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공원 제4경 대화
“얘들아, 이 조각상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
혜영쌤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며 질문을 던진다. 올림픽공원은 센터에서 걸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초등학생 5,6학년 학생들. 한참 자랄때이니 몸이 가만있질 않을터이다. 방학을 맞아 아침부터 나오는 아이들을 위해 센터에서 체험학습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름하여 올림픽공원 도장깨기. 올림픽공원에서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된 9개의 장소를 방문하여 스탬프를 찍는 프로그램이다.
“쌤, 이게 조각상이예요?”, “혜영쌤, 이상하게 생겼어요.”
한참 뛰어 다니던 아이들은 혜영쌤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선생님에게 답을 알려달라는 것인지, 어쩌면 그 이름에 관심이 없는지.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조각상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있다.
평화의 광장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오면 폭 6m, 높이가 3.3m의 거대한 조각상이 나타난다. 1987년도에 만들어진 조각이라 이젠 제법 세월이 느껴진다. 조각상은 자연속에 나무들과 멋지게 어우려져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하나의 큰 바위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천천히 그 모양을 보면 이 작품의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커다란 바위를 조각했는지 알 것도 같다.
조각상은 두 사람의 흉상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두 조각상은 입을 제외하고 온전한 형체를 지닌 모양이 없다. 굳게 다문 입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조각상의 이름은 ‘대화’이다. 알제리의 유명한 조각가 모한 아마라의 작품이다. 그는 1987년에 내한하여 50일동안 거주하며 이 조각상을 완성하였다.
“얘들아, 옛날에 한 마을에 쌍둥이 형제가 살았는데 매일 치고 박고 싸웠던 거야! 이 싸움은 자신들은 물론, 온 동네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줬대! 얼마나 시끄러웠겠어! 그래서 하루는 동네사람들이 화가 나서 신에게 찾아갔어! 싸움을 못하게 해 달라고 그들은 신에게 요청했지! 신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쌍둥이에게 벌을 내렸어! 그 벌은 매일 붙어서 치고 받는 두 형제의 눈을 멀게 한 거야! 이 쌍둥이는 이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 서로 살기 위해서는 소통을 해야 되었어! 자 어떻게 소통해야 될까?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지? 서로 얘기하려 한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어? 그래서 이 조각상을 만든 작가는 대화를 위해 먼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거야! 얘들아 이 조각상의 이름이 뭐라구?”
“대화예요”
# 성공적 올림픽 개최,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공부할 때 꼭 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실습이다. 나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강동구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올림픽공원은 센터와 매우 가까워 주 1회 이상 방문하는 코스이다.
내 청소년기의 추억들이 이 곳, 올림픽공원과도 연결되어 있다. 중학생 시절, 그 즈음 올림픽공원이 완공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모든 학교가 올림픽공원을 방문했을 것이다. 사생대회며, 졸업사진이며,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서울이 개발되고 발전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풋풋한 청소년기를 지나는 시기였기 때문인지 올림픽공원을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좋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무엇도 할 수 있을것만 같았던 그 시절, 그때 대한민국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올림픽, 전 세계인의 축제이다. 하지만 80년대 다른 국가에서 열린 올림픽들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지 못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미국을 포함한 자유진영이 참가하지 않았고, 1984년 LA올림픽은 이에 반발한 공산진영이 불참하여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야 비로소 자유진영도, 공산진영에 있는 국가들도 참여할 수 있었고 화합과 전진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인종간의 화합, 동서간의 화합을 이루게 되었다. 비록 북한이 끝내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전세계는 미래를 향해 한 발자욱 평화의 시대로 전진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올림픽공원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 곳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사회복지 실습 지도자이자, 도장깨기를 인솔하는 혜영쌤도 90년대생이다 보니 세계의 냉전속에 만들어진 헝가리인의 작품, ‘대화’의 의미가 남북의 문제, 평화와 통일의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혁구쌤! 이 곳에 와 보신적 있으세요?”
“네 30년도 더 되었네요! 올림픽공원이 처음 생겼을때 학교에서 다같이 방문했었어요. 그때도 이 조각상이 있었는데.”
