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종일 우아한 노력
연필 회화의 정점
노동집약 화가 차영석 개인전
주변에 자연뿐인 작업실서 정밀 소묘에 열정 쏟아부어
7월14일까지 이화익갤러리 전시
조선 중기 화가 신사임당(1504∼1551) '초충도(草蟲圖)'는 풀과 벌레를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
닭이 살아 있는 곤충인 줄 알고 쪼아댄 바람에 종이가 뚫어질 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화가 차영석(42·사진)은 2005년부터 한지에 연필로 '현대판 초충도'를 그린다. 신사임당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가치 있는 주변 사물들을 화폭에 담았다. 분재와 꽃병, 러시아 인형, 운동화, 숯, 부엉이, 스노볼 등을 정밀하 묘사한다. 그가 다니던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주변에서 누군가 폐고무타이어 안에 정성 들여 키운 화초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시선을 넓혔다.
'우아한 노력'(137×200㎝). [사진 제공 = 이화익갤러리]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화면에 사물들을 수집한다. 어찌보면 잡동사니 같은 풍경이다.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삶의 풍경을 담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 시대 정물화·풍경화가 된 그림에는 누군가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들이 섞여 있다. 사물을 취사선택하다보니 어느새 작가의 개인적 취향이 그림에 드러나게 됐다.
화면에 긴장감과 조형성을 불어넣기 위해 그만의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미세한 나뭇결과 잔가지, 화병 무늬, 바느질 자국 등 눈에 잘 띄지 않은 부분까지 다 잡아냈다.
마치 조금이라도 생략하면 사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듯이
그래서 그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자연뿐인 파주시 월롱면 위전리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서 열심히 묘사한다.
6H부터 6B까지 다양한 강도 연필 12종과 금색펜, 컬러펜,수채화 물감 등을 사용해 치밀한 소묘를 한다.
그래도 이 힘든 노동에 대해 작가는 '우아한 노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떤 것' '건강한 정물' '은밀한 습관' 시리즈 등 전작과 최근작 25점을 내건 그의 개인전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그려왔는지 알 수 있다.
작가는 "건강한 정물을 우아하게 보여주기 위해 애절하고 치열한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치밀한 연필 소묘 내공은 오랜 미술학원 강사 이력에서 비롯됐다.
21세부터 직접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다.
영남대 서양화과를 다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8년간 대학을 다녔다.
"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들과 같이 시험을 쳤는데 덜컥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합격했어요. 석고 소묘를 가르치면서 진절머리나게 연필을 썼죠. 손이 까매질 정도로요."
2006~2007년 미술계 호황으로 또래들이 화단에 데뷔할 때 그는 다른 작가를 흉내내기보다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소묘를 선택했다.
선배에게 판화지를 얻어와 펼치니까
평소 관심 없었던 석관동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차영석 '우아한 노력'(108.5 x 78.5cm)
"과거 재주 부렸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었어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 정면을 명암 없이 그려봤죠.
예쁘면 과대하게 묘사하고, 거친 사물도 그려보고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묘한 맛이 있더라고요."
장지와 검은 종이에 연필을 댄 부분이 들어가면서 오돌토돌한 입체감이 살아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자수를 놓은 것 같다. 전시는 7월 14일까지.
19세기 조선민화 '화조도'
(전지현기자ⓒ매일경제)
● 구찌에도 영감 준 民畵, 세계서 꽃피울까
8첩 병풍부터 '연화모란도'까지
꽃 주제로 한 그림·자수 60여 점
내달 19일까지 '민화, 현대를…'展
천지에 어둠이 깔린 밤의 정원. 연홍색과 심홍색의 모란꽃이 만개한 가운데 앵무새 암수 한 쌍이 마주 보고 앉았다.
괴석(怪石)에 꽃처럼 피어난 푸른 이끼가 형형하게 빛난다.
낮이든 밤이든, 이 그림 걸린 방에서라면 시간을 잊고 한 쌍의 새처럼 사랑을 나눌 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과 괴석이 든든히 떠받치고 있으니 이보다 축복받은 사랑이 있을까.
17~18세기에 그려진 8첩 병풍 중 한 첩이다.
검은 바탕이 깔린 여덟 첩마다 각기 다른 꽃과 새가 그려져 있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갤러리현대·두가헌갤러리에서 열리는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전에서 볼 수 있다.
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민화 중 꽃을 주제로 한 그림과 자수 60여 점을 선보인다. 꽃과 새가 함께 나오는 '화조도(花鳥圖)', 사계절 꽃이 가득 핀 '화초병(花草屛)', 꽃과 털 있는 동물이 함께 어울린 '화초영모병(花草翎毛屛)'등 꽃이 등장하는 민화들을 모은 뒤 엄선했다.
지난 2년간 박물관, 미술관뿐 아니라 국내외 개인 소장자들에게 작품을 빌려왔다.
일본민예관을 설립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소장품 '연화모란도'도 한 점 출품됐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속화(俗畵)'라고 불리던 채색화에 '민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도 민화라는 어감 때문에 '비전문가가 그린 그림'으로 여겨졌다. 수준이 낮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엔 자유로운 구성을 갖추면서도 정교하고 세련된 민화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민화는 소박하다'는 생각도 12첩 병풍으로 이뤄진 '연화도'를 본 뒤엔 달라진다.
한 첩당 세로 132㎝·가로 42㎝로, 다 펼치면 폭이 5m가 넘는다.
여느 고관대작의 집이 아니고선 펼쳐놓기 힘든 크기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민화에 등장한 꽃들은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며 이는 패턴으로도 볼 수 있다"며 "여기에서 현대 디자인의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꽃은 동서고금을 넘어 그림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민화에선 식상하지 않게 그려졌다.
꽃이 실제보다 더 크고 더 붉게 표현됐다. 일부 작품에선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왜곡됐다.
일본 소장자가 갖고 있는 8첩 중 단 한 첩만 대여해 올 수 있었던 화조화의 꽃은 현대 작가가 그렸다 해도 믿을 만큼 추상적이다.
꽃잎은 크고 단순하지만 꽃받침은 세밀히 묘사됐다. 줄기엔 꽃보다 훨씬 작은 새가 앉아 있다.
일본에 있는 우리 화조화 가운데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민화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책거리 민화와 함께 오는 10월 런던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2016년에 갤러리현대와 서울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한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전'은 미국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 스펜서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이어갔다.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는 2018년 봄·여름 컬렉션에 등장한 새가 "한국의 민화(화조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화조도나 모란괴석도나 꽃이 등장한 민화는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부귀영화를 누리길 기원한다. 19세기를 지나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판타지다. 현실과 환상, 삶과 꿈을 간단없이 오가는 전시다. 8월 19일까지, 입장료 8000원.
(변희원기자©조선일보)
첫댓글
민화 좋아 하시는 분들은
그림 수집하고 모으길 좋아 하죠
민화 그림 좋아 하시는 문우님들께서 한 번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