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두 달이 안돼 형은 남가좌동 모래내 철뚝 너머에 방 한 칸을 얻어 여자와 살림을 냈다. 비록 남들이 다 하는 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여자가 형의 아내이고 우리의 형수임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외진 동리의 철둑밑에 엎드린 남루한 집의 작은 한 칸 방이지만 신접살림를 꾸린 형의 방에서는 신혼의 젊은 남녀가 뿌려놓은 부끄러운 살내음과 소박한 정다움이 넘쳐 났다. 철로쪽으로 난 창에 드리워진 분홍빛 커텐이며 새로 장만한 장농, 화장대에서도 그 풋풋한 내음들은 어김없이 배어났다.
용태도 장가 가서 잘 살고... 인쟈는 아무 걱정없다... 형에 대한 어머니의 안도마저 그 여자로 기인된 듯해서 여자에 대한 우리들의 고마움은 더 컸다.
살림 일궈 나가면서 꽤나 정다이 사는 줄 알았던 형집에 처음 분란이 생긴 것은 형이 여자와 동서생활을 시작한 지 채 다섯 달이 못 돼서였다. 예전같이 취한 형이 오류동 집엘 와서는 여자가 집을 나가버렸다면서 끄억끄억 울어댔다. 마음 잡고 살겠다더니, 그 년 죽일 년이예요, 제 버릇을 못버렸어요, 아무리 술집에서 만났기로소니 그럴 수가 있능교, 진짜로 그 년만은 다르다고 여깄는데... 오매도 알지요? 지가 이 세상에 나와서 사내로서 처음 정을 준 년이 그 년 아잉교, 그런데 내뺐뿌린기라요. 몽땅 걷어가지고 흔적없이 가뿌릿는기라예....
여자가 왜 집을 집을 나갔는지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다시금 형이 불행하게 되었으며 덩달아 어머니와 우리들도 한몫 불행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확연히 깨달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버린 형이 갈 곳이라고는 귀신이나 잡으러 다녀야 되는 그 자폭의 세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날 며칠 직장에도 나가지 않은 채 소줏병을 엎으면서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짜던 형이 마침내 직접 여자를 찾겠다고 집을 나섰다. 한 주일만이던가. 형이 여자를 찾아 그녀와 함께 돌아왔다. 전라남도 신안 바다의 섬 가운데 친가가 있다는 여자의 얘기를 떠올리고 그 섬들을 죄 뒤진 끝에 용케 집에 내려와 있던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섬에까지 찾아 온 형의 정성에 감동했던 것일까. 마음을 바꾼 여자가 형을 따라나섰고 이듬해 봄에는 아이를 낳았다.
인쟈는 쟈도 얼라를 놓았고 에미가 되었으이끼네 딴 맴은 안묵을끼다-- 손주를 얻은 기쁨보다 며느리의 정착을 기정사실화 하는데 더 마음이 급했던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여자는 그후로도 몇 번의 가출을 더 시도했고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는 아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예정돼 있던 형의 죽음이지만 그 시간이 훨씬 단축된 데는 아무래도 여자의 가출과 뒤이은 어머니의 갑작스런 별세에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삼양동 비탈 동네로 셋방을 옮긴 형은 또다시 남아있는 오른손 하나로 머리를 감고, 한 손 세수를 하고, 아래 위 이빨까지 동원해서 겨우 의수를 풀고 매고해야만 했다. 그 무렵, 형에게는 아이 하나가 온전히 의지처며 희망이었다. 아이가 곧 형의 수족이었다. 갖난애때부터 불구의 아비한테 길들여진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빨래를 하고 밥을 하는 시늉을 했다. 어쩌다 내가 삼양동 비탈의 형 집을 들릴라치면 아비의 술안주를 만든다고 두부를 자르고 파를 다듬는 아이의 모습을 쉬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아이한테 그려진 집 나간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 번도 제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아이 또한 제 아버지와 다름없이 제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만 키우고 있었다고 할 수가 있을까.
