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첫 40대 女총리 트러스 선출… 대중-대러 강경파
5일 신임 영국 총리 겸 집권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리즈 트러스 전 외교장관(왼쪽)이 런던 ‘퀸엘리자베스2세’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런던=AP/뉴시스
대중국-대러시아 강경파로 꼽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47·사진)이 5일(현지 시간) 영국의 새 총리로 선출됐다. 마거릿 대처(1979∼1990년 집권), 테리사 메이(2016∼2019년 집권)에 이은 세 번째 여성 총리다. 각각 54세, 60세에 취임한 대처, 메이와 달리 40대 여성 총리의 탄생은 영국 역사상 처음이다. 트러스 신임 총리는 자유무역, 작은 정부, 매파 외교 등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 전 총리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뜻을 밝혀 ‘제2의 대처’ ‘리틀 대처’로 불린다.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물가, 경기 침체 우려, 공공부문 파업 등 직면한 난제가 상당하다고 현지 언론은 지적했다.
트러스, ‘트리플 난국’ 영국호 맡아… “대담한 행동으로 위기 타개”
英 첫 40대 여성 총리
옥스퍼드大 입학후 좌파 → 우파로… ‘철의 여인’ 대처 롤 모델로 정치
6개 부처 수장 지내며 행정 경험… “불평등 해소보다 성장에 초점”
대대적 감세-에너지 위기 대응 밝혀
남편에게 축하받는 英 3번째 여성총리 5일 신임 영국 총리 겸 집권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리즈 트러스 전 외교장관(왼쪽)이 당 대표 경선 결과가 발표된 런던 ‘퀸엘리자베스2세’센터에서 남편 휴 올리리의 축하를 받고 있다. 그는 마거릿 대처, 테리사 메이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여성 총리이며 40대 여성 최초로 총리에 올랐다. 런던=AP 뉴시스
5일 영국 집권 보수당 대표 겸 새 총리로 선출된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47)은 영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이자 첫 번째 40대 여성 총리다. ‘제2의 대처’로 불리는 그는 지난달 1일부터 이달 3일까지 당원 17만2437명을 대상으로 한 우편 및 온라인 투표에서 8만1326표를 얻어 6만399표를 얻은 인도계 엘리트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을 눌렀다.
트러스 신임 총리는 이날 총리 선출 직후 연설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 정책, 겨울철 에너지 요금 상승 억제와 에너지 공급원 확보 등 에너지 위기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족과 이로 인해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물가, 경기 침체 우려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이다.
트위터에서는 “험난한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대담한 행동을 취하겠다”며 경제를 발전시키고 영국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6일 스코틀랜드 밸모럴궁에서 트러스 총리를 접견하고 정식 임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트러스 총리는 여왕 즉위 후 16번째 총리다.
보수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위반한 뒤 거짓말로 일관해 거센 비난을 받은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7월 7일 사임 의사를 발표하자 이후 경선을 통해 트러스 총리와 수낵 전 장관을 최종 당 대표 후보로 확정했다. 이후 트러스 총리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연상케 하는 말투와 옷차림 등으로 ‘강한 영국’을 그리워하는 보수 성향 백인 보수당원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 6개 부처 장관 출신의 ‘리틀 대처’
트러스 총리는 197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교수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는 젊은 시절 반핵 활동을 한 좌파였다. 그 역시 10대 시절에는 부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보수 성향이 짙은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후 우파로 돌아섰다. 옥스퍼드에서도 최고 엘리트만 모인다는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1996년 보수당에 입당했다.
초선 의원 때부터 대처 노선을 추종하는 동료 도미닉 라브 전 외교장관, 프리티 파텔 전 내무장관 등과 ‘자유기업 그룹’이란 모임을 이끌었다. 2012년 옥스퍼드 PPE 선배인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에 의해 교육장관으로 발탁됐다. 이후 환경, 법무, 재무, 국제교역, 외교 등 6개 부처 수장을 지내며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았다.
당 대표 경선 초반 그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코로나19 대처 때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 경제 충격을 줄였다는 평을 얻은 수낵 전 장관에게 밀렸다. 하지만 트러스는 잡화상의 딸이었던 대처처럼 자신도 중산층 출신임을 강조하며 ‘대처 따라하기’ 전략을 적극 구사했다. 특히 재직 중 감세, 민영화를 시행해 보수당의 핵심 지지층인 장노년 백인 남성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대처와 마찬가지로 “불평등 해소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적극적인 감세를 예고하는 ‘대처 마케팅’을 펼쳤다.
○ 고물가-에너지난 등 총체적 난국 직면
대처 전 총리를 역할 모델로 삼은 트러스 앞에 놓인 현실도 대처 시대와 비슷하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는 10%대를 기록해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 등은 고유가 등으로 내년 영국 물가가 22%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 등 공공부문 노조원들은 이미 대규모 파업을 예고했다.
이에 대처 집권 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고물가와 대규모 파업이 잇따랐던 ‘불만의 겨울’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도자 중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고 다양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겨울철을 앞두고 고조되는 에너지난 해결 또한 주요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신속히 마련되지 않으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많은 이들이 궁핍 상태로 내몰리고 겨울철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가 강조한 감세 정책은 세금을 많이 내는 고소득층에 유리한 편이라 비판이 예상된다. 감세가 시중 유동성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재정 적자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파리=조은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