 철쭉향이 얼굴을 스치며 맴돌았다.
수통을 꺼내 입에대고 남아있는 물을 마시고자 고개를 뒤로 젖혔다.
물이 목구멍속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시원한 기분이 들면서 눈에는 파아란 하늘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