형의 어머니, 곧 우리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물론 형의 그러한 전락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아랫것들을 데불고 상경하던 그 무렵 벌써 어머니의 육신은 마멸될 대로 마멸돼 있던 참이었다. 마흔에 지아비를 여의고 홀로 일곱 아들을 키워 오는 그 모진 세월이 어머니를 그렇게 허물어 뜨려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썩은 고목 쓰러지듯 넘어져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한 것이 추석전날이었다. 뇌졸증이었다. 곧바로 병원에 옮겨지긴 했지만 사흘 후 마지막 숨을 놓을 때까지 어머니는 한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삼양동에서 달려 온 형은 병원 중환자실 앞의 보호자 대기석에서도 영안실에서도 한 마디 말이 없었다. 마냥 고개를 떨어뜨린 채 사나흘을 그렇게 넋놓고 앉아 있었다. 밥 한 술, 술 한 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장례날, 어머니의 관이 땅속으로 들 적에는 차마 흐느껴 울지도 못한 채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기만 했는데 그때 나는, 형의 무성한 수염과 광대뼈 아래에 더 깊게 패인 볼우물이며 전율하듯한 몸떨림을 지켜보면서 머잖아 다가올 형의 죽음을 그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의 흉부에 박혀있다는 작은 쇠붙이들이 단순한 쇠조각, 파편만이 아님도 나는 그렇듯 스스로 수렁 속에 잠겨가는 형을 보면서 느겼다. 그때까지 나는 형의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본 적이 없었지만, 가슴 속에서 파편들이 자라고 있다는 형의 말을 믿었다. 그것들은 단지 육신의 원활한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금속물질이 아니었다. 그 쇠조각들은 형이 만들어 내는 절망의 부피만큼 점차로 자신의 크기와 수효, 독성을 늘여가는 세균과 같은 것이었다. 파편들이 곧 박테리아며 바이러스였다. 그들은 여느 병균과 마찬가지로 형이 스스로를 무너뜨려 갈 때 마다 증식력을 배가해 가며 허파를 뚫고, 위벽과 간을 파먹어 갔으며 이윽고는 형의 육신 전체를 공동화(空洞化) 시켜버렸던 것이다.
여자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형은 그 병균들에게 가졌던 지금까지의 제어력마저 완전히 상실했다. 위세좋게 균들이 전신을 공략하고 들었음에도 형은 무장해제된 병사처럼 전신을 그들에게 방만히 내맡기고 있기만 했다.
형에 의하면, 그 균들은 해병의 섬에서 묻혀 온 것이었다.
무쇠같이 튼튼한 육신을 자랑하던 형은 당시 강화도 북단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교동도(橋洞島)에 배속돼 있었다. 한 뼘 바다 너머로 북녘의 산과 들이 지척인듯 바라다 보이고 건너편의 인민군 모습까지 육안으로 빤히 보였다고 했다.
장마와 함께 임진강이 범람했다. 범람한 강물따라 바다로 떠 내려 온 각종의 부유물들은 곧잘 교동도의 해안까지 밀려왔는데 그들중에서 가장 위험스런 것은 그동안 남북의 강안에 매설돼 있던 지뢰와 같은 폭발물들이었다.
잠시 비가 그친 날의 아침녘, 형은 여느 때처럼 분대원들을 거느리고 해안을 순찰했다. 전방에 나섰던 분대원이 해안 모래톱에 얹혀 있는 비누곽처럼 생긴 지뢰 하나를 발견했다. 인민군이 저들의 전선에 매설했던 중공제 지뢰였는데 해병들에게도 낯 익은 것이었다. 순찰로에서 발견된 위험물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 몇 차례의 경험도 있었으므로 형의 분대는 자체적으로 폭발물을 처리하기로 했다. 원거리에서 총으로 쏴서 폭발시키든가 그보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직접 사람이 나서서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 통상의 수법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차 사격으로 폭발을 시도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이미 기능이 망가진 것일 수도 있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다음에는, 누군가가 폭발물에 다가가 직접 뇌관을 제거하는 일이 남아 있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듯, 자원자는 없었고 분대장인 형이 나섰다. 비누곽의 두껑을 벗기듯 침착히 지뢰의 윗면을 젖히고 약창과 연결이 돼 있는 전선을 끊어버리면 일은 끝난다고 형은 스스로를 추스렸다.
가는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던가. 형은 왼편 무릎을 세운 채 지뢰에서 십오도 각도 각도로 비스듬히 돌아앉아서 오른손 하나만 움직여 지뢰의 두껑을 벗겨내려고 애를 썼다. 폭발때 날아가 버린 왼손은 그때 세운 왼쪽 무릎위에 얹혀 있었다. 빗물이 화이버 끝에서 툭툭 떨어졌다. 제길헐, 잘 안벗겨지는구먼, 투덜대며 오른손에 좀더 힘을 가하는 순간 형은 망막을 덮는 흰 빛과 벽력같은 폭음에 묻혀버렸다.