“작가는 이 조각상을 만들때 분열된 세계가 화합되길 바랬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독일은 분단 국가였어요. 혜영쌤이 태어나기전 이야기지요? 지금은 독일이 통일국가가 되었습니다. 올림픽이 열릴 당시 사람들은 독일보다 우리나라가 먼저 통일이 될 줄 알았을 거예요. 우리에게서 세계인들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느꼈을 거예요. 하지만 올림픽 이후 독일은 통일이 되었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30년이 넘도록 분단된 상태로 계속 남아 있네요.”
“쌤의 이야기를 들으니, 88올림픽때에 우리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아직 분단된 채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현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쌤. 실습때 실습생들이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한 번씩 진행하는것 아시죠? 쌤이 괜찮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통일교육을 해 주세요!”
# 한반도, 대화가 필요해!
“친구들, 북한하면 무엇이 떠오르지요?”
“김정은이요!”, “핵미사일”, “못사는 나라”
대체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현 상황을 반영한 실제이다. 하노이 회담결렬이후 북한은 맹렬하게 대한민국을 비판했고, 코로나19가 시작되자 북한은 국경을 모두 걸어 잠궜다. 이후 조금씩 얼굴을 내미는 북한. 그러나 남북은 서로에게 강대강으로 맞서며 그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매일 뉴스에서 북한이 선동적이고 긴장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아이들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답변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얘들아! 얼마전 혜영쌤과 올림픽공원에 가서 도장을 찍었었지? 총 9개의 아름다운 곳을 방문했었는데, 그 중 제4경의 이름을 아는 친구?
“저요. ‘대화’예요.”
“왜 ‘대화’라는 조각상이 거기 있는 것일까?”
“형제들 싸우지 말라고 신이 벌을 내렸데요. 그래서 대화를 하게 했데요.”
“맞아 싸움은 나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야! 서로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꼭 대화가 필요해!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참여 했지. 애들아! 88년도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무슨일이 생겼는지 아니? 독일이 통일 된거야! 독일은 대화하기 시작했고, 90년도에 통일을 이루었어! 그런데 올림픽을 개최했던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3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통일이 되지 못했지! 아니, 통일이 뭐야,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싸우고 있지 않니?”
“아니, 북한이 먼저 미사일을 쏘잖아요?”, “맞아요. 북한이 잘 못한 거예요!”, “우리는 잘 못 없어요!”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쏘고 위협하는 행동을 도발이라고 해! 북한이 계속 우리를 도발해 오지? 그렇다면 우리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하면 그 도발을 멈출 수 있을까?”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한 아이가 흐르는 정적을 깨고 답한다.
“대화를 하면 되요”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현 남북관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모두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까지도.
# 그래도 대화가 필요해!
얼마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있었다. TV중계를 보다 흥미로운 시합을 발견하였다. 여자농구에서 남북전이 열렸던 것이다. 그것도 두번이나 남북이 붙었다. 예선과 3,4위전, 남과 북의 선수들은 각 국가를 대표하여 열심히 뛰었다. 아니 치열하게 그들은 경기에 임했다.
해설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남북전에 임하는 선수중 5명의 선수가 그 전 아시안게임에서 하나의 팀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남북은 단일팀으로 선수단을 꾸려 출전했다. 그리고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아시안게임. 남북의 강대강 현실을 반영하듯, 남북은 하나의 팀이 아닌 각각의 팀으로 서로의 상대가 되어 상대방을 이기려 하고 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정겨운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도 못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가? 생각해 보라!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과 같은말을 사용하는 국가를 찾을 수 있는가? 같은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국가가 있는가? 하나의 형제라고 부르는 두 국가. 코리아로 불리는 두 개의 나라. 대화가 가능한 나라! 그런데 사소한 말조차 서로 건네지 못한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이후 한반도의 평화의 바람이 잠깐 불었지만, 지금은 여전히 대화가 단절되어 있다. 몇 번을 단일팀으로 남북이 하나가 되어 국제경기에 출전했지만, 언제든 서로 적이 되어 싸울수 밖에 없는 두 개의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잊지말자!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