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것을 가장 사랑하는 주님께
□ 본문 : 다니엘 6장 10절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맥추감사는 첫 열매 감사입니다. 첫 열매 감사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감사입니다. 지난주에는 맥추감사의 사람 다윗을 통해, 그리고 오늘은 다니엘을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메대 왕 다리오가 고관 120명을 세우고 그 위에 총리 셋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는데, 세 명의 총리 가운데 한 명인 다니엘을 수석총리로 세우려고 합니다.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은 다니엘을 시기합니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이 수석총리가 되면 더 이상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게 될 것이기에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신앙을 이용합니다. 그것은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7) 이들의 음모를 모르는 다리오 왕은 조서에 도장을 찍고 금령을 내립니다.(9)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 왕 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들어갑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감사하였더라’의 원어를 보면 손을 들고 감사를 드리거나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도 놀랍지만 두 손 들고 감사했다는 것이, 찬양했다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요동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하며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감사했던 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될 것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찬송합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8장 46-50절 말씀입니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특별히 다니엘이 붙잡고 기도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9:1,2)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이제 곧 칠십년입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감사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찬양합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황폐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감사입니다. 이것이 맥추감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의 감사, 맥추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문제에 상황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흔들립니다.
믿음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굴속에 있던 다윗은 인자와 진리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굴속에서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굴속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지만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씀을 붙잡고 있습니까?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난주에 시편 57편을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제 성경책을 보면 57편 옆에 2012년 ○월 ○일 날짜가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2편 옆에는 ○월 ○일이 적혀있습니다. 교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힘든 시기를 잘 넘어갔기에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내 힘이나 능력으로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시편 2편 8절 말씀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하나님이 구하라고, 그러면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하고 너무 맞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둘째 치고 치바도 보이지 않는데 이런 상황에서 땅 끝이 보이겠습니까? 치바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금 교회를 흔들고 있는 태풍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차라리 이사야 41장 10절과 같은 말씀을 주셨다면 큰 힘과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전혀 모르시는 것처럼 열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지금 당한 문제가 너무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태풍이지만 온 열방의 주인이신 하나님,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날 즈음에는 감사와 찬송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렐루야 하며 기도를 마치고 나면 정말 열방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두렵습니다. 이렇다가는 정말 큰 일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옵니다. 이런 시간들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지 12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치바를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우리 땅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일본을 주셨습니다. 올해 후쿠오카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이제 한 걸음 내딛었는데 좀 오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니,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미 일본을 주신 것입니다. 열방도 주셨습니다. 튀르키예 땅을 밟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복음을 전했으니 우리 땅 아닙니까! 하나님은 12년 전에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지금은 교회에 문제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문제없는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문제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12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여전히 문제는 있지만 이제는 함께 계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육신의 법이 우리를 사로잡아서 넘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주님 바라보고 주님 붙잡고 얼른 일어섭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문제가 없어서 평안한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다고 흔들리고 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어도 평안합니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은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감사하고, 문제가 있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 속에서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늘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갑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맥추감사입니다.
태풍을 만났습니까?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 같은 위기를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2.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찬송합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자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했습니다.(18) 그리고 새벽이 되자 급히 사자 굴로 가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슬퍼하며 소리 지를 정도였습니다.(20) 그러나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었지만, 자신이 그렇게 총애하는 신하의 목숨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내린 조서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해서도 안 되고 사람을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 속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도 감사했던 것은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9-31)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심지어는 사자 굴에 들어갈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감사입니다. 이것이 맥추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구원을 보고 자신의 나라 백성들에게 이렇게 조서를 내립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26,27)
다니엘의 기도와 믿음의 감사를 통해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감사할 때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됩니다. 다니엘을 통해 영광 받으신 하나님은 다니엘을 높여 주십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합니다.(28)
3. 죽음도 유익함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에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셨고, 하나님은 다니엘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맥추감사의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할 때 하나님은 이와 같이 풍성한 열매를 주십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입니다. 맥추감사가 있는 자에게 추수감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죽었다면 다니엘의 기도는, 다니엘의 믿음의 감사는 실패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을 타협하지 않고 사자 굴에서 죽었다면 그것도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사자 굴에서 살아난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사자 굴에서 살아남아야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성도에게 이 세상이 전부라면, 사자 굴에서 살아남아야만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감사하는 자에게는 사자 굴에서 살아도 영광이고, 죽어도 영광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이, 믿음이 결여된 제사를 드린 가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불행한 죽음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믿음이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나라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영광입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최초의 순교자 아벨이 누리는, 이 세상 그 어떤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자 굴에서 죽는 것도 영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잠시잠깐이요,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찬송합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116:15) 믿음의 죽음은, 믿음을 따라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맞이하는 죽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중합니다.