평소, 형은 자신이 얼마만큼 해병다웠는가를 말할 적 마다 쉬 그날의 사고를 반추하곤 했는데 특히 폭발의 순간을 설명할 적에는 자못 음성까지 비장하게 변했다. 아직도 암울한 장마비에 갇힌 교동도의 바닷가에 있기라도 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으며 저절로 상체는 꼿꼿이 세워졌고, 꽉 쥔 한 손의 주먹에도 매운 기운발이 맺혔다. 그 참혹한 날의 기억을 추스리면서도 형은 결코 회한이나 절망의 낯빛을 짓는 법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객스런 자랑기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해병이라면 응당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듯 제법 작위적인 당당함마저 그 처연함속에 끼워 넣을 줄을 알았던 것이다.
[이름도 안 잊어버린다. 정용환 대위야. 디럽게 군기를 잡긴 했지만 한다면 한다 하는 앗쌀한 장교였던기라. 정 대위 아니었으먼 난 그때 벌써 뒈져 뿌릿는기라. 그만큼 피를 흘렸는데 언제 배 타고 인천으로 후송돼서 치료를 받겠노 말이다. 그라고 용케 안죽고 실려갔다 치자. 틀림없이 국군병원에 갔을텐데 맨날 그런 놈 수십 명씩 실려오는 국군병원에서 어떤 눔이 나같은 해병 쫄따구를 살리겠다고 설치겠노 말이다. 안 뒈지고 살아 남는 것만도 기적인기라. 그러이끼네 정 대위가 내 목숨을 살려낸기라. 동네의 소달구지 하나 뺏어 와 가지고는 날 싣고는 막 달리는데 난 그때 담요에 뚤뚤 말린 채 얹혀 있었지만 의식은 있었던 기라. 언 놈이 소리치고 언 놈이 지랄하는지 다 알았는기라.
그 해병새끼들이 이 박용태를 살려야 된다믄서 얼마나 세게 달렸는지 알겠나? 산 타넘고 들판 질러 가는데 시속 70킬로로 달렸다 카더라. 황소가 뒈질라고 했다 카이끼네 말 다했제. 몸이 공중에 팡팡 뛰고 하는데도 나는 진짜로 아푼 줄도 모리겠는기라. 동네 의원한테 먼저 갔는데 촌 의원인들 송장 다 돼서 온 놈한테 손 쓸 일이 머 있겠노. 헝겊 자르는데 쓰는 가위 가지고서 너덜너덜 해 있는 살점이나 대강 잘라 내고는 아까징끼나 쏟아 붓는 방법밖에 머 있겠노 말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었던기라. 팔 다리가 다 날아가뿌릿구나 하는 생각꺼정 했으이끼네 정신은 멀쩡했던기라. 그때 정 대위는 머 하고 있었는 줄 아나? 무전기 붙잡고 헬리콥터 보내라고 지랄하고 있었던기라. 본부에다 대고 지랄하는거지 뭐겠노.
그런데 저쪽에서 헬리콥터를 보낼 수 없다고 카는갑더라. 날씨가 어떻고 비가 어떻고 해쌓며 핑계를 댔겠지 뭐. 그러이끼네 인쟈 정 대위가 무전기에다 대고 개발새발 욕을 해대는기라. 이 개새끼들아, 보내라 카먼 보내지 와 말이 많노. 너그들 새끼 본부에 앉아서 날씨 타령만 해대는 놈들은 모조리 배 타고 건너가서 몰살해 버릴끼다고 소리 쳐대는기라. 그래도 말을 안듣는갑더라. 나중엔 정 대위가 무전기에다 대고 진짜로 권총을 빵빵 쏴댔는데 그것이 그 새끼들한테도 약이 됐던기라. 두 시간쯤 지났을까. 지붕위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윙윙 나는기라. 그런데 헬리콥터만 오먼 머 하노. 따라온 군의관이 내 혈압이며 맥박을 재 보더니만 헬리콥터를 탈 수 없다 카는기라.
백발백중 가다가 죽는다는기라. 그러이끼네 정 대위가 인쟈는 군위관 모가지에 권총을 들이대고 지랄하는기라. 우리 박용태, 교동도 더러운 섬에서 죽는기나 헬리콥터 타고 가다가 죽는기나 매한가지다, 박용태 저 새끼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비행기 못 타봤다. 이왕에 죽일라 카거든 헬리콥터 타고 가다가 죽이뿌라. 이건 명령이다. 말 알들으믄 널 쏴 죽이고 내가 직접 조종해서 갈끼다 카는기라... 내가 의식을 잃어뿌린 건 아마 헬리콥터를 타고 공중에 떴을 때인갑다.
눈을 떠 보이끼네 부평 미군병원인데 어데로 어떻게 날아 왔는지 아무 생각이 안나는기라. 우쨌든 한국 해병 쫄따구가 미군병원까지 들어왔으끼네 출세는 한기지 뭐꼬. 양놈들이 신사라 카제? 맞는기라. 그눔아들한테는 장교고 졸병이고 따로 없는기라. 아푼 사람이믄 무조건 잘 해 주고 최대한으로 치료해 준다는 기 갸들 원칙인기라. 나 갸들 병원에 안갔으먼 지금 두 손 다 없는 병신인기라. 왼손은 일찌감치 날아가뿌맀다 카이끼네 그렇다 치고 오른손도 삐따구 몇 개만 달랑달랑 남아 있었는데 내 눈으로 봐도 손이 아잉기라. 다 잘라내야 됩니대이, 하고 쓱쓱 칼질을 해뿌맀으믄 내사 우짤기고. 양놈들이끼네 한국군 쫄따구지만 삐따구 몇개 가지고도 손 만들어 줄 생각을 했던기라. 궁뎅이 살 떼다가 손가락 만들고, 깨진 뼈 붙이고... 그눔아들, 기술도 일류인기라. 그러이끼네 이렇게 오른손 하나라도 건진 거 아잉가]
뒤이어 가슴이며 복부에 박힌 파편 제거 수술도 몇 차례 했지만 팥알만한 작은 것까지 완벽하게 없애지는 못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보면 육안으로도 파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육체의 회복을 봐 가면서 차차 나머지 것들을 제거하기로 돼 있었지만 형은 그 수술전에 퇴원을 했고 두 번 다시 병원을 찾지 않았으므로 쇠조각들은 그대로 형의 가슴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형이 결핵 진단을 받은 것은 원호대상자로써 농협에 취직을 한다고 건강진단서를 챙기던 때였다. 형 나름으로 무슨 불길한 예감이 있었던 것일까. 형은 지정 병원에 가기전에 먼저 동네 의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거기서 나온 진단이 결핵이었다. 그전부터도 자주 기침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 식구들은 감기 탓이다, 기관지가 안좋아서 그렇다는 형의 말을 믿고 의심을 하지 않았다.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형은 의사의 말조차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자슥도 돌팔이인기라. 나 보고 결핵이라꼬? 그러이끼네 동네 의사밖에 못 해 묵는 기라. 그럴 줄을 알고서 내가 미리 엑스레이의 희끗희끗한 것들을 가리키면서 저것들은 폭탄 파편입니대이 하고 몇 번이나 가르쳐 줬는데도 들어 묵을라고 안 카는기라. 자슥도 군대를 안 가 본기라. 군대를 안 갔으이끼네 지뢰가 어떻고 파편이 어떤지를 우째 알겠노 말이다]
의사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된 말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형은 제 건장하던 육신에 은밀히 결핵균이 틈입하여 둥지를 틀고 그리하여 차츰 전신을 잠식해 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튼, 취업이 아무리 요긴하다 해도 회사가 요구하는 서류를 장만치 않고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정병원에서까지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그것은 결핵의 병적(病跡)이 아니고 지뢰의 파편이다고 억지를 부린다 해서 의사가 곧이 듣지 않는다는 사실은 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형은 서류를 갖추어야 될 급박한 상황에서는 상궤를 벗어난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류의 사진을 바꿔 붙인 다음 손 아래 동생으로 하여금 대신 신체검사에 응하게 했던 것이다.
형의 병세가 갑작스레 악화한 것은 어머니 별세 다음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지라지듯 발작적인 기침을 했으며 건장하던 육체도 눈에 뜨이게 말라갔다. 그런데도 형은 병원에 가 볼 궁리는 하지않고 여전히 몸속의 파편들이 준동하는 탓이다고 억지만 부렸다. 기침이 심할 때마다 약방에서 쉬 구할 수 있는 진해 거담제 하나로 당장의 통증이나 모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병원에 가자고 형제들이 부추기고 달래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임마들아, 너그도 내 말을 못 믿나? 폐병이 아니라고 내가 몇번이나 말했노. 기침이 나는 것도 다 파편 때문인데 와 난리를 치노 말이다]
[형 말대로 파편 때문이라면 지금이라도 파편 제거수술을 하면 될 것 아냐?]
[웃기지들 말어. 내가 이눔들을 껴안고 여지껏 끄떡없이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기침 조금 난다고 빼내 버려? 짜아식들아, 나한테는 이 파편들이 영원한 해병의 훈장이란 말이다. 손모가지 날아가서 병신이 돼뿌린 해병이 훈장없이 사는 것 봤나?]
그렇듯 겉으로나마 기고만장하는 형이었지만 그 무렵 형도 내심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음은 사실이다. 어느 가을날이었던 듯싶다. 막내와 더불어 밤늦은 시각에 삼양동 형집에 들렀다. 여느 때 마냥 형은 취해 있었고 아이는 겁 먹은 낯으로 구석자리에 몸을 옹크리고 있었다.