맥추감사는 첫 열매 감사입니다. 잠언 3장 9절 말씀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 이것이 맥추감사입니다. 잠언 3장 10절입니다.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것이 추수감사입니다. 첫 열매로 감사하는 자에게 풍성한 추수가 있습니다. 맥추감사가 있어야 추수감사가 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될 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믿음의 감사입니다. 맥추감사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한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의 시대와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했기에 이와 같은 풍성한 추수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거두게 될 진짜 추수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추수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진짜 추수는 천국입니다. 천국의 추수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시대와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했습니다. 맥추감사를 드린 다니엘의 추수감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위해 준비하신 진짜 추수는 다니엘 12장 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사자 굴에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감사한 맥추감사의 인생 다니엘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천국에서 거두게 될 추수감사입니다.
우리는 다니엘보다 더 분명한 천국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구약의 모든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다니엘이 갖지 못한 더 분명한 영생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다니엘과 같은 죽음도 유익하다는 믿음이 없습니다. 다니엘과 우리의 믿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맥추감사는 믿음의 감사며 첫 열매 감사입니다. 첫 열매 감사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드리는 감사가 최고의 감사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도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사자 굴에서도 능히 구원받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찬송했습니다.
동시에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죽는다 하여도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고, 우리에게도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습니다.
※ 예수전도단 어느 간사님의 나눔입니다.
대구에서 함께 사역했던 간사님이 몇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아내와는 대학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간사님은 어릴 때부터 가정의 불화로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대학 때도 교회일, 선교단체 일을 열심히 하면서, 늘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기 중에도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참 힘겨운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월급 한 푼 주지 않는 예수전도단에서 간사로 사역하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가난하지 않았죠. 늘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때는 늘 최고의 것으로 주었습니다. 자기에게 남아서, 자기에게 필요 없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좋은 것으로 사서 주고, 자기의 것으로 줄 때는 제일 좋은 것으로 주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돈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중략) 자기는 늘 아끼고 아끼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줄 때는 늘 아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로 암이 와서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코가 주저앉고 한쪽 눈이 빠져서 얼굴이 썩어져가는 고통스러운 암 투병을 했습니다. 그 간사님은 33 살의 나이로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략) 그렇게 하나님께 헌신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데, 늘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나누는 삶을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한부 인생을 주셨나?’ 원망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 필요 없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봤자 소용없네. 이제 더 이상 바보처럼 그렇게 안살거야’ 이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기 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 챙기며, 사랑하며, 그렇게 살다가 떠났습니다. 그 간사님이 죽음을 며칠 앞두고 홀로 방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적은 글이 있는데, 그 중 일부분입니다.
『행복한 시간, 이 시간이 힘들고 슬픈 시간만으로 있지 않았단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때때로 아프고 절망스러워서 힘들지만 그로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던져버렸지만 이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고백한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셔서 이 시간도 헛되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작은 점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아버지의 그 역사의 선, 한 곳 위에 찍혀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그 시간 선을 이어가는 먼지 같은 작은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대로 멈춰서도 나의 삶은 헛되지 않다.』
저는 이 간사님의 고백을 읽으면서 이것이 바로 맥추감사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간사님은 자신의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시한부의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며 자신의 생명을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헛된 것처럼 보여도 이분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 간사님은 이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추수를 거두었습니다. 이 분의 삶을 통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며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했겠습니까! 이 자체로도 풍성한 추수감사입니다. 그러나 이분이 거두게 될 진짜 추수는 천국에 있습니다. 극심한 고난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한 이분의 삶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맥추감사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우리 모두 다니엘과 같은 믿음의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고 감사합시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감사합시다. 경건한 자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중합니다. 그래서 죽음도 유익합니다. 이 믿음으로 감사합시다.
맥추감사는 첫 열매 감사입니다. 가장 귀한 주님, 가장 사랑하는 나의 주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감사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신 주님입니다. 그 주님을 생명 다해 사랑하는 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첫 열매로 맥추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추수를 거둘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빛나는 추수를 거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맥추감사로 삽니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