형은 오랜만에 동생들을 대하고서도 예전과 같이 반가운 빛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술을 마시라고 잔을 준 형은 이내 돌아 앉아서 끄억끄억 울음을 울었는데 울음 사이로 드문드문 내뱉는 말이 오매, 오매...였다.
안면에다 잔뜩 눈물을 바른 형이 형이 나를 불렀다.
[규태야, 죽음이 머꼬? 우리 오매꺼정 땅 속에 파묻어버린 그 죽음이라는 것이 머꼬 말이다. 진짜로 아무 것도 모리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죽음이가? 너그도 생각해 봤제? 희한한기라, 그쟈? 우째 그런 것이 있노 말이다. 지금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순간에 아무것도 모리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주 없어져뿌린다 카이끼네 말이다. 생각하고 해볼수록 미치겠는기라... 생명이라는 것이 머꼬? 태어났으이끼네 죽는 건 정해진 일이겠제?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기라.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것이 아주 이 세상에 없었던 그 무궁무진한 시간이 안 있었나 말이다.
죽음이 그것 하고 똑같은기라.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으로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봐라. 나라고 하는 것이 있나 말이다.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너머까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봐라, 머가 있노 말이다. 죽음도 그런기라. 이러이끼네 우째 안미치겠노 말이다... 아무것도 아잉기라....]
허망과 분노의 음성으로 중얼거리던 형이 갑자기 벽거울을 향해 의수를 내질렀다. 커다란 벽거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렸다. 우주의 대폭발, 빅뱅이 순간적으로 그 벽에서 일어났다. 한 순간의 번쩍임과 함께 빛은 사라지고, 형체와 형물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암흑이 벽면을 삼켰다. 삽시간에 방바닥은 유리조각으로 덮혔다. 형이 유리조각을 깔고 앉은 채 또 끄억끄억 소리내어 울었다. 우리는 형을 위로할 수 있는 여하한 언어도 가지고 있질 못했다. 짧은 시간의 느낌이지만, 나 또한 형의 죽음을 온전히 형의 죽음으로만 인식할 수는 없었다. 머지않아 나도, 저렇듯 형처럼 죽어가야 된다는 암울하고도 막막한 감상에 휩싸여 들었던 때문이었다. 나의 죽음, 나의 허망이 또한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삼양동에서도 형은 오래 눌러 살지를 못했다. 일 년이 채 안돼 집 주인이 방을 비워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 소리 지르고 기물을 부수는 형의 술버릇에 질린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형의 육신에 깃든 병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전염성을 인지한 주인의 조치였다.
그후 형은 나와 동생이 자취하고 있는 북아현동에다 방을 구해 이사를 했다. 형게게는 단 하루라도 아이가 없어서 안됐다. 아이가 제 나이에 어울리지않게 술심부름 약 심부름을 잘 하고 안주거리를 만들고 빨래를 할 줄 안다 해서 아이가 제 어머니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형이 더욱 모질게 아이를 끌어안는 까닭이 그런 소용가치 때문이거나 맹목적인 육친애 때문은 아니었다. 이제 형의 의지처라곤 아이밖에 없었다.
그 무렵 형은, 혈연의 사슬에 묶인, 전혀 자립의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죽은 어머니, 집 나간 아내의 대역(代役)을 맡겨 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느새, 형은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지르는 일도, 사라진 날들을 회억하며 눈물을 짓는 일도 아이를 품안에 끼고 있을 때에만 가능했다. 형 스스로 더이상 자신이 귀신잡는 해병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 통근 버스를 타고 여덟시에 출근하여 오후 여섯 시에 퇴근 하고, 종일 고객들에게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어야 하며, 아래위 감색 양복 차림에 흰 와이셔츠를 받쳐입고 목이 꽉 조이게끔 넥타이를 매야만 하는 형은 이제 서울바닥에 흔해 빠진 월급장이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다 술집에서, 퇴근길의 시장 어귀에서 예전의 그 호기로 쌈판을 벌이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서울의 거친 주먹잡이들에게는 불구의 형 같은 이는 쌈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들에게는 되레 형이 조무라기 건달이며 성치않은 주정뱅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서의 유치장 문턱은 형에게 턱없이 낮았으며, 파출소 소장의 전화 한 통만으로도 형은 스스로 어렵게 도모한 호구처를 잃을 위험마저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나 박용태다. 교동도에서 간첩선 때려잡은 귀신잡는 해병을 몰라? 이누무 새끼들, 다 쏴 죽여뿌린다!]
피멍이 든 채로 땅바닥에 누워 바락바락 악을 써 보아도 누구 하나 아하, 그러세요, 알아 주는 이 없는 데가 서울이었던 것이다.
[병신자슥, 왕년에 군대 안갔다 온 놈 있냐. 니놈이 해병이면 난 유디티다]
갓 고등학교를 나왔을 법한 새파란 건달마저도 예사로 형의 사타구니를 걷어 차 올리고는 유유히 가 버리는 서울거리에서 형은 마음놓고 울음 울 수조차 없었다.
한 동리에 살면서도 나는 자주 형집엘 들리지 못했다. 대학 3학년, 나는 세상은 오로지 나와 같은 젊은이의 것이다고 여기면서 친구들, 여자애들과 어울려 학교로, 거리로 쏘다니며 하루하루를 탕진하느라고 영일이 없었던 것이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야 간신히 내 누울 자리에 찾아들었고 아침에는 황급히 집을 나서야 했으므로 골목 하나 사이에 형집이 있다 해도 한가히 형과 얘기를 나누고 아이와 놀아 줄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형집에서 빨래감을 걷어오고 된장찌개나마 끓이는 일은 언제나 동생의 몫이었다. 그 무렵 대학 진학을 포기한 동생은 공무원 시험공부나 하겠다고 방구석을 지키고 있던 처지였으므로 이편저편의 궂은 일은 혼자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형이 북아현동에 산 기간은 육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거처를 옮겨야 된 사정은 삼양동에서와 같았다. 폐병장이한테 방을 세 줄 수 없다는 집주인의 완강한 내침 때문이었다. 이제 형은 주인이 한 집에 살지않는 집만을 골라야 했다. 그럴쯤에 형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외사촌형이 구한 흑석동 산비탈의 다세대주택이야말로 형에게는 가장 적절한 거처가 될 수 있었다.
소규모 아파트 모양으로 여나믄 개의 방이 1,2층으로 차려져 있는 그곳은 모두가 세 사는 이들의 차지였다. 다달이 방세만 잘 내면 일년내내 주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됐다. 방 한 칸씩을 차지해 오로지 제 식구들에게만 관심을 가질뿐 이웃에게는철저히 무관심한 이들이 사는 곳. 이 다세대주택은 이제 막바지 삶에 쫓기고 있는 형이 파고 들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처럼 보였다.
흑석동으로 이사를 하던 무렵, 형은 이미 거동조차 편치 아니했다. 누가 봐도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강제로라도 요양소에 수용해야 된다는 의견이 형제들 사이에 있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발 벗고 나서서 그 일을 감당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형제들은 벌써 암암리에 형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 지금 병원에 가고 요양소에 간다고 해도 가망이 없어. 스스로 죽을려고 기를 쓰는데 어떡해. 놔 둬....
직장에서도 형의 병세를 알았다. 강권으로 휴직 처리가 됐기에 형은 이제 온종일 병석에만 있어야 했다. 여느 때같이 아이가 제 아버지 곁에 있어서 빨래를 하고 라면을 끓이고 기침약을 사다 대곤 하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자리까지 고스란히 어린아이 혼자에게 맡겨 놓을 수는 없었다.
[나밖에 누가 있어]
형의 마지막 자리를 지키겠다며 막내가 스스로 옷보따리를 챙겨 흑석동으로 갔다.
동생을 떠나 보낸 뒤, 나는 더욱 간촐해진 내 자취방으로 여자애까지 불러 들여 희희덕거리면서도 흑석동에는 거의 발걸음을 끊고 있었다. 늘상 형을 잊고 지내면서도 불현듯 생각이 날라치면 한 순간 불에 데인듯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나는 형의 죽음 자체를 일상의 일로 치부하려고 기를 썼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걸려 올 동생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도,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가파른 기침을 두 병의 진해제로 간신히 억누른 형이 몸소 비닐 옷장의 지퍼를 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햇빛도 잘 들지 않는 흑석동의 그 골방을 찾아 갔던 날이었다. 그전에 형은, 오랫만에 규태 니도 왔으이끼네 면도도 좀 해야겠다며 막내에게 더운 물을 준비시켰다. 내가 보기에는, 그 사이 막내도 형과 다름없는 몰골로 변해 있었다. 몇날며칠 세수며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턱수염이 더부룩하니 자라 있었고 두 눈이 깊게 들어가 있었다. 형의 모습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얼굴과 손발 어디에도 살점 붙어있는 데가 없었다. 형해(形骸)와 다름없는 몰골.
막내가 수건에 더운 물을 적셔 얼굴을 훔치는 동안에도 그렁그렁그렁, 형의 가슴에서 들끓는 가래소리는 내 머리속까지 어지럽게 했다. 벌어진 윗저고리의 앞섬을 통해 갈비뼈가 고스란이 드러난 가슴팍도 보았다. 폐가(廢家)의 흙지붕에 얹힌 서까래와 같은 뼈들의 직조를 보면서 나는 문득 형이 교동도에서 품고 온 금속 파편들이 저마다 하얗게 자신의 예리한 끝날을 빼내고 있다는 환시를 가졌다. 더이상 먹어삼킬 부위도 남아있지 아니하고, 더이상 찌르고 녹일 장기(臟器)도 없는 육신에서 삐져 나와 또다른 육체를 곁눈질 하는 그들 파편의 음험한 촉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썩은 육신에서 꾸역꾸역 구데기들이 삐져나오듯 형의 메마른 가슴살을 뚫고 나오는 살아있는 쇠조각들.
세수 다음엔 면도를 했다. 막내의 손에 쥐어진 전기 면도기가 잉잉 전동음을 내면서 형의 턱뼈를 훑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가래 끓는 소리도 가려졌다. 진중한 표정을 한 채, 무릎꿇은 자세로 형의 얼굴을 면도하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꽤나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체(死體)와 같이 꿈쩍을 않고 누워있는 형과 그 형을 향해 상체를 기울인 막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것도 장례의 한 순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수염이 깍여 나가면서 형의 얼굴뼈는 그 윤곽이 더 예리해졌고 살갗엔 검푸른 빛이 더 살아났다.
면도를 끝내 형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잘록하니 팔목 부위만 남아있는 왼팔을 허공으로 쳐들면서 형이 의수를 채워 달라고 막내에게 시늉했다. 전에도 몇 번 형의 잘린 팔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듯 괴기스럽도록 희고 앙상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팔목에 의수를 끼우고 난 막내가 신중히 구두끈을 매듯 X자 형태로 끈을 조여나갔다. 비록 손의 꼴은 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자의로 움직일 수 없는 플라스틱제 의수임에도 불구하고 형은 그 손으로 툭툭 방바닥을 쳐보고 나서야 됐다,짤막하니 말했다. 장갑은? 비로소 동생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의수에다 평소같이 장갑을 덧씌울 것인가를 물은 것인데 금세 형이 고개를 저었다.
비닐 옷장 하단에 포개져 있는 담요 밑에서 형이 손가방를 꺼냈다. 한 시절 형이 즐겨 들고 다니던 네모 반듯한 가죽제 가방이었다. 가방을 막내에게로 밀쳐 주며 형이 말했다.
[열어봐라, 거기에 군복이 있을끼다]
의외의 말에 나와 막내는 짧게나마 당혹스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군복은 왜? 어디 갈려고?]
외출을 감행하려는 줄 알고 내가 물었는데 형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임마야, 송장이 가기는 어데 가노...]
가방속에 잘 개어져 있는 군복은 형이 즐겨입던 예전의 그 해병 전투복이었다. 오래 그렇게 손질해서 보관해 온 듯 풀기운이 여전한데다 다림질선도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색이 많이 바래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관록있어 보이는 군복.
앉은 채로 형이 막내의 도움을 받아가며 다리에 바지를 꿰고 윗옷을 걸쳤다. 가슴 근육이 도두라져 보일 만큼 몸에 착 달라붙던 예전의 그 군복이 이제는 두루마기 마냥 헐렁하니 걸쳐졌다. 계급장도 명찰도 부대 마크도 붙어있지 않은 군복이었지만 가슴패기의 [해병]이라는 검정 글자만큼은 여전히 선명했다. 군복을 차려 입은 형은 군모를 쓰고 양말까지 껴 신었다.
[나 아직 그대로제?]
애써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은 형이 동생들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응...]
내가 간신히 대꾸했다. 방안에 거울 한 조각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렇듯 다행일 수 없었다.
[너그들 내가 와 갑자기 군복을 입고 설치는지 모리겠제? 다 죽어가는 빙신이 지랄한다 싶제? 그러나 그기 아잉기라, 나, 몸은 이래도 아직 정신은 말짱한기라. 이렇게 정신이 말짱할 적에 너그들한테 꼭 해둘 말이 있는기라. 중요한 말인끼네 디럽게 드러누워서 하는 것보다는 군복이라도 채려입고 하는 것이 끗발이 서겠제, 그쟈? 웃지 말래이. 나 아직도 해병인기라. 귀신이 날 데려 갈라고 기를 쓰지만 난 아직도 귀신잡는 해병인기라. 군기가 하나도 안 빠져 있는기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 너그도 들었제? 그래서 너그들한테 말하는기라...]
그쯤에서 형은 다시 모진 기침을 했다. 기침은 목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패기의 썩은 살갗을 터트리며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막내가 형의 손짓만 보고서도 얼른 암갈색의 약병을 드밀었다. 형이 단숨에 바닥까지 비웠다. 입가에 묻은 약액을 손등으로 훔치고 난 형이 말을 이었다. 형의 유언이었다.
[너그들, 내 말을 꼭 명심해야 된대이. 안그라믄 내가 너그들 쥑여뿌린대이. 저기 완이 새끼 있제. 너그들이 책임져야 되는기라. 너그들이 못키우믄 어떤 형한테 맡겨도 좋은데 말이다, 절대로 저눔의 새끼 울려서는 안 되는기라. 밥 안 묵이고 옷 안 해 입히고 핵교 안 보내는 것 정도는 내가 봐 주겠지만 말이다 진짜로 울리믄 안되는기라. 해병새끼가 질질 우는 꼴을 보여 봐라, 그건 총살감인기라. 내가 저 새끼 죽이기 전에 너그들부터 죽여뿌리는기라. 내 성질 알제? 또 있는기라. 내가 이렇게 드러누워 있어도 저 새끼 엄마가 간혹 근처에서 얼찐거린다는 걸 아는기라. 혹시나 모린다. 나 죽고 나먼 그년이 나타나서 저 새끼 내놓으라고 앙탈을 부릴지도 모리는 기라. 절대로 그년한테 주먼 안된라. 용서없대이. 내 말 알아 듣겠나?]
알아 듣겠나?, 다짐을 놓는 형의 음성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나와 막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난데없이 형이 뻑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적다. 이새끼들아!]
그날 이후 형은 한 달을 더 견디지 못하고 숨을 놓았다. 형이 이상해. 빨리 와 봐. 새벽녘에 걸려 온 전화의 막내는 전에 없이 침착성을 잃고 있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흑석동으로 달려 갔지만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형이 숨을 거둔 뒤였다. 아이는 물정 모른 채 잠을 자고 있었고, 막내는 넋이 나간 양 벽에 등을 기댄 채 형의 시신쪽으로 두 다리를 죽 뻗고 앉아 있었다.
2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 입학시험 원서를 내러 올 때부터 이 대학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거든요. 생전 처음 와 봤는데도 말예요. 그런데... 작은 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돼요. 제가 살던 집은 어느 쪽이예요? 저쪽 비탈?]
아이, 아니 완이가 손을 쳐들어 담너머 산비탈 마을을 가리켰다. 예전보다는 훨씬 깔끔한 집들이 들이찬 산동네. 내가 보기에도 그의 손대중이 그럴싸 해보였다.
[그래, 그쯤일거야]
그 다세대주택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거라 여기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벌써 알고 있었다. 완이가 말하는 '아버지'가 이제는 시골의 큰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완이한테 원래의 큰아버지로 되돌아 간 큰형이 진작에 나에게 말했다. 규태 니가 말 다 해줘삐라. 완이 그눔아 인쟈는 얼라가 아잉기라. 군에도 갔다 왔고 졸업도 내일모레 아잉가. 지눔이 어디서 태어났고 우째 자랐능가 알아야 되는기라. 졸업해서 새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말이다. 그것이 죽은 갸 애비한테도 도리가 되는기라.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너그가 하는 것이 차분하고 안낫겠나. 그쟈? 말 다 해뿌라. 내사 괜찮은기라... 전선을 통해 오는 큰형의 음성에서 술내음이 났다.
나와 완이는 예전의 그 어느 날처럼 동상이 바라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늦가을의 흰 빛살이 동상으로 선 여인의 도툼한 어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늙지도 낡지도 않는 동상.
[가시죠, 작은 아버지]
완이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그가 예전 제 어린 시절에 살던 동리를 찾아 가보자고 말하는 줄 알았다.
[요즘도 술 많이 하시죠? 오늘은 제가 한 잔 사겠습니다. 조오기 교문 앞에 저희들이 잘 가는 닭발집이 있거든요. 싸고 맛있고 괜찮아요]
말해 놓고도 녀석이 쑥스러운듯 제 머리를 긁었다.
[그래]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다. 그를 따라 일어났다.
담벼락을 따라 휘어 도는 비탈길을 내려오던 참에는 대학 졸업반인 녀석이 꼭 개구장이 아이처럼 나무꼬챙이를 줏어 들고는 휘휘 허공을 그어댔다. <